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는 대만 원주민이 수립한 '대두(大肚, Kingdom of Middag)'라는 왕국이 16세기 중엽에서 18세기 초까지 존재했었다 한다. 하지만 이 왕국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또 대만 전역도 아니고 현재의 타이중(台中) 인근 지역, 즉 대만섬의 매우 제한적인 지역만을 지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대만의 일부만을 지배했던 이 대두 왕국을 제외하면 대만에는 그 긴 역사 기간 대만인이 수립한 국가나 왕조가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만의 정권은 모두 외세나 외부인에 의해 수립된 것이었다는 말이다. 한반도에 단 한 번도 한국인에 의해 수립된 왕조나 정권이 없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 얼마나 특이한 현상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은 대두 왕국이 존재하던16세기경에 유럽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대만섬을 최초로 본 포르투갈인들이 그 섬을 'Ilha Formosa(아름다운 섬)'라 명명하면서 대만은 유럽에 Formosa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이후 17세기 초중반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각각 대만섬의 남부와 북부를 점령하고 지배했다. 그러다가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대만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대두 왕국까지도 굴복시키면서 네덜란드의 대만 통치가 시작되었고 약 38년간 지속됐다. 이것이 외세에 의한 첫 번째 대만 지배였다.
다음으로는 '정성공'이란 인물이 이미 멸망한 명나라 부흥 운동을 한다는 명목 하 17세기 중반 중국 남부 푸젠성에서 2만 5천이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대만으로 들어와 소수의 네덜란드 군대를 몰아내고 왕조를 세워서 대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왕조는 이후 약 21년간 지속되었는데 이것이 외세에 의한 두 번째 대만 지배다.
그다음 만주족의 청나라가 대만을 침공하여 정성공이 세운 왕조를 무너트리자, 대만은 이제 또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청나라의 대만 지배는 약 212년간 지속이 됐는데 이것이 외세에 의한 세 번째 대만 지배다.
그런데 청나라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청나라는 일본 요구에 의거 대만을 일본에 공식 할양하게 되었다. 이로써 1895년부터 대만은 일본 영토가 되었고 2차 세계 대전이종전될 시점까지 50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된다. 외세에 의한 네 번째 대만 지배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1945년 2차 대전에서 패하자 이번에는 중국 본토에서 모택동의 공산당에 패한 장개석의 국민당과 그 군대가 대만으로 들어와 대만을 지배했다. 이 시점부터 2000년까지 55년간 대만은 장개석과 그의 국민당에 의해 통치됐다. 외세에 의한 다섯 번째 대만 지배다.
이후 대만에서 출생하고 자란 민진당의 '천수이볜(Chen Shui-bian, 陳水扁)'이 2000년 대만 총통에 당선되면서 대만을 대표하고 통치하게 되었다. 대만의 역사상 외부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외부에서 만들어진 조직의 출신이 아니라 순수하게 대만에서 태어나고 또 대만에서 만들어진 정당의 인물이 대만을 대표하게 된 첫 번째 사례였다.
물론 그전에 리덩후이 총통도 대만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총통이 된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리덩후이는 대만에서 만들어진 정당이 아닌 중국 본토에서 탄생한 정당인 국민당 소속이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대만섬 안에서 탄생한 민진당 출신이 당선된 것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게다가 일본통치 시절 태어난 그는 전편에서 언급한 것 같이 자신의 조국은 일본이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자신을 일본인으로 믿는 성향까지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대만은 대만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천수이볜이 총통이 되는 2000년까지 단 한 번도 자신들이 수립한 왕조 혹은 국가에 의해 대만섬이 통치되는 경험을 해 보지 못한 셈이다. 21세기가 접어들도록 끊임없이 외부의 세력들만이 번갈아 가며 국가를 통치했던 경우는 아마도 역사상 대만의 경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외세가 들어와 대만을 통치하면서 대만에서 사용되는 언어 역시 지속적으로 바뀌어 왔다. 대만섬에 원주민이 다수이던 오래전 그 시절에는 태평양 섬들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인 오스트로네시안 계통 언어가 대만에서 통용됐었다. 하지만 이후 정성공과 그의 군대가 대만을 지배하던 시기에는 그들 고향의 언어인 푸젠성 민난어가 대만에서 통용됐고, 일본에 대만이 공식적으로 할양된 이후에는 일본어가, 장개석과 그 군대가 대만에 들어온 이후에는 중국 표준어가 공용어로서 사용되었다.
한 국가의 언어가 이처럼 시기별로 여러 차례 바뀐 것인데, 이러한 사례 역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봐도 결코 흔하지 않을 것이다.
대만의 네 번째 슬픔)
엄연한 국가임에도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홍길동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대만이 꼭 그러한 상황에 있는 셈이다. 대만은 엄연히 2,400만의 대만인이 선출한 대만의정부가 대만을 스스로 통치한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대한 중국의 끊임없는 압력으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는 이제는 더 이상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만, 공식 명칭으로는 '중화민국(中華民國, Republic of China)'은 1945년 10월 UN이 창설되던 시점부터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UN의 안전보장 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으로서의 막강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당연히 당시에는 전 세계 대다수 국가가 중화민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로 인정했다. 하지만 1949년 결국 중국 본토를 공산당에게 빼앗기고 장개석 정권이 대만섬으로 밀려나게 되자, 공산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대만과 단교하는 국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 공산당의 중국 본토에 대한 실효적 지배가 점차 장기화되고 공고화되자, 유럽과 일본, 미국 등 서방국가도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서중국과의 국교를 수립하고 반면 대만과는 단교하게 되었다. 중국이 국교 수립의 필수 전제 조건으로 대만과는 단교할것을 일관되게 요구해 왔기 때문이었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공산세력 위협을 받고 있던 한국도 중국과 수교하면서 1992년 8월 대만과 단교했다.
그리고 그 이전 1971년에는 중국을 유일한 합법적 정부로 인정하는 안건이 UN에서 통과되자 대만은 UN을 탈퇴하게 된다. 중국본토 공산 정권이 중국의 유일한 합법적 정부가 되었으니 대만은 어차피 UN에서 축출될 것인데 축출되기 전에 스스로 탈퇴하는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중국의 압력에 의해서 대만과 단교를 해온 국가는 1949년 이후 최근까지 무려 100여 개국이 넘는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가 지속 더 성장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면서 중국의 이러한 대만 고립 정책은 점점 더가속화되어서 2019년 기준 이제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15개국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15개국도 사실 국제사회에서는 영향력이 너무 미미한 매우 작은 국가들로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대만이 당하는 아픔은 단교로 그치지만 않았다. 역시 중국 압력으로 대만은 이제는 국제 행사에 참여를 하게 되더라도 대만의 정식 국명이나 국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올림픽에도 '중국의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중국이 허용하는 해괴한 이름으로만 참여가 가능하다. 대만 국기및 대만의 국가도 당연히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에서 사용하지 못한다.
2016년 초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만인 여자 가수 쯔위(周子瑜)라는 당시 만 16세의 소녀가 대만의 국기를 들고 한국의 방송에 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쯔위와 그의 소속사는 모두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기도 했다. 그로 인해 결국 쯔위는 꽤 침통한 표정으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과 방송을 해야만 했었다. 자칭 대만의 동족이라는 중국인들이 대만의 16살 소녀까지도 괴롭히는 등 전 세계에서 가장 집요하게 대만을 괴롭히고 있는 셈이다.
대만에 근무하던 시절 중국인들의 끈질긴 대만 압박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었다. 당시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들은 중국에 있는 우리 회사의 공장에서 생산되어 대만으로 수입이 되고 있었는데, 하루는 대만으로 와야 할 제품들이 전면 출하가 중단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유는 그 공장의 직원들 중에 공산당원이 있었는데, 대만으로 출하하려는 제품 설명서에 대만을 'Country'라고 표기한 문구를 지적하면서 대만은 국가가 아니니 이러한 문구를 수정하기 전에는 제품을절대 출하해서는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었다.
쯔위 사건에서도 볼 수 있지만 중국에서 대만 관련 사안은 워낙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정치적 이슈라서그 공장에 파견되어 있던 한국인 법인장이나 주재원들도 공산당원이 제기하는 그러한 민감한 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못하고 해결 방안을 찾고 있는 상태라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문제가 해결되기는 했지만, 당시 이런 소식을 전해 들었던 대만인 직원들의 분노와 허탈한 표정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대만의 다섯 번째 슬픔)
미래에도 중국과의 현 문제는 변함없이 지속될 가능성
전술한 바와 같이 현재 대만은 국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럼 이런 문제가 과연 미래에는 완화되거나 해결될 가능성이 있겠느냐 질문한다면, 안타깝지만 답변은 부정적일 것 같다.
중국이 대만에 요구하는 것은 홍콩처럼 일국양제(一國兩制) 체제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즉, 국가는 중국의 주권 하에 하나로 합쳐지되, 사회 체제는 중국 본토는 사회주의, 대만은 자본주의로 분리 운영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만이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는 항복 선언을 하는 것 같은 상황이 되는 경우라서 결코 대만으로서는 택하기가 어려운 방식이다.
게다가 최근 홍콩 시위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97년 영국에서 중국에 반환되어 이미 일국양제가 적용되고 있는 홍콩의 사례들을 보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홍콩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이한 두 체제가 한 국가 안에서 공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인데 오랜 기간 자유민주주의 누려온 대만인이나 홍콩인이 국가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할 투표권조차 없는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정치체제로 역행해 가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대만이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은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다. 사실 이미 실질적으로는 독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독립한다는 것 자체가 좀 어폐가 있지만, 어쨌든 대만은 더 이상 중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새삼 선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에 중국은 반드시 무력 개입하겠다고 끊임없이 경고를 해오고 있는 것도 문제겠지만, 실질적으로도 이미 대만과는 단교까지 했던 국제사회가 그러한 독립 선언을 받아들여 줄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대만으로서는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도 불가능하고, 독립을 선언하는 것도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한 상황으로써 결국 어느 것도 선택할 수가 없는 처지에 처해 있는 셈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엄연히 국가이면서 국제 사회로부터는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이 미래에도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만이 당면한 냉정한 현실인 것이다.
타이베이에 거주할 때, 대만인의 반중 감정을 직접 체험한 적이 있었다. 대만 남부 가오슝에 출장 갈 일이 있어 기사가 있는 차를 대절해서 직원들과 함께 이동한 적이 있었다.
기사는 40대 중반 돼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꽤 친절하고 또 좀 과묵한 사람이었다. 점심 식사를 할 때 우리 일행과 같이 하지고 했더니 자신이 같이 식사하면 우리에게는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자신은 알아서 따로 먹겠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한국에서라면 대부분 거절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철저하게 고객에 대한 예의를 지켰던 셈이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우연히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자,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대만과 중국은 아무 관계도 없는 전혀 다른 국가라고 언성까지 좀 높이며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중국인과 무슨 관계냐, 한국이나 일본에서 한자를 사용하고 있으니 그럼 한국인이나 일본인도 중국인이냐?"라고까지 되물었다.
중국인으로부터 오랜 기간 당하고만 있는 대만인들의 반중 감정은 이미 익히 잘 알고 있고, 또 여러 차례 경험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양국 간 관계에 대해 물어봤을 뿐인데도 그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중국이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홍콩인의 반중 감정이 오히려 악화되고 반중 시위가 확산되는 것처럼, 오랜 기간 중국에 당하며 살고 있는 대만인들의 응어리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타이베이 중심에는 '중정기념관(中正紀念堂)'이란 건물이 있다. 높이 6.3m 또 무게 25톤에 달하는 장개석의 초대형 청동상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거대한 장개석 동상 자체보다 오히려 이 동상을 지키는 기념관 근위병의 교대식이 더 유명해져서 대만에 여행 온 사람들은 청동상보다 이 교대식을 보려고 중정기념관으로 몰린다 한다.
근위병의 교대식을 보면 로봇이 움직이는 것처럼 너무나도 정교한 모습으로 행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천장 높이가 70m에 달하는 웅장하고 넓은 그 공간 안으로 울려 퍼지는 근위병들의 군화 소리와 그들의 절제된 동작을 듣고 또 보고 있다 보면, 왠지 그 소리와 동작이 대만의 너무나도 아픈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