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이창영”을 영어로는 'Lee Changyoung'이라고 적는다. 여권이나 명함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 해외에서 나 자신을 소개할 때도 항상 그렇게 소개했었다. 하지만 Lee Changyoung이라고 적었을 때, 영어식 발음으로 읽으면 이창영과 비슷하게 발음될지 몰라도 불어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프랑스에 살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경우를 체험했다.
1년 거주할 집을 정한 후, 침대 등 필요한 가구를 이케아에 가서 구매하고 가구들이 출하되는 곳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도통 내가 산 가구는 나오지 않았다.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 가구도 이미 모두 나왔는데, 유독 내 것만 나오지 않아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그 직원 말이 "무슨 말이냐, 무슈(Monsieur) 레, 그리고 '레샹그용그'라는 네 이름 전체까지 이미 여러 차례 불렀는데, 통 안 나타나다가 이제야 나타났느냐"라고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도대체 '레'는 뭐고 또 '레샹그용그'는 뭘 말하는 건지 잠시 당황했는데,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이름을 Lee Changyoung이라고 적었을 때, 불어로 발음하면 당연히 '레샹그용그'로 발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순간 깨우쳤다.
그들이 "레샹그용그"라고 발음하면서 이창영을 찾았으니 정작 이창영은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내 이름을 알파벳으로 그렇게 적으면 불어를 사용하는 그들은 그렇게 발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단 불어뿐 아니다. 독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한국 이름 '장준호'를 영어로 Jang Jun Ho라 표기했을 때 독일 사람들은 결코 장준호와비슷하게는 발음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 이름을 읽을 때는 모두 '양윤호' 비슷하게 발음할 것이다. 독일어에서는 'j'발음이 '이'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스페인 사람들은 또 다르게 '한훈호'로 읽을 것이다. 스페인어에서는 'j'가 'ㅎ'으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권상의 알파벳 이름을 나라마다 다르게 여러 가지로 표기할 수는 없는 실정이니, 이런 언어별 발음 차이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 대안은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만은 염두에 두고서 내 영어식 알파벳 이름 표기가 현재 거주하는 나라의 언어로는 어떻게 발음되는지 미리 알아 두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가구점에서 불필요하게 장시간 기다리는 황당한 경험은 최소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면에서 받침이 거의 없고 비교적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인들은 우리가 해외에서 종종 겪는 것과 같은 이런 문제를 상대적으로 덜 겪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도 든다.
일본의 기업체 명은 Honda, Suzuki, Toyota, Mazda와 같이 발음이 단순하다, 발음이 단순한 만큼 전 세계 웬만한 언어에서도 원음에 가깝게 발음되는 것 같다. 하지만 반면 현대(Hyundai), 대우(Daewoo), 선경(Sunkyung), 삼성(Samsung) 등 한국 기업체 명은 복잡한 발음이 많아 언어별로 실제와는 다르게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현대는 Hyundai라고 표기할 수밖에 없겠지만, 'yu'나 'ai'처럼 모음이 겹치는 경우 언어별로 발음 방법이 매우 상이하고, 선경이나 삼성의 영어명 표기에 들어있는 'ng'도 독특하게 발음되는 언어가 많아서 불어로 읽을 경우 현대는 '휸다이', 선경은 '선기윤그' 삼성은 '삼숭그' 등으로 원래의 회사 이름과는 꽤 다르게 현지에서 발음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일본어의 발음이 상대적으로 간단해서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 그만큼 덜 힘들다는 것은, 반대로 그런 간단한 발음에만 익숙해져 있는 일본 사람이 외국어를 배우려 할 때는 그만큼 자신들의 언어에 없는 새로운 발음을 훨씬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Paris 학원에서 불어 배울 때 발음 지적받고 발음 교정반에 가는 학생 중에 가장 많은 수의 학생은 항상 일본 학생이었다. 반면 같은 동양권이라도 중국인 학생들은 거의 없었는데, 한국어와 일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꽤나 어려운 발음들이 중국어에는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중국어를 배울 때 직접 체험해보니 중국어 발음은 의외로 우리와 많이 다르고 우리에게 없는 발음도 매우 많았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것은 한국어와 일본어에는 V와 B 발음 구분이 없어서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은 이 두 발음을 자주 혼동하는데, 같은 유럽계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중남미 등 스페인어권에서 온 학생들 역시 우리처럼 V, B 발음을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아 발음 교정반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던 기억이 있다.같은 유럽 언어임에도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이 좀 특이하게 느껴졌었다.
영어로 표기한 내 이름을 보고, 중국인이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아파트 입구 우체통에 내 성이 LEE로 표기된 것을 보고 나를 중국인으로 오해하고 초인종을 눌렀던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국의 3 대 성씨 김(KIM), 이(LEE), 박(PARK) 중 영어로 표기했을 때 중국인으로 오해받기가 가장 쉬운 성은 아마 이(LEE)일 것이다.
조선족을 제외하면 김 씨나 박 씨가 중국에 많지 않은 반면, 이 씨 성을 가진 중국인은 왕 씨 다음으로 두 번째일 정도로 중국에서는 많은 데다가, 한국에서 이(李) 씨가 '이(YI)'로 발음됨에도, 나 역시도 그렇지만 왠지 영어로 표기할 때는 한국인 대다수가 중국어의 발음과 비슷하게 '리(LEE)'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중국어에서는 이(李)를 발음하면 표준어 기준으로 '리'로 발음된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실제 발음에 가깝게 LEE, LI, LEI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면, 한국어에서는 이(李)가 '이(YI)'로 발음됨에도, 실제의 발음과 다르게 중국인처럼 '리(LEE)'로 적는데 이 발음이 중국어의 발음과 유사하다 보니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경우를 스스로 자초하는 셈이다.
그런데 더 혼선을 줄 수 있는 것은, 화교가 다수 이주했거나 우리처럼 한자 성을 채택하고 있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에도 LEE로 표기되는 성이 있어, LEE로 표기 시에는 중국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 동남아 국가 사람으로까지도 오해될 여지도있다.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성(姓)으로 사람의 고향이나 뿌리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MacDonald나 O’Brian처럼 Mac이나 O’가 들어간 성(姓)은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어 조상이 그쪽 출신인 것을 알 수 있고, 또 같은 성(姓)도 각 나라의 언어별로 조금씩 철자가 달라지기 때문에 성씨만 보고도 출신 국가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어 William(윌리엄)이라는 성은, 독어에서는 Wilhelm(빌헬름)이 되고, 불어에서는 Guillaume(기욤), 스페인에서는 Guillermo(기예르모)로 각각 변한다.
대학 때 외무 고시 공부하면서 읽었던 세계사 책 내용 중에 프랑크 왕국의 샤를르 대제(大帝)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한 번은 '샤를르', 그다음 페이지에서는 '칼', 또 다른 페이지에서는 '챨스'로 매 페이지마다 다른 이름으로 표기가 되어 있어 전혀 다른 인물들을 언급하는 것으로까지 오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좀 더 다양한 언어를 이해하게 된 이후에 알고 보니 그것이 동일한 한 사람의 이름을 불어, 독어, 영어 등 다른 언어로 표기한 것이라는 깨우치게 되었다.
동일 인물이 그렇게 페이지마다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었던 이유는 아마도 일본어 등으로 1차 번역된 책을 한글로 2차 번역할 때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나누어 번역하다 보니, 불어식, 독어식, 영어식 발음의 이름으로 각각 다르게 번역됐고 그것이 교정 과정에서 수정되지 않은 채 출간되어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우리의 성씨 역시 우리 뿌리와 우리 조상의 뿌리를 나타내 주는 것인데, 한국어의 실제 발음과는 다르게 중국인처럼그것을 표기하여, 우리 스스로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경우를 자초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다.
이(李)씨 성은 한국 발음 그대로 YI로 적으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대다수 유럽 언어에서 LEE 보다는 그나마 좀 더 한국 발음 '이'에 가깝게 발음될 것으로 생각된다.
내 여권에 표기된 성씨도 LEE가 아니라 YI였다면, 적어도 Paris의 이케아(IKEA)에서 내 성이 '레'로 불리어, 나를 부르는 건지조차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