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에 패한 장개석은 1949년 12월 결국 대만으로 도주해 대만에서 정부를 수립했다. 이후 계엄령을 선포하고 바로 경제 개발에 매진하여 1953년에는 국가가 주도하는 제1차 4개년 경제 개발 계획이 착수되게되었다. 그리고 정부 주도하의 이러한 경제 개발 계획이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대만의 경제력은 빠르게 성장해 갔다.
하지만 한국은 대만이 개발 계획을 착수한1953년 당시는여전히 6.25 전쟁 중으로 전국토는 만신창이 상태였었고,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 개발은 꿈도 못 꾸던 상황이었을뿐 아니라, 전쟁통에 당장먹고사는것조차 허덕이고 있었다.대만과 한국은 산업화를 착수한 시점부터 이처럼적지 않은차이가있었고, 그만큼 경제력 측면에서 대만은 한국보다는 앞서 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도 1961년 박정희 정권의 등장 직후인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해 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2003년에는 그간 항상 대만 대비 낮았던 한국 인당 명목 GDP가 처음으로 대만을 추월했고 이후에는 현재까지 한국이 지속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 국가 총 경제 규모도 이제는 한국이 대만 대비 우위에 있다.
결국 대만인 입장에서 보면 과거 한국은 6.25 전쟁에서 막 벗어나 폐허 속에서 거의 전 세계 최빈국 같은 생활을 하던 국가였는데, 언젠가부터는 자신들을 쫓아오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자신들을 추월하여 앞서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 셈이다.
또 대만과 한국은 해방 직후 1948년한국이 신생국가이던 시절 수교하였는데, 당시 대만(엄밀히 말하면 중화민국)은 UN 5대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서 국제 정치에서 한국과는비교조차 안 될 만큼 막강한 지위에 있었던 시절이었다. 즉,양국이 수교할 당시에는 한국은 대만보다 국제 정치, 외교 측면에서도 한참 아래였던 셈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점차 상승해 올림픽에 태권도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시키기도 했고, 또한 86년 아시안 게임이나 88년 올림픽을 유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만은 중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압력으로 오히려 국제적 위상이 나날이 하락해서 UN 상임이사국은 고사하고 아예 UN에서 축출되었으며, 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은 꿈도 못 꿀뿐 아니라, 올림픽 행사에 대만 국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조차도 금지된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 과거와는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대만인들의 반한 또는 혐한 감정의 근저에는 이처럼 완전히 역전된두 국가의현실에 대한 대만인들의 미묘한 질투심, 열등감 등도 어느 정도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80년대 말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됐을 때 서울에 왔던 대만 언론들의 취재 내용을 보면, 서울 뒷골목의 쓰레기나 개고기 식당 같은 상당히부정적인 현장만을 주로촬영하여 이런 한심한 도시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올림픽과 같은 경기가 개최된다고강조하곤했었다.
굳이 그렇게 유난히 부정적인 것만을 골라서 촬영할 이유가있었을까 싶기도 한데, 한국이대만과 단교를 했던 시점은 1992년이고 80년대 말은 그 이전이니 당연히 단교로부터 온 부정적인 감정에서 그런 방송을 의도했던 것은아니었을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를 추정해보면 자신들보다 뒤처져만 있던 한국이 자신들은 유치할 수 없는 올림픽 같은 중요한국제적인행사를 유치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또는자괴감에서 그러한 부정적인 촬영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결국 일본이나 미국이야 원래 자신들보다 잘 살던 국가였고 강대국이었으니, 일본, 미국이 자신들보다 앞서 가는 것은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자신들보다 뒤처져 있었고 자신들의 도움을 받아야만했던 별 볼 일 없는한국이 자신들을 앞서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되니콤플렉스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그것이 반한이나 혐한 감정으로까지연계가되어서 표출되기도했던 것 같다.
젊거나 어린 학생 중심이지만 대만에 한류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봐서도 대만인들의 반한이나 혐한은문자그대로의 반한이나 혐한일 수는 없어 보인다. 또반한이나 혐한활동이 일본에서만큼 체계적이거나 항시적인것 역시 아닌 것으로 봐서도 대만의 반한, 혐한은 일본의 반한이나 혐한과는 뭔가 다른 요인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요인이 바로 이러한 콤플렉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글 서두에서 Foxconn의 궈타이밍 회장이 LCD 분야에서 경쟁관계에 있었던 삼성의 가격담합 자진 신고 건을 문제 삼은 것을 게재하기도 했지만, 실제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전자, 부품 산업 등 대부분의 주력 산업에서 상호 경쟁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결국 한쪽이 잘 되면 다른 쪽은 어쩔 수 없이 잘 안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삼성과 같은 한국의 기업들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결과적으로 대만의 기업들은 침체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체는 지속 성장해 가고 있는 반면, 일부 대만 기업체는 주춤하거나 성장 속도가 늦어지는 그런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러한 위기감이 한국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형성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다섯째, 일본에 대한 호감이 반한 또는 혐한으로 발전
전술했던 바와 같이 타이베이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 기사가 묻는 질문에 한국인이라고 답변을 하면, 그다음에는 곧바로 "한국인은 왜 일본 싫어하느냐?"라고 묻는 기사가 많았다. 나는 일본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전혀 없는데도 한국인이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꼭 그런질문을 했다. 그것도 자신이 마치 일본인인 것처럼 나름 나무라는 말투로 질문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쩌면 자신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호감을 갖고 있는 일본을 한국인들이 부정적으로 보니 스스로를 일본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대만인들에게는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인들이 부정적으로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내 형제나 부모를 싫어한다고 하거나 비난하면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을 내가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런 심정과아마 비슷한것일 것이다.
또 혐한 정서가 매우 심한 일본인들이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는 대만인의 정서를 이용하여 혐한 정서를 지속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심증이 좀 가기도 하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라서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