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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Aug 21. 2020

대만인이 한국 싫어하는 이유 (3-1)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07)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7. 대만인이 한국 싫어하는 이유 (3-1)


"가오리방쯔(한국인)는 등 뒤에서 칼을 꽂는 민족이다!"


한국인은 뒤통수를 치는 민족이란 말로 너무도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평범한 개인이 사석에서 한 얘기도 아니고, 애플의 아이폰 위탁 생산으로도 유명한 대만 Foxconn 그룹의 창업주 겸 회장 궈타이밍(郭台銘)이 공개석상에서 한 말이다.


그가 사용한 '가오리방쯔(高麗棒子)'라는 단어 또한 '고려 몽둥이'란 뜻의 중국어로, 한국인이 과거 만주에서 일본인 앞잡이 역할을 했다는 의미에서 중국인이 한국인을 비하할 때 사용했었던 용어다. 일본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조센징(조선인, 朝鮮人)'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민족 명인 것과 비교해보면, 몽둥이라는 이 단어는 그 보다 훨씬 더 강한 비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중국인도 아닌 대만인이 굳이 이러한 단어까지 선택을 해서 한국인을 비하했던 것이다.


(Foxconn 회장의 한국인 비하 발언)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145


Foxconn은 결코 작은 기업이 아니다. 대만 전체 GDP의  30%를 점유하는 대만 최대 기업 중 하나로 전 세계에 걸쳐 약 80만 명의 직원이 있으며, 2018년 기준 매출이 193조 원으로 그해 삼성전자 매출 170조 원보다도 많았다. 그런 글로벌 사업을 하는 국제적 기업의 회장이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 했던 것이다.


그의 그런 발언 배경에는 그의 기업이 한국 기업과 경쟁적 관계에 있는 등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근본적으로는 대만인들 사이에 짙게 깔려 있는 혐한 또는 반한 감정이 그런 발언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또한 엄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는 일본인이 한국을 싫어하고 또 한국인이 일본을 싫어하는 것과 유사한 그런 관계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대만을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좀 더 엄밀하게 표현하면, 한국인은 싫고 좋고 이전에 대만에 대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대만(Taiwan)을 태국(Thailand)으로 혼동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그만큼 무관심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결국 대만 일방적으로 한국을 싫어하고 있는 셈이다.


나 역시 대만에 부임하기 전에는 대만에 대해 잘 몰랐고 또 그다지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2007년 대만 법인에 부임한 이후에는 이제 대만에서 살아야 하니 대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때 대만인들 유독 일본인은 좋아하지만 한국인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처음 듣게 되었다. 그리고 대만인과 접촉하면서 실제 그런 느낌이 드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프랑스나 캐나다에서 인종 차별을 받을 때 당했던 것처럼 그렇게 꽤 심하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다행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물론 당시 내가 대만에 있는 한국 기업의 법인장이다 보니 당연히 부하 직원들로부터 그런 경우를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 식당, 상점 등에서 우연하게 마주치는 안면 없는 대만인들과 만날 때도 그렇게 심한 경우를 당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대만인들이 한국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는데, 평소에는 감춰져 있거나 보이지 않던 대만인의 그런 감정이 때로는 묘한 방식으로 또 때로는 매우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꽤 자주 있었기 때문이었다.


[ 대만인의 반한, 혐한 사례 ]

   

(1992년, 단교 발표 및 타이베이의 반한 시위)

https://imnews.imbc.com/replay/1992/nwdesk/article/1747782_30556.html

(1992년, 대만과 단교한 한국은 배신자)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23905/1

(2008년, 대만 언론 "한국은 역사 훔치는 무뢰한 민족")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07/2008080700198.html

(2009년, '한국인 출입금지' 표기된 대만 식당)

https://www.nemopan.com/community_issue/2594143

(2010년, 태권도 실격패 한국 탓, 반한 시위)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lllllstar&artSeqNo=2792125

(2012년, 한국인 탑승 거부 문구 부착한 택시)

http://www.segye.com/newsView/20120312022516

(2013년, 세계 야구대회에 등장한 대만인의 혐한 문구)

https://news.joins.com/article/10867005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kbotown&id=1428010

(2017년, 대만 언론의 혐한 장사)

http://www.koreapas.com/m/view.php?id=gofun&no=134552


Foxconn 회장의 언급뿐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대만인의 혐한 사례는 이처럼 너무나도 많았다....




대만 부임 초기 대만인들이 자신들을 식민 지배했던 일본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렇게 큰 호감을 갖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대만과 별로 밀접한 관계에 있지도 않았던 한국에 대해서는 왜 이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꽤 의문이었다.


그러다 대만에 거주하는 기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대만인이 한국에 대한 그런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된 이유를 몇 가지는 추정할 수 있었다. 어느 것이 가장 결정적 원인이었는지는 나 역시도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2년여간 타이베이에서 듣고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그중에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절박했던 시점에 단행된 매끄럽지 못한 단교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 요구를 받아들여 대만과 단교했다. 그런데 세계의 주요 가는 한국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대만과 단교를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자신들과의 수교 전제조건으로 집요하게 내세웠던 대만과의 단교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


[ 주요국 대만 단교 연도 ]

1950(영국, 인니), 1956(이집트), 1964(프랑스), 1970(캐나다, 이탈리아), 1971(터키, 멕시코), 1972(일본,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1973(스페인), 1974(브라질), 1979(미국), 1990(사우디아라비아), 1992(한국)

  

이처럼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기 전에 주요국들은 대만과는 이미 단교를 한 상태였다. 한국보다 13년 전에 미국 그리고 한국보다 무려 20년 전에 대만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일본 역시 대만과는 단교를 했다. 한국이 오히려 가장 늦게까지 대만을 배려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은 대만과 단교 시 대만 대사관 직원들이 건물 퇴거를 거부하자 경찰을 동원해 물리적 충돌을 초래해가며까지 무력으로 대만인 직원들을 퇴거시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단교를 배신이라고 수십 년간 비난해 왔던 것처럼 일본의 단교를 대만이 끊질기게 비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왜 한국의 단교만을 배신이라고까지 언급하며 유독 더 문제 삼고 있을까? 그건 아마도 한국과 단교를 단행했던 그 시점이 대만으로서는 외교적으로 그만큼 더 고립되어 있고 더 절박한 시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이미 전 세계 대다수의 국가들이 대만과는 단교를 해서, 1992년경에는 아프리카나 중남미 또는 태평양 섬에 있는 이름도 잘 들어 보지 못한 몇몇 작은 국가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규모를 유지하는 국가로서는 한국이 유일하게 대만과 국교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진행된 한국의 단교조치에 대만인은 과거 일본, 미국 등과 같은 주요국들로부터 단교당할 때와는 다른 즉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도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몇 안 되는 대만과의 수교국 명단을 보면 아래와 같은데, 아마 처음 들어보는 국가 이름이 꽤 많을 것이다.


[ 2020년 현재 대만과 수교 중인 15개 국가 ]

 - 태평양 (4 개국)

    ∙ 마셜제도, 나우루, 팔라우, 투발루

 - 아프리카 (1 개국)

    ∙ 에스와티니

 - 중남미 (9 개국)

    ∙ 벨리즈, 과테말라, 아이티, 세인트 빈센트 & 그레나딘,

      온두라스, 니카라과, 세인트루시아, 파라과이,

      세인트 키츠 & 네비스

 - 유럽 (1 개국)

    ∙ 바티칸 교황청

  

한편 단교가 진행되면서 절차상 대만의 감정을 자극할 만한 일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대만 측 주장에 의하면 당시 한국 대통령은 "새 친구를 만나도 옛 친구를 버리지는 않겠다"는 말을 여러  함으로써 대만을 안심시키고 일종의 기대까지 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대만은 한때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해도 한국의 대만 대사관은 그대로 유지되는 최초의 사례가 것이라고까지도 예상했었다 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중국과의 수교가 발표됐고 그와 함께 명동에 있던 대만 대사관 퇴거를 요구받았던 것이었다.


또, 명동 대사관 퇴거 과정 속에서 한국인이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가져갔다는 자극적인 소문도 당시 대만에는 퍼져있었다 하는데, 결국 이로 인해 타이베이에서의 반한 시위가 더욱 확산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사진이나 근거로 명확히 확인된 바가 없어 이 부분은 사실인지 아니면 그저 과장된 소문일 뿐이었는지 확실치는 않은 것 같다.


(한국-대만 단교 기록)

https://aristotelecom.tistory.com/48




둘째,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배신당했다는 감정


대다수 한국인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안이지만, 대만의 식자층 중심으로는 과거 한국이 매우 어렵던 시절 중화민국 즉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한국을 지속 도와주었다는 그런 인식이 있었다.


실제 김구 주석이 이끌던 중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정 활동 기간 내내 장개석의 지속적인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받아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지원 의도가 무엇이었지를 떠나서 어쨌든 한국의 임시정부가 장개석 정권의 큰 지원을 받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장개석의 한국 임시정부 지원)

https://www.yna.co.kr/view/AKR20181022011000501


또 한국보다 약 30년 전 1879년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된 유구(琉球国)처럼 2차 대전 종전 이후에도 독립국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일본의 영토로 남아 있게 된 과거 독립국도 있는 실정에서, 연합국들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처음으로 받아낸 사람도 장개석이었다.


연합국의 영국 등이 자신의 식민지였던 인도 문제로 한국의 독립에 미온적일 때, 미국, 영국, 중국 등 연합국 국가들이 모여 종전 후의 문제를 논의했던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종전이 되면 한국은 독립을 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된 카이로 선언을 이끌어낸 사람이 바로 장개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장개석 정부는 일제 강점기간에는 한국의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했었고, 이후 전쟁이 끝나갈 즈음에는 한반도를 독립시킨다는 약속을 전승국들로부터 받아내었으니 한반도의 남과 북을 떠나 모든 한국인에게는 말 그대로 은인이었던 셈이다.


(카이로 선언의 '한국 독립 결의' 누가 이끌었나?)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40319/61823420/1

(장개석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받은 까닭)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651984/1


이처럼 한국은 매우 어렵던 시절에 장개석 정부로부터 많은 그리고 결정적인 도움들을 받았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서 정작 대만이 전 세계로부터 고립되는 상당히 어려운 여건에 처하니 한국은 과거의 그 은혜를 온전히 저버리고 대만에게 갑작스러운 단교로 답을 했으니 대만인들에게 그것이 결국 처절한 배신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도 대만과는 단교했다. 하지만 대만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한국에 도움 주었던 것처럼 일본이나 미국에 어떤 도움을 주었던 역사가 없다. 그런 면에서 대만인에게는 일본, 미국의 단교 조치와 한국의 단교 조치는 꽤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다음 편 "8. 대만인이 한국 싫어하는 이유 (3-2)"로 이어짐......

이전 06화 대만인이 일본 좋아하는 이유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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