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거주했던 공간들 (2-2)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07)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7. 홍콩에서 거주했던 공간들 (2-2)


전편 "6. 홍콩에서 거주했던 공간들 (2-1)"에서 이어짐....




3. The Harbourside

(1 Austin Road West, West Kowloon)


부임 후 두 달여간의 호텔 임시 생활을 정리하고 정식으로 입주했던 홍콩에서의 첫 번째 집이 바로 Harbourside라는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구룡반도 Kowloon역 위에 있는 Elements라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다.


홍콩 경우 한국과는 다르게 지하철을 운영하는 MTR이라는 기업이 부동산업을 겸하고 있어 이 단지처럼 전철역의 바로 위에 아파트 단지가 건축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런 곳은 아파트에서 외부로 나가지 않고 바로 지하철역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서 비 오는 날에는 특히 편리했다.


(홍콩 MTR과 부동산업)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06/2015040601664.html


이 단지 내에는 Waterfront, Cullinan, Arch, Sorrento 등 다른 아파트도 있었는데 대부분 70층 이상 초고층으로 된 고급 아파트였다. 헬스클럽은 물론 수영장까지도 구비된 73층짜리 Harbourside도 실평수 23평 기준으로 당시 매매가가 약 38억 원, 월세 또한 800만 원 수준으로 웬만한 홍콩인들이 거주하기에는 꽤나 부담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정해진 한도 이내에서는 회사가 임대료 전액을 지원해 주던 혜택 덕분에 감히 같은 주제에 홍콩 체류 기간 이런 비싼 아파트에도 거주할 수 있었다.


사진) Elements의 중앙 공원, 아파트 및 내부 쇼핑몰 모습 (2009~10년 사진)


(Elemets 쇼핑몰 내부)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1k1&logNo=220991317098


이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는 홍콩에서 가장 높은 118층의 ICC 빌딩도 있었는데, 이 빌딩 1층의 야외 광장에는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다수 입점해 있어서 날이 선선해지는 저녁에는 그곳에서 지인들과 함께 이따금 굴 같은 맛깔난 안주를 곁들여서 와인을 마시기도 했었다. 이곳에서 먹었던 생굴은 모두 수입산이라 했는데 참 맛있기는 했지만 가격이 너무도 비쌌다. 전 세계의 다른 도시에서도 여러 번 느꼈던 것이지만 한국에서만큼 굴 가격이 저렴한 곳은 정말 없었던 것 같다.


ICC 빌딩은 공식적으로는 118층 건물이지만, 홍콩의 다른 건물들처럼 중국인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4'라는 숫자들이 들어간 층은 모두 빠져 있어 실제 지상 층수는 108층이라 한다.


사진) 홍콩섬의 법인 사무실에서 바라본 바다 건너의 ICC 빌딩과 아파트 Harbourside 모습. 중앙의 초고층 건물이 118층짜리 ICC 빌딩이고, 바로 그 옆이 Harbourside다. (좌측 2009. 2월, 우측 2010. 10월)


사진) Elements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의 모습.


사진) 아파트 Habourside 모습. 이곳 10층에 거주했었다.


높은 곳을 좀 무서워하는 나는 73층짜리 Harbourside의 비교적 아래층인 10층에 집을 구했는데, 이 아파트는 단지 자체가 지하철역 위에 조성된 다소 높은 지대에 있어 10층 아파트 창문에서 보이는 창 밖 경치도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막히는 것 없이 빅토리아만과 홍콩섬의 북부를 그대로 관망할 수 있었다. 경치만 본다면 Harbourside는 최고의 명당자리였던 것 같다.


사진) 아파트 10층 방에서 홍콩섬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연말이 되면 홍콩섬 건물들은 이렇게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기념하는 조명들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사진 우측에 있는 건물 벽에 Merry Christmas, Season's Greetings라는 문구가 보인다. 2010년 12월 20일에 찍은 사진이니 벌써 10년이나 된 과거 홍콩의 연말 모습이다.


사진) 역시 아파트 10층에서 보이던 바다와 홍콩섬의 모습. 앞에 보이는 바다가 Victoria Harbour이고 그 건너 보이는 섬이 홍콩섬이다.


한편 위 사진 중 첫 번째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해안가에 공사 현장도 보이는데, 2011년 당시 막 착수된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공사 현장 모습이다. 현재는 공사가 모두 완료되었고 사진 속 저 공사 현장은 이제 아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문화 공간으로 변해 있다.

(서구룡 문화지구 모습)

https://blog.naver.com/hkcindy/221918966543


당시 위 공사 현장 바로 옆에서는 또 다른 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홍콩과 중국의 광저우를 연결하는 고속철의 홍콩 부분 종착역 West Kowloon 역사 신축 공사였다. 이 공사 역시 2018년 완공되어 이제는 이 West Kowloon 역에서 중국 광저우역까지 불과 47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교통면에서는 매우 편리해진 장점도 분명히 있지만 홍콩과 중국 간의 시간적 거리가 과거 대비 훨씬 더 밀접해진 만큼 정치적으로 볼 때 홍콩의 중국화도 그만큼 더욱 가속화되는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진) 홍콩-광저우 고속철의 홍콩 종착역인 West Koloon 역사 신축 공사를 하던 당시 모습 (상단 2011. 12월, 하단 2011. 8월)


(West Kowloon 역 관련 기사)

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9221449061002

2. https://en.wikipedia.org/wiki/Hong_Kong_West_Kowloon_railway_station




아래 사진은 가구가 들어오기 전에 텅 빈 상태였던 시기의 아파트 내부 모습인데, 같은 방을 찍은 것처럼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각각의 창문 형태가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거실 및 부엌, 방 3개 그리고 화장실이 2개 있던 아파트였는데, 우측 하단에 있는 사진 속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비교적 넓은 방이 2개 있었고, 창문도 없는 매우 좁은 다른 방 하나는 반대 방향 현관 쪽에 별도로 있었다.


사진) 입주 당시의 텅 빈 아파트 모습 (2009. 2월)


아파트가 정남향이라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낮에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정말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햇살이 집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그런 아파트였다.


아래 사진이 현관 쪽에 별도로 떨어져 있던 창문 조차 없는 매우 좁은 방의 모습이다. 이 방은 얼마나 좁은지 들어가서 바닥에 누우면 머리와 발에 양쪽 벽이 닿을 정도였다. 이런 좁은 방이 왜 있는지 처음에는 좀 의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방은 홍콩에서는 '아마(阿嬤' amah)'라고 불리는 가사도우미용 방이었다.


사진) 가사도우미용의 매우 비좁은 방 (2009. 2월)


대부분의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도 한국에서처럼 부모가 손자를 대신 양육해 주는 경우는 흔하지가 않은 홍콩에서는 경제적으로 보다 낙후된 필리핀,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의 국가에서 온 가사도우미가 수십만 명이나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이 일하는 집에서 숙박하며 지내고 있었다.


바로 이 방이 그런 가사도우미가 잠을 자는 방인데, 중산층 이상 홍콩 가정은 대부분 가사도우미를 채용하고 있다 보니 홍콩에서는 아파트 건축 시에도 그런 사회적 현상이 설계에 반영되어 아예 처음부터 가사도우미용 방을 현관문 근처에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좁은 방이었지만 그나마 이런 방조차 언제나 제공되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고, 여분의 방이 없는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 경우에는 낮에 자신이 일을 하던 부엌의 바닥에 누워 잠을 자야만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결국 이런 방이나마 얻게 되는 경우는 가사도우미에게는 큰 행운이었던 셈이었다. 이역만리 외국에까지 와서 잠잘 방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오가는 부엌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던 가사도우미들의 심정은 어땠을지....


한편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급여는 홍콩 정부에서 매년 가이드라인을 정해 주는데 2018년 기준으로 한 달에 받는 급여는 환화로 약 70만 원 수준으로 결코 큰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동남아에서는 이 돈이 적지 않은 돈이고 이 돈이라도 벌어서 고향으로 송금하기 위해서 많은 동남아의 젊은 여인들이 홍콩의 가정에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나오지만 우리들의 부모, 선배 세대도 과거 한때는, 광부나 궂은일 전담하는 간호사로, 혹은 건설 현장 근로자로 전 세계 여기저기 흩어져 돈을 벌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북한의 우리 동포는 아직도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다 한다. 정치인들이 무책임하고 무능해 결국 국가가 가난하면 결과는 모든 국민의 고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현대판 노예라 불리는 홍콩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1. https://mnews.joins.com/article/21683622

2.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834049&plink=ORI&cooper=NAVER

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319501?sid=104


화장실은 거실과 큰 방 두 곳에 있었는데, 거실의 화장실에 있는 변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스킹 테이프로 뚜껑까지 포함해서 여러 겹 감아 놓아 입주하고 나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 그 오래된 테이프를 떼어내느라 한참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사진) 왼쪽 사진은 큰 방 화장실, 우측 사진은 거실 화장실. 거실 화장실에는 샤워시설만 있었고 욕조는 큰 방 화장실에 있었다. 자세히 보면 우측 사진 변기에 투명 테이프가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부엌에는 싱크대와 세탁기가 있었는데, 고급 아파트였고 또 실제 임대료도 그만큼 비싼 아파트였지만 내가 아파트 완공 후 처음으로 입주하는 경우였음에도 싱크대나 세탁기 모두 고장이 나있는 상태였다. 싱크대는 위에서 물을 부으면 그 아래 파이프로 물이 바로 줄줄 새서 부엌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였다.


사진) 새집이었음에도 물이 줄줄 새던 부엌의 싱크대


또 싱크대 옆에 있는 세탁기는 세탁과정이 다 끝나도 문이 안 열리거나 또 역시 물이 줄줄 새서 관리실에 연락했는데 관리실에서도 고치지 못해 결국 제조업체의 서비스 센터에 직접 연락해서 약속 날짜를 정하고 수리를 받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참 황당하게도 빌트인 되어 있던 세탁기 배수구가 애당초 하수관에 연결조차 되어 있지 않아 물이 샜던 것이고, 문이 안 열렸던 것은 세탁기의 부품 자체에 문제가 있어 그 부품을 교체해야만 하는 경우였다.


홍콩 부임한 지 두 달여 정도밖에 안돼 시점이라 옷도 별로 없던 시절인데 세탁기 고장으로 세탁기에 넣었던 옷이 모두 젖은 상태 그대로라 출근할 때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매우 난감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이런저런 고생을 겪어가며 부엌을 어느 정도 제대로 돌아가게 해 놓고 전기밥솥 등 이것저것 기구들을 구입해서 제대로 된 부엌의 모습을 만들어 갔다. 아래 사진이 그렇게 완성된 부엌 모습인데 당시 사용하던 밥솥과 컵, 냄비 등이 사진에 보인다.


취사도구로는 가스레인지와 전기레인지 두 가지가 모두 다 구비되어 있었는데 레인지의 상단에 보이는 작은 모니터를 통해서는 라디오도 들을 수 있었고 또 방안이나 거실을 볼 수도 있었는데,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동안에도 아이를 관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 했다.


사진) Harbourside 부엌 모습. 창밖으로는 바다와 홍콩섬 야경이 보인다.


사진에 보이는 전기밥솥은 홍콩에 200여 개의 점포를 갖고 있는 JHC(日本城)라는 상점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JHC는 요즘 한국에 꽤 많은 다이소 같은 상점으로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한국 다이소보다는 취급하는 제품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가격도 매우 저렴해 홍콩 거주 기간 거의 매주 방문했던 곳이다.


이 부엌에서는 잊지 못할 해프닝도 한번 있었는데, 언제가 한 번은 갑자기 너무나도 청국장이 먹고 싶어서 침사추이에 있는 한국 식품점에 가서 청국장을 사서 두부와 양념 등을 넣고 이 부엌에서 한참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길래 나가 봤더니 아파트 보안인력 두 명이 그곳에 서 있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 신고를 받아서 인근에 있는 집들을 확인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부엌으로 들어오라고 하고서 단지 이 음식을 끓이는 중이었다고 말하려고 한참 끓고 있던 청국장찌개의 뚜껑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찌개 바로 앞에서 냄비 안을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던 보안인력이 거의 목이 꺾어질 정도로 급하게 목을 뒤로 빼며 오만상을 쓰고 질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에 거주했던 프랑스나 캐나다에서는 아파트 부엌에서 청국장을 끓일 엄두를 감히 내지도 못했겠지만 독한 냄새의 '취두부(臭豆腐)'도 잘 먹는 같은 동양인이라 괜찮을 줄로 알았는데 심하게 썩은 시궁창 같은 냄새가 나는 취두부를 먹는 홍콩인에게도 우리의 청국장 냄새는 그렇게 지독했던 것이었다.


(홍콩의 취두부 소개 블로그)

https://blog.naver.com/jerrysmart/50153205874


모두가 남향이라 창으로 들어오는 아열대 지방 홍콩의 강한 햇빛이 너무나뜨거워서 거실과 2개의 방 창에 걸 커튼도 길이를 측정해서 사 왔다. 그런데 측정을 잘못했던 것인지 커튼을 창에 걸은 후에 보니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그 길이가 창문 사이즈보다 모두 짧았다. 하지만 또다시 사러 가기도 좀 귀찮고 해서 사진 상의 저 상태로 약 3년 반 동안 그대로 살았다. 오로지 혼자 사는 사람만이 감행할 수 있는 그런 '귀차니즘'의 결과였던 것 같다.


사진) 햇빛을 가리는 창의 커튼이 모두 짧았는데 거실보다 방의 커튼은 더 짧았다 (2009. 4월)


위 사진 속에 보이는 화초는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화초인데, 커튼 길이는 짧아 좀 어색했지만 그래도 삭막한 집안 분위기 개선을 위해 어디서나 잘 자라는 이 화초를 몇 개 구해서 화분에 담아 집 안에 두었다. 화분은 역시 JHC에 가서 플라스틱 쓰레기 통을 산 후 안에 흙을 담아 만들었다. 참고로 과하지 않게 물을 적당히 잘 주기만 하면 화분 밑에 구멍을 뚫지 않아도 그 안의 화초는 잘 자란다.


홍콩의 기온은 한겨울에도 10도 이하로는 내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매우 습해서 그런지 겨울에는 꽤 춥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라디에이터를 하나 사서 사용을 했는데 빨래들은 밤새 이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놓으면 다음날에는 모두 말라 있었다. 그런데 빨래들이 수세미처럼 딱딱해지는 경우도 있어 그럴 때는 사진에 보이는 저 다리미로 펴기도 했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좀 지저분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독신자들 대부분은 이렇게 살고 있는 것 아닐지 모르겠다.


사진) 침대가 있던 큰 방. 라디에이터와 다리미 등이 보인다


평일에는 동료들이나 거래선들과 함께 주로 외부에서 저녁 식사를 했지만 주말에는 그들 대다수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했기 때문에 마땅히 만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주말에는 회사에 출근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홀로 저녁을 먹게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아래 사진이 그때 그렇게 홀로 식사할 때의 모습이다.


4인용 식탁이 별도로 있었지만 통상 식사할 때는 이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소파 앞 테이블에 음식을 갖다 놓고서 TV를 보면서 식사를 하곤 했었다. 사진이 어둡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밥그릇과 반찬들이 보인다.


사진) 저녁에 TV 보며 식사할 때 모습. 당시 카레를 자주 해 먹었는데, 테이블 위 노란색 음식도 카레다. (2009. 5월)


사진 속 소파 뒤쪽에는 전기 소켓이 하나 있었는데, 나중에 이사 갈 때 보니 한번 합선이 된 적이 있었는지 검게 그슬려 있었고 바로 앞에 있던 소파 가죽은 그 합선 시 발생한 불꽃 때문에 일부가 불에 타서 구멍이 나 있었다. 언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전혀 몰랐었는데, 어쩌면 큰 화재로 번질 뻔한 일이 다행히 큰 일 없이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꽤 좋았던 것 같다.


한편 이사를 갈 때 이 집주인은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는 애매하지만 어쨌든 합선으로 소파가 훼손되었으니 소파의 수리비를 반씩 나누어 부담하자고 해서 그렇게 동의하고는 수리비의 반을 지불했다.


아래 사진은 당시 집에서 혼자 식사할 때 주로 먹었던 음식 사진인데, 카레와 마늘 절임, 초이삼이라는 생야채, 생양파 초절임, 오이김치, 배추김치 등이 보인다. 음식 앞에는 작은 노트북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날은 TV 대신에 노트북으로 한국 영화를 보며 식사를 하고 있던 날이었던 것 같다.


사진) 홍콩 거주 당시 집해서 해 먹던 식사 (2012. 6월)


Harbourside는 법인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았고 또 경치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입주한 지 3년이 좀 넘는 어느 날부터 위층에서 전해지는 층간소음이 너무 심했다. 특히 주말에는 밤새 전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경비실에 불만을 전달하고 알아보니 그간 내 아파트 바로 위층은 비어 있었는데 얼마 전 누군가 새로 입주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말만 되면 사람들을 불러 밤새 무슨 마작 같은 것을 하는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너무 커서 정말 꼬박 밤을 새야 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1층 경비실에 연락해 항의도 여러 번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견디다 못한 나는 이사를 가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밤새 소음을 내는 위층 사람들도 물론 문제지만 그 비싸고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아파트가 층간소음에 그렇게까지 취약했다는 것도 정말 의외였다.


홍콩 부임 초기에 3년 반 정도를 거주했던 Harbourside는 입주 초기부터 싱크대 및 세탁기 고장 등으로 다소 황당한 불편을 겪기도 했던 곳이었지만 그래도 너무도 멋진 홍콩섬 야경과 바다를 볼 수도 있었고, 창문 가득 들어오는 찬란한 햇살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론 이 아름다운 집이 3년 여가 지나서 위층에 누군가 새로 입주한 이후에는 지독한 소음으로 매일 시달려야 했던 정말 들어가기 무서운 그런 집으로 돌변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의 세월이 지나고 난 이제 다시 생각해 보면 밤새 잠 못 자게 만드는 고문과 같았던 그 끔찍한 고통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그저 아름다운 홍콩 앞바다의 경치와 찬란했던 햇살이 가득했던 스위트 홈이라는 기억만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것들 중심으로만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참 편리한 능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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