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가다....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01)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홍콩에 부임한 이후 홍콩섬 중앙에 있는 산 정상 부근에서 북쪽 구룡반도를 보고 찍은 사진. 세계적 금융 도시 홍콩의 상징인 마천루가 즐비하게 보인다. 사진의 바다는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갈라놓는 빅토리아 항이다.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를 거쳐서 2008년 말 이제는 홍콩 법인으로 발령받아 홍콩으로 왔다. 그런데 Paris 및 Toronto에 근무할 때는 본사로 귀임해서 일정 기간을 근무하다 다시 주재 파견을 나갔지만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등 중화권에 위치한 네 곳의 법인에 근무할 때는 중간에 본사 귀임하는 과정 없이 현지에서 곧바로 다른 법인으로 이동해서 근무했다.


따라서 결국 모두 합쳐서 약 9년 반 가량을 중화권에 위치한 법인에서만 돌아가며 연속 근무한 셈인데 그 마지막을 맺은 곳이 바로 이곳 홍콩이었고, 또한 3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마무리한 곳도 바로 이곳 홍콩에서였다.


홍콩 법인은 인구 약 750만 명의 홍콩과 홍콩에서는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65만여 명의 마카오 두 지역을 관할하는 법인이었다. 두 지역 인구 모두 합쳐도 약 815만 수준으로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인구의 몇 배가 넘는 수천만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매년 이 두 지역을 방문하여 엄청한 규모의 소비를 하는 곳이 또 이 지역이었기 때문에 상징성을 떠나서 순수한 시장 규모에서만 봤을 때도 이 두 시장은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었다.



1. 홍콩 가다....


사전에서 "홍콩 가다"라는 말의 의미를 검색하면 "신나거나 기분이 좋아지다"는 뜻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에 굳이 '홍콩'이라는 외국 도시 지명이 들어가게 된 이유가 좀 궁금하기도 한데 그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있지만 아래 기사에 의하면 1960년대 한국인 대다수가 가난으로 허덕이던 시절 서울 남대문에 있던 7층짜리 그랜드 호텔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홍콩 스타일 중화요리 식당에 그저 한 번이라도 가보는 것을 선망하던 것에서 시작됐다 한다.


당시는 서울 시내 빌딩 평균 층수가 2층이었다 하니 7층에 있던 그 중화요리 식당에서는 고급스러운 음식뿐만 아니라 높은 위치에서 서울 시내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즐거움도 함께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홍콩 가다" 사전적 의미)

https://ko.dict.naver.com/#/entry/koko/ccc81a2775cc4bc5b391fdd9eef1bc30

("홍콩 가다"라는 말의 유래, 아래 기사 중반부 참조)

https://news.joins.com/article/3395887


그런데 나도 대만 법인 근무 만 2년도 채우지 못한 어느 그렇게 말로만 들어왔던 "홍콩 가다"라는 이 말을 실감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그것도 하루 이틀 홍콩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나고 보니 결과적으로 무려 약 5년 반이나 홍콩에 가 있었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처럼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것만은 결코 아니었다. 당시에는 홍콩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던 반면, 전 근무지 대만에 대해서는 유독 각별한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에는 중국 본토, 홍콩, 대만 등 전 중화권을 총괄하는 지역 본사가 있었다. 그 본사에서 주관하는 중화권 법인장 회의가 있어 2008년 11월 베이징에 출장을 갔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인사팀장이 오더니 사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니 가보라고 했다.


사장님께 가보니 사장님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홍콩에 가라"라고 하셨다. 하지만 당시 대만에 귀국하는 항공편이 어차피 베이징에서 홍콩을 경유하여 타이베이로 들어가는 것으로 예약되어 있어서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는 "네, 홍콩 경유하여 타이베이로 갑니다...."라고 답변을 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그런 뜻이 아니고 지금 홍콩법인에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법인장이 공석인 상황이니 네가 내일 당장 홍콩으로 가서 법인장으로 근무해라"라고 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하도 갑작스럽게 들었던 인사이동이라 당시 놀랐던 상황과 오고 간 대화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얼떨결에 알았다고 답을 하고 방을 나왔는데, 문 앞에는 인사팀장이 있었다. 결국 사장님께는 어려워서 말씀을 못 드렸지만 다소 불만스러웠던 내 심정을 인사팀장에게는 좀 솔직히 언급했다.


대만 간지 이제 2년도 안됐는데 갑자기 홍콩으로 가라는 건 좀 그렇지 않냐고 했더니, 홍콩 매출이 대만보다 훨씬 큰데 지금 홍콩 법인장이 공석이라 다급한 상황이니 회사 그리고 사장님 입장에서 뭐가 더 중요한지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상황은 이해하겠는데, 런 일은 왜 굳이 항상 내가 맡아야 하냐?"등, 할 말은 많이 있었지만, 회사라는 조직이 개인적 상황을 모두 고려해 줄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더 얘기해봐도 이미의미도 없는 단계인 것 같아 결국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대만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사장님 지침대로 바로 홍콩으로 부임했다. 회의 참석차 대만에서 베이징으로 출장 갔다가 거기서 홍콩으로 발령받은 것이고 베이징 1박 2일 출장이 순식간에 홍콩 법인 부임 발령으로 바뀌어 버린 순간이었다.


그렇게 엉겁결에 홍콩 법인으로 부임해서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원래 1박 2일 짧은 출장으로 베이징에 갔던 것이라 가져온 짐이 거의 없었고 옷부터 생활필수품까지 모든 것이 아직은 타이베이의 내 집에 있었다. 그래서 결국 1주 정도 홍콩에 머물다 짐 정리 등을 위해 다시 대만으로 돌아왔다.


베이징 근무도 2년도 못 채우고 타이베이로 갔는데, 연 이어 타이베이 근무도 약 1년 11개월 만에 조기 종료되고 이렇게 홍콩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홍콩에서의 근무 기간은 오히려 너무 길어 그렇게 부임한 이후 무려 5년 반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홍콩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홍콩 땅에서의 그 긴 시간이 사실은 이렇게 얼떨결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홍콩은 한자로 '香港'이라고 적는데 중국 표준어로 읽으면 '샹강'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홍콩'이라고 하고 영어로도 Hong Kong이라고 적는 이유는 이 한자를 홍콩의 언어인 광둥어로 읽으면 그렇게 발음이 되기 때문이었다.


중국 북방 지역의 언어인 보통화가 중국 표준어로 채택되어 중국 전역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이후인데 그보다도 훨씬 이전에 홍콩의 광둥어 발음이 이미 전 세계로 전파가 되어 그 발음으로 홍콩의 지명이 굳어진 셈이다.


(홍콩의 광둥어 및 표준어 발음 차이)

https://fanyi.baidu.com/translate?aldtype=16047&query=%E5%85%89&keyfrom=baidu&smartresult=dict&lang=yue2zh#yue/zh/%E9%A6%99%E6%B8%AF


우리가 통상 홍콩이라고 부르는 지명은 사실 2가지 의미가 있다. 즉 홍콩이라고 부르는 행정구역은 실제로는 홍콩섬, 구룡, 신계 등 크게 3개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 3개 지역 중 하나인 홍콩섬과 3개 지역 모두를 포함하는 명칭인 홍콩은 엄밀히 말하면 다른 것이라는 의미다.


(홍콩의 3개 지역 지도)

https://blog.naver.com/myincizor/221712404873


아편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1842년에 어쩔 수 없이 난징 조약을 체결하면서 영국에 할양한 영토는 홍콩섬뿐이었다. 즉, 당시에는 홍콩섬만 영국 식민지로 넘어갔던 것이다. 또 홍콩섬은 일정 기간만 영국에 조차된 것이 아니었고 영국에 영구 할양된 땅이었다.


이후 20여 년 뒤에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가 또다시 패하면서 1860년에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 조약에 의해서 이번에는 구룡 지역이 추가로 영국에 할양되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정해진 기한이 없는 영구 할양이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약 40여 년 뒤 1898년 2차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면서 마지막으로 현재 신계 지역이 영국에 넘겨졌다. 그런데 이 신계 지역은 영구 할양된 홍콩섬이나 구룡 등과 달리 99년이라는 기한을 두고 영국에 조차 되었다. 따라서 영국이 중국에 99년이라는 정해진 기한을 두고 홍콩 조차 조약을 체결하였다는 얘기는 이 신계 지역에만 해당되고 그 이전에 영구 할양됐던 구룡이나 홍콩섬에는 원칙적으로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신계 지역이 영국에 조차된 지 99년이 지난 1997년 영국과 중국 간 영토 반환 협상이 진행될 당시에도 당초 영국은 과거 조약에 근거하여 영구 할양된 홍콩섬이나 구룡반도는 국제법적으로 중국에 되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체결된 조약 자체가 이미 불평등 조약으로 애당초부터 원천 무효였다고 주장하며 무력 점령 가능성까지도 내비치는 덩샤오핑에 굴복해서 영국은 결국 홍콩섬과 구룡반도까지 모두 중국에 반환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같은 중국의 대도시는 도시 규모나 인구면에서 홍콩을 훨씬 능가하지만 각 도시들을 상징하는 별도의 깃발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홍콩, 마카오는 그 도시를 상징하는 자체적인 깃발을 가지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안에 속해 있는 도시이기는 하지만 체제는 중국 여타 지역과 다르게 자본주의가 당분간 적용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시스템이 허용된 특별 행정 구역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 경기에 출정할 때도 홍콩이나 마카오 선수들은 중국 국기 대신 자신들의 깃발을 들고 입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도시를 상징하는 깃발이 국기와 동등한 자격이나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또 그 깃발이 영구히 유지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높은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조건은 홍콩 경우 50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1997년 중국과의 합병 이후 50년이 지나는 2047년 이후에는 이런 자치권이 지속 유지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사진)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과 함께 도입된 홍콩 깃발


(평창 올림픽에 홍콩 깃발 들고 입장하는 홍콩 선수단)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08439253?sid=102


1990년대 중국에서 디자인되었또 중국에 의해 도입이 결정된 이 홍콩 깃발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공식적으로 홍콩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깃발의 공식 명칭은 '홍콩 특별행정구 구기(香港 特別行政區 區旗)'인데 깃발 중앙에 보이는 꽃은 홍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Hong Kong orchid tree (Bauhinia blakeana)'라고 불리는 나무의 꽃이다.


(홍콩 거리 가로수의 Bauhinia 꽃)

https://www.alamy.com/stock-photo-china-hong-kong-tsim-sha-tsui-austin-road-with-bauhinia-flower-tree-75714558.html


이 나무는 1880년 프랑스 신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고 이후 홍콩 식물원으로 옮겨져서 보호를 받았다. 그런데 이 나무에는 매우 특이한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스스로는 번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씨나 열매가 없어서 오로지 꺾꽂이, 휘뭍이, 접목 등 어떤 인위적인 외부의 작용이 있을 때만 번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Bauhinia blakeana 번식 능력)

https://www.gardenia.net/plant/bauhinia-blakeana


따라서 현재는 홍콩 도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나무는 결국 거의 모두 이 식물원에서 꺾꽂이 등 인위적 방식으로 번식되어 홍콩 전 지역으로 옮겨진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1880년 발견되어 식물원에 있던 최초 발견된 나무와 같은 나무였던 셈이다.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라는 동물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자체적으로는 번식력이 없어서 스스로 새끼를 낳아 번식할 수 없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 정권이 홍콩 인수를 준비하면서 홍콩 깃발을 만들 때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고서 이 꽃을 홍콩을 상징하는 꽃으로 정해 홍콩 깃발에 삽입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체적으로 결코 번식할 수 없는 이 나무의 특징이 영국이나 중국, 미국 등 외부의 도움 또는 간섭 없이는 홍콩 스스로는 그 운명을 유지해 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아 우연이었다면 너무도 묘한 우연의 일치로 보이기도 한다.


한편 홍콩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중국에 의해 도입된 이 깃발은 이제는 적지 않은 홍콩 시민들에게는 중국의 간섭과 억압을 상징하는 깃발로 인식이 굳어져 있다. 따라서 아래 기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홍콩에서 시위가 발생했을 때 이 깃발은 집중적으로 훼손되기도 하며 반면 영국이 홍콩을 통치하던 시절 사용되었던 식민 시대의 홍콩 깃발이 오히려 홍콩을 상징하는 깃발로 인정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시위대에 의해 검은색으로 훼손된 홍콩 깃발)

https://edition.cnn.com/style/article/hong-kong-flag-design-protest/index.html

(영국 통치 시절 깃발을 흔드는 시위대)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6/06/23/2016062300059.html




가장 먼저 영국으로 넘어간 홍콩섬의 할양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홍콩은 1842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155년 간 중국에서 분리되어 유럽 국가의 통치를 받았다. 2차 대전이 진행되던 기간 1941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이 홍콩의 영국군을 몰아내고 홍콩을 지배했지만 통치권이 영국에서 또 다른 외국 국가인 일본으로 넘어간 것일 뿐이지 홍콩이 중국에서 분리되어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 군림하던 시절 얘기는 이미 태곳적의 얘기 같이 들린다. 그런데 고종이 즉위한 해가 1864년이고 그 이전 철종이 즉위한 해가 1849년이라 하니 조선의 임금 철종이 즉위하기도 전부터 홍콩은 이미 중국에서 분리되어 영국 땅이 되어 있었던 셈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남북이 갈라선 이제 67년이 됐다. 그렇지만 홍콩이 중국에서 분리되어 있던 기간의 반에도 못 미치는 이 기간에도 남북은 이미 언어부터 생활, 문화까지 너무도 큰 차이가 생겨 버렸다. 67년간의 분리에도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기는데 그 시간의 2배가 되는 2087년이 되면 남북한의 이질감이나 괴리는 아마 현재보다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그런데 홍콩은 그보다도 더 긴 기간을 중국에서 분리되어, 다른 이념과 문화를 가진 유럽 국가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그만큼 중국과 홍콩 간 차이는 너무도 깊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깊은 차이가 최근 홍콩인의 중국에 대한 극렬한 저항과 그에 대응하는 중국의 일방적이고 또한 폭력적인 억압으로 쌍방 모두에게서 표출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물론 홍콩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도 저항과 문제들이 없었던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홍콩과 영국은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서로에게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고 그러한 공존 방식에 의거해 나름대로는 안정적으로 움직여 왔다. 그 결과로 요즘 홍콩의 시위에서 과거의 식민 시대를 그리워하며 영국의 국기를 들고 다니는 홍콩인들도 자주 보게 되는 것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반정부 시위를 하더라도 결코 누구도 일본 통치 시절이 그립다고 언급하며 일장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과 비교하면 매우 큰 차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과거 영국과는 달리 홍콩에 대해 일체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최근의 홍콩 시위에서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중국 공산당 정부는 결코 단 하나도 홍콩인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인이 중국 공산당에게 완전하게 항복하고 무릎 꿇을 때까지 철저하게 가혹한 압력을 가하겠다는 그런 의도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중국의 안하무인적 행태는 생각해보면 홍콩에 대해서만은 아니고 중국이나 중국 인근 지역에서도 역사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전개돼 오고 있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국제 사회에 대만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압력을 행사해 대만은 이제 올림픽 같은 국가 간의 행사에 출전해도 자국의 국명이나 국기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수교국도 이제 10여 개 국 밖에 남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 정권의 침략을 받아 중국에 강제 합병되기 전에는 한동안 독립국이었으며, 실제로도 역사, 민족, 언어, 종교 등 많은 면에서 중국이나 중국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장 지역 위구르인이나 서장 지역 티베트인의 독립 추구에 대해서는 중국은 이미 수십 년이 지나도록 초지일관 가혹한 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이 가중되고 주민들의 반발도 지속되고 있지만 중국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동일한 정책을 여전히 집행해 가고 있다.


결국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함께 홍콩도 이제 대만, 티베트, 신장이 이미 오래전부터 겪어 온 것과 같은 중국 공산당과의 갈등 구조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전술한 것처럼 중국의 공산당이 이제까지 대만, 신장, 티베트에 대해서 일관되게 보여온 모습을 보면 홍콩의 미래도 밝지만은 않다.


이처럼 복잡하고도 또 묘한 처지에 놓여있는 홍콩에 '홍콩 가라!'는 갑작스러운 사장님의 말씀 단 한 마디에 2008년 12월에 도착했다. 그리고 2014년 6월까지, 약 5년 반이란 결코 짧지 않은 내 인생의 시간을 그 홍콩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또 직접 체험하며 소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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