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거주하며 살다 보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만인의 특이한 특성을 하나 체험할 수 있었다. 바로 일본인에 대한 매우 각별한 호감이었다. 물론 대만인 전부가 그렇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만에 체류하면서 유독 그런 사람만 만났는지 몰라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정말 90% 이상은 그랬다.
하루는 법인 직원의 PC 안에 있는 자료를 급하게 찾아야만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 직원이 자리를 비워서 전화를 해서 비밀번호를 물었다. 그런데 답을 듣고는 잠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법인이 하는 일이 한국 본사의 전자제품을 대만에 수입해 판매하는 것인데 정말로 놀랍게도 우리 법인 직원 PC 비밀번호가 경쟁사인 일본의 전자회사 이름 'Sony'였던 것이었다.
나중에 그 직원이 돌아왔을 때 하도 궁금해서 왜 하필이면 비밀번호가 Sony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남자 친구 이름이 Sony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남자 친구는 어떻게 일본의 전자회사 이름을 자신의 영문 이름으로 정하게 됐냐고 다시 물었더니 Sony를 너무나 좋아해서 그 이름을 자신의 영문 이름으로 정했다고 했다.
대만에서 택시를 타면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일본인이냐는 질문이었다. 중국어 발음이 어눌하니 대만에 많이 거주하는 일본인으로 착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답을 하면 그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이어지는데, 왜 한국인은 일본을 싫어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일본 싫어한다고 말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저 한국인이라고만 답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질문을 한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일본을 싫어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질문하는 말투들을 잘 들어보면 일본처럼 훌륭하고 대단한 나라를 감히 한국이 뭐라고 싫어하느냐 뭐 이런 말투다. 대만인이 마치 일본을 대변해서 질문하는 것 같아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상점 같은 곳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발음이 좀 어눌하면 일본인으로 판단해 국적을 묻지도 않고 꽤 반가운 표정으로 바로 일본어로 말을 바꾸는 종업원이 적지 않았다 초기에는 일본인을 만난 것이 왜 그렇게 반가운지 의아했고 또 막무가내로 일본인 취급하는 것에 대해 때론 화 내기도 했지만, 대만인의 일본에 대한 그 깊은 호감을 알게 되고 난 이후에는 여전히 불쾌하기는 했어도 어쩔 수 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곤 했다.
거리를 거닐다, '일본인의 65%는 무세미(씻지 않고 바로 조리할 수 있는 쌀)를 먹는다'라는 광고가 붙은 버스를 보게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문구는 아무것도 없어 처음에는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의미의 광고였는지 언뜻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대만인이 그처럼 좋아하는 일본인들 대다수가 무세미를 먹고 있으니 그것이 옳은 선택이고 대만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그런 의미의 광고 문구였던 것이다.
사진) 일본인 65%는 무세미 먹는다는 광고 (2007. 6월)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주권을 빼앗기고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대만 역시 마찬가지로 일본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대만은 그 기간이 한국보다 훨씬 더 길어서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간 식민 지배를 받았다.
한편 한국의 주권 상실은 당시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이 스스로 한국을 대표하여 일본이 제시했던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대만 경우는 어느 대만인도 그런 조약에 서명한 적이 없다. 대만 주권은 당시 대만을 통치하던 청나라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에 청나라를 대표해서 리홍장이 일본이 제시했던 시모노세키 조약에 서명을 함으로써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즉 일본의 대만 지배와 관련된 모든 일은 대만에서가 아니라 대만 밖에서 청나라와 일본 간에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이처럼 한국의 경우와는 다르게 청나라는 일본과의 전쟁에 패한 대가로 대만은 정식으로 일본에 할양됐던것이다. 1차 대전 패전과 함께 독일이 패전 대가로 알자스-로렌 지역을 프랑스에 할양하는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을 했던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 조약에 의해서 알자스-로렌은 프랑스 영토가 됐고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프랑스 영토로 남아 있으며미래에도 그 주권이 독일로 다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편 청나라가 대만을 일본에 넘겼다는 소식을 들은 대만섬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만의 주민들은 이에 반발해 1895년 5월에 대만 독립을 선언하고 '타이완 민주국'이라는 국가를 수립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일본의 대만 상륙으로 이 국가는 4개월만인 그 해 9월에 멸망했다.
국가가 멸망한 이후에도 대만 주민들의 일본에 대한 저항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1915년 대만섬 남부의 타이난 타파니(Tapani)에서 발생한 무장봉기 사건을 마지막으로 이후 대만인의 일본에 대한 조직적 저항 활동은 실질적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한국이 일제 강점기 36년 내내 끊임없이 일본에 조직적으로 저항했던 것과는 좀 다른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비록 한때였지만 2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대만은 일본에 저항도 했었고, 또 일본의 식민 지배를 한국보다 더 오래 받았으니 일본에 대한 반감이 우리보다는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했다.
하지만 대만 법인 부임 후 법인 직원 등 대만 사람을 접촉해 보면서 깨달았던 현실은 전술했던 바와 같이 의외로 그러한 반감은커녕 오히려 대다수 대만인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너무나도 큰 호감을 갖고 있었다. 호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을 일본인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식민 지배 초창기 반일 저항 투쟁도 있었고 또 50년이라는 긴 시간을 식민 지배받았으니, 일본에 대해 비록 적대적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부정적일 수는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현상이 꽤이상하게만 느껴졌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만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니 왜 그런지 일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타이베이 거주하면서 체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이유를 추정해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여러 차례 반복된 외래인의 지배에 익숙해져 있음.
전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대만은 오래전부터 외래 세력들의 지배를 줄곧 받아 왔던 국가다. 네덜란드, 스페인, 정성공, 청나라 등등 일본 이전에 대만을 지배했던 정부는 하나같이 대만인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자치 정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된 정부였다. 즉 일본이라는 외세도이들과 별 차이가없는 어차피 여러 외세 중의하나였을 뿐으로, 외세의 대만 지배가거듭해서 반복되다 보니 외세의 지배 차제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무뎌져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외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면 좀 덜 괴롭히는 외세 정부의 지배를 받는 것이 좋은데, 그것이 바로 일본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간 한국에 많은 철도, 교량, 학교, 건물 등을 설립했다는 것을 일본의 한국 통치 정당성 근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이런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한 활동이 일본의 한반도 활용과 수탈, 즉 궁극적으로 일본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었지 결코 한국과 한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인은 그러한 일본의 주장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일본의 대만 통치가 시작된 후 대만에도 일본에 의해 수많은 시설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일본 이전 대만을 지배했었던 네덜란드, 스페인, 정성공 왕조, 청나라 등은 대만에서 그런 활동을 했던 실적이 거의 없었다. 결국 그러다 보니 일본 역시 대만을 지배했던 여러 외세 정부와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그 이전의 정부들과는 달리 대만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던 유일한 정부라는 해석이 대만에서는 성립되기도 했던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 일제 강점기 시절 중국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장기간 활동하기도 했지만 대만의 경우 해외에 그러한 임시 정부가 수립되어 활동했던 적도 애당초 없다. 그만큼 외래 정부의 지배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는 달랐던 것이었다.
둘째, 일본에 대한 나쁜 기억이 상대적으로 적었음.
대만과 일본의 역사는 나쁜 기억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그리 깊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서 한반도 전역이 일본에 의해 초토화되다시피 했고, 그 당시에 일본군인들은 조선인을 살해한 후에 귀와 코를 베어 자신들의 실적이라고 일본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그 조선인들의 귀무덤 코무덤이 오늘도 여전히 일본 교토에남아 있다. 교토의 그 무덤에는 무려 12만 6천 명이나 되는 한국인들 코와 귀가 묻혀 있다 한다. 잊으래야 결코 잊을 수 없는 쓰디쓴 역사다.
일본과 대만 사이에 있던 독립국이 일본에 흡수되면서 이젠 일본과 대만이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지만 과거에는 대만과 일본 사이에는 '류큐왕국(琉球王國)'이라는 독립적 국가가 존재했었다. 따라서 대만과 일본 간은 류큐를 중간에 두고 역사적으로 직접 접촉할 기회도 많지가 않았고 결과적으로 대만과 일본 간에는 한국과 일본이 빈번하게 겪었야만 했던 그런 역사도 별로 없었다. 삼국시대부터 수천 년 끊임없이 이어져온 일본 왜구의 한반도 노략질 같은 고통의 역사도 대만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의 역사서 기록에 의하면 일본의 인구가 백제가 멸망한 AD660년 직후 급속히 늘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한다. 물론 그 이유가 백제 인구의 대거 유입이라는 설명은 없다지만, 그 시절 자연적으로 갑자기 그렇게 인구가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외부에서 인구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즈음에 멸망한 국가가 바로 백제인바 백제인들이 멸망한 조국에서 탈출하여 그 당시 정치적으로 가까웠던 일본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일본으로 이주를 하게 된 백제인들은 이제는 일본인으로 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구석에는 당연히 자신들의 조국을 무너뜨린 신라라는 한반도 국가에 대해 뼈저린 반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러한 뼛속 깊은 반감이 일본인의 한반도에 대한 감정의 일부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왜구 활동이나 임진왜란과 같은 사건에도일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으로부터 이처럼 오랜 기간 침략을 받게 되니 당연히 일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것이 식민 통치 기간 일본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반발로 연결되어서 의열단이나 한인애국단 같은 암살 조직 결성과 활동으로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끈질긴 저항에 일본은 또다시 한층 더 잔혹한 통치로 답을 하는 악순환을 불러왔던 것이다.
하지만 대만과 일본 간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수천 년간 대대로 이어진 이러한 깊은 감정의 골이 없었다. 그 결과로 그만큼 상호관계도 덜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