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 (2-1)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01)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국가가 성립되려면 국민, 영토, 주권, 정부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대만에도 4 가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대만은 국제사회로부터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중국이 경제, 군사적으로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함과 동시에 대만은 중국 영토 일부분일 뿐이라는 중국의 일방적 주장에 어쩔 수 없이 동조할 수밖에 없는 국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만은 국가가 아니니 UN은 물론 어떤 국제기구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하지만 대만이 자체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의해 외부의 간섭 없이 스스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저 붉은 건물이 바로 그러한 대만의 자치적 통치를 상징하는 타이베이의 총통부 건물이다. 대만의 총통은 한국 대통령과 유사한 기관이다. (2007년 12월 사진).


사진 위쪽에는 중국이 공산화되기 이전 장개석의 국민당이 중국 대륙을 통치할 때 중국을 대표하기도 했던 붉고 파란 과거 중국의 국기 '청천백일기'도 일부가 보인다. 과거에는 중국 전역에서 휘날리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국기였지만 이제는 작은 대만섬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국기로 전락되어 버렸다. 아니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니 대만 이외의 다른 국가에서는 공식적으로 '국기'라고 부르지도 못한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대만 외교부 건물이다. 대만은 과거 한 때 전 세계 자유진영 국가 거의 모두와 국교를 맺고 있었고,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과 함께 국제연합(UN) 상임이사국 지위에 있었을 만큼 막강한 위치에 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이 대만 외교부 건물 위상도 요즘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대만의 그러한 화려한 국제적 위상은 이제 모두 과거의 흘러간 추억이 되어버렸다.


대만에는 아픔이 많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 또한 국제관계 측면에서는 결코 밝지만은 않다. 그런 대만에 부임해서 2년간 체류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글로 옮긴다.


사진) 대만의 국기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 모습. 서울의 명동에 있는 중국 대사관에도 과거에는 이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의 오성홍기가 휘날리고 있으며 청전백일기는 이제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가 드문 국기가 되어버렸다.



1. 대만,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 (2-1)


베이징에 근무하던 중 대만법인 발령을 받아 2007년 1월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중국 본토와 대만 간 직항 노선이 없었기 때문에, 대만에 부임할 때는 우선 홍콩으로 가서 그곳에서 타이베이행 비행기를 갈아타고는 대만으로 향했다. 한편 당시 나는 타이베이는 물론 대만 어느 곳에도 단 한 번도 방문했던 경험이 없어서 대만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실정이었다.


2007년 부임 당시 대만에 대해 기억하고 있던 것은 어릴 적 70년대 중반인가 아버님께서 동남아로 출장을 다녀오실 때 대만에서 사 오신 꽤 얇은 유리섬유로 된 장식품용 전등에 대한 기억뿐이었다. 전원을 연결하면 유리섬유 한쪽 끝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나와 밤에는 매우 아름답게 보이는 일종의 실내 장식품이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제품이라서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2003년부터는 줄곧 한국 인당 GDP가 대만을 앞서고 있고, 이제는 국가의 경제규모도 한국이 대만보다는 크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의 경제규모나 인당 GDP는 한국 대비 우위에 있었다. 산업화도 대만은 50년대부터 시작이 되어서 7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시작되었던 한국보다 훨씬 빨랐다. 따라서 70년대 아버님께서 사 오신 그런 신기한 대만의 전등은 당시 한국에서는 전혀 생산되지 않던 그런 선진 제품이었던 것이다.


한편 인당 명목 GDP는 전술한 바대로 이미 한국이 대만을 추월해 한국이 3만 불, 대만이 2만 5천 불 수준이지만 양국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 평가 기준 GDP에서는 대만이 16위 $55,724, 한국은 27위 $44,621로 꽤 큰 차이로 여전히 대만이 한국을 앞서고 있다. 구매력 기준의 GDP는 대만이 최고 선진국 독일($54,076), 호주($51,680)보다도 높은 수준인 것이다.


(국별 인당 GDP, 구매력 평가 기준)

https://m.statisticstimes.com/economy/countries-by-gdp-capita-ppp.php


또 좀 의외의 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대만의 외환 보유고 역시 전 세계 6위로, 9위인 한국보다 더 많다. 비록 국가로 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지만 그만큼 대만의 경제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다.


(국가별 외화보유고)

https://blog.naver.com/zyung7910/221533205181




대만 법인 직원 중에서 미국에 유학 다녀온 Austin이라는 직원이 있었다 (대만 직장에서 직원들은 주로 영문 이름을 사용했다). 그 직원이 미국에 유학하던 시절 미국 친구에게 Taiwan(대만)에서 왔다고 하면 Taiwan이 국가인지조차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한다. 혹 국가로 이해하는 경우도 'Taiwan'을 'Thailand'로 착각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 년간 거주하며 장사를 해야 할 대만에 대해 사실 아는 것이 너무도 없어서, 대만 관련된 책을 찾던 중 주변 소개로 '대만,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란 역사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대만 최고 명문이라는 대만 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 주완요(周婉窈)라는 분이 저술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런데 책의 제목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은 대략 이해되는 것 같았지만, 굳이 '슬픈 역사'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가 뭔지 좀 궁금했다.


그런데 대만의 원서를 검색해 보니, 원서는 그저 '대만 역사 도설(台灣歷史圖說)'이라고만 되어 있었지, '슬픈 역사' 뭐 이런 문구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아마도 한글로 번역할 때 번역하는 출판사에서 그 문구를 추가한 것 같은데, 나도 그랬지만 사실 그 추가된 문구 덕분에 소설책 같은 느낌도 들고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더 이 책에 끌리게 되었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추가된 문구는 마케팅 측면에서는 꽤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 원서 사진)

https://share.readmoo.com/book/547092


하지만 대만에 거주하면서 대만과 대만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보니, 출판사에서 추가한 이 문구는 결코 그저 책을 더 팔기 위한 마케팅용만은 아니고, 실제 대만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대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만 만들어 낼 수 있는 문구란 생각이 점점 짙게 들었다. 대만을 알면 알수록 정말 대만의 역사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바로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대만의 역사를 왜 슬픈 역사라고 표현했을까? 대만의 역사에는 그만큼 실제 아픔이 많았고, 또 현재도 그 아픔이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때문일 것 같았다. 아울러 또 안타깝지만 미래에도 그런 슬픔이 사라질 수가 있을지 역시 너무도 불투명하다.




대만의 첫 번째 슬픔)

대만의 역사는 과연 누구의 역사인가?


대만인은 본성인(本省人), 외성인(外省人), 원주민(原住民)등 3개 그룹으로 스스로를 구분한다. 약 2,400만 되는 대만의 인구 중 이들이 점유하는 비중은 각각 85%, 13%, 2% 순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지역 또는 민족에 따른 구분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사람들이 대만에 유입된 시기를 기준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통상 지역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류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대만에 가장 오래전부터 거주했던 사람들은 원주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로 대만 인구의 2%를 점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재 대만 인구의 98%를 차지하는 한족이 아니라, 태평양의 섬 또는 필리핀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민족이다. 언어도 당연히 중국어와는 완전하게 다른 오스트로네시안(Austronesian) 계통 언어를 사용하는데, 현재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지나 그리고 저 멀리 칠레 앞바다의 이스터섬 등 수많은 태평양 지역 섬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같은 계통의 언어라 한다.


그다음으로 대만 거주가 오래된 사람들은 17세기에 중국의 명청(明淸) 왕조 교체기 자신들이 거주하던 중국 푸젠성을 떠나서 대만으로 대거 몰려온 한족들로 이들이 대만 인구의 85%를 점하는 본성인이다. 이들의 언어는 고향 푸젠성의 언어인 민난어(閩南語)로 장개석이 대만에 들어와 강제로 표준어를 사용하게끔 하기 전까지 대만에서 널리 통용되던 언어였다.


이후 마지막으로 대만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인구의 13%를 점유하는 외성인들이다. 이들은 중국 본토에서 모택동과의 전쟁에서 패해 대만으로 도피한 장개석과 그의 군민당 군인 및 가족 약 120만 명과 그 후손을 말한다. 이들은 비록 먼저 대만에 들어온 본성인과 같은 중국인이고 같은 한족이지만 사용하는 언어가 중국 표준어로 본성인들이 그간 대만에서 사용해왔던 민난어와는 크게 달랐다.


한국의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는 그래도 서로 알아들을 수 있고 대화도 가능하지만, 민난어와 표준어는 너무도 달라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말합니다"를 표준어로 말을 하면 "워껀니지앙"이라고 하지만 민난어로는 "와까리꽁(wa ga li gong)"이라고 표현을 한. 민난어를 별도로 배우지 않으면 외성인은 이처럼 차이가 큰 본성인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얘기다. 반대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언어와 역사가 크게 다른 그룹들이지만, 어쨌든 이제 그들 모두 대만이라는 하나의 섬에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그런데 수적으로는 본성인이 압도적이지만 장개석을 중심으로 하는 외성인은 군대를 갖고 있다 보니, 그를 배경으로 대만의 정치와 경제를 모두 장악하게 되었고 이런 편중이 본성인의 불만을 초래하여 두 그룹 간 갈등과 알력이 점차 심화되게 되었다. 게다가 서로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상호 간은 거의 외국인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만큼 원주민, 본성인, 외성인은 언어, 민족, 문화 등에서 서로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대만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50년이라는 긴 기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기도 했는데 같은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인의 정서와는 너무도 다르지만 오히려 그 일본 식민지배받던 시절에 대해 향수를 갖고 있는 대만인이 매우 많았다.


심지어 자신을 일본인으로 인식하는 대만인들까지도 있을 정도였는데, 법인에서 직원 채용을 위해 면접을 볼 때 50대 후반의 면접자가 "우리 대만인은 2차 대전 패전국으로서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을 실제로 눈앞에서 직접 본 적도 있었다.


자신을 일본인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인데, 설마 그 정도 까지겠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 대통령에 해당하는 대만의 총통 자리까지 있었던 '리덩후이'도 자신의 조국이 일본이라고 했고 일본 신사도 굳이 가서 직접 참배했다.


(일본이 자신의 조국이었다는 리덩후이 전 총통)

https://m.blog.naver.com/joonho1202/221824168435


물론 현재 대만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국민은 대만인이다. 하지만 이처럼 언어와 뿌리와 정체성이 너무나도 다르고 또 혼란스럽다. 어쩌면 그래서 주요완 박사의 대만 역사책마저 대만의 역사가 도대체 '누구의 역사인가?'라는 질문으로 그 목차가 시작되었던 것 아닌지 모르겠다.


원주민의 역사인지, 본성인의 역사인지, 외성인의 역사인지 또 마지막으로 일본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일본인이라 믿는 그런 사람들의 역사인지....


참고로 17세기 당시 대만을 지배하던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대만을 정복했던 중국인 정성공은 부친은 중국인이었지만 모친은 일본인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식민 통치 시절 일본은 대만이 일본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었다.




대만의 두 번째 슬픔)

같은 대만 땅에 사는 대만인 간 너무도 깊은 갈등의 골


원래 대만 땅 주인이었던 대만 원주민은 17세기 정성공의 대만 정복 이후 중국의 한족들이 대만으로 대거 몰려오면서 이후 수백 년간 지속적으로 땅과 집 등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산속으로 밀려나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와야 했었다. 그리고 결국 한족 이주민들의 압박과 학살로 이제는 대만의 전체 인구 중 2%밖에 안 되는 수준으로 인구도 급감했다. 이민자들 인구보다 훨씬 많았다는 북미 대륙 원주민이 이제 존재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극소수만 남게 된 것과도 유사한 현상이 대만에서도 발생했던 셈이다.


한편 대만 역대 정부는 그간 누구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대만의 원주민에 대한 이러한 중국 한족들의 박해와 억압에 대해 일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통적 야당인 민진당이 집권한 이후 최근에는 그러한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중국 한족들의 본격적 대만 유입을 직접 촉발하게 만든 장본인 정성공에 대해서도 그간 일방적으로 영웅시하기만 했던 역사관이 재평가되는 분위기도 새롭게 조성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현재 대만의 총통인 민진당 출신 차이잉원이 정성공(鄭成功) 시절부터 시작되어 오랜 기간 지속돼 왔던 중국 한족의 대만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핍박을 사과한다는 공식 발표까지 하게 되었다. 참고로 총통 차이잉원 본인도 중국 한족과 대만 원주민의 혼혈로 알려져 있다.


(대만 총통 과거 400년간의 원주민 탄압 사죄)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0882752


하지만 이 집단 간의 아픈 역사는 원주민과 한족 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한족인 본성인과 외성인 간에도 역시 너무 아픈 역사가 많았는데 그중에는 2.28 사건이라 불리는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1947년 2월 타이베이에서 밀수된 담배를 판매하던 사람이 경찰에게 잡혔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그 사람을 가격하여 중상을 입혔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자 경찰이 총을 발포하여 시민이 사망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군중들이 관청으로 몰려가 해당 경찰의 처벌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계엄령을 선포하고 강경 진압에 나서자 시민들은 경찰서를 습격했고 경찰관이 사망을 하는 사태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런 상황에 군과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서 기관총을 발사해서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에 반발해 시위는 대만 전역의 본성인들에게로 확산되어 갔다.


당시는 국민당이 아직은 중국 본토 전체를 통치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는데, 대만의 사태가 심각해지자, 국민당은 중국 본토에 있던 군대를 대만에 파병하여 시위대를 더 가혹하게 진압했다. 결국 10여 일 동안 유혈 진압이 진행되면서 무려 약 3만 명의 본성인들이 외성인 중심의 군인과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 한다. 장개석이 대만의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 낸 것은 인정받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또 이러한 동족 간의 뼈아픈 살육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 2.28 사건 관련 기사)

https://www.google.com/amp/www.hanion.co.kr/news/articleViewAmp.html%3fidxno=3113


법인에 근무하는 매우 아름다운 대만 여성 직원이 있었다. 그녀는 대만의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졸업했었고 또 한류에 빠져서 한국 드라마를 자주 봐서 그런지 한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던 직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와 대화할 때 그 당시 대만의 총통이었던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 아름다운 여인이 갑자기 '개새끼', '죽일 놈', '씨발놈'등 차마 입에 담기도 부담스러운 본인이 아는 거의 모든 한국어 욕을 대 놓고 막 하기 시작했다.


외성인 중 한 명인 마잉주가 비록 대만 총통이 되긴 했지만, 2.28 사건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인 본성인 그녀에게는 그가 속한 외성인 그룹과 그들이 속한 국민당은 이처럼 여전히 극도로 혐오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만큼 그들 간의 감정의 골은 깊었던 것이다.




다음 편 "2. 대만,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 (2-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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