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두 얼굴 (2-1)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02)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2. 홍콩의 두 얼굴 (2-1)


5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홍콩에 거주하면서도 때로는 홍콩이란 사회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러한 혼란은 홍콩에는 너무도 다른 두 개의 모습이 묘하게 섞여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물론 다른 사회나 국가도 야누스 같은 서로 상반된 두 개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홍콩의 경우에는 홍콩이라는 그 도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 및 이후 전개된 몇 가지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으로 그러한 상반되는 모습이 보다 더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1. 동양인의 외모 vs. 서양인의 사고


홍콩인은 혈통적으로 당연히 동양인으로 외모에서는 인근 광동인이나 또는 한국인과도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려 150여 년간 유럽 국가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사고방식 면에서 인근 동양인과는 다른 측면이 꽤 있었다.


그런데 사실 섬나라 민족들은 독특한 특성이 있다고 하는데 영국도 섬나라이어서 그런지 같은 유럽 국가지만 영국인도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대륙에서는 좀 특이한 민족이라는 평가를 자주 받는다. 그런 영국의 통치를 받은 홍콩인들도 언어로 정리해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뭔가 특이한 성향을 가진 아시아의 영국인 같은 그런 느낌을 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국에서 과거 흔했던 '번개 모임' 같은 것을 홍콩인들에게 제안하면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그러한 제안을 일종의 예의 없는 제안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도 스케줄이 있는데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것을 무리한 제안으로만 받아들였고, 시간적으로 가능한 사람만 참석하자는 번개 모임의 원래 전제는 간과되었던 것이다.

음주 문화도 상당히 개인적이라서 중국이나 한국에서처럼 서로 술 마시기를 권하거나 강요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특히 만취할 정도까지 과음하는 경우는 전혀 보지 못했다. 거래선 임원들과 식사를 하면 술이 함께 나오긴 했지만 그 술을 몇 잔 이상 연거푸 마시는 사람은 항상 오로지 한국인 나 혼자뿐이었던 경우가 허다했다.


내가 그렇게 술을 마시면 술 너무도 잘 마신다고 박수까지 쳐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정작 자신들은 건강을 생각해 절대 그렇게 많이는 안 마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과거에는 마찬가지로 영국 식민지였던 캐나다 법인에 근무하던 시절 직원들과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할 기회가 있으면 주재원이든 출장자든 오로지 한국인들만 그 술자리를 즐기며 연거푸 술 마시던 그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또 자신의 개인 시간이 회사 업무로 영향받는 것에는 매우 민감해서, 퇴근하면 회사 전화는 아예 꺼 놓고 받지도 않는 직원이 많았다. 어느 날 밤늦게 홍콩섬에 있던 초대형 옥외 광고판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해 무려 10여 명에 달하는 담당 부서 직원들에게 전화했지만 그 전화를 받았던 사람은 마지막에 전화했던 단 1명뿐이었다. 역시 캐나다 근무할 때 당일날 꼭 출하해야 제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그날이 금요일이라고 물류팀 직원들 모두가 정시에 퇴근해 버리던 그 모습을 그대로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중국과 영국 사이 2중 정체성, 2007년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626010329323100020

(홍콩인은 중국인이 아니다, 2011년 기사)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11070505141


그런데 적지 않은 홍콩인들이 여전히 반발하고 저항하고는 있지만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는 과거와는 다른 정반대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는 홍콩이 점차 영국 문화에서 벗어나서 매우 빠르게 중국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광고 업계도 과거처럼 좀 더 규정과 기준에 의해 움직이기보다는 이제는 중국처럼 인맥, 편법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다. 논리와 계산에 의해 비즈니스가 성사되는 경우보다는 비공식적 거래나 끈끈한 인간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언어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생기고 있었는데, 과거에는 중국 표준어를 못하는 홍콩인이 많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매년 수천만 명씩 홍콩으로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상점 직원들은 이제는 중국어를 구사하는 직원들이 매우 많아졌고, 반면에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늘어나서 중국이 아닌 다른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상점 직원들과의 대화에 애로를 겪기도 다.


사진) Mongkok 거리의 인파와 상점. 관광객들이 몰리는 이곳의 상점 종업원들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2010. 10월).


홍콩은 수백 년 전 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런 변화에 적응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다시 중국이 되어서 중국의 문화와 중국식의 사고방식에 역으로 다시 적응해야 하는 힘든 변화를 또다시 겪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완전히 정착되면 이제 영국인과 중국인 중간 어디쯤 있었던 홍콩인의 과거 특성과 정체성은 영원히 사라지고 홍콩인도 인근 광둥인들처럼 그저 중국인으로만 스스로를 인식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사회주의 국가 vs. 자본주의 도시


홍콩의 공식적인 명칭은 '홍콩 특별 행정구(香港 特別 行政區)'다. '특별'이라는 단어가 있는 들어간 이유는 1997년 150여 년 만에 영국에서 중국으로 홍콩이 반환될 시점부터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독특한 체제가 홍콩에는 적용돼 왔기 때문이다. 즉, 비록 홍콩이 속한 국가의 체제는 엄연히 사회주의 체제지만 홍콩에는 예외적으로 그 체제를 곧바로 적용하지 않고 기존에 적용돼 왔던 영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당분간 유지한다는 것으로 홍콩의 중국 반환 협상을 할 때 중국의 덩샤오핑이 영국과 홍콩에 약속했던 사항이다.


(일국양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1421&cid=43667&categoryId=43667


그런데 중국도 개혁개방 정책 도입 이후에는 이제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사실상 자본주의 국가와도 실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예외적으로 홍콩에 기존 체제 유지를 허용해 준다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큰 의미가 있을 수 없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같은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홍콩의 이러한 기존 정치적 가치는 중국에 의해 점차 침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홍콩의 최고 지도자라 할 수 있는 행정장관 선출이라든가, 우리의 국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입법회 의원 선거에 중국 공산당이 깊게 관여하여 친중파들 위주로만 당선될 있도록 간접 선거 등 교묘하고 다양한 선거 장벽을 만들어 놓으면서 홍콩의 정치권은 친중파 인사들로 대체되어 가고 있고 결과적으로 홍콩의 자치권은 점차 훼손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만든 홍콩의 선거 장벽)

https://news.joins.com/article/23641640


그리고 이처럼 중국의 간섭이 늘어나면서 결국엔 오랜 기간 유지돼 왔던 홍콩만의 정체성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머지않아서 홍콩도 중국의 여타 도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처럼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어떤 시위나 반발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무감각한 도시로 바꾸어 가게 될 것이다.


다만 현시점은 아직은 그런 변화가 완전하게 일어나지 않은 단계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도시였던 홍콩의 정체성과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를 추구하는 공산주의 국가 중국의 정체성이 서로 뒤섞여 수많은 홍콩인들이 혼돈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일당 독재가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고 공산주의 이념과 공산당이 그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우선시 되는 중국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유일하게 홍콩만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또 실제로 그것을 향유하는 도시로 남아 있겠다는 상상 자체가 애당초 결코 실현 불가능한 꿈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홍콩을 흡수하면서 전 세계와 홍콩인들에게 제시할 당근이 필요했던 중국은 어쩌면 그 사실을 알고서도 그러한 당근을 제시했을지도 모르고 별다른 대안이 없었던 영국과 홍콩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 한복판에서 오랜 기간 누려왔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잃지 않기 위해서 저항해야만 하는 홍콩인들이 겪는 혼돈과 혼란은 외국인이 보기에도 참으로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혼돈과 혼란마저도 과연 언제까지 중국 공산당이 허용할지 미래는 더 불투명한 것이 냉정한 현실인 것 같다.


사진) 홍콩의 반중 시위대가 Causewaybay 인근 도로를 지나는 모습 (2011. 5월)



3. 최첨단 국제 도시 vs. 민속 신앙 만연한 도시


국제도시라 불리는 홍콩의 홍콩섬 중심 및 구룡에는 50층 이상의 최첨단 초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오피스용 건물뿐 아니라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땅값이 비싸니 좁은 공간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건물을 높게만 건축한 결과다.


사진) 구룡반도에서 바라본 고층 빌딩이 즐비한 홍콩섬 모습 (2009.3월).


그런데 아이러니한 현상이지만 이처럼 최첨단 과학 기술에 의거하여 건축된 홍콩 도심의 초고층 건물들도 알고 보면 대다수가 일종의 민속 신앙인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설계된 것이었다.


글로벌 금융회사인 HSBC 빌딩도 마찬가지인데, 이 건물의 1층이 아무것도 없이 뻥 뚫려 있는 이유는 홍콩섬의 중앙에 있는 산의 기운이 바다로 내려가는 것을 막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풍수사의 경고에 의해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설계 디자인이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사진) HSBC 빌딩 1층. 보는 것처럼 내부가 벽이 없는 빈 공간으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햇빛을 피해서 그늘을 즐기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2009. 7월).


(동남아 출신 가사 도우미 휴식처로 사용되는 HSBC 1층)

http://m.blog.daum.net/nikon4d80/7674020


또 인근에 있는 Bank of China 빌딩은 매우 날카로운 칼과 유사한 모양으로 디자인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주변의 기를 누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Bank of China의 풍수 공격에 대항하여 경쟁관계에 있던 HSBC 은행은 건물 옥상에 Bank of China 방향으로 대포 모양의 구조물을 새로 설치했다는 것이다. 인근의 경쟁사 빌딩에서 오는 날카로운 칼의 기운을 그보다도 훨씬 더 강한 대포로 막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도 날카로운 모습의 Bank of China 건물이 세워진 후 한동안 HSBC의 실적이 좋지 않았는데 풍수사의 의견에 따라 그런 대포 구조물을 건물 옥상에 새로 설치한 이후에는 실적이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두 라이벌 은행 간 칼과 대포 풍수 싸움)

https://www.wikitree.co.kr/articles/370492

(홍콩은 풍수가 지배한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6/2009020601261.html


그뿐 아니다. 홍콩의 수많은 사람들은 연초만 되면 홍콩의 유명한 도교 사원으로 몰려가 그 해 자신의 운세를 점친다. 개인뿐 아니다 심지어 홍콩이라는 도시 전체에 대한 그해의 운세도 '차공묘(車公廟)'라는 사원에서 매년 점을 치는데, 그 점괘 결과는 다음날 홍콩의 거의 모든 언론에 톱 뉴스로 장식되고 그에 따라 홍콩의 그해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의 한 해 운세가 점쳐진다.


또 홍콩 도심의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인 Time Square 인근 고가도로 아래에서도 우리로서는 미신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장면을 일 년 내내 볼 수가 있었는데,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홍콩 여성들이 신발로 열심히 뭔가 반복해서 내려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 없이 그곳을 지나치곤 했는데 그곳을 지날 때마다 동일한 모습을 보게 되니 좀 궁금하기도 해서 법인의 홍콩인에게 문의했더니 그 행위는 미워하는 사람을 저주하는 행위로써,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서 주술사에게 돈과 함께 주면 주술사가 신발로 종이를 반복해서 내리치고 그럼으로써 그 사람은 이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좀 섬찟하기까지 한 얘기였는데, 홍콩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을 시내 한복판에서 전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공개적으로 태연하게 매일 같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콩 도심 Time Square 옆 주술 행위)

http://www.wednesdayjournal.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22573#gsc.tab=0


백 년이 넘도록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이제는 화려한 국제 금융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건축, 금융, 무역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첨단의 과학 기술로 무장된 홍콩이었지만, 중국 남부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유난히 강하게 전해져 왔던 중국 전통 민속 신앙은 그와는 별개로 홍콩인들의 마음속깊고 깊게 뿌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다음 편 "3. 홍콩의 두 얼굴 (2-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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