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출장이 몇 년씩 되는 긴 기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몇 주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도 아닌 반년이라는 꽤 애매하고 어정쩡한 기간이다 보니, 그 기간 체류할 숙소 구하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았다. 아파트를 임대하기에는 기간이 너무나 짧았고 반대로 답답한 호텔 방에 체류하자니 기간이 너무나 길었다.
게다가 반년이라는 기간이지만, 광저우 체류는 주재 발령이 아니라 엄연히 장기 출장이라 회사 규정상 베이징 아파트를 정리하고 광저우에 다시 아파트를 구할 수도 없었다. 결국 이런저런 고민 끝에 광저우 출장 온 6개월여간은 베이징과 광저우 두 곳 모두에 집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하기로 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두 집 살림(?)'을 하게 된 것이다.
이곳저곳 몇 군데 알아보다 광저우에서도 베이징 체류 초기 몇 주간 머물렀던 야스거(雅詩閣) 같은 주거형 호텔을 찾아 숙박하기로 했다. 그리고 광저우 법인 총무부 도움을 받아 광저우 남부를 관통하는 주강(珠江) 얼샤따오(二沙岛) 앞 호텔을하나 찾아서 그곳에투숙했다.
이 호텔 제반 시설은 베이징의 야스거만큼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매일 아침 식사가 제공되었고 또한 방안에는 세탁기와 라면 같은 것을 끓여 먹을 수도 있는 주방시설도 있었다. 게다가 꽤 큰 거실과 침실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어 일반적인 호텔방처럼 그렇게 답답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위치 또한 광저우 법인에서 3km 정도로 그다지 멀지 않아 걸어서 출퇴근하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당시 반년 간이나 머물렀던 이 호텔 이름이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아서중국 인터넷까지검색해 가며한참 찾아봤는데, 그럼에도 역시 그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텔 이름이 바뀌어 찾지 못했던 것인데, 거리뷰를 통해 재확인해 보니, 당시 그 호텔 건물의 모습과 위치는 모두 그대로인데 현재는 이름이 'Ramada Pearl Hotel Guangzhou (广州凯旋华美达大酒店)'로 바뀌어 있었다.
2005년 내가 숙박할 그 당시에는 Ramada 계열의 호텔이 아니고 중국어로만 표기된 순수 Local 호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후 외국계 호텔들이 중국에 다수 진출하면서 이 호텔도 외국계 호텔에 인수된 모양이었다.
비록 호텔방이긴 했지만 광저우에서의 그 호텔방도 내게는 베이징의 아파트처럼 휴식과 재생의 시간 및 공간을 제공해 주는 소중하고 아늑한 Sweet Home이었다.
평일에는 업무보다는 오히려 반복되는 술에 지쳐서 늦은 밤 만신창이 상태로 호텔방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그대로 누워 졸도하다시피 잠을 자곤 했었다. 그래도 아침에는 다행히도 어김없이 부활해서 다시 출근하곤했었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하는 법인의 주재원 동료들은 통 만날 수가 없었고, 결국에는 별 다른 할 일 없이 나 홀로 텅 빈 호텔 방에서 술 한잔하며, 베이징이라는 주재 파견 근무지에서 또 다른 객지 광저우로 출장 온, 객지에서 객지로만 떠돌아다니는 처지와 신세를 달래곤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점에서는 비록 객지의 호텔방이지만 그 호텔 방은 내게는 Shelter, Sanctuary, Cocoon과 같은 단어들이 연상되는 곳이었다. 게다가 또광저우에는 베이징만큼 주재원들이 많지 않아서 주재원들과 밖에서 만나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만큼 적었고 회사 아니면 결국에는 그저 호텔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호텔에서만 보내다 보니 비록 기간은 짧았지만 광저우의 호텔도 베이징 아파트만큼 정이 가게 되는 것 같았다.
광저우 출장 반년 간 베이징에 출장 갈 일도 몇 차례 있었다. 출장지에 와서 주재 발령지로 또다시 출장 가는 셈이었다. 그렇게 베이징에 가게 되면 내 집이 있으니 당연히 호텔이 아니라 오랜만에 베이징의 내 집에서 숙박할 수 있었는데,그때 느낌은 마치 서울의 고향집에 온 것처럼 무척 반갑고 푸근했다.
그런데 참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베이징 집에 잠시 머물다 광저우 호텔로 다시 돌아오면 또 그곳도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집처럼 반갑고 푸근하게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오직 두 집 살림(?)할 때만 느낄 수가 있는 그러한 감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정이 많이 가는 호텔 방이었지만, 사실 광저우의 그 호텔에서 겪은 황당하고 안 좋은 기억도 꽤 있다. 지금이야 모두 추억 속의 지나간 일이지만 당하던 그 당시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수세식 변기 안에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똥이 있는 경우가 있었다. 정말 똥으로 테러당하는 기분이었는데, 청소하러 들어온 사람이 너무 급해서 방에서 용변을 보고 깜빡 잊고 그대로 나가버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군가 내가 아침에 출근하고 난 이후 내 호텔 방에 들어와 대변을 본 것이다.
너무도 황당해서 호텔 사무실에 전화해서 직접 와서 보라고 항의했더니 직원 한 명이 방으로 왔다. 내가 호텔로 들어와 몇 초도 되지 않아 연락했으니 그 사이에 내가 그 똥을 만들 시간은 없었다는 것을 그 직원도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고, 현장을 보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해서반복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일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결코 그렇게 드물지는 않았던 듯 솔직히내가 놀랐던 것만큼 그렇게 심하게 놀란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발가벗고 한참 샤워를 하고 있는데,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2~3명이 동시에 호텔 방문을 열고 불쑥 들어오려 한 적도 있었다. 급하게 나가서 방문을 밀어 닫고 지금 뭐 하느냐고 항의했더니, 방안에 사람이 있으면 방 밖 문고리에 '방해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표식을 걸어 놓아야 하는데 왜 그것을 걸어 놓지 않았냐고 오히려 내게 불만을 표출했다.
사실 나도 방안에 들어오면 그걸 걸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웬만한 호텔 어디나 있는 그러한 표식이 이 호텔 방에는 전혀 없어서 이 호텔에는 애당초 그런 표식이 없나 보다 생각하고 걸어 놓지 않고 있었는데, 비치조차 해 놓지 않은 표식을 언급하며 왜 그걸 안 걸어 놨냐고 오히려 큰 소리 치니 샤워하다 말고 급하게 뛰어나와야 해서 열도 받은 상태에서 화가 치밀었다.
"당신들이 말한 그런 표식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라고 나 역시 소리치며 불만을 제기했더니 자신들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다 실제 없으니 우물쭈물하다 그냥 나가 버렸다.
식당에도 문제가 있었다. 아침 식사가 제공되는 호텔뷔페 식당은 청소를 쉽게 하기 위해서였는지, 특이하게도 바닥과 벽면이 모두 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타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온통 타일로 덮여 있다 보니 청소할 때 물걸레질 하기는 참 편했겠지만, 식당 내의 작은 소리도 쉽게 벽과 바닥에 반사되어 조금만 떠들어도 매우 시끄럽게 식당 안 전체로 울려 퍼졌다.
그래서 그런지 식당 안 곳곳에는 "타인을 배려하고 쾌적한 식사를 위해서 조용히 해달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그 식당을 이용하는 대다수 투숙객들은 그 문구대로 조용했던 반면, 정작 그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인 종업원들이 너무나 큰 소리로 떠들어대곤 해서 매일 아침 식사 때마다 스피커 통 안에 들어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방안 침대 옆에서 도마뱀을 본 적도 있었다. 잠결에 벽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도마뱀이었다.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도마뱀을 본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것도 방안 침대 옆에서 봤으니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도마뱀이 방안에 있는 것은 결코 호텔이 불결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열대성 기후인 중국의 남부나 동남아 지역의 호텔에서는 도마뱀을 보는 것이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고, 이후 대만 법인에서 근무할 때도, 매우 청결한 최고급 타이베이 호텔 또는 심지어 내 아파트 방안에서도 도마뱀을 볼 수 있었다.오히려 도마뱀은 공기가 맑고 깨끗한 지역에만 서식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잠자리 바로 옆에서 도마뱀을 보게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광저우에서도 역시 아침에는 걸어서 법인까지 출근했는데, 광저우 도착 초기 며칠은 동서남북조차 구분이 안될 정도로 길을 모르는 실정이라 한동안은 택시를 타고서 출근했었다. 택시 탈 때는 다른 호텔에서도 그랬듯이 호텔 앞에 서 있는 호텔 직원에게 택시를 잡아 달라고 부탁한 후에 그 직원이 잡아준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하루는 그날도 역시 호텔 종업원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막 호텔을 출발하는 순간이었는데, 목적지를 얘기하니 그 택시 기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답도 없이 바로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중국 택시 기사들이 친절과는 워낙에 거리가 멀었던 시절이라, 비록 아무 답이 없어도 목적지를 알아들었으니 이상 없이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호텔에서 불과 10여 미터도 안 된 지점에 도착하니, 택시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우고 아무런 설명 없이 이 택시 말고 옆에 있는 저 택시를 타라고 다른 택시를 잡아 주었다. 아마 목적지가 3km 정도밖에 안되니, 거리가 짧아 승차를 거부하려는 상황이었던 것 같았는데, 거부를 하려면 타면서 목적지를 말할 때 얘기를 하던지 하지 10 미터 이동하다가 택시를 세우고 다른 택시를 타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이해가 안 됐다.
당연히 몹시 불쾌했는데 그 택시 기사 동료로 보이는 다소 험악한 인상의 사람들이 호텔 앞에 꽤 많이 몰려 있었고 또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 겁이 나서 화를 내거나 반발하지도 못하고는 그저 조용히 그 기사가 잡아준 택시를 타고 회사로 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마도 호텔 종업원이 투숙객을 위해 잡아 준 택시가 그 종업원이 보는 앞에서 승차를 거부하면 호텔에서 어쩔 수 없이 제제를 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눈 감고 야옹'하는 식으로 일단 호텔 종업원 앞에서는 차에 태우고 10미터쯤 좀 떨어져서 승차거부를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호텔 종업원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상황만은 결코 아니었을 것임에도,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일만 아니면 모른척하고 묵인했던 것이 그 당시에 그곳에서 손님을 태우던 택시기사들과 호텔 종업원들 간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던 것 같다.
투숙했던 호텔 옆에는 70~80년대 서울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은 작고도 허름한 전통 시장도 하나 있었다. 퇴근 후에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곯아떨어지기 전 취기 속에서 담배를 피우며 창밖을 내려다보면 그 시장이 보였는데 인적도 드문 컴컴한 거리 속으로 노란색 전등 빛이 스며 나오는 꽤 낡고 허름한 시장 안 노포들도 볼 수 있었다.
서울의 한여름밤처럼 무더운 저녁에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그런 노포들을 보고 있다 보면, 70~80년대 가난한 시절 한여름밤 서울의 시장 안 노포들을 다시 보고 있는 것 같은 아련한 추억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 시절은 비록 거의 모든 한국인이 가난하고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방황하는 모습의 한국과는 달리 언젠가는 제대로 잘 살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가득했던그러한 삶을 살던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과 추억으로 얼룩진 그 시장 골목 모습이 그리워, 인터넷 지도 거리뷰를 통해서라도 그곳 모습을 다시 보려고 그 호텔 주변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는지 그 호텔 주변에 있던 허름한 시장과 골목은 다 사라져 버렸고이제는 전혀 기억이 없는 깔끔한 건물들이 2005년에 내가 봤던 바로 그 공간에 과거 그 시절에는무슨 일이 있었냐고 질문하듯이 생뚱맞게 대신 들어서 있었다.
안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푸근한 스위트홈이 있었던 곳인데, 서울이 너무나도 변해버린 것처럼 광저우의 그 스위트홈과 주변도 그렇게 세월과 함께 변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