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의 소매치기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4편 Guangzhou-05)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Guangzhou



5. 광저우의 소매치기


소매치기가 그렇게 많은 유럽이나 중남미에도 출장을 자주 다녔었고 프랑스 파리에는 1년여간 거주해 보기도 했지만, 해외 어느 지역에서도 단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기록이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마침내 깨졌다. 그리고 광저우 경험 이후 지금까지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없으니, 광저우의 소매치기 경험이 내 생애의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 경험이었던 셈이다.

중남미처럼 치안이 유난히 안 좋은 지역으로 출장을 다니면 소매치기뿐 아니라 때로는 강도까지 당하는 불상사를 겪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중남미에서의 범죄사고는 결코 밤늦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낮 도심에서도 자주 발생했었다. 중심가 식당에서 점심 먹다 떼강도가 들어와서 총으로 위협해 다 털리기도 하고, 백주에 거리를 걷다 골목 안에서 누가 불러 무심코 가 봤더니 갑자기 칼을 들이대서 털리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얘기 같지만 동료들이 직접 겪었던 경험담이다.


집시(Gypsy)라 불리는 사람들이 맹활약하는 프랑스 파리 소매치기도 매우 유명하고 또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실제 그들로부터 소매치기당하는 경험도 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나는 중남미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동남아 등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지 않은 여러 지역에 거주했거나 출장 다녔음에도 다행히 단 한 번도 그런 불상사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내 광저우에서 그런 기록이 깨진 것이다, 그것도 늦은 밤도 아니고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아침 출근길에...




요즘은 좀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2005년 당시 광저우는 중국에서 치안이 좋지 않기로 꽤 유명한 도시 중 하나였다. 특히 광저우역 주변은 대낮에도 위험하니 정말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혼자서는 가지 말라고 법인의 현지인 직원들로부터 여러 차례 주의를 들었던 곳이었다. 2015년 기준 중국어 자료에도 치안이 가장 좋지 않 기차역으로 여전히 광저우역이 등재되어 있었다.


그렇게 악명이 높은 곳이다 보니 광저우 근무기간 나 역시 기차를 타야 할 일이 있으면 치안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좀 더 좋은 광저우 '동역'을 이용했고 광저우역에는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같은 자료에 의하면 중국에서 치안이 좋은 도시는 상하이, 베이징, 쑤저우 순이며, 나쁜 도시로는 둥관, 광저우, 선전 순이었다. 광저우가 치안이 안 좋은 면에서 중국 내 도시 중 2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치안이 안 좋은 이 3대 도시는 모두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하나 같이 중국 남부 광둥성에 있는 도시라는 점이다.


중국 남부의 광둥성 지역은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이 가장 먼저 적용되었던 지역이고 그러한 배경에서 가장 먼저 해외 자본이 유치되어 공장들이 들어섰던 곳이다. 즉 다시 말해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었다면 광둥성 지역은 바로 그 중국의 공장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수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보니 당연히 일자리를 찾아 수많은 젊은이들이 중국의 전 지역에서 몰려왔을 것인데, 광저우 토박이들은 광저우의 치안이 좋지 않게 된 이유가 바로 이렇게 몰려온 외지인들 때문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즉, 일자리와 돈을 좇아서 광저우 등 광둥 지역으로 들어온 외지인 중 일부는 당초 취직했던 공장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단 주변의 유흥 업소나 폭력 조직 같은 곳으로 빠지기도 했을 것이고, 그러한 외지인들이 중국 남부의 최대 도시인 광저우로 몰려들면서 광저우의 치안이 유독 악화되었다는 해석이었다.


광저우의 소매치기 중에 광저우의 언어인 광둥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라고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런데 광저우에는 중국 각 지역에서 온 외지인 말고도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은 또 다른 특이한 집단이 있었는데, 바로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이었다.


광저우역에서 멀지 않은 시아오베이(小北)라는 지역에는 그들의 집단 거주지도 형성되어 있었는데, 중국 소수민족도 아닌 외국에서 온 흑인들이 중국에서 그렇게 집단 거주지를 형성해서 살고 있는 경우는 광저우 이외의 중국 내의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광저우 흑인 거리)

1. https://blog.naver.com/bearpin_/221842128818

2. https://blog.naver.com/silversnow55/221137590821


광저우에 흑인들이 몰리기 시작했던 것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도입과 함께 중국에서 중저가 의류 산업이 발달하면서 광저우가 그 의류산업의 수출 기지로 부상하게 된 90년대 후반부터라 한다. 즉 저가의 의류를 아프리카로 수입하려는 흑인들이 몰려들면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불법체류자 포함 30만 명에 가까운 흑인들이 광저우에 거주하고 있다 하니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참고로 한국의 여수, 안동, 군산, 문경 등 대다수 중소 도시도 인구가 채 30만 명이 안된다 한다. 웬만한 한국 중소 도시 전체 인구 규모의 흑인들이 광저우라는 한 개 도시에 몰려서 거주하고 있는 셈이었다.

흑인들이 그렇게 많이 거주하고 있다 보니 때로는 꽤 많은 흑인들과 마주치기도 했었는데, 특히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서 줄 서서 기다릴 때 마침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항공기와 도착하는 시간과 겹치면, 내 주변 사람들이 온통 흑인인 경우도 있어 내가 어느 나라 공항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한편 그런 흑인들과 같이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받다 보면, 그들을 대하는 중국인 심사관의 태도가 우리를 대하는 것과 다른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 경우 여권만 대충 보고 아무런 질문도 없이 지극히 사무적으로 입국 도장만을 찍어주던 것과는 달리, 흑인들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방문 목적 등에 대해 꽤 까다롭게 질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질문이 그렇게 길다 보니 흑인들이 많이 서 있는 줄에 잘못 줄을 서게 되면 입국심사 통과에 평소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치안 문제 등 관련해서 외지인뿐 아니라 흑인들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물으려는 광저우 토박이들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사실 광저우 토박이들의 이러한 인식이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흑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거나 주로 출몰하는 시아오베이나 광저우역 치안이 광저우시에서도 유독 더 안 좋은 것이 현실이었고 또 사건 사고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공권력이 막강한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서 흑인 폭동이 발생하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2009년 경찰의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하던 흑인이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흑인들 수백 명이 모여 인근 파출소를 습격하고 주변 교통까지 의도적으로 막아버리는 소요를 야기한 사건인데, 미국 관련 뉴스에서나 종종 보게 되는 흑인 폭동이 중국 광저우에서도 실제 있었던 이다. 또 2012년에도 다시 한번 유사한 일로 흑인들의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다 한다.


(2009년 흑인 소요, 01:40)

https://www.youtube.com/watch?v=nUdLcrqoJB4

(2012년 흑인들의 시위)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idsun&logNo=40164087751


한편, 입국심사장에서 보게 되는 흑인들은 광저우에 장기간 거주해 왔거나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대다수가 중국어에 꽤 능통해, 심사관이 꽤 빠른 중국어로 질문해도 전혀 막힘없이 바로바로 중국어로 답하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 모습을 보게 될 때마다 체격이 그렇게 큰 흑인들이 물론 발음과 억양은 당연히 좀 어색했지만 어쨌든 '니하오(你好)', '시에시에(谢谢)'등은 말할 것도 없고 꽤 어려운 중국어 단어를 유창하게 구사해가면서 전혀 거리낌 없이 중국인 입국심사관에게 답하는 그런 모습이 묘하게도 좀 이상하게 느껴지고, 솔직히 코미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우습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따지고 보면 그런 모습은 우리가 미국에 갈 때 미국인 입국 심사관에게 다소 어눌한 발음의 영어로 답을 하는 것 같은 전혀 우습거나 이상할 것이 없는데, 왜 그들의 그런 모습이 특이하게만 느껴졌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아마도 체격이 매우 큰 흑인들이 유독 왜소하기로 유명한 광둥인과 다소 색다른 발음의 중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좀 특이하게 느껴졌던 것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광저우 토박이 관점대로 광저우의 흑인들이 광저우 치안 불안에 어느 정도나 기여하는지는 나로서는 잘 판단이 안되지만, 그 흑인들 입장에서 보면 입국 심사 시 겪는 차별 포함 그들은 나름 적지 않은 차별들을 겪으면서 광저우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2009년의 폭동사건도 누적된 그들의 그런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 아닌가도 싶은데 거기에 더해 요즘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흑인들 중심으로 재확산 추세를 보이면서 이로 인한 차별 역시 받고 있다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광저우 흑인 차별 사례)

1.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4/2020041402198.html

2.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00416_0000996734




치안이 안 좋은 광저우에는 소매치기도 많았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조언은 광저우에 도착하자마자부터 법인 현지 직원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런데 그 말보다 겁이 나는 말은 저항을 하게면 소매치기가 반드시 칼을 꺼내서 휘두르니 소매치기당하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절대 저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업무상 수시로 방문할 수밖에 없는 광저우 시내 전자 제품 밀집 상가에 갈 때는 아예 지갑 등 귀중품은 사무실에 두고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는 충고도 들었다. 언제나 인파로 붐벼 신체접촉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그곳이 광저우 소매치기들의 최대 온상이라는 것이었다.


사진) 2006년 10월 광저우 시내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며 찍은 사진. 창밖으로 보이는 길가 낮은 건물이 전자상가가 밀집된 건물로 광저우 소매치기들의 온상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사실 광저우에 도착하자마자 의아했던 것 중 하나가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백팩을 등이 아니라 가슴의 앞쪽으로 돌려서 메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베이징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하던 현상이라 의아했는데 나중에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것 역시 광저우에 소매치기가 워낙 많다 보니 생긴 현상이라고 했다.


즉, 등 뒤로 백팩을 메고 다니면 등 뒤쪽으로 소매치기들이 접근해서 백팩 속 물건 중에 정확하게 귀중품만 골라 빼내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매우 오랜 기간 백팩을 애용해 왔던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백팩을 앞으로 돌려 메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법인 직원들의 조언에도 불구, 광저우에서도 여전히 예전처럼 등 뒤로 백팩을 메고 다녔다.


그런데 그런 나의 행동이 결정적인 실수였고 교만이었음을 깨우치게 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느 날처럼 매일 다니던 아침 출근길을 걸어서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등에 맨 가방을 내려놓다 보니 가방의 지퍼가 반쯤 열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혹시나 싶어 급하게 가방 안을 뒤져 보니 아니나 다를까 당시에는 꽤 고가였던 일디지털카메라가 없어졌다.


항상 그곳에 넣고 다니며 그날 출근길에도 그때그때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기 때문에 집에 두고 왔거나 다른 장소에 있을 가능성도 없었는데, 돈이 안 되는 다른 물건들은 모두 그대로 있는데 정확하게 그 카메라만 없어졌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방금 전 출근길에 경험했던 다소 이상한 일이 떠 올랐다. 회사 근처에 거의 다 도착해서 인근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뭔가 물건을 사고 계산대에서 돈을 지불하는데, 종업원이 꽤 긴장된 묘한 표정을 짓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광둥어로 내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표준어인 보통화조차 겨우 그것도 일부만 알아들을 수 있었던 내가 광둥성 지역 방언 격인 광둥어를 알아들을 리는 만무했고 표준어인 보통화로 말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종업원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더 이상 말을 안 하니 그대로 편의점을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외지인으로 보이는 소매치기는 알아들을 수가 없는 광둥어로 그 편의점 직원이 내게 "지금 소매치기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뭔가 말을 했던 것인데 내가 그 말을 못 알아들으니 더는 얘기하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 것 같았다.


발각되면 반드시 칼을 휘두른다는 소매치기가 편의점 안에 있는 상황에서 그 소매치기도 알아들을 수가 있는 표준어로 말을 하면 자신도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표준어로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후에는 디지털카메라가 대량 생산되고 많이 보급되면서 가격도 꽤 내려갔지만, 2005년 그 당시만 해도 소형 일제 디지털카메라는 가격이 결코 싸지 않았고, 한국산은 아직 제대로 상품화된 제품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카메라를 소매치기당했으니 아깝고 화가 났다. 그리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준어로 좀 더 말하지 않았던 그 편의점 종업원이 좀 야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설사 내가 그 종업원의 광둥어를 알아들었거나 아니면 그 종업원이 표준어로 다시 내게 말을 해 주었더라 하더라도, 거기서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법인 직원들 말처럼 광저우 소매치기들의 불문율 중 하나가 발각되면 칼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는데, 그런 흉흉한 소문이 있는 상황에서 나 역시 소매치기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해도 무서워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국 그렇게 내 귀한 디지털카메라는 내 손을 떠나 광저우 소매치기 중 한 사람의 작물 목록 중 하나로 넘어가 버렸고, 나는 그렇게 내 생애 최초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인 소매치기를 당하는 쓰디쓴 경험을 했다.




당시 광저우 지역의 소매치기가 얼마나 심했는지, 광저우에 체류했던 기간이 6개월밖에 안됐는데, 그 길지 않은 기간에 두 번째 소매치기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소매치기당하기 직전에 내가 눈치를 채서 현장에서 벗어나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시내 거리를 거닐다 상점 안에 전시된 우리 회사 제품들을 보려고 나 포함 일행 여러 명이 멈추어 서서 상점 안을 보며 제품의 전시 상태에 대해 협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통수 쪽 기분이 뭔가 이상해서 머리를 휙 돌려 돌아보니 전혀 모르는 어떤 사람이 내 뒤에 바짝 붙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길이 넓어 내 뒤에 여유 공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는 것도 꽤 이상했고 또 그 사람의 시선이 우리 일행처럼 매장 안의 제품을 바라보고 있기는 했지만, 묘하고도 휑한 그 시선은 분명히 매장 제품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 즉 내 뒷주머니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급하게 주머니를 만져 보니 다행히 지갑은 아직은 탈 없이 그대로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무리를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아 마치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척하고 일행들에게 이제 가자고 말하면서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벗어났다.


그 소매치기 미수범은 아직 30도 넘지 않아 보이는 꽤 젊은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경험 많은 고단수의 소매치기가 아닌 초보자라 그렇게 내게 발각된 것 같았다. 그 초보 소매치기 얼굴은 이제는 기억이 없지만, 잔뜩 긴장한 상태가 역력히 보이는 표정으로 휑하니 매장 안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그 시선만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광저우 치안이 안 좋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다른 사건도 있었다. 당시 광저우 법인은 광저우시 번화가에 있는 68층 빌딩의 상층부 2개 층을 임대해서 사무실로 사용했었는데 이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베이징에서도 역시 시내 중심가에 있는 법인 사무실에 도둑이 들어와서 노트북 여러 개를 들고 가버린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아무도 없는 일요일에 몰래 들어와 가져 간 경우지만, 광저우의 경우는 대담하게도 평일 점심시간에 그것도 사무실에 일부 직원들이 남아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태연하게 들어와 노트북을 집어간 것이다. 베이징 경우와 비교하면 훨씬 대담한 도둑질이었다


사무실 정문 출입구에는 점심시간에도 역시 경비가 지키고 있었지만 비상계단 쪽은 아무도 없었는데, 베이징 경우처럼 이번에도 그 비상계단 쪽 문이 열려 있는 틈을 타서 들어와 집어간 것이다. 아마도 비상계단 쪽 통로에서 배회를 하다 잠시나마 문이 열린 사무실이 있으면 들어가 도둑질을 하는 그런 도둑이었던 것 같았다.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베이징의 경우처럼 도둑은 잡을 수 없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당했던 도시인 중국 광저우를 떠난 지 이제 14년이 됐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한때 한국을 스스로 비하하는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을 하기도 했는데, 적어도 치안에 관한 한 과거의 광저우는 '헬 광저우'라 불러도 마땅했던 그런 도시였다.


중국 시진핑이 부정부패 척결을 연이어 강조하고, 중화민족 부흥을 지속 주장하며, 누구도 더 이상 중국을 우습게 보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하는 상황에서,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광저우의 그런 치안 문제가 이제는 많이 개선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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