어느 날 학원에서불어 선생과 대화하던 중, 선생이 갑자기 그러면 결국 당신들 산업스파이 아니냐는 식으로 얘기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다녔던 '왜로쌍트르(Eurocentre)'라는 어학원은 수강료가 꽤 비싸 유럽이나 중남미에서 오는 학생들 경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학생들이 주로 왔는데, 한국에서 오는 학생들 경우 거의 전부가 은행이나 기업체 등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로 개인의 경제적 능력과 관계없이 파견한 회사에서 학비를 전액 부담해 주고, 자비로 다니는 학생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학원 다녔던 6개월 동안 전혀 없었는데, 자비로 학원비를 내야 하는 한국 학생들은 아마도 수강료가 좀 더 저렴한 소르본느 어학과정 같은 곳에 등록하고 다녔을 것이다)
프랑스에 와서 일도 전혀 안 하고, 여행 다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또 Paris에서는 가장 비싸다는 어학원에서불어까지 배우는데, 그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고 회사가 지불한다니, 그 대가로 프랑스의 무슨 중요 산업 정보나 고급 정보를 습득하고 빼 돌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했던 것이다.
1995년 당시 일본은 이미 경제강국으로 부상했고,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서서히 경제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프랑스의 지식인들 중심으로 이러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일종의 경계심 또는 경쟁심 같은 것이 점차 대두되던 분위기였는데 이런 분위기도 학원 선생이 우리를 혹시 산업 스파이가 아닌가 의심하게 했던 요인 중 하나였을 듯하다.
가깝게 지내던 한국인 식품점 사장이 Paris 드골 공항에서 일종의 개구멍 같은 작은 통로를 통해 다량의 한국 식품을 편법으로 통관하려다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되었다 풀려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장에게 들어보니 체포되어 있는 동안 프랑스 모 기관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프랑스 정부를 위해 일할 의향이 없느냐고 문의를 했다고 했다. 동의하면 불법 통관 범죄를 사면해 줄 수 있다고 했다는데, 결국 한국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제안받았던 것이라고 했다.
국가 경제력이 아직은 미미했던 당시의 한국에 대해서까지 프랑스 정보기관에서 그렇게 관심을 가질 정도로 프랑스는 이미 그때부터 경쟁이나 경계 대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을 바라봤던 것 같은데, 이후 20여 년 이상이 지난 현시점에서 보면, 일본뿐 아니라 중국까지 미국에 이어 G2로 자부하는 세계 경제 군사대국으로 부상했고 유럽에서 한국의 자동차, 전자제품, 반도체 등 한국 제품이 도처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20년 전 과민하게만 보였던 그들의 동아시아에 대한 경계와 우려의 시선이 나름 상당 부분 근거가 있었고 또 선견지명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학원 선생의 그 황당하고 좀 우습기도 했던 의심에 당연히 아니라고 답하고 그날 일은 넘어갔는데 사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어쨌든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가 서구 열강에 의해 강제로 개방되고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기술, 과학, 법체계, 경제구조 등 다양한 문물을 서구 여러 국가에서 꾸준히 가져오고 배워 왔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들었다.
개화기 이래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국가를 벤치마킹하고, 연구해 왔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심지어 2019년 현재도 수 없이 많은 한국의 시(市), 구(區) 의원은 물론, 공무원과 국회의원까지 국민의 혈세로 다양한 명목 하에 서구 국가를 방문하는 벤치마킹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지구 상에 남은 몇 안 되는 공산주의 국가 중의하나인 중국이 여전히 변함없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신봉하는 국가 핵심 이념인 '공산주의'라는 이념도, 실제로 따지고 보면 중국의 너무도 저명한 학자들인 공자나 맹자가 체계화시킨 이념은 결코 아니며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는 서구 유럽인이 만든 'Made in Europe'이다.
또 그 공산주의 경제 이념을 일부 보완하여 우선은 자본을 축적하자는 선부론(先富論)을 주장하고또 적극 추진해서 결과적으로 중국을 전 세계의 최빈국 신세에서 벗어나게끔 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Pax Americana에 도전해 미국과 어깨를 겨룰 수도 있다는 'G2'라는 경제 및 군사 강국으로 부상하게 만든 등소평(鄧小平)역시 순수하게 중국에서만 자라고 중국식 교육만을 받은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16세의 감수성이 민감한 어린 나이에 프랑스에 유학 가서 7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다양한 선진 문물을 직접 체험했던 인물이었다. 공산주의 이념을 그가 체계적으로 접한 것도 바로 프랑스 유학시절로 알려져 있으니 결국 그 역시 유럽의 문물과 교육을 장기간 경험하고 체득해 그것을 중국으로 가져와서 중국의 암울한 현실에 실제로 적용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등소평뿐만 아니다. 그의 복권에 결정적 도움을 준 또 다른 중국의 지도자 주은래(周恩來) 역시, 등소평보다는 약 1년 후인 1920년 말에 프랑스의 마르세이유(Marseille) 항에 도착해 이후 약 4년 여간 프랑스 등 유럽을 경험하고 온 또 다른 서구 유학파 인물이었다.
프랑스를 떠난 이후 나중에 중국의 베이징 법인에서 근무할 때, 운전기사가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는 만일 중국 역사에 모택동과 같은 사람만 있었다면 중국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과거와 변함없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다행히 등소평 같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 중국 경제가 크게 발전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자신과 같은 사람들도 그나마 이제는 좀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등소평으로 인해 시작된 경제 부흥 혜택을 직접적으로 크게 받은 부유층도 아니고, 베이징 호적조차 얻지 못한 채, 매달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가는 일종의 베이징 농민공(農民工) 중 한 명이었던 그가 모택동에 대해 스스럼없이 비난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모택동과 비교하여 등소평을 반대로 높게 평가하고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꽤 의외였던 것이다.
모택동은 평생을 중국에서만 살았고 선진 유럽 사회를 직접 경험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만일 등소평 역시 모택동처럼 그렇게 평생을 중국에서만 살며 선진 유럽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면, 공산주의 이념의 서슬이 시퍼렇던 그 시절,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우선 국민이 잘 살게 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白猫黑猫論)"라는 그런 과감한 주장을 과연 펼칠 수 있었을지....
등소평은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유럽 국가에 거주하며, 조국 중국에 사는 가난한 중국인의 현실과 선진국 유럽에 살면서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유럽인의 현실을 비교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가 품고 있는 애국심과 동포애가 중국을 유럽과 같은 부국, 강국으로 만들자는 결심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달성을 위해서 개혁개방(改革開放)이라는 일종의 서구식 자본주의를 도입했는데, 결국 그 방식으로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중국을 4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강국 중 하나로 만드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결국 어찌 보면 등소평이야말로 Paris 어학원의 프랑스인 선생들이 말하던 프랑스 등 유럽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빼내 자국의 발전에 최대한 활용했던 진정한 산업스파이가 아니었을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동아시아의 지도자들 중에는 등소평, 주은래처럼 어린 나이에 유럽 선진국으로 유학 가서 서구의 선진 문물을 직접 체험하고 돌아온 권력자가 사실 한 명 더 있다. 바로 스위스에서 유학했던 북한의 김정은이다.
김정은과 등소평은 서구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막강한 절대 권한을 갖게 된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매우 큰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지만 서로 크게 다른 점도 있는데, 김정은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등소평처럼 국가를 개방하고 국가 주민을 위해 경제개혁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핵 이슈 등으로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고 또 정치체제도 더 개인 중심적인 체제로 만들어 가고 있는 점이다.
너무도 안타깝지만 결국 등소평이 유학에서 귀국한 이후에 걸었던 길과는 전혀 반대 방향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조국을 위해, 그 중국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골수 공산 이념이 팽배하던 중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개혁개방을 추진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낸 중국의 등소평이 했던 일을 김정은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사람' 등소평이 너무도 쓰라린 아픔으로 느낀 동포와 국가의 비참한 현실을, 우리와 '같은 민족'인 김정은은 왜 전혀 느끼지 못하고 3대째 이어지는 가문의 집권과 그것을 지켜줄 핵에만 집착하며어찌 보면 조선 말기와 유사한 또 다른 쇄국 정치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