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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Aug 12. 2020

대만의 길고 긴 구정 연휴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04)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4. 대만 길고 긴 구정 연휴


대만법인 발령을 받고서 2007년 1월 말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하고 나서 아직 채 한 달도 안된 시점 아직 집도 구하지 못해서 호텔에 체류하던 시기대만에서 구정 연휴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만도 구정을 중요시해 중국에서처럼 구정 연휴 기간이 매우 었다. 하지만 내가 막 부임했던 2007년 경우에예년보다도 훨씬 더 긴 구정 연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 2007년 대만 연간 휴일이 표시된 달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해 공식적 구정 휴일은 2월 17일부터 22일까지 6일간이었다, 2006년이나 2008년과도 동일한 6일이었던 이다. 그런데 2007년은 25일과 28일 역시 휴일이어서 중간에 있는 23, 24 등을 휴가로 처리하면 9일, 게다가 26, 27까지 휴가를 내면 무려 12일간 연휴를 즐길 수 있었다. 실제 그해 9일 휴가는 기본이었고, 12일간의 구정 휴가를 채택하는 기관이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2007년 대만 연간 휴일)

https://www.timeanddate.com/holidays/taiwan/2007




사실 나 같은 월급쟁이에게 연휴긴 것은 당연히 싫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해는 조금 달랐는데, 대만에 부임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는 사람 또한 전혀 없던 그런 시점에 그리 긴 휴가를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집도 구하지 못해 호텔 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였는데, 설상가상 휴일이 워낙 길다 보니 타이베이 시민들 대부분이 고향으로 가거나 해외여행을 떠나버려 거리의 상점들이나 시설들까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사진) 2007년 2월 대만 구정 연휴기간 타이베이 시내 거리 모습. 상점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만이 적힌 쪽지가 붙어 있고 셔터는 내려져 있었으며 거리에는 사람은 물론 차도 거의 보이지 않아 텅 빈 유령도시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좀 더 알고 보니 대만인들만 타이베이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 연휴기간 가끔 만나 술이라도 한잔 같이 할 것을 나름 기대했었던 주재원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 장기간의 연휴기간에 대한 계획이 잡혀있어 모두 가족 동반으로 해외 여행을 갔거나 아니면 한국으로 떠나버렸다. 결국엔 그나마 좀 알고 있던 한국인들마저도 타이베이를 떠나버렸고 텅 빈 타이베이에는 나만 덜렁 혼자 남아있 셈이었다.




당시에는 Agora Garden이라는 시내 중심에 있는 호텔에 체류하고 있었다. 원래 Westin 호텔에 숙박했는데, 휴일에 출출하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싶어서 간단한 주방이 있는 Agora 호텔로 옮겼다. 이 호텔은 방과 거실이 구분되어 있어서 방 하나만 덜렁 있었던 Westin 호텔보다는 조금 덜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이베이가 워낙에 습한 도시인데 방안의 습기 제거가 잘 되지 않아 Westin 호텔보다는 습기 냄새가  심했다.


그런데 묘한 우연의 일치인지, 타이베이로 부임받아 아파트 입주하기 전 체류했었호텔 모두 이제는 사라졌다. Westin 호텔누적된 적자가 너무도 커서 2018 연말부로 영업을 중단했다 하고, Agora Garden은 그 이전에 완전히 헐리고 대신 그 자리에는 나선형의 특이한 구조로 된 고급 아파트가 2017년 들어섰다 한다.


추억과 향수가 남아있는 두 호텔 모두가 사라졌다 하니 좀 허전하기도 한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의 모습도 변해가고 또 때로는 사라져 가기도 하듯이 도시도 세월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Westin Hotel 영업 종료)

https://www.taipeitimes.com/News/front/archives/2018/04/12/2003691150

(Agora Garden, Hotel로 운영되던 시절 모습)

1. https://blog.naver.com/miranari/60098288963

2. https://blog.naver.com/iruka900/110089199109

(Agora Garden 재건축)

https://www.neoearly.net/2466206




마침내 9일이라는 기나긴 연휴는 시작이 됐다.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없는 데다가 미혼으로 가족까지 없으니 그 9일간 꼼짝없이 텅 빈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것 같은 타이베이에서 혼자 지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9일간 혼자 지낼 생각을 하니 마치 베이징에서 타이베이로 유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처음 하루 이틀 정도는 호텔 방에서 말 그대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버텨봤다. 조식이야 호텔에서 해결을  수 있었고 점심과 저녁은 호텔이나 아니면 근처에  문을 연 식당을 찾으면 그곳에서 해결했다. 미리 사놓은 라면이 꽤 있으니 김치에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3일이 넘어가정말로 답답했다.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한국으로 귀국해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2주간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호텔 방에서 혼자 격리 생활하던  너무 답답해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다고 했는데 아마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벽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고까지 말했던 것도 이해가 다.


그러던 차에, 차라리 이번 기회에 타이베이 시내를 한번 다 돌아다니면서 지리라도 익혀 놓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 무턱대고 거리를 헤맬 수는 없었고 법인 사무실을 일단 목적지로 삼아 그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길 도중에 있는 주변 거리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2007년도 당시는 요즘처럼 구글 같은 핸드폰 지도가 흔하게 사용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종이로 된 지도를 하나 구해서 회사까지의 길을 찾아갔다.


지금 구글 지도로 보면 호텔에서부터 회사까지의 거리 약 5.6km 걸어서 1시간 12분 걸리는 거리로 나온다. 하지만 당시 종이 지도를 보고 회사를 찾아갈 때는 종이 지도가 길을 제시하거나 안내해 주는 것도 아니니 길을 잘 몰라 몇 번씩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가 돌아가기도 해야 했었다. 결국 그렇게 법인에 가는 길을 여러 번 헤맨 끝에야 마침내 도착하곤 했는데 보통 2시간 반 정도 매번 걸렸던 것 같다. 중간에 길을 헤매느라 원래 최단 거리보다 2배 정도 더 걸려 도착했던 셈이다.


(구글 지도가 제시하는 호텔에서 회사까지 최적의 길)

https://goo.gl/maps/QqGPgAGZ33sYQrFP6




그렇지만 그렇게 거리를 헤매며 걸어 다녔던 덕분에 앞으로 한동안은 거주하며 근무해야 할 타이베이라는 도시 시내와 거리의 다양하고 많은 모습들을 가까이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가질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목격한 타이베이의 모습은 중국 문화남방 섬 문화 그리고 50일본 지배기간 유입된 것 같은 일본 문화까지 묘하게 뒤섞여 있는 그러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 한 가지 너무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타이베이는 중국 본토의 여느 도시와도 너무나도 확연하게 구분되는 매우 다른 느낌의 도시였다는 것이다.


거리의 한자도 중국과 다르게 한국에서처럼 예전의 한자가 사용되고 있었다. 또 지진이 많아서 그런지 101층 건물을 제외하면 베이징이나 광저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초고층 건물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대다수 시내 건물들 외관이  오래돼 보이고 그다지 잘 관리되고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사당이나 신사 같은 것들도 시내 거리 한복판에서 볼 수 있었다. 타이베이를 관통하는 '지룽(基隆) 강'도 이때 처음으로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또 이런 외형적인 모습 이외에, 도시의 정서적인 분위기도 중국 본토와는 너무도 달라서, 차라리 일본에 좀 더 가까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진) 2007년 2월 호텔에서 법인까지 2시간 30분 정도를 걸어가면서 찍은 주변 거리 모습. 지룽 강, 지룽 강 위 교량, 폐가, 텅 빈 도시의 모습 등이 보인다.


한편 걷다 보니  연휴기간 시내에 사람들너무 없어서 그런지  빈 거리가 왠지 음산하고 무섭다는 느낌까지 적지 않게 들었다. 특히 이한 모습의 인물상과 그림들이  가득한 오래된 사당이 있는 거리 주변에서는 더 그랬다. 위 사진에도 보이지만 오랜 기간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폐가 같은 것도 걷다 보면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게다가 축축한 겨울비가 부슬부슬 떨어지는 흐릿한 날씨가 계속돼 더욱 쌀쌀하고 음산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실 대만뿐 아니라 홍콩도 마찬가지인데 중국 남부 지방은 유독 사당 같은 것이 많고 우리가 '미신'이라고 부르는 그런 행위대한 믿음이 매우 뿌리 깊은 곳이었다. 의외겠지만 초현대식 건물이 가득한 첨단 도시 홍콩의 거의 모든 고층 빌딩은 사실 풍수지리를 반영해서 건축된 것들이었다. 그럴 정도로까지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것이었다.


(대만의 민속 신앙)

1. https://blog.naver.com/airkorea9/220803814525

2. https://blog.naver.com/hangukbnc/221304542452


(홍콩의 풍수지리 및 민속 신앙)

1. http://blog.daum.net/yacho2011/2847

2. https://blog.naver.com/hktb1/222015247453


우리 법인도 입주해 있었지만,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만의 컴퓨터 회사, 방송사, 휴대폰 업체 등이 즐비하게 입주하고 있던 타이베이 '네후과학원구(內湖科學園區)'라고 불리는 지역도 '과학'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지명이 무색할 정도로 그 지역 중심에는 다양한 신이 모셔져 있는 사당이 들어서 있었다.


(타이베이 네후과학원구 안에 있는 사당 거리뷰)

https://goo.gl/maps/A3sxAJ4A6ZB4VoGi6


그렇게 민속 신앙과, 사당과, 귀신 얘기가 가득한 곳이 바로 대만 타이베이였으니 그런 도시의 인적 없는 텅 빈 거리를 지나칠 때는 그렇게 좀 무섭기도 했던 것이다.




구정 연휴 기타이베이 거리들그렇게 열심히 1주 이상 걸어 다녔던 것은 타이베이 근무기간 중에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물론 타이베이에서도 베이징, 광저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법인까지의 약 3km 정도  거리는 매일 걸어서 출근했다. 하지만 집과 법인이 모두 타이베이 북부에 있어 이번 연휴 때처럼 시내 중심을 걸어 다닐 일은 이후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느꼈던 한 가지 특이한 은 대만 역시 음기가 꽤 강한 땅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것이었.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국 땅이나 캐나다 땅, 프랑스 땅에서 느끼던 느낌과는 뭔가 달랐는데 바로 그것이 음기와 양기의 강도 차이에서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음기가 강한 것으로 익히 알려진 홍콩에서는 실제 그런 느낌을 좀 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홍콩 특정 지역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 특이한 기운유난히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타이베이에 도착하자마자 맞이한 9일간의 기나긴 연휴는 그렇게 시내를 반복해서 걸어 다니는 것으로 소비했다.


그런데 좀 허망하게만 느껴졌던 그 시간 또한 지나고 보니 나름 귀한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 해 겨울에 그렇게 많은 호기심과 그렇게 많은 궁금증을 갖고 타이베이 도심을 바지런히 돌아다녔던 것과 같은 일은 이제 남은 인생에서는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을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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