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의 스위트홈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03)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3. 타이베이의 스위트홈


해외 주재 근무할 때, 저녁에 술 한잔하고 귀가할 때면 간혹 아파트 엘리베이터 층수 버튼을 틀리게 누르곤 하는 경우가 있었다. 파리, 토론토, 베이징, 광저우, 홍콩, 타이베이 등등 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거주할 때마다 번번이 다른 층의 아파트에 살다 보니 술김에 층이 헷갈리곤 했기 때문이다.


베이징 근무 중에 대만 법인으로의 전배 발령을 받아 대만 타이베이로 왔다. 또다시 거주할 아파트를 구해야만 했는데 수소문해보니 당시 대만법인 주재원들은 '티엔무'란 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었다. 티엔무에 국제학교가 있는데 주재원 자녀가 대부분 이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혼으로 자녀 학교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 한국인이 별로 없는 회사 근처에 있는 아파트를 물색했다. 그리고 몇 군데 알아보다가 최종적으로 네이후(Neihu, 內湖)지역에 있는 '롱야오스지(榮耀世紀)'라는 아파트를 선택했다.


(타이베이에서 거주했던 아파트 거리뷰)

https://goo.gl/maps/sfKBxdUXXqP7chEh9


사진) 아파트 정원. 매우 아름다운 공간으로, 아름다운 섬에 사는 대만인의 섬세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은 곳이었다. (2007. 6월)


이 아파트는 매우 쾌적하고 아름답기도 했지만, 완공된지도 당시 채 2년밖에 안 되는 신축 건물이라서 매우 깔끔했다. 회사의 주재원 주택 수당은 매월 지급되는 방식이라 월세로 이 아파트에 거주했는데, 당시 월세 금액은 이제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내가 거주하기에는 과분하리 만큼 좋은 고급 아파트였다.


참고로 타이베이의 아파트 가격을 서울 및 이후에 주재했던 홍콩의 가격과 비교해 보면, 홍콩의 가격이 서울 평균 2배 이상 될 정도로 비쌌던 것 같고, 타이베이의 아파트 가격은 서울보다는 다소 저렴했던 것 같다. 물론 2007년 기준이고 요즘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파트에 입주해 보니 뭐라 꼭 집어서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방이나 화장실 구조 등이 뭔가 일본 주택 구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한국보다 더 오랜 기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영향도 있겠지만, 식민 지배를 받았음에도 일본에 대해 호의적인 대만인들이 많아 2000년대에 지어진 주택에도 그런 감정이 반영되었던 것 아닌가 싶었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호감이 매우 많아 그런지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도 꽤 많았다. 최근 2020년 기준 자료를 봐도 대만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4천7백 명 수준인데 반해, 일본인은 한국인의 3배가 넘는 약 1만 5천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총인구가 일본의 3배가량 되는 미국인의 대만 거주 인구가 약 1만 3백 명이니 그보다도 5천 명이나 더 많은 수치다.


일본인이 그렇게 많고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거리 또는 상점에서 엉뚱한 봉변을 당하기도 하는데, 동아시아인 모습을 하고 중국어가 어눌하면 일본인으로 오해를 받아서 갑자기 일본어로 말을 바꾸는 대만인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 옆 집의 50대쯤 되어 보이는 대만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 인사를 교환했더니 내 어눌한 중국어 발음을 듣고 바로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차라리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으면 좀 덜 섭섭할 것도 같은데, 일본인이냐고 질문을 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타이베이에 거주하면서 이미 그런 경우를 하도 자주 당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달관이 되어 있었다. 한국인이라고 답을 했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중국어 참 잘한다고 말은 하는데 그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대만에서 일본 좋아한다는 사람은 넘쳐나도 한국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그다지 흔치 않다.




아파트에서 나와 약 10m쯤만 걸어가면 규모가 적지 않은 마트도 하나 있었다. 마트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 보니 장보기도 매우 편리했다.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2년 동안은 사시사철 이 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타이베이 경우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으면서도 한국인 입맛에 맞는 즉석요리나 냉동식품이 많아 독신자가 생활하기에는 베이징에서보다 더 편했다. 또 무엇보다 먹거리의 안전성이 높아서 가짜나 불량식품이 흔한 중국에서 겪어야만 했던 불안감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매일 장 보던 마트 거리뷰)

https://goo.gl/maps/D4tqTuJBpmsCEBUa9

※ 마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상호명은 바뀌어 있다.


(대만의 마트 내부 모습)

http://www.pxmart.com.tw/px/pxhtml__adventage.px


2년간 타이베이에 머물면서 이 마트에서 가장 많이 구매한 것은 아마 냉동 새우볶음밥일 것이다. 매일 아침 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간단히 데워서 김치와 함께 먹고는 출근하곤 했었다. 조리하는데 5분도 안 걸렸던 이 아침 식사는 맛도 정말 좋았는데, 타이베이 거주 시절을 회상하며 언제 한번 인터넷 구매라도 해서 먹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표명이 기억나질 않는다.


사진) 아파트 부엌. 마트에서 사 온 냉동 새우볶음밥을 매일 아침 이 공간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고는 했었다. 물론 휴일에는 가끔 김치찌개처럼 손이 좀 가는 한국 음식도 이 공간에서 만들어 먹기도 했다. (2007. 11월)




좀 특이하지만 그 마트 안에는 세탁소도 있었다. 그 덕분에 별도로 세탁소를 찾아갈 필요 없이 장 보러 갈 때 세탁물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보니 세탁소가 없어졌고 이전했다는 곳의 약도가 붙어 있었다. 찾아보니 이전한 곳도 멀지 않은 곳이라 이후에도 단골로 다니던 그 세탁소를 2년 내내 계속 이용했다.


이 세탁소와 관련된 재미있는 기억도 있는데 세탁소에 가서 보니 서울에서는 한 겨울 영하의 날씨에나 입을 법한 매우 두터운 롱코트가 걸려 있었다. 그걸 보고 세탁소 사장님께 아니 한 겨울에도 기온이 10도 이상인 곳이 타이베이인데 왜 이렇게 두터운 코트가 있냐고 물었더니, 사장님은 겨울 기온이 그 정도면 추운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한국 사람들은 타이베이처럼 한겨울에도 영상 10도가 넘는 날씨에서는 이렇게 두터운 옷 절대 안 입는다고 자신 있게 말을 했다.


하지만 딱 1년 정도만 지나고 나니 그 사장님의 말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었다. 인간의 몸이 새로운 환경에 자동적으로 적응하게 되어 있어 그런지, 그 사이에 내 몸도 타이베이의 더운 기후에 적응해 버려 타이베이의 무더운 한 여름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게 된 반면, 한겨울에는 기온이 영상 10도까지만 떨어져도 꽤 춥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타이베이 사람들이 그런 두터운 외투를 입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그런데 홍콩, 대만 포함 모두 약 7년 정도를 그런 아열대성 기후가 있는 지역에 거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니 너무도 장기간 그런 기후에 적응해 버린 탓인지, 귀국한 지 올해가 이미 6년째임에도 여전히 한국의 여름은 견딜만한 반면에 겨울은 전보다는 훨씬 더 춥게 느껴졌다.




사진) 거실 모습. 밖에 공원, 산이 보인다. (2007. 6월)


아열대 지방인 타이베이의 거의 모든 아파트에는 에어컨이 당연히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거주하던 아파트는 꽤 무더운 날에도 집에만 들어오면 아직 에어컨을 가동하지도 않았음에도 매우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 건축 기법에 어떠한 특별한 비법이 숨겨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는데, 위 아파트 거실 사진을 보니 당시 집에 들어오자마자 느꼈던 그런 서늘한 기분을 지금도 다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진 속 창밖에 보이는 산 방향으로 더 가면 온천이 많기로 유명한 양밍산(陽明山)이 있다. 그런데 양밍산 방향에 있는 저 산을 보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너무 무서운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바로 지진, 그것도 진도 6 이상이나 되는 강진에 대한 기억이다.


대만은 거의 전 국토가 불의 고리(Ring of Fire)라 불리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화산대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진도 6이 넘는 강진은 대만에서조차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대만에 부임한 지 9달 정도가 되는 2007년 9월에 진도 6.2의 강한 지진이 대만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2007년 9월 대만 지진 관련 내용)

1. https://www.voakorea.com/archive/35-2007-09-06-voa31-91290989

2. https://earthquake.usgs.gov/earthquakes/eventpage/usp000fmjx/executive


어느 날 한밤 중에 요란한 소리가 들리면서 뭔가 흔들리는 것 같아 잠결에 화급히 거실로 나와 보니 집안의 집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더욱 놀랐던 것은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멀리 보이는 산들이 시계추가 좌우로 움직이듯이 서서히 좌우로 움직이는 있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는데, 정신이 좀 들면서 생각을 해 보니 지진이었다. 그리고 흔들리던 것은 창밖의 산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아파트였던 것이다. 진도 6이 넘는 강진에 아파트가 흔들리고 있었는데 흔들리는 그 아파트 안에 있던 나는 반대로 눈에 보이는 산이 흔들리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처음 겪는 지진이 정말 공포 그 자체였는데 어찌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중에 다행히 그다지 오래지 않아서 건물은 더 이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지진으로 인해서 아파트가 흔들렸던 시간은 불과 5분도 안됐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에 질려있었던 내게는 그 5분은 정말 5시간처럼 너무 길게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흔들림이 진정된 후에 집안을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물건이 떨어진 것들은 꽤 많이 있었지만 문짝이 찌그러지거나 벽에 금이 가거나 한 곳은 전혀 없었다.


사실 대만에서는 지진이 워낙에 흔하고 심하다 보니 웬만한 아파트나 고층건물에는 이미 철저한 내진설계가 반영되어 있었다. 따라서 진도 6의 강진에는 건물이 손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한때는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던 타이베이 101층 건물도 역시 이처럼 빈번한 대만의 지진에 대비해서 건물 내부에 거대한 쇠로 만든 공이 설치되어 있는 등 특수 내진 설계가 반영되어 있다.


(101층 빌딩 내부 강철 공)

http://www.snm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2910


내가 근무했던 대만 법인이 있던 'Liberty Times Square' 건물이나, 지금은 폐쇄됐지만 타이베이의 'Westin 호텔'과 같이 내부가 1층에서부터 천장까지 뻥 뚫린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 건물들이 대만에 많은 것도 바로 이러한 구조가 지진에 강해 내진 설계 목적으로 건축됐기 때문이라 한다.


(사진) 타이베이 Liberty Times Square 건물 내부 모습. 위층이 다 보일 정도로 내부는 뚫린 공간이다.


(Westin Hotel 건물 내부 모습)

https://pointsinasia.com/2018/07/11/review-the-westin-taipei-closing-end-of-2018/


실제로 아침에 출근길에 나와서 보니 진도 6이 넘는 강진이 발생했음에도 내가 거주하던 아파트는 한 곳도 문제가 있는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고 공사를 하거나 수리를 하는 모습도 전혀 없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밤에 그렇게 큰 지진이 있었음에도 평상시와 다른 점들은 그다지 느낄 수가 없었다. 법인에 도착해 직원들과 대화를 해 봐도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지난밤의 큰 지진은 별다른 화젯거리가 되지도 못했고 뭐 강진이 있었다 그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겪어보는 지진이었는데, 그것도 진도 6이 넘는 지진이었으니 정말 너무나도 놀랐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나처럼 평생 단 한 번도 그러한 강진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만에 진도 5 정도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마침 한국 본사에서 온 출장자가 Westin 호텔에 숙박하고 있었는데, 한밤중 지진에 놀라 잠자던 상태 그대로 거의 반나 상태로 호텔 밖으로 뛰쳐나온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사진)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나지막한 야산으로 이루어진 칭빠이(淸白) 공원인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찍은 모습이다. 숲이 우거진 이 공원 덕분인지 아침에 창문을 열면 너무도 상쾌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2007. 4월)


서울에서는 거리에서 길고양이는 자주 볼 수가 있지만 야생 개를 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2007~8년 당시 타이베이에서는 다소 외곽에 있는 거리에서는 특이하게도 야생 개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몇 마리씩 떼 지어 다니는 야생 개들을....


그런 개들을 보면 무섭기도 했는데, 한국인인 나뿐 아니라 법인의 대만인 직원 중에도 그런 개들이 무섭다는 직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어떠한 조치도 취해진 것들이 없었는지 거리의 야생 개들 숫자는 내가 타이베이에 거주하던 2년간 전혀 줄지 않았다. 또 그런 개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얘기도 들어 보지 못했다.


야생 개는 아니지만 어쨌든 개 때문에 집 앞에 있는 칭빠이 공원에서 산책을 멈추고 집에 돌아와야 했던 적도 있었다. 칭빠이 공원 정상에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정자에 가 보려고 올라갔다가 이미 그곳에 있던 대형견 두 마리가 나를 보고 너무도 크게 짖어 무서워서 되돌아온 것이었다. 개 주인은 웃으면서 괜찮다고만 했는데 입마개도 하지 않은 데다가 목줄까지 잡지 않고 있으니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빈번히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사람들이 개에게 물리는 사건이 결코 드물지 않다. 그런데 그런 개를 기르는 사람들 대부분은 언제나 "이 아이는 안 물어요"라고 말하고 다닌다. 정자에서 만난 그 개들도 안타깝지만 주인 눈에는 그렇게 "안 무는 아이들"로만 보였을 것이다.




달팽이나 도마뱀 같은 동물은 공기가 맑은 청정지역에서만 살고 공기가 나빠지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처럼 공기오염이 매우 심한 서울에서는 달팽이를 좀처럼 볼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서울의 집 근처에서는 달팽이는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물론 도마뱀은 서울에서는 예전에도 쉽게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타이베이의 아파트에서는 달팽이를 너무도 자주 볼 수 있었고 집안에서 도마뱀까지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타이베이라는 도시 자체가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또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이니 공기가 서울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좋았을 것이고, 또 내가 거주하던 아파트 경우 바로 앞에 나무가 울창한 작지 않은 규모의 공원까지 있었으니 청정지역에만 산다는 달팽이나 도마뱀을 그렇게 쉽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진) 아파트 근처에서 찍은 달팽이. 한국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큰 달팽이였다. (2008. 6월)


달팽이나 도마뱀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새들도 집 근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야 비둘기, 참새, 까치 등이 주로 보게 되는 새들이었지만, 타이베이 아파트 근처에서는 보다 다양한 새를 볼 수 있었다. 아열대 지역이라 서식하는 새들의 종류가 다른 것도 이유였겠지만 역시 녹지가 울창한 공원이 아파트 바로 앞에 있으니 그 영향도 있었을 같다.


사진) 아파트 방에서 창밖을 찍은 사진. 자세히 보면 사진의 중앙에 새 한 마리가 창틀에 있는 것이 보인다. 머리의 흰색 깃털로 봐서 참새는 아닌 것 같다. (2007. 5월)


사진) 2008년 9월 28일 (일요일) 촬영한 집 앞의 칭빠이 공원인데 폭우가 쏟아질 때 모습이다. 야산 상층부 토사가 아래로 떠내려 가는 모습도 보인다.




아파트 근처에는 학교도 유난히 많았다. 아파트 바로 앞에 '캉닝(康寧)'이라는 초등학교가 있었고, 그 외에도 1km도 안 되는 거리에 고등학교가 2개 중학교가 1개가 더 있었다. 대만에서도 매일 걸어서 출근을 했는데 아침에 출근할 때는 집 근처에 있던 이 4개나 되는 학교 학생들과 함께 뒤섞여서 출근하곤 했었다.


뒤섞여 같이 걷는 길이었지만 물론 그들과 내가 걷는 길의 이름은 달랐다. 내가 걷는 길은 출근길이었던 반면 그들이 걷는 길은 등굣길이었다. 출근과 등교는 너무도 다른 단어 같은 어감인데, 그들과 같이 걷다 보니 희미한 기억이지만 내게도 한때는 '등굣길'을 걷던 어리고 또 꿈이 많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사진) 아파트 바로 앞에 있던 캉닝(康寧) 초등학교 운동장. 중앙의 아파트가 내가 거주하던 아파트다. (2008. 10월)


집 앞의 캉닝 초등학교 운동장은 방과 후에는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는데, 해가 기울어 날이 선선해지는 저녁 시간에는 사진 속에서 보는 것처럼 동네 주민들이 운동장으로 나와서 산책하거나 운동하곤 했었다. 나도 가끔 이 공간에서 그런 대만인들 속에 뒤섞여서 함께 운동도 하곤 했는데 대만이나 한국이나 모두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이 학교의 교정이나 구조 및 건물이 한국 초등학교 모습과 너무도 흡사해 마치 한국의 초등학교 교정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때 "집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 거주할 때는 내가 거주하는 집이라는 공간에 유난히 더 애착이 갔던 것 같다. 아마도 집 밖 세상의 문화와 언어는 그간 내가 오래 살아온 한국과는 너무 달라 그렇게 집에 대한 애착이 유독 더 강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해외의 도시에 거주할 때도 그랬었지만 타이베이에서도 집이 보이기 시작하고 또 집 근처에만 와도 이미 안전하고 푸근한 Sanctuary, Cocoon에 들어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타이베이에서 거주했던 아파트 몇 층에 살았는지는 이제는 기억이 흐릿하다. 하지만 타이베이에서의 내 집도 멀고 먼 이역만리 '객지'라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있는 오직 나만의 보금자리, 스위트 홈이었다는 기억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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