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抗)' 또는 '천상천당, 지하소항(天上天堂 地下蘇抗)'이란 말이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하늘에는 천당이 있는 반면에지상에는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杭州)가 있다는 의미로써하늘의 천당과 비교될 만큼 이 두 도시가 살기 좋고 또 아름답다는 뜻이다.
쑤저우는 장쑤성에 있고 항저우는 저장성에 있다. 그렇지만두 성(省)이 서로 붙어 있고 또 두 도시 간 거리도 멀지 않아 이 두 도시 간에는 유사한 점들이 많다고 한다. 이두 도시가모두 천당과 비교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거론되는 이유는 기후가 매우 온화한 점, 또꽤오래전에이곳에서부터북부 베이징까지 연결되는 대운하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물자가 풍부해진 점 등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 도시 주변으로 강과 호수, 운하 등 수자원이 매우풍족해 그 풍부한 수자원으로부터 연출되는 경관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두 도시는 모두 '물의 도시'인 셈인데, 메마르고도 척박한 베이징과 같은 중국 북부지역의 도시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실제로 쑤저우는 북으로창강(長江)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타이후(太湖)와 접하고 있다, 아울러주변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호수와 운하가 있다.
중국에 근무할 당시 유감이지만 그 아름답다는 항저우에는 단 한 번도 가 볼 기회가 없었다. 반면 쑤저우에는 여러 차례 출장 다니곤 했었는데, 이유는 쑤저우 공업단지에 계열사의공장들이 여러 개있어서 출장이 잦기도 했지만, 또 그처럼계열사 공장이 많이 몰려있다 보니1년에 한 번씩 실시되던 계열사 포함 중국 소재 전 법인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했던 체육대회가 이곳 쑤저우 지역에서 개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계열사 전체 체육대회가 개최되면 약 100여 명 정도 되는 계열사의 법인장들도 모두 다 쑤저우로 모여서체육대회도참관하고 또 병행해서 개최되었던 전략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마침 쑤저우에는 한국의 유명 호텔이 위탁운영하던 호텔도 있어서 출장 가면이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이 호텔의 한국인 요리사가 만들어주는 맛있는 정통 한식을 아침 식사로즐기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사진) 2007년 중국 내 전 계열사 법인장들이 모여서전략회의를 실시한 이후 찍은 기념사진. 뒤에 보이는 건물이 그 당시 숙박했던 호텔인데 한국의 유명 호텔이 위탁 운영하고 있었다. (2007. 5월)
오랜만에 법인장들이 모두 모이는 기회이니 체육대회에만 가면 과음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그런날은 호텔에서도 미리 알고 다음날 아침에는칼칼한 콩나물국과 같은 식사가 제공되었다. 중국 객지에서도 과음한 다음날 해장에 너무도 좋은 시원한 콩나물국을 먹을 수 있었으니 그런 면에서 이 호텔의 아침 식사는 정말 완벽했던 셈이다.
그런데 쑤저우의 이 호텔 근처에는 공항이 없어 이호텔에 가려면 우선 항공편으로 상하이(上海)의 홍치아오(虹橋) 공항이나 푸동(浦東) 공항으로 이동 후, 그곳에서 승용차를 타고 호텔로 가곤 했었다. 거리상 구 공항이었던홍치아오 공항이 쑤저우에 더 가까운데, 물론 교통 체증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홍치아오에서 내려서 이동하면 대략 1시간 반 정도면 쑤저우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반면에 신공항인 푸동공항으로 도착하면 이동 시간이 훨씬 더 걸렸는데, 거리가멀어서 그렇다기보다는푸동 공항에서 상하이를 빠져나가는 길이 항상 정체가 너무나심해서 교통 정체로 인해 소요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겹도록 차가 막히는 상하이 시내를 겨우 빠져나오면 쑤저우로 가는 고속도로로 접어드는데 이 고속도로는 한 번도 차가 막히는 것을 본 적이 없을 만큼 항상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이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창 밖으로 푸른 하늘 아래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호수와 강을 볼 수가 있었다. 메마르고 건조해 미세먼지만 가득한 베이징 인근 지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는데 정말 여기도 같은 중국인가 하는생각이 들 정도였다.
쑤저우 지역은 주택들의 구조도 북부지역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아무래도 북부 지역과는 워낙 거리가 멀고 또 그만큼 기후와 문화도 달라서 주택구조에서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베이징 등 중국의 북부지역은 오래전부터중국 한족(漢族)이 아닌 전연(前燕), 후연(後燕), 고구려, 금(金), 원(元), 청(淸) 등 북방민족이 국가를 세워 거주해 왔던 곳이다. 따라서 순수 한족이 대다수였던 양자강(揚子江) 이남의 강남(江南) 지역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주택의 구조나 모습에도 반영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사진) 상하이에서 쑤저우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주변 경치. 베이징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파란 하늘과 호수들을 볼 수 있었다. (2006. 9월)
고속도로를 달려 호텔 인근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쑤저우공업원구(蘇州工業園區)'라고 하는 공장 단지가 나타난다. 이 단지는 싱가포르가 투자해서 개발한 단지인데, 최첨단의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공장들이 주로 입주한 단지라 그런지 중국 타 도시에서 보던 것 같은 허름한 공단 이미지는 전혀없었고 오히려 거대한 공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녹지공간도 많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단지였다.
공단에 있는 공장의 직원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도 공단 주변에 있었는데, 역시 깔끔하고 매우 고급스러워 보였다. 개혁개방 초기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라도 관계없이 무조건 공장을 많이 지어서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야만 했던 중국도 이제는 수십 년간의 경제성장을 거쳐이처럼 과거와는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것을 직접볼 수 있었던 그런 공장 단지였다.
유럽과 미국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으며, 또 한국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왔던 것처럼 중국도 이제 같은 과정을 거쳐가며 공장의 모습들도 점차 변해 가고 있는 셈이다.
사진) 쑤저우 공업원구 내 녹지와 공장 및 아파트. 공단이 아니라 거대한 공원처럼 보였다. (2006. 9월)
이 공업단지를 지나면, 드디어 목적지인 호텔이 나타나는데이 호텔은 중국 대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고층 건물의 호텔은 아니고 5~6층의 나지막한 호텔이었다. 그렇지만 이 호텔도 횡면적이 넓어서 호텔 전체 객실수는 300개가 넘는 호텔이었으니 결코 작은 규모의 호텔은 아니었다.
이 호텔의 명칭은 김계호 호텔(金鷄湖, 金鸡湖)이었는데, '김계호'가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의 이름 같지만 사실사람 이름은 전혀 아니었고 호텔 바로 앞에 있는 호수의이름이 '금으로 된 닭'이라는 의미의 금계호(金鷄湖)라서이 호수 이름을 따서 호텔 이름도 금계호로 지어진 것이다.
쑤저우 인근의 호수에서 잡히는 음식 재료 중매우 유명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따쟈시에(大閘蟹)'라고불리는 '민물게'였다. 중국에서는 가을철에 게 요리를 많이 먹는데, 쑤저우 인근 지역 호수에서 잡히는 따쟈시에를 맛에있어서최고로 친다. 따라서 그만큼 이 지역의 게 가격도 타 지역산 게보다 훨씬 비싼데 그러다 보니 타 지역에서 잡은 게 역시 쑤저우에서 잡은따쟈시에라고 속여판매하는 경우도 매우많았다. 어쩌면 사진 속 저 호수에도 그 귀하고 비싼 쑤저우따쟈시에들이 가득 들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2006년 즈음에는 이 호텔이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지 호텔에 가 보면 그 넓은 호텔에 투숙객이라고는 전략회의에 참석하는 우리 회사의 주재원들과 행사를 지원하는 회사 직원들만 투숙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우리 일행이 약 100여 명이었는데 객실만도300개가 넘는 호텔에 우리 일행 이외에 다른 손님이 전혀 없었으니 호텔방의 2/3가 비어 있는 실정이었던 셈이다. 당연히 호텔 입장에서는이런상황은걱정되는 상황이었겠지만, 우리의입장만 놓고 보면 그 넓은 호텔을 우리들만의 전용 공간인 것처럼 사용할 수 있어서솔직히 매우 편했다.
사진) 진지후 호텔 정문 출입구 인근 모습 (2006. 9월)
호텔에서 회의를 하다 여유 시간이 좀 생기면 호텔 밖으로 나와 투숙객은 물론 종업원조차도 별로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고성(古城) 같은 호텔 여기저기도 구경하고, 인근의 호수도 구경하곤 했었다.
호수와 운하들이많아 습한 지역이라서 그런지 호텔 인근의 공기 역시 베이징과는 다르게너무나도 좋았는데, 쉬엄쉬엄 산보하듯이 홀로 구경했던 인근의 호수와 호수 한복판 작은 섬의 건축물 등도 인상적이었다. 또 적막감이 흐를 정도로 조용했던 호텔의 건물 외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회랑도 꽤 운치 있어 보였던 기억이 있다.
사진) 호텔 건물 외벽으로 길게 이어진 회랑 (2010. 5월)
쑤저우에서 중국 내 전 계열사가 참석하는 체육대회를 하면 재미있는 일도 생기곤 했다. 소속감을 강화하고 계열사 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이 체육대회 목적이었지만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승부욕이 과열되기도 해서 각 공장별로는 자체적으로 선수들에게 우승에 대한 포상금을 걸기도 하고, 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에 대해서는 대회 전 몇 달간은 아예 일도 안 시키고 오로지 운동경기 연습에만 몰두하게끔 하는 그런 공장도 있었다.
좀 더 심한 경우도 있었는데직업선수인 외부인력을 경기가 개최될 즈음에오로지몇 달간만 직원으로 채용해서 선수로 출전시키려 했던 공장들 사례가 발각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부정선수를 채용해서까지도경기에 이기려고 했던 셈인데, 그만큼 열기가 뜨거웠다는 얘기다.
경기 종목으로는 달리기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인기 있었던 종목은 역시 축구였다. 체육대회마지막 경기로 야간에 진행되었던 이 축구 결승전은 우승을 다투는 두 팀 선수들 외에 수천 명의 응원단까지 가세되어 감정이 격해져 과격한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했었다. 또 축구경기는 남녀 경기 모두가 진행되었는데, 더 과격하고 좀 더 흥미를 끌었던 것은 남자축구가 아니라 오히려 여자 축구였다.
경기는 쑤저우 지역에 있었던 대형 축구장과 같은 체육시설 안에서 진행됐는데, 우리 회사의 체육대회뿐 아니라, 다른 경기도 자주 진행되는 곳이라서 그런지 축구장 바로 옆에는 선수들을 위한 숙소 건물도 몇 동이 있었다. 그다지 시설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 숙소였는데, 물론 고액의 연봉을 받는중국의 축구 선수들은 이런 숙소에 절대 머물지 않고 인근 고급 호텔에 머물겠지만, 젊은 학생들이나 형편이 안 되는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훨씬 저렴한 축구장 옆 이숙소에서 숙박했었을 것이다.
사진) 체육대회가 진행된 축구장 옆 숙소 (2010. 5월)
2010년 5월에 체육대회가 개최되었을 때도 역시 결승전에 참가하는 중국인 직원들 대다수는 축구장 옆의이 숙소에서 숙박하고 있었는데, 숙소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위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이 한방에 여러 명이 사용하는 그런 시설이었고, 빨래도 마땅히 말릴 곳이 없었는지 각 방마다베란다에는 선수들의 빨랫감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모든 직원들을 법인장들이 숙박하는 것과유사한 호텔방에 투숙시킬 수 있을 만큼 회사의 재정적인 여유가 충분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별로 할 일도 없이 구경만 하는 나 같은 법인장들은 냉난방이 잘 되는 널찍한 호텔 방을 혼자서 사용하고, 하루 종일 연습하느라 지치고 피곤했을 젊은 현지인 직원들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꽤나 열악한 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쨌든 항상 정해진 시간을 한참이나 초과해서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던 체육대회 마지막 시상식에서 대회 준비로 최소 몇 달간 땀 흘리며 고생했던 직원들이 시상대 위에 올라 상금과 포상도 받고 환호하며 너무 환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볼 때에는, 그런 미안함도 다소 사라지고 나도 그들처럼 흥분과 감동 속에서 그날을 마무리하고는 했었던 기억이 있다.
사진) 여자 축구 결승과 마지막 시상식 (2010. 5월)
그런데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중국의 시장구조나 임금구조 등도같이 변하면서 한때는 중국에 대거 진출했던 많은 한국 기업들이 최근에는경영상어려움으로 중국에서 철수한다는 기사를 적지 않게 접하게 된다. 실제 과거 내가 다니던 회사와 계열사 공장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상당수는 이미 중국에서 철수했다.
그런 실정에서 어쩌면 물의 도시 쑤저우에서 매년 개최되던 체육대회 역시 이제는 꽤 많은 공장들의 중국 철수와 함께 이미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그렇게 되었다면 위사진 속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은경기장 구석구석가득 채웠던 열기와 함성도 이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사진 속 과거 추억으로만 남아 버리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