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언급한 내용들보다는 어쩌면 이 부분이 훨씬 중요한 요인일지도 모르겠다. 대만인들이 누군가를 통해서 듣거나 언론에서 보고 들은 한국에 관한 내용들은 모두가 간접적인 경험으로 상황에 따라 때로는 변할 수도 있는 반면, 자신이 한국인을 직접 접촉하는 기회를 통해서 얻게 된 한국인들에 대한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만에 대해 많은 것을 들어도 직접 대만인을 만나 경험한 것이 대만인들에 대한 가장 분명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고 굳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해외에 있는 한국인들은 모두가 민간 외교관이라고 하는 말도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한국인은 대만인에 대해 그다지 잘해오지 못했던 것 같다.
일본인은 미국과 같은 강대국 국민들을 대할 때와 한국이나 동남아 국가처럼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는 국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인 또한 부끄럽지만 솔직히 그런 면에서는 일정 부분 일본인과 유사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 와 있는 동남아 등 후진국 출신의 외국인 근로자를 대하는 자세와 미국과 유럽에서 온 백인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한국인에게는 대만도 동남아의 그저 작은 나라로만 인식되어 왔는지, 미국이나 유럽의 백인들을 대할 때와는 많이 다른 태도로 대만인을 대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비록 대만의 명목 GDP는 2003년 이후 한국에 지속 뒤쳐져 있지만, 물가를 감안한 PPP 기준 GDP를 보면 최근에도 대만이 한국보다 여전히 높다.
대만의 외환보유고도역시 거의 매년 전 세계 5~6위권으로 한국보다는 앞서고 있는데, 2020년 6월 말 기준으로 봐도 전 세계 6위로 9위인 한국보다 더 많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경제적으로 한국 대비 낙후된 동남아 국가의 국민을 오랜 기간 홀대해 왔던실수를 저질러왔던 것처럼 대만인 또한 다소 무시하는 듯한 자세로만 대해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중국이 점차 강대국이 돼가면서 중국인에게도 이제는 하지 못하는 실수나 결례까지 대만인에게는 서슴없이 저질러왔던 것은 아닐지....
타이베이 거주 당시 나 자신의모습을 되돌아봐도 그렇다.별 부담 없이 내가 대만인에게 저지른 실수가 정말 너무나 많았다. 기억나는 것만 적어 봐도 아래처럼많은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나의 실수들 중 단 하나도 과거에 내가 프랑스나 캐나다에 거주할 때는 그곳의 백인들에게 감히 저지르지 않았던 것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많이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 자신부터도 프랑스인이나 캐나다인을 대하는 것과 같은 기준으로 대만인을 대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많은 실수들이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저질러질 수 있었던 것이다.
[ 타이베이에서 범한 실수들 ]
□ 식당이나 상점에서직원들이 나를 일본인으로 오해하고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면 너무도 불쾌한 표정으로 대응했다. 그런데 사실 그 직원 입장에서는 단순한 착각이었을 뿐으로 일본인이 아니라고만답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번번이 굳이 불쾌하다고 인상까지 써가면서 대응했던 셈이다.
□ 집에 갈 때 집 근처에서 택시기사가 최단 거리 길로 가지 않았던 경우 왜 돌아가냐고 목소리 높여 항의한 적도 있다. 이것 역시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거주하던 집이 타이베이 외곽이라 모든 택시기사가 최단 거리의 길을 알 수 없었을 수도것인데 먼저 성질부터 부린 것이다. 그리고 사실 최단 거리로 굳이 가야 하면 내가 먼저 그 골목길을 알려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식당에서 방을 사용하려 하자, 일정 금액이나 일정 인원 이상이 되어야 방 사용이 가능하다는 종업원의 답변에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항의하고 인상 쓰고 나온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식당이 실제로 타이베이에는 꽤 많았다. 현지의 관행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우선 화부터 낸 것이다.
□ 호텔에서 아침 식사할 때 방 번호를 입구에서 알려주고 들어갔는데, 다른 직원이 실수로 또 물어온 경우가 있었다. 그저 다시 알려주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이미 알려줬는데 왜 또 물어보냐고 버럭 화를 냈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모든 경우에 있어서 상대방 대만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나의 이러한 투박하고 공격적인 언행은 한국인이 대만인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결국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굳혀가는 것에 어느 정도는 분명히 기여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의 실수뿐 아니다. 당시 타이베이에 있던 어느 한국인이 한국인들이 주로 가는 이발소에서 꽤 오래 시간 기다렸는데 미리 예상 대기 시간을 얘기 안 해 줬다고 젊은 대만인 여성 이발사에게 고래고래 성질을 내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미국인이나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답은 아마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의 한국인 민간 외교관들도 대만인에 대해서 그렇게 차별적인 실수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사실 대만인들의 풍습이나 언행은 한국인과는 많이 다르다. 50년이라는 오랜 식민지배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와서 그런지 속마음이야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대만인은 매우 친절하고 공손하다. 반면 한국인 경우는 좀 더 직설적이고 즉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위에 열거한 나의 그 많은 실수들이 바로 그러한 직설적이고 또 즉흥적인 언행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타이베이에는 한국인도 많이 찾아오는 유명 온천도 있는데 그곳에 가보면 어색한 한글로 "때 밀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대만에서는 때를 미는 풍습이 흔하지 않고, 특히 온천 경우 청결 관리를 꽤 중요시하는데, 한국인들이 그곳의 온천에 오면 거침없이 때를 밀고는 하니 그런 문구가 붙여진 것이었다.
독일이나 일본에는 남녀 혼탕이 있다고 하는데, 독일이나 일본에 여행 가는 한국인 중에는 그런 남녀 혼탕을 구경해 보려고 그곳의 목욕탕이나 온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국인들이 그곳에 가서 때를 밀어 문제가 됐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대만 온천에 와서는 때를 미는 것이다. 결국 이처럼현지 관행을 알아보지도 않고 스스럼없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들을 하는 한국인의 모습 역시 대만인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장개석이 표준어 사용을 강요하면서 대만도 이제 과거 오랜 기간 사용을 해왔던 민난어가 아니라 중국 본토의 표준어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화법이나 사용하는 단어에서 대만 표준어는 중국 표준어와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장기간의 일본 지배 영향도 있어서 그렇겠지만, 대만인들은 대화할 때 '실례하지만', '미안합니다만' 같은 격식을 차리는 문구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런 문구가 사용되는 경우를 좀처럼 보기 어렵다.
사용하는 단어부터 다른 경우도 있는데 중국에서는 식당의 종업원을 '푸우위엔(服務員)'이라고 하지만 대만에서는 이 단어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전통 중국어가 아니라 공산체제하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던 단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치면 공산당이 사람의 이름 뒤에 붙여서 사용하는 '동무' 같은 단어와 유사한 셈이다.
또 중국에서는 "돼, 안돼?"라고 물을 때, "싱, 뿌싱?(行, 不行)" 이렇게 묻는데, 대만에서는 이 말도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 본토에서 온 중국인 출장자들이 대만법인의 직원들과 대화하면서 본토에서 사용하던 이런 문구를 사용하면 처음 중국인을 만나는 대만직원들은 갑자기 멍한 모습을 보인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중국어지만 대만인에게 중국 본토인이 사용하는 중국어 말투는 다소 거칠고 예의 없는 것으로 들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술한 것처럼 대화 중간중간 격식을 갖추는 단어가 추임새처럼 사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웬만하면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대만인의 대화법과 달리 본토인들은 고성으로 또 직설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실제 대만의 식당에서 고성으로 떠드는 손님은 알고 보면 대부분 중국인이나 한국인인 경우가 많았다.
몇 년 전 중국어를 너무나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 한국인 유튜버가 대만의 뉴스에까지 등장한 경우도 있었다. 대만에 여행 가서 대만인 택시기사가 바가지 씌웠다고 단정적으로 유튜브에 올렸는데 이 영상을 본 수많은 대만인들이 중국과 대만 간 미묘한 언어 차이를 몰라서 생긴 오해인데 확인도 안 해보고 대만인을 모욕했다고 반박을 하면서 대만인 간에 워낙 큰 이슈로 부각됐고 결국 뉴스에까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갑론을박 끝에 실제로 바가지를 씌운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마침내 밝혀졌고 결국 그 한국인 유튜버는 공개적인 사과를 함으로써 사태는 종결되었다. 하지만 이 사례 또한 적지 않은 대만인에게는 잠재적인 반한이나 혐한 요인으로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국 본토식 중국어와 대만식 중국어의 차이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단정하여 발생했던 문제인 셈이다.
어쨌든 이처럼 전술한 여러 요인으로 또는 내가 인지하지도 못했던 다른 이유로 일부 대만인들이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2년여간 타이베이에 거주하면서 체험했던 경험들에 의하면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적어도 대만인의 혐한 감정은 일본인의 혐한 감정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점이다. 앞에 언급했다시피 대만인의 혐한이 일본에서처럼 조직적이고 상시적이지도 않으며, 또 대만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종종 이용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지 실제 진정으로 혐한 감정을 갖고 있는 대만인도 생각보다는 훨씬 적다고 믿는다.
실제 내가 경험했던 거의 모든 대만인들은 내가 한국인임을 알면서도 대부분 매우 친절했다. 어쩌다가 언쟁이나 문제가 되었던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경우는 되돌아보면 거의 전부가 직설적이고 즉흥적이었던 내가 먼저 화를 내고 감정적인 언행을 해서 발생했던 경우였다.
결론적으로 간혹 표출되는 대만인의 혐한 언행에 대해서는 나 역시 한국인으로 몹시 불쾌하지만 그렇다고 대만인들을 증오하거나 미워할 생각까지는 전혀 없다. 내가 약 2년여간 타이베이에 거주를 하면서 그들로부터 경험했던 감사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결코 그런 증오나 미움 쪽으로 내 생각을 끌고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러 도시 돌아다니며 해외 여러 국가에 거주했었지만, 그중 가장 그리운 도시가 어딘지 자문해 보면 아마 '타이베이'가 아닌가 싶다.
물론 쓰하이방(四海幇)이나 주리엔방(竹聯幇) 같은 대만 조폭이 꽤 유명한 것처럼 대만에도 흉악한 범죄도 존재하고 악한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한국 포함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범죄가 많고 갱단이 많다고 우리가 미국을 증오하거나 미워하지는 않는 것처럼 대만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2006~7년 2년여간 아열대 지방의도시인 타이베이의 그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지고 아지랑이 피는 것처럼 아련하고 푸근한 타이베이의 거리와 골목을 하염없이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른거린다. 언젠가는 꼭 한번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그런 그리운 공간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