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홍콩에서한국 드라마나 노래가 꽤 인기가 있지만, 70년대에는이와 반대로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절권도(截拳道)라는 무술로서유명했던 홍콩 배우 이소룡(李小龍)의 인기는 당시 한국의 남학생들에게는 절대적이었다. 홍콩이라는 도시가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이소룡과 그의 쌍절봉은 모두 익히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 이소룡이 주연한 영화 중에는 정무문(精武門, Fist of Fury)이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이 영화에는 상하이에 있는 어떤 공원에 입장하려는 주인공 이소룡을 인도인 경비원이 가로막으며, '개와 중국인은 출입을 금한다(狗與華人不得入內)'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문구를 보고서격노한 이소룡은 이 안내판을 공중 발차기로 바로 박살을 내버린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이 공원은 영화 속에서 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황푸(黃浦) 공원이라는이름을가진 실존하는 공원으로 영국인들이 상하이(上海)의 영국 조계 내부에 1886년 유럽풍으로 만든 공원이다. 다만 영화에서 인도인 경비원이 주인공의 출입을 막으며 보여준 안내판의 문구는 엄밀히 말하면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황푸 공원 이용규정 1항에 "외국인 전용(The Gardens are reserved for Foreign Community)"이라고 표기돼 있어 실제로 중국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개와 함께 언급하면서 출입을 금지시킨다는 문구는 없었다. 다만, 4항에는"개와 자전거는 출입을 금한다 (Dogs and bicycles are not admitted)"는 문구가 있는데, 이 문구가 1항과 연결되어 영화에서는 그런 치욕적 문구가 실재했던 것처럼 일부 과장되게 묘사된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 땅에 있는 공원임에도 정작 중국인들은 출입할 수 없었던 것은 엄연히 사실이고, 개와 자전거 등의 진입이 금지된 공원에 중국인도 동시에 진입이 금지되었던 것 또한 사실인 바, 중국인은 이런 문구에 적지 않은 모멸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한감정들이 정무문이라는 영화에서도표출된 셈이다.
물론 이제는 중국이 경제력에서 뿐만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세계적 강국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중국의 영토 내부에 그런 치욕적 문구가 적혀있는 외국인 전용 공원은 당연히 없다. 또 그런 공원이 속해 있던 서구 국가의 조계(租界)도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반대로 중국이 서남아시아의 파키스탄이나 아프리카의 지부티와 같은 해외 지역에 치외법권적 권한을 가지는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등 자신들이 과거에 당했던 방식과 너무도 유사한 형태로 해외에 진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서구 열강의 침략과 무력으로 중국이 반식민지처럼 되어있었던 시절인 청나라 말기에는 어쩔 수 없이 서구 등외국 국가에 할양되었던 중국의 도시나 영토들이허다했다. 홍콩(香港), 마카오(澳門), 칭다오(靑島), 다롄(大連)과 같은 도시들이 각각 영국, 포르투갈, 독일, 일본 등에 통째 할양되어 주권이 넘어간 대표적인 도시들이었다.
또 비록 통째로 할양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외국 국가의 치외법권적 특권이 인정되는 조계가 설치돼 있는도시들도많았었는데,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쑤저우(蘇州), 샤먼(廈門), 지우장(九江), 쩐장(鎭江), 하얼빈(哈爾濱),
텐진(天津), 항저우(杭州), 충칭(重慶), 우한(武漢)등등중국 전역 웬만한 대도시에는 모두 조계가 설치돼있었다.
중국에 대량으로 아편을 밀수해서 수많은 중국인들을 마약 중독자로 만들어버린 영국이 7개 도시에 조계를 갖고 있어 가장 많은 수의 조계를 보유한 국가였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일본 5개, 프랑스 4개, 러시아 3개, 독일 2개, 이태리 1개, 오스트리아 1개, 심지어 인구 약 천만의 유럽 소국 벨기에 역시텐진에 1개의 조계를 갖고 있었다. 또한 미국,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등도 복수의 국가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공 조계에 참여하고 있었다.
결국 서구 거의 모든 국가가 중국 영토 내에 그들의 특권이 보장되는 조계를 갖고 있었던 셈이니 말 그대로 당시 중국 전역은 정말 만신창이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 내 조계의 최초 사례가 바로 상하이(上海)의 영국 조계다.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영국의 강압에 의해 1845년 11월 어쩔 수 없이 상하이에 영국 조계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후 이 과정을 지켜본 프랑스, 미국, 독일, 일본 등 다른 국가들도 상하이 영국 조계를 선례 삼아 이와 유사한 자신들의 조계를 추가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조계란 치외법권(治外法權)적 지역이 중국 전 지역으로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치욕적인 중국 내 조계 역사의 원조(元祖)가 상하이의 영국 조계에서 시작되었던 셈인데 상하이 조계는 중국 내 조계의 원조일 뿐 아니라, 영국 외, 미국 및 프랑스 등 다른 국가에 허용한 조계까지 포함하면 그 면적이 중국 내 어떤 도시의 조계보다도 커서 최초의 조계인 동시에 또 규모에서도 최대 조계이기도 했다.
상하이의 영국 조계는 이후 미국의 조계와 합병되었고 다시 서구 12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확대되었는데, 나중에는 조계를 대표하고 조계의 특권을 상징하는 일종의 국기와 유사한 기(旗)까지도 만들어졌다. 그 깃발에는 공공 조계 운영에 참여한 서구 12개국의 국기가 모두 반영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라틴어로 "Omnia Juncta in Uno"라는 문구도 있었다. "All Joined into One"이라는 의미다.
사진) 상하이 공공조계(上海公共租界) 기(旗). 공공조계에 참여한 서구 열강 12개국의 국기가 삽입되어 있다.
엄연히 중국 영토인 상하이에 서양인들이 들어와서 조계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국기와 유사한 것도 만들어 정작 땅의 주인인 중국은 쏙 빼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하나가 되어 단합하자는 문구까지 새겨 놓았으니, 손님들에게 영토와 또 주권까지 빼앗긴 중국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고 분통 터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상하이는 중국 내 다른 도시보다는 좀 더 자주 방문했었다. 상하이가 워낙에 큰 시장이라서 상하이 출장이 빈번하기도 했지만, 계열사 공장들이 다수 입주해 있던 쑤저우 공단에 가려면 상하이의 공항을 경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상하이를 최초로 방문했던 시점은 중국 베이징에 부임한 후 약 1년이 지난 2006년 여름이었는데, 한여름이라서 역시 베이징만큼 덥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거리에 가로수들이 베이징보다는 좀 더 많아서 그런지 그늘도 좀 더 많았던 것 같고 시각적으로도 베이징보다는 조금덜 덥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진) 좌측의 건물은 푸시(浦西) 지역 우중로(吴中路)에 있는 건물인데, 당시 우리 회사 상하이 법인이 이 건물 안에 있어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2006. 8월). 거리뷰로 검색해 보니 14년이 지난 지금도 이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다.
상하이라는 도시 느낌도 베이징과는 좀 달랐는데, 베이징이 다소 남성적인 느낌의 도시라면, 상하이는 좀 더 세련되고 뭔가 여성미가 느껴지는 도시 같았다. 또 이제 관광명소로 유명해진 와이탄(外灘)이라는 지역도 있었는데, 이 지역에 가면 마치 1800년대 말 유럽도시를 방문한 것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답고 오래된 유럽풍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바로와이탄 일대에 오랜 기간 유럽 국가의 조계가 있었기때문이었다.
거리의 여인들 또한 베이징의 여인들보다는 훨씬 세련되어 보였다. 또상하이는 경찰 복장도 좀 특이해서 하얀 헬멧을 쓴 경찰들이 유독 많이 보였는데, 그 모습이 매우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아울러다소 습하고 물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공기 질이 베이징과 비교가 안될 만큼 좋았던 것이 베이징에 살면서 1년 내내 스모그에 시달려야만 했었던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도 반가웠다.
다만, 상하이 토박이들이 사용하는 상하이 지역 언어는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좀 답답했는데, 그 발음이 표준어인보통화보다 다소 거칠게 들려서 언어만큼은 베이징보다는 좀 덜 세련된 느낌이었다.
상하이에도 베이징의 왕징(望京)과 같은 꽤 큰 규모의 한인타운이 있었다. 상하이를 관통하는 황푸강(黃浦江) 좌측에 위치한 홍치아오 공항 인근의 홍췐루(虹泉路)라는 곳이다. 하지만 홍췐루에서 멀지 않은 구베이(古北)란 지역의 고급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꽤 있었는데, 구베이는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 대만의 외국인들도다수가거주하는지역이라 했다.
사진) 상하이 주택가 거리 모습. 상단의 울창한 가로수도 꽤 멋지고, 하단철제문에 꽃이 한송이 걸려 있는 모습도 나름 운치가 있다. 구베이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인데 그 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10. 5월)
쑤저우에 출장 가면 상하이의 홍치아오 공항을 거쳐서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번은 돌아가는 항공기에 탑승하기 전 시간이 유난히 많이 남은 경우가 있어혼자서 구베이 지역 여기저기를기웃거리며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다 보니 구베이도 여느 한인타운처럼 한국 식당, 한국 상품 매장, 한국 옷가게 등이 거리 곳곳에 꽤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베이징 한인타운 왕징과 비교해 보면 왕징 한인타운이 다소 혼잡하고 치안도 베이징 타 지역 대비 오히려 안 좋았던 반면, '구베이' 한인타운은 좀 덜 혼잡하고 치안 역시 왕징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하이에서는매우씁쓸한 장면을 목격했던 기억도 있었다.2008년에 실시된 베이징 올림픽 직전이었는데,상하이의 공항에서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항공기를 기다리던 때였다. 미국인으로 보이는 나이 약 50쯤 돼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백인 여성이 무슨 일인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몹시 흥분한 상태로 "너 이 멍청이야! (You Stupid!)"라는 말을 끊임없이 영어로 반복하며 한 젊은 중국인 공항직원을 계속 따라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공항 직원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대꾸도 안 하고 그저 피하기만 했는데,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그런 공격적인 언행은 내가 출국장으로 들어갈 때도 멈추지 않고 지속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만일에 그 백인이 자신의 고향 미국에서 미국 공항 직원에게 지금 중국인에게 하고 있는 것과같은 직설적인욕들을 했다면과연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바로 신고당해서 현장에서 체포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자신의 나라에서는 감히 못할그러한언행들을외국 땅인중국에 와서는과감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중국어도 아니고 자신이 자국 땅에서 사용하는 영어 그대로 말이다.마치 자신은 미개한동양인들을 대상으로는 그러한말을 해도전혀무방하다는것 같은 특권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에 TV에서 봤던 영화 한 편이 있다. '55 Days at Peking'이란 영화인데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로 영어로는 그저 'Boxer Rebellion'이라고 다소 비하되어 표현되었던 의화단(義和團) 운동과 관련된 영화다. 영화 내용은 청나라 말기 중국에 와서 조계(租界)를 설립하고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며 살고 있던 영국, 미국 등 서구 열강 백인들이 외세를 몰아내자는 중국 의화단원들의 공격을 받고 성 안에 갇혀서 곤욕을 치르는 그런내용이었다.
성 밖 중국인들의 공격을 성안의 서구 열강 군대가 힘들게 막아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성 밖에서 날아온 총알 유탄에 성안에 있던 백인 아이가 사망하게 되고, 그 아이를 붙잡고 한 백인 여인이 통곡하면서 이 어린아이가도대체무슨 죄가 있는데 죽이냐고 중국인들을 저주하고 원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 속 중국인들은 모두가 부패하고, 무지하고, 잔인한 미개인처럼 묘사되어 있었는데, 나 또한 이 영화의 그러한 편집 시각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시각에 동조되어 그 아이를 죽게 만든 중국인을 비난하고 욕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땅은 엄연히 중국인들 땅이고, 아편을 못 팔게 한다고 전쟁까지도감행해서 아편 판매를 지속했고 또 조차지까지 얻어낸 영국과 같은 국가의 백인들이 일방적으로 중국인들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쳤다.
서구 열강의 군대가 쏜 포탄이나 유탄으로 성 밖의중국인 아이들도 죽었을 수 있다. 다만 그 영화를 만든 백인들은 그 중국인 아이들의 죽음에는전혀 관심이 없고 영화에 담지도 않았던 반면, 백인 아이 한명의 목숨만은 너무도 소중하고 진지하게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서구 열강의 아편 강매나 무력 침략과정에서죽었던중국인과 중국 아이들의 목숨은 백인의 목숨과는 결코 같지 않다는 왜곡된 시각에서만 만들어진 영화였던 셈이다. 예를 들어 중국인이 영국 런던에 진출해서 특권이 보장되는 중국 조계를 만들고, 영국인에게 대량으로 마약을 팔아도 아무런 죄가 없다고 과연 영국인은 말할 수 있을지....
아편판매, 무력침략, 주권유린 등 영국을 필두로 그당시서구 열강과 일본이 중국에서 저지른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모든 만행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 사실이 중국인의 머릿속에 너무 깊이 각인되어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만들어진 이소룡의 정무문이라는 영화에까지도 '중국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치욕적 표현으로 여전히 묘사되고 있는 것이었다.
영화 '55 Days at Peking'를 보면 엄연히 중국 땅임에도 수많은 외국의 군인들이 다양한 군복을 입고 자국민과 자국 조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남의 나라 땅에 버젓이 주둔하고 있는 모습도 역시 볼 수 있다.
중국이 영국에 중국군을 주둔시켜도 되는가?영국인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그런데 영국은 중국에서 그렇게 했다.
중국이 영국에 중국 조계를 설치해도 되는가?영국인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그런데 영국은 중국에서 그렇게 했다.
중국이 영국에 마약을 팔아도 되는가?영국인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그런데 영국은 중국에서는 그렇게 했다. 그것도 오랜 기간 엄청난 양을 팔았다.
2차 대전 전범자로 낙인찍힌 독일인들이 전쟁이 끝난 지가 수십 년이 지나서도 전 세계 여기저기로 도망 다니다 결국 체포되어 처벌받게 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멕시코나 콜롬비아의 마약 조직이 미국에 몰래 마약을 팔다가 끈질긴 추적 끝에결국에는 체포되어 구금되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기사도 볼 수 있다.
죄를 지면 반드시 처벌되야만 한다는 것이 서구 선진국들의 이념이고 주장이다. 그런데 영국은 중국에 마약을 팔아서, 그것도정부가 주도해서 팔아서 엄청난 거금을 벌어 들였고 그와 동시에 수많은 중국인들을 아편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 지 200년이 다 지나도록 영국의 어느 누구도 이 죄로 인해 처벌받았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아니 그게 죄였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영국인이 과연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인식이 그렇다 보니 백인의 중국 침략으로 수많은 중국인이 죽은 것과는 관계없이 백인 아이의 목숨만이 중요한 것으로 묘사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고,또 청나라 말도아닌21세기에 들어서도 중국 공항 안에서 영어로 욕을 구사해가면서 중국인 직원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정말 대단한 백인 여성을 여전히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국가가점차 강해질수록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대상으로 너무나도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는 중국을 사실 좋아하기는 결코쉽지 않다. 그런데 중국은 시진핑이집권한이후에는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더 노골적으로 그런 모습만을 보이고 있으니 사실 걱정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 설립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시진핑이 중국을 건드리는 국가는 머리에 피가 나도록 깨질 것이라는 거의 막말 수준의 언급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막말의 깊은 배경에는 이처럼 중국이 근세에 유럽, 미국, 일본 등과 같은 외국 국가들로부터 너무도 잔혹하게 당해왔던 쓰라린 역사를 중국인들이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있었던 것이다
상하이에서 시작된 역사상 그 전례를 찾기가 어려운 특이한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구역인 '조계'는 그런 치욕적 역사의 매우 작은 한 부분일 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