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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Aug 18. 2020

대만인이 일본 좋아하는 이유 (2-2)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06)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6. 대만인이 일본 좋아하는 이유 (2-2)


편 "5. 대만인이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 (2-1)"에서 이어짐......




셋째, 일본의 대만 통치도 비교적 유화적이었음.


양국 간 깊은 감정의 골이 없다 보니, 일본의 대만 통치 또한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방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1915년 '타파니(Tapani) 사건'이나, 1930년 '우서 사건' 같은 대만인의 무력 저항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산발적인 사건들에 대한 일본의 가혹한 대응 조치를 제외하면 일본의 대만 식민통치는 대부분의 기간에 비교적 온건한 방식으로 집행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만을 통치했던 일본 총독의 경력들을 봐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식민 통치 기간 대만으로 부임했던 일본 총독 19명 중에 군인 출신은 10명뿐이었고 나머지 9명은 모두 군대와 관련 없는 문관 출신이었다. 대만에 부임했던 총독의 반 정도는 문관이었다는 얘기인데, 한반도에 부임을 했던 일본 총독 8명 전원이 모두 일본군의 장성 출신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대만 부임 역대 일본 총독)

http://blog.daum.net/caesare21/61

(한국 부임 역대 일본 총독)

https://blog.naver.com/von_manstein/220147532811


따라서 대만인들 일본인 총독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이나 기억도 한국에서와는 다소 달랐을 것 같고,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대만은 1919년 완공되어 1945년까지 일본 총독부 건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여전히 대만 총통의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주권이 바뀌었어도 일본이 건축했던 건물이  100년 넘게 대만 정부 최고 책임자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이다. 대만보다 늦게 1926년 완공된 일본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완공 70년 만인 1996년에 완전히 해체시켜버린 한국에서의 상황과는 역시 매우 다른 현상이다.


사진) 현재 대만 총통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과거 일본의 대만 총독부 건물(2007년 12월 사진). 이 건물은 1914년 완공된 일본 도쿄역 건물과 외관이 유사하다고 한다.


(도쿄역 건물 모습)

https://blog.naver.com/daitouryou/221558510524




넷째, 장개석의 철권통치가 일본에 대한 향수를 자극.


중국 본토에서의 전쟁에 패한 장개석과 국민당은 1949년 대만으로 들어와 정부를 수립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1987년까지 무려 38년이라는 긴 기간을 계엄령을 포고한 상태로 정권을 유지했다. 정권에 저항하는 2.28 사건이나 메이리다오 사건 같은 시위에는 군경을 동원하여 잔혹하게 진압했다.


장개석과 함께 대만으로 유입된 국민당군들은 외부에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외성인(外省人)이라고 불렸다. 같은 중국인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대만에 살아왔던 중국인인 본성인(本省人)과는 구분을 하기 위한 명칭이었다. 그런데 외성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장개석의 계엄령에 기반한 독재 통치가 얼마나 강압적이었는지 본성인들 사이에서는 "개가 떠나니 돼지가 왔다(狗去豬來)"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즉, 일본이 떠나니, 그 보다 더한 중국 본토 외성인들이 왔다는 말이었다.


결국 일본 통치 시기와 비슷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독한 통치를 받게 된 본성인들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통치 시기가 오히려 더 살기 편하고 좋은 시절이었다는 그런 향수 같은 감정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즉 어차피 장개석이나 일본 총독이나 대만인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외부에서 온 사람일 뿐인데, 장개석의 통치를 직접 겪어보니 과거 일본 총독통치가 더 좋았다고 느끼게 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장개석의 독재적 철권통치가 과거 일본 통치대한 대만인의 향수와 호감을 끌어올려주는 그러한 결과를 불러 셈이다.




다섯째, 중국의 고립화 전략이 일본과 유대감 강화 초래.


대만은 국가가 아니라 중국 영토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줄곧 주장하는 중국은 전 세계 모든 국가로 하여금 대만과 외교 관계를 끊도록 끊임없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대만을 고립시켜 결국에는 항복하고 중국으로 귀속되게끔 하려는 정책이다. 실제 대만은 이제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국가로부터 단교된 상태이며, 유엔 등 국제 기구나 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한다. 국가가 아닌 존재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하고도 집요한 중국의 대만 고립정책이 오히려 중국과는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일본에 대한 대만인들의 애착과 호감을 더욱 강화시키는 반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때 유사하기도 했던 대만과 중국 간 군사력 격차가 이제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가 벌어진 현실에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지속 증가하다 보니 과거에 중국을 침공해서 굴복시키기도 했었던 일본에 의지하려는 심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었다. "적의 적은 우리 편이다"라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지금도 일본의 잠재적 군사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다. 하지만 과거 일본의 군사력은 훨씬  강해서 심지어 미국을 상대로 먼저 전쟁을 벌릴 만큼 막강했었다. 그런데 대만인들도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던 시절 한때는 그 막강한 일본군의 일원으로 중국이나 동남아 전역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의 압력으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돼 가는 대만 현실에서 그러한 강한 과거 일본 통치 시절에 대한 향수와 애착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대만 식민통치 시절 태어나고 성장한 대만의 '리덩후이' 전 총통조차도 '일본이 나의 조국'이라고 말하며 일본의 전범들이 묻혀 있는 신사를 직접 참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의 일본 야스쿠니 신사 참배)

https://m.blog.naver.com/joonho1202/221824168435


리덩후이 전 총통처럼 일본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대만인을 직접 만나본 적도 있었다.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서 면접을 는데 50대 후반 정도의 지원자가 놀랍게도 대만인은 2차 대전 패전국 국민으로서의 상처가 남아 있다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던 것이다. 대만인이 일본의 패전을 자신이 속한 국가의 패전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대만인처럼 한국인들 역시 2차 대전 기간 일본군으로 징용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일본의 패전을 단순히 일본의 패전으로만 받아들이지 결단한국의 패전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물론 전부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부 대만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다.




여섯째, 지리적 문화적으로 의외로 일본과 매우 가까움.

 

한반도와 일본은 가까이 붙어 있는 반면, 대만일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만에서 동쪽으로 불과 약 110km 정도 거리에 있는 섬부터 이미 일본 영토다. 요나구니(与那国) 섬이 그 섬으로 일본 영토 서쪽 끝에 있는 섬이다. 이 섬에서부터 오키나와가 포함된 일본의 난세이(南西) 제도가 시작된다.


날씨만 좋으면 대만 섬에서 요나구니 섬을 육안으로도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일본과 대만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다.


(요나구니 섬 위치)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22/2011082200110.html

(난세이 제도)

https://ko.wikipedia.org/wiki/%EB%82%9C%EC%84%B8%EC%9D%B4_%EC%A0%9C%EB%8F%84


일본과 중국 간에 영토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현재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센카쿠(尖閣) 섬도 요나구니 섬보다는 다소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역시 대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참고로 요나구니 섬에는 약 2천 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섬보다 더 큰 인근 이시가키(石垣) 섬에는 무려 4만 명 이상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다.


물론 요나구니 섬이나 이시가키 섬 등 대만 인근의 섬들이 원래부터 일본의 영토는 아니었다. 현재는 일본의 일부로서 '오키나와(沖繩)'라 불리고 있지만 과거에는 '유구국(琉球国)'이라 불리던 독립국이었던 것이다. 유구국은 한반도의 고려, 조선 및 청나라와도 외교 관계를 을 만큼 독립적인 국가였다. 하지만 1879년 일본에 의해 강제 합병되었으며 일본의 2차 대전 패전 이후에도 한국이 독립을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여전히 일본의 영토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제 오키나와는 엄연히 일본 영토이다, 그런데 오키나와와 대만이 매우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보니 당연히 적지 않은 교류가 오랜 역사에 걸쳐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두 지역 간 사람들의 외모나 문화 등에서 때론 유사점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요나구니 섬과 가까운 대만의 지룽(基隆) 지역에는 유구인들의 집단 거주 지역도 있었다 한다.


(유구국과 대만의 관계)

http://m.blog.daum.net/shanghaicrab/16156449


유구국이 일본에 합병된 것은 1879년이고 이어서 16년  1895년에 대만이 일본에 합병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한반도가 일본에 합병됐다. 이렇게 일본에 흡수된 3국의 운명은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다른 길로 갈라지게 된다. 


한국은 비록 남북으로 분단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독립국이 되었다. 하지만 대만은 중국으로 주권이 넘어가게 됐고, 유구국은 미국이 한동안 통치하다 일본으로 반환해 일본의 패전에도 불구 여전히 일본의 영토로 남아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유구국 바로 옆에 있는 대만도 당시 중국이 2차 대전의 승전국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으로 반환되지 않고 유구국처럼 일본으로 그 주권이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랬다면 이제 유구국 주민 자연스럽게 일본인으로 불리듯이 대만인 일본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리덩후이 전총통이 그렇게 애착을 가졌던 '일본'국민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대만 인구는 2400만으로 호주 인구 2500만 차이가 없다. 그만큼 대만 인구가 많고 또 인구가 많은 만큼 너무도 다양한 대만인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도 일본을 지나치게 혐오하는 사람도 있지만,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 역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대만인이 일본에 대해 남다른 호감을 가지있다는 전술한 분석과 예로 든 경험들은 비록 타이베이에 거주하며 직접 체험했던 실제 경험들에 근거한 것이지만, 단편적이고 한시적인 그 경험이 2400만이나 되는 그 많은 대만인들의 다양한 생각을 단정적이고 포괄적으로 모두 대변을  수는 없다는 점도 감안되었으면 좋겠다.


10년 이상 한국에 거주한 외국인이라도 때로는 한국인의 사고와 문화에 대해 매우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거나 너무 획일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 언급된 나의 분석과 경험 역시 그런 오류에서 결코 완전히 자유스럽지는 못할 것이다.




블로그나 유튜브에도 대만인의 일본에 대한 각별한 호감을 설명하는 내용이 여러 건 있는데, 그중 일부 내용을 아래에 참고로 첨부한다.


첨부 자료 중의 마지막 동영상은 일본인이 대만인 할머님을 취재하면서 일본어로 제작을 한 것인데(영어 번역), 대만인 할머님께서 유창한 일본어로 하는 내용들 중에는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던 시절이 그립고, 일본의 대만 통치에 너무 감사하며, 자신은 아직도 스스로를 일본인으로 생각한다는 내용도 있어서 은 한국인에게는 꽤 충격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대만 사람이 일본 좋아하는 이유, 06:04)

https://youtu.be/hl7tJWAIVWA

(일본이 식민 통치해줘서 감사하는 대만인, 05:15)

https://youtu.be/SF276QLLQ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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