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어(廣東語)의 향수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4편 Guangzhou-02)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Guangzhou



2. 광둥어(廣東語)의 향수


"헹헹씨우쎙, 쪼이와이노썽완뉜 (經經笑聲在爲我送溫暖)"

한글로 옮겨 적으니 좀 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1986년에 개봉된 홍콩 영화 '영웅본색'의 주제가 '당년정(當年情)'의 첫 구절이다. 한글로 번역을 하면 "가벼운 웃음소리, 나에게 온기를 전해주고"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홍콩에서 사용되는 언어인 광둥어로 쓰인 노래다. 노래는 영화에도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장국영(張國榮)이 직접 불렀는데 그는 46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6개월 장기 출장을 가기 위해서 베이징 공항에서 광저우행 항공기에 올라타니 무엇보다 먼저 그간 베이징에서는 결코 듣기 어려웠었던 매우 이상한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광저우와 홍콩, 마카오 등이 포함되어 있는 광둥 지역의 언어인 '광둥어(廣東語)'였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과거에 접했던 중국어는 표준어보다는 이 광둥어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인이 즐겨서 보던 홍콩 영화의 대사가 과거에는 모두 홍콩의 언어인 광둥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도 19세기에 시작된 영국 식민 지배를 받기 이전에는 광둥성에 포함되어 있었으니 당연히 광둥어가 오랜 기간 모국어로 사용되어 왔고 식민 이후에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광둥어가 널리 사용됐다.


한국에서도 폭발적 인기가 있었던 70년대의 이소룡 영화나 '사랑의 스잔나', 80년대 '영웅본색(英雄本色)', 90년대의 '중경삼림(重慶森林)' 및 '첨밀밀(甛蜜蜜)', 2000년대의 '무간도(無間道)'등은 모두 광둥어로 제작된 홍콩 영화다.




한편 어린 시절 내가 홍콩 영화를 보던 때는 광둥어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표준어도 전혀 모르고 있던 시절이었으니, 영화 속의 대사가 광둥어인지 표준어인지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것이고 그저 외국어라고만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중국어를 배우고 나서 보니, 그때 내가 들었던 그 중국어는 중국 남부의 광둥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중국에서는 일종의 사투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희미하게 기억하지만, 말의 의미는 전혀 못 알아 들었어도 그때 접했던 그 광둥어는 다소 경직된 듯한 중국 표준어와는 달리 홍콩 영화나 노래에는 정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던 기억이 있다.


한마디로 중국 남부지역에서 탄생한 영화나 노래의 감성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 주기에는 광둥어가 최적의 언어였던 것 같었던 것이다. 사실 발음이나 또 사용되는 단어 등에서 광둥어는 표준어와는 너무도 달라 한국에서와 같은 지역별 사투리라는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어쩌면 광둥어는 중국의 북방 언어인 표준어와 다른 별개의 언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는 생각도 정도다.


한국에서는 사투리를 사용하더라도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지만, 중국의 지방 언어 중에는 표준어와는 너무도 다른 것들이 꽤 있다. 광둥어도 그중 하나로서 광둥어를 별도로 배우지 않고서 표준어만을 배운 사람은 홍콩이나 광저우 등 광둥 지방에서 사용되는 광둥어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광둥 사람과 같은 중국인이지만 베이징 사람들도 한국인이 못 알아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광둥어로 된 당년정의 노래나 이소룡의 말은 전혀 못 알아듣는다는 얘기다. 그만큼 중국 남부 언어인 광둥어와 중국 북부 언어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표준어는 그 차이가 크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중국어를 배워서, 표준어도 겨우 짧은 말만 구사할 수 있었던 나는 사실 광둥어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나 같은 사람도 듣다 보면 광둥어와 중국 표준어 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경우가 많았는데, 정확한 표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광둥어의 경우 좀 더 감성적이고 직설적이며 뭔가 리듬을 타는 언어처럼 들리는 특징이 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우선 광둥어는 성조(聲調)가 6성으로, 4성인 표준어보다도 높낮이가 복잡하고 심해 좀 더 운율이 강하게 들린다. 또한 한자 발음도 받침이 거의 없어서 우물우물 말하는 것처럼만 들리는 표준어와는 달리, 광둥어에서는 한국어에서와 같이 'ㄱ', 'ㅅ' 등과 같은 강한 받침 발음들이 많아서 표준어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감성적으로 들린다.


예를 들면 가족(家族)이라는 중국 한자 단어는 표준어로는 '지아주(jiazu)'라고 받침이 전혀 없는 식으로 발음되지만, 광둥어로는 우리말과 비슷하게 '까쪽(gaazuk)'이라고 좀 더 강하게 발음된다. 한국(韓國)이라는 단어도 표준어로는 '한구어(hanguo)'로 역시 받침이 거의 없지만 광둥어로는 한국어 발음과 별 차이가 없는 '한궉(hongwok)'으로 'ㄱ' 받침이 뚜렷하게 발음된다.


광둥어에서는 아울러 북경(北京)을 '빡낑', 국적(國籍)을 '궉직', 국가(國歌)를 '궉가, 육군(陸軍)을 '룩꽌' 등으로 발음하는데, 이것 역시 각각, '베이징', '구오지', '구오거', '루쥔' 등으로 발음하는 중국 표준어보다 그 발음이 훨씬 강하고 받침이 분명하며 오히려 한국어 발음과 유사하다.




광둥어는 중국 표준어와 달리 좀 더 감성적이고 직설적으로 들리는 것 외에 또 하나 재미있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앞의 사례에서도 느꼈겠지만 한국어 발음이나 표현과 꽤 유사한 것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표준어로는 숫자 '1'은 '이'로, 숫자 '2'는 '얼'로 발음된다. 따라서 한국어로 '이(2)'라 발음하면 중국 표준어에서는 '1'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광둥어는 '2'가 한국어처럼 '이'로 발음된다. 표준어와 달리 우리말의 '2'와 광둥어의 '2' 발음이 같은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꽤 놀랐던 일이지만, 또 광둥어로는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는 '아빠(阿爸)'라고 부른다. 한국말 '아빠'와 전혀 구분이 안될 만큼 똑같다. '아빠'라는 이 단어에서 앞부분의 '아(阿)'는 중국 남부지역 언어에서 많이 사용되는 접두사로, 사람의 성이나 이름 앞에 붙여서 친근감을 갖게 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쉰(魯迅)의 소설 '아Q정전(阿Q正傳)'의 '아'도 그러한 의미이다.


그런데 한자로 표기될 수 없는 한국어 단어에도 '아빠'외에, '아줌마', '아가씨', '아저씨', '아가'처럼 가까운 가족이나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 앞부분에는 유독 '아'라는 발음이 들어 있는 단어들이 많은 것이 신기하게도 광둥어의 경우와 유사하다. 어쩌면 문자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인간의 감성적 표현이 한국어와 광둥어에 동일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편, 베이징 등 중국 북방 언어에도 과거에는 이런 '아'를 사용하는 표현법이 존재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시점에서 볼 때는 상대적으로 광둥어에서만큼은 그렇게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결국 한반도에서 가까운 중국 북방지역 언어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중국 남부지방 언어인 광둥어의 어휘나 발음이 우리와 좀 더 유사한 인데, 이러한 특이성 때문인지 중국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도 광둥어와 한국어가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고 1963년 6월 중국을 방문한 북한 조선 과학원 대표단 학자들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혹자는 이러한 유사점의 배경으로 한반도와 광둥 지역 간에 어떤 인종이나 민족적인 관점에서의 근접성 또는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면서도 영어에서 차용된 수많은 단어를 너무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이유가 한국인이 미국인과 민족적으로 가까워서는 결코 아니고, 해방 특히 6.25 전쟁 이후에 한국 사회가 미국 문화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볼 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어휘나 발음보다 더 중요한 문법으로 볼 때 한국어와 광둥어가 너무도 다른 것으로 보면, 중국 표준어는 과거에 중국을 자주 침략했던 거란, 몽고, 만주 등 북방 민족 언어 영향을 받아 어휘와 발음이 크게 변해온 반면 북방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던 광둥지역이나 아예 다른 국가로 분리되어 살고 있던 한반도는 그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 고대 한자의 어휘나 발음 등이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숫자 표현법을 봐도, '1, 2, 3'의 한국어 발음이 '일, 이, 삼'으로, 광둥어 '얏, 이, 삼'과 매우 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는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순수 한국어 숫자 표현인, '하나, 둘, 셋'과 같은 어휘가 존재하지만, 중국 표준어에는 물론 광둥어에도 이와 비슷한 숫자 발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주장이 근거가 있는 것 같다. 즉, 우리 원래의 숫자는 '하나, 둘, 셋'이었는데, 한자를 사용하게 되면서 '일, 이, 삼'이라는 발음도 같이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늘 천(天), 땅 지(地)로 시작되는 천자문(千字文)을 봐도 마찬가지인데, 한자 발음인 '천'과 '지'는 광둥어 발음 '틴', '데이'와 유사하나, 순수한 한국어인 '하늘'이나 '땅'과 같은 단어는 광둥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둥어의 본산 광저우에 6개월간 근무할 때는 전혀 몰랐던 광둥어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됐던 것은 광저우를 떠나 홍콩에 주재할 때였다. 5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홍콩법인에서 근무하면서 현지인들 간의 광둥어 대화를 좀 더 자주 들을 수도 있었고, 또 당시 의도치 않게 매우 훌륭한 광둥어 선생님도 매일 만날 수가 있었는데, 재미있지만 그 선생님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홍콩 전철 안내 방송이었다.


홍콩의 전철을 타면,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와 홍콩의 언어 광둥어 그리고 영어까지 모두 3가지 언어로 안내 방송을 해 주는데, 똑같은 안내 방송을 3개의 언어로 순차적으로 매일 반복해서 듣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광둥어를 조금씩 나도 모르게 학습하게 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전철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전철 문에 가까이 서지 마세요"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표준어로 먼저 "칭 뿌야요 카오진 먼코우(请不要靠近门口)"라고 나온다. 이후 바로 이어서 나오는 광둥어를 들으면 "챙 맛 카우깐 체문" (請勿靠近車門)이었다.


이 두 문장을 비교해 보면, 같은 글자를 읽을 때 발음도 많이 다르지만, 사용하는 단어 자체가 아예 다른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즉, 표준어에서 '하지 마세요'라는 의미를 표현할 때는 '뿌야요(不要)'라는 두 글자로 표현하는 반면, 광둥어에서는 '맛(勿)'이란 한 글자로 표현하고 있고, 또한 표준어에서는 '먼코우(门口)'라고 표현하고 있전철문을 광둥어에서는 '체문(車門)'이라는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




광둥어 등 중국 지방의 언어 발음이 표준어보다 오히려 더 넓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베이징 등의 북방 지역 언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보통화(普通話)라는 언어를 중국의 표준어로 채택해서 중국이 전국적으로 본격 확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60여 년 전인 1955년부터다. 그 이전에는 한국의 약 100배가 되는 광활한 면적을 가진 중국 각 지역은 그들만의 자체적인 언어로 의사소통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구 사회와 먼저 접촉한 광둥 지방 등 중국의 남부 지방 언어가 외부세계에 먼저 알려지는 경우가 생기게 됐고 그렇게 전파되었던 발음이 서구 세계의 공식 발음으로 굳어지는 경우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서구 국가인 영국할양되었던 홍콩은 1842년부터 155년간 영국 식민지배를 받았고, 마카오는 그보다도 더 오래 전인 1557년경부터 무려 400년 이상을 포르투갈의 실질적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홍콩, 마카오 모두 광둥 지방에 위치한 도시들로서 그곳에서 사용되던 언어는 광둥어였기 때문에 당시 그곳에 거주하던 서구인들은 광둥어로 표현되는 중국어를 접하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조선시대 제주도가 서구에 할양되었고, 그 결과 많은 서구인들이 제주도에 거주했다면 그들 역시도 서울의 발음보다는 제주도 방언의 발음에 훨씬 더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과 같은 이치다.


IATA(International Air Transport Association, 국제 항공운송협회) 코드에서도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IATA가 전 세계 공항에 부여하는 3자리 단위 코드를 보면 인천공항은 'ICN'이다. 인천의 영문 표기명 Incheon에서 알파벳을 차용해 'ICN'으로 표기된 것인데, 이렇듯 통상 이 코드는 해당 도시명의 영문 약자를 따서 부여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베이징의 영문 표기는 Beijing임에도 IATA의 코드는 'BEJ'가 아니라, 전혀 다른 'PEK'로 되어 있다.


또 베이징의 유명한 요리인 베이징 오리도, 영문으로 표기 시에는 'Beijing Duck'이 아니라, 'Peking Duck'으로만 표기되고, 1898년 창설된 중국 명문 베이징대학의 로고도 역시 'Beijing'이 아니라, 'Peking'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경극(京劇)도 'Peking Opera'로만 번역되고 있다. 이처럼 많은 경우에 베이징을 'Peking'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과거 서구인들에게 '베이징(Beijing)'이라는 발음이 아닌 '뻬낑(Peking)'이란 발음이 먼저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진) 베이징대학교 로고, 베이징대 의대 영문 표기, 중국인 스스로 표준어 발음인 'BEIJING'이 아니라 'PEKING'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뻬낑(Peking)'이라는 발음은 중국 남부 지방 언어에서 베이징(Beijing)을 지칭하는 발음이다. 즉, '北京'이라고 적으면 우리는 '북경'으로 발음하고, 중국 북방의 사람들은 'Beijing(베이징)'이라고 발음하지만, 중국의 남부에 있는 사람들은 'Peking(뻬낑)'이라고 발음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 남부 지역 발음이 서구에 먼저 전파되어 공식 지명으로 굳어진 셈이다.


('Peking'의 유래)

https://en.wikipedia.org/wiki/Names_of_Beijing


'뻬낑'이라는 발음이 서구에 전달된 것은 남경(南京) 지역 발음이 프랑스 선교사들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남경 지역뿐 아니라, 광동 지역 발음으로도 北京(북경)을 '빡낑'이라고 발음해서 남경 지역 발음과 큰 차이가 없다.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베이징'이라고 표기하기보다는 남부 지역 발음인 '뻬낑' 또는 '빡낑'에 꽤 가깝게 표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불어 Pékin(뻬깽), 독어 Peking(페킹), 이탈리아어 Pechino(뻬키노), 러시아어 Пеки́н(뻬낀), 베트남어 Bắc Kinh(빡낑) 등이 바로 그 사례인데 이중 어느 것도 남부 발음 '뻬낑'에 가깝지 북부의 발음인 '베이징'에 더 가까운 것은 없다.


(베이징의 광둥어 발음)

https://fanyi.baidu.com/translate?aldtype=16047&query=%E5%85%89&keyfrom=baidu&smartresult=dict&lang=yue2zh#yue/zh/%E5%8C%97%E4%BA%AC


표준어로는 '샹강(Xianggang)', '아오먼(Aomen)'으로 발음되는 도시가 유럽 등 외부세계에는 모두 'HongKong', 'Macao'라는 전혀 생소한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 역시 광둥인들의 광둥어 한자 발음이 서구사회에 먼저 알려졌기 때문이다.




광둥어는 지금도 광둥 지방 8천만 명, 화교 등 해외의 교포 2천만 명 등, 전 세계 약 1억 여 명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 인구의 약 2배가 되는 인구가 광둥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인구가 현재 사용하고 있고, 또 한때는 중국을 대표하는 언어로까지 외부 세계에 알려졌던 화려한 역사를 갖고 있는 이 광둥어도 안타깝지만 이제 중국 여타 지방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점차로 그 위상이 약화되어 가는 것이 현실이다.


2005년 당시 내가 광주에 거주할 때만 해도 광둥어의 본산 광저우에서 일상생활에서만은 광둥어가 우선 사용되었다. 물건을 사러 상점에 가더라도 주인은 광둥어로 내게 질문을 했으며, 내가 못 알아듣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제야 표준어로 바꾸어 말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 표준어로 바꾸어 말해주는 경우도 젊은 사람을 만난 경우이지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표준어를 전혀 못하시는 경우도 많아 대화가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TV와 인터넷 등의 전국적인 보급과 함께 또 중국 정부가 지속적인 표준어 확산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점차로 표준어가 사용되는 시간과 공간은 확대되어 가고 있고 반면 그만큼 광둥어가 사용되는 시간과 공간은 줄어들고 있다.


(광둥어 탄압 논란)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7869.html


광저우와 인접한 홍콩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후 제작된 홍콩 영화는 과거와 달리 이제 표준어로 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70~80년대 제작된 오래된 홍콩 영화마저도 유튜브 또는 TV에서 방영되는 것을 보면 상당 부분 표준어로 다시 더빙되어 광둥어가 아닌 표준어로 과거에 보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소룡(李小龍)이나 주윤발(周潤發) 등 꽤 오래된 추억 속에 남아 있는 홍콩 배우들이 광둥어가 아닌 중국의 표준어로 말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장국영(張國榮)이 광둥어로 부른 감미로운 '당년정(當年情)'이라는 노래를 북방의 언어인 표준어로 듣는다면, 똑같은 노래라도 전혀 다른 노래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고 또 광둥어에 깊게 배어 있는 남국의 느슨하고 나른한 정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 가수 에디뜨 삐아프가 불어로 부른 "Je ne regret rien"이나 "La vie en rose" 같은 노래들을 독일어나 러시아어로 바꾸어서 부른다면, 불어로 부를 때의 그 맛과 감흥이 그대로 다시 느낄 수 있겠는가?


너무도 서정적이고 심금을 울리는 황순원 단편 '소나기'가 영어, 독어, 중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원작이 갖고 있던 그 깊은 감성이 충분하게 번역되어 전달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소나기, 도시 소녀, 시골 소년, 징검다리, 원두막, 허수아비 등등 그 단편에서 사용된 수많은 한국어 단어에는 그 단어가 가진 문자적 의미 외에도, 그런 단어 속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한국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은 감성들이 그 단어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그 감성적 느낌들이 다른 언어로는 결코 쉽게 번역될 수 없는 것이다.


광둥어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광둥어만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광둥 지역 사람들만의 수천 년간의 기억과 감정이 그 광둥어에는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홍콩의 아름다운 영화나 감미로운 노래를 통해 오랜 기간 광둥어로 표현되고 전달되어 왔고 바로 그 영화나 노래를 통해 중국 남부 광둥 지역의 정서가 가득 배어 있는 감성이 전달돼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광둥어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기억 속에 지금도 남아 있는 홍콩 영화 '영웅본색'의 주제가였던 '당년정(當年情)'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그 시절의 정' 또는 '그때의 정'이라고 하는데 결국 그 시절 그때의 정이 사라져 가고 있는 셈이다.


“헹헹씨우쎙, 쪼이와이노썽완뉜 (經經笑聲在爲我送溫暖)”

“가벼운 웃음소리, 나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영웅본색 주제가 '당년정', 04:15)

https://youtu.be/ETq0rVrz-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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