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나무와 그늘의 도시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4편 Guangzhou-03)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Guangzhou



3. 태양과 나무와 그늘의 도시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를 생각하면 매우 더운 열대 지방에 있는 도시란 느낌이 바로 떠오른다. 하지만 중국 광저우에 대해서는 그런 느낌이 그다지 들지 않는데, 사실 광저우의 위도는 북위 23도로 북위 21도에 있는 하노이와 불과 2도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 서울과 대구 정도의 차이밖에는 없다는 얘기다.


한편 광저우와 베이징 간의 위도 차이는 한반도의 최북단인 함경북도에서 최남단 제주도 간 차이의 2배에 해당할 만큼 크다. 함경북도와 제주도의 기후도 당연히 매우 차이가 있는데, 그것 보다도 위도가 2배 이상이나 더 차이가 나니 같은 중국이지만 광저우와 베이징의 기후가 전혀 비슷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좁은 한반도 그것도 그나마 반쪽 남한에서만 자라온 나 같은 한국인에게는 같은 국가 안에 있는 두 도시 간 그런 큰 기후 차이는 베이징에서 광저우로 이사를 가면서 체험해 보기 전에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광저우에 도착해보니 건조하고 메마른 베이징과는 다르고 아열대 지방답게 꽤 습하고 무더웠다. 당연히 겨울은 없고 거리의 나무는 일 년 내내 녹색 잎을 띄고 있었다. 광저우의 곳곳은 그런 울창한 거목들과 그 거목들이 만들어내는 짙은 녹색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베이징에서 거주하는 기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너무도 싱그러운 모습이었다.


물론 베이징에도 가로수가 있고 여름에는 그 나무들이 녹색 잎을 만들어 내서 녹지 공간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겨울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여름에도 베이징의 기후는 매우 건조해서 나무들이 잘 자라기에는 도무지 적합하지 않았다. 기후조건이 그렇게 부적합하다 보니 베이징에서 마주쳤던 나무들은 울창한 밀림 속에서 자라는 거목들과 같은 느낌을 주는 광저우의 나무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베이징이 얼마나 건조한 곳인지를 직접 눈으로 체험하기도 했는데, 한 여름에 정말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가 한꺼번에 몰아서 쏟아졌는데도, 한두 시간 정도만 지나고 나니 그 물이 다 어디로 갔는지 거리의 지면에는 이미 물기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베이징 일대가 그렇게 건조하다 보니 베이징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정말 말 그대로 '억지로' 자라고 있는 것 같다고 동료들과 농담까지 주고받았던 기억도 있다.


사진) 광저우 동역(東驛, 东站) 인근의 가로수 길. 빽빽이 들어선 나무로 대낮임에도 어둠이 깔린 것처럼 짙은 그늘이 만들어져 있다. (2010년 11월 광저우 출장 시)


사진) 베이징 시내의 가로수. 여름 한 철 녹색을 보여주는 나무들이 있기는 하지만 광저우만큼 나무가 무성하지 않다. 또 베이징의 겨울은 춥기도 했지만 너무나 건조해서 나무가 잘 성장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한 환경이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나무 주변 흙에 습기가 전혀 없다. (2009년 12월, 홍콩 근무 시절 베이징 출장 시)




대대로 광저우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녹색이 넘쳐나는 광저우의 그런 자연환경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을 접할 수 없는 베이징 같은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온 중국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잠시 베이징에서 살다 온 나 같은 한국인에게도, 녹색이 가득한 광저우의 거리와 시내 모습은 보기에 너무 좋았다.


이후에는 타이베이나 홍콩 등 비슷한 아열대 지방 법인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아열대 지방에서 반년이나 거주해 본 것은 광저우가 처음이었는데 한겨울에도 기온이 좀처럼 1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던 것도 의외였고, 또한 그렇게 따뜻하다 보니 12월이나 1월에도 낙엽이 지지 않고 일 년 내내 나무에 녹색 잎이 달려 있는 것도 신기했다.


(광저우 거리와 가로수 모습)

https://m.blog.naver.com/koaram77/221654175413


나무뿐만 아니다. 더운 지방이라 그런지 베이징이나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꽤 다양한 꽃들도 굳이 꽃집을 가지 않고 그저 단순히 시내의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져 있는 이름 모를 나무인데 꽃 크기도 꽤 컸지만 너무도 붉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나무도 있었다. 베이징이나 서울에서는 가로수에 그렇게 크고 붉은 꽃이 달려 있는 모습을 한 번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아열대 지방 광저우는 달랐다.


그 나무와 꽃이 너무도 보기 좋아 서울로 가져와 심었으면 하는 욕심까지도 들었다. 하지만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그 나무가 서울의 기후에서 잘 자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나무와 그 나무에 열린 꽃도 광저우에서 사진으로 찍었는데 안타깝지만 그것은 분실했고, 대신 인근 홍콩에 근무할 때 찍어두었던 아래 사진은 남아 있다.


사진) 매우 큰 규모의 붉은색 꽃이 피는 나무 (2010. 5월)




광저우에 그렇게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다 보니 아침저녁 다소 서늘할 때 거리를 오가며 그러한 울창한 나무 근처를 지나가면 나무들이 내뿜는 신선한 공기로 그 주변의 공기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녹음이 꽤 짙은 산속에 들어가면 공기가 좀 다른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 광저우 포함 주변의 선전(深圳), 중산(中山), 후이저우(惠州), 둥관(東莞), 주하이(珠海) 등 대도시가 밀집되어 있는 중국 남부 지역은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이 가장 먼저 시행되고 적용되었던 곳이다. 그만큼 이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80년대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하던 그 시절부터 매우 많은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렇게 공장들이 많으니 공기의 질도 분명히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중국 정부나 민간 부분 모두 환경이나 오염 문제에 대해 그다지 민감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그 오염은 더욱 심각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미세먼지가 가득한 베이징 같은 곳에서 거주하다 온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그래도 광저우의 공기는 베이징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좋았던 것으로 느껴졌었다. 아파트 창문들을 모두 철저히 닫고 출근해도 집에 돌아와서 잠시 걸어 다니면 바로 발바닥이 새까맣게 변하는 베이징의 공기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베이징의 연평균 강수량이 500~700mm인 반면, 광저우 연평균 강수량은 그의 약 3배에 달하는 1,700mm 정도라 하니 광저우에서는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들도 자주 내리는 비에 씻겨 내려 그만큼 공기의 질도 좋을 수 있었던 것 아닌지 모르겠다.


실제 자료를 확인해 보니 중국의 도시 중에서 공기가 좋지 않은 기준으로 베이징은 13위에 등재되어 있었던 반면에, 광저우는 55위에 기록되어 있었다. 수치로도 베이징보다는 광저우가 훨씬 공기가 좋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후이저우, 주하이, 둥관, 선전, 중산 등 공장이 많은 광저우 인근 도시도 역시 모두 60위권 아래에 있었으니 비록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많은 공장들이 중국 남부 지역 도시들에서 가동되고 있어도 워낙 강우량이 많고 나무와 숲이 울창하다 보니 광저우에서처럼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상당 부분 제거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중국 74개 도시 공기 오염 순위)

https://www.greenpeace.org/eastasia/blog/1820/bad-to-worse-ranking-74-chinese-cities-by-air-pollution/




도심의 울창한 나무들이 주는 혜택은 또 있었다. 광저우의 기온과 습도는 당연히 베이징보다 훨씬 높았지만, 그럼에도 광저우에서는 한 여름 거리를 걸어 다닐 때 베이징에서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오히려 들지 않았다.


아마도 시내 도처에 잎이 무성한 아열대 나무들이 즐비해서 그 나뭇잎들이 만들어 주었던 시원한 그늘과 공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그 울창한 나무 녹색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 또한 있었을 것이다.

사진) 광저우 시내 중심가 티엔허베이루(天河北路) 모습. 울창한 가로수를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낙엽들이 가득할 11월에 찍은 사진임에도 사진에서처럼 나무에는 녹색 잎만 무성하다. 또 거리 행인들도 대부분 반팔 차림으로 아열대 지방 광저우다운 모습이다.(2010년 11월)


티엔허베이루(天河北路)에는 거래선 대형 매장이 많아서 거의 매주 한번 이상 자주 방문해야 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역시 상당히 큰 가로수들이 도로 양편에 자라고 있어서 보기에도 싱그러운 나뭇잎과 그늘을 즐기며 사진 속 저 거리를 걸어 다니곤 했었다.


티엔허베이루뿐 아니라, 광저우에 거주했던 약 6개월간은 회사, 매장, 한인 교회, 한국 식품점, 안마소, 식당 등 시내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항상 느낄 수 있었던 공통점은 역시 일 년 내내 녹색의 나뭇잎들 사이로 걸어 다녔다는 것이었다.




약 6개월여간 광저우에 거주한 후 광저우를 떠났다. 하지만 타이베이나 홍콩 등 이후 다른 지역에 주재할 때도 회의나 행사 등으로 다시 광저우를 방문할 기회는 몇 번 더 있었다.


그렇게 다시 광저우를 방문할 때는 어김없이 과거 그곳에서 거주하던 시절 광저우의 거리를 누비던 기억과 회상이 다시 떠오르곤 했는데, 베이징도 2008년의 올림픽 경기 개최를 전후로 그 모습이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지만, 광저우 역시 2010년 말 아시안게임을 전후로 거리 모습이 정말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서울의 롯데월드타워보다 약 50여 미터 더 높다는 600여 미터 높이의 광저우 최고층 구조물 Canton Tower도 내가 광저우에 거주할 때는 없었는데, 아시안 게임 직전 2009년 완공되었다. 그 외에도 다수의 고층 건물들이 아시안게임을 전후로 완공되어 이제는 광저우 마천루가 인근에 있는 도시 홍콩의 마천루를 능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또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개최된 주강(珠江) 인근을 포함해 광저우 곳곳의 전반적인 도시 환경 또한 아시안게임 이전과 비교하면 너무도 많이 바뀌었다.

사진) 광저우를 관통하는 주강(珠江)과 주변 야경. 사진을 보니, 광저우에서 근무할 때 느끼곤 했던 여름밤의 시원한 강바람을 다시 느끼는 것 같다. (2010년 11월)


사진) 11월임에도 녹색 잔디가 가득한 광저우 시내 공원, 사진 우측에 Canton Tower가 보인다. (2010년 11월)


사진) 2010. 11월 개최된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모습. 사진 속 배들이 떠 있는 강이 광저우의 주강(珠江)이다.


광저우가 그렇게 변해버린 만큼 과거 광저우에 거주할 당시 느꼈던, 뭐라 할까 좀 더 푸근했던 그런 느낌은 이제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서울의 모습이 아무리 많이 변해도 아직은 여전히 종로 5가나 동대문 뒷골목처럼 70~80년대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 남아 있듯이 광저우에도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뒷골목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여전히 있었다.


아울러 그러한 골목들 외에도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광저우에만 가면 항상 변함없이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또 있었다. 바로 광저우라는 그 도시에 가득 차 있던 나무, 태양, 햇살 그리고 서늘한 그늘이다. 너무나도 귀한 반년의 시간을 보냈던 광저우에서의 기억들과 향수 속에 이것들은 지금도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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