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세상으로

■ 그 출장자의 서글픈 기억들 (8편 중남미-01)

by SALT

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장으로 방문했던 그 시절 중남미 도시들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중남미



1. 지구 반대편 세상으로


어학을 전공했던 나는 회사 입사 후 1986년 8월 수출부로 배치받았다. 그리고 전공이 불어였으니 수출부에서 당연히 프랑스나 유럽 지역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 유럽 담당 부서에는 신입 사원 수요가 없었다. 반면 중남미 담당 부서에는 충원을 해야 할 자리가 있어서 나는 예상외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대부분인 중남미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멋진 유럽의 선진국들을 출장 다니며 거래선들과 미팅하는 그런 꿈을 꾸어 왔는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치안이 지극히 불안하고 경제적으로는 한국과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열악했던 지구 반대편 중남미 국가들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프리카 지역을 담당하지 않았던 것만도 행운이었다.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던 국가가 많았던 아프리카에는 독립 후에도 여전히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가 많다 보니 대학동창 중에는 이런 아프리카 담당 부서로 배치받는 사례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중남미가 유럽보다는 분명히 못하지만 그래도 아프리카와 비교한다면 일반적으로 훨씬 더 선호되는 지역이었다.


요즘은 아프리카도 좀 바뀌었겠지만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 출장 한번 갔다 온 선후배들은 출장 이후 한동안은 퇴근 후 술자리에서 그들이 아프리카 출장 중 체험했던 무용담들을 끊임없이 풀어놓곤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걷다 보니 거리 곳곳에 밤 사이에 사망한 사람들의 시체가 즐비했다거나, 눈앞에서 쥐고기를 먹는 걸 봤다거나, 떼강도를 만나 돈을 모두 다 털렸다는 등 간담이 써늘한 얘기들을 하곤 했었다. 당시 중남미도 치안 등 여러 면에서 열악한 부분이 많았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렇게 중남미 지역 몇 개국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요즘이야 해외의 거래선들은 그 지역에 진출해 있는 회사의 해외 법인이 관장하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에 우리 회사의 법인이 거의 전무하던 그런 시절이었고 따라서 본사의 지역 담당자가 해외 거래선들과 직접 교신하며 영업을 했었다.


그런데 중남미는 한국과는 시차가 정반대라 일과 중 중남미 거래선과 교신하기는 어려웠고, 필요 사항을 퇴근하기 전에 Telex로 발송해 놓으면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해서 밤 사이에 들어온 답을 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퇴근 전 Telex 발송을 못하면 다음 날이나 Telex를 발송할 수 있어서 결국 상대방의 답도 하루 더 걸려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퇴근 시간만 임박하면 Telex실 직원들이 퇴근하기 전에 Telex를 발신하려고 거의 매일 Telex실로 뛰어가곤 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몇 년 후부터 굳이 이렇게 Telex실로 뛰어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Telex가 사라지고 훨씬 더 편리한 Fax가 새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Telex실 뛰어갈 필요 없이 각 부서에 설치된 Fax 기계를 통해서 직접 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컴퓨터가 더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e-mail이 등장해 이후에는 e-mail로 더 간편하게 해외에 있는 거래선과 교신하는 시대가 이어져 왔다. 다음으로 최근에는 메신저 마침내 활용되게 었다.


되돌아보면 직장 생활 약 30여 년의 기간 중에 Telex, Fax, e-mail, 메신저 등 4개 통신 수단을 순차적으로 거쳐가며 사용해왔던 셈이다.


(텔렉스를 아시나요?)

https://zdnet.co.kr/view/?no=20200928113251&from=pc




중남미 국가들 중에도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 또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Jamaica나 Dominica 공화국, Brazil 등처럼 영어나 불어 그리고 포어를 사용하는 다소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외 거의 모든 중남미 국가는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중남미는 물론 심지어 북미 상당 부분도 과거에는 스페인의 해외 영토였기 때문이었다.


(1700년대 말 미주 대륙의 스페인 영토)

https://en.wikipedia.org/wiki/Spanish_colonization_of_the_Americas#/media/File:Imperios_Espa%C3%B1ol_y_Portugu%C3%A9s_1790.svg


그런데 이렇게 대륙 거의 전체가 스페인어라는 한 언어만을 사용하다 보니 중남미 출장 가면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모르면 심지어 화장실조차 찾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곤란한 경우에 처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국 중남미를 담당하고 중남미에 출장을 가려면 최소한의 '생존' 스페인어는 구사할 수 있어야 했는데 다행히 불어를 전공했던 내게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스페인어나 불어 모두 동일한 라틴어계에 속하는 언어로 문법이나 단어에서 상호 유사한 것이 너무나 많았고 알파벳은 99% 이상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어가 한국어와 문법이 유사해 배우기가 다른 외국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자가 완전히 달라서 일본어를 배우려면 글자부터 배워야만 한다. 하지만 스페인어는 글자까지도 불어와 거의 같아서 배우기 훨씬 더 수월했던 것이었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의 'en(엔)'과 불어의 'en(앙)'은 모두 '~에서'를 의미하는 전치사인데, 발음만 좀 다르고 철자는 100% 동일하다. 불어의 남성 정관사 'le(르)'는 스페인어 경우 철자 앞뒤만 바뀌어 'el(엘)'로 사용된다. 여성 단수형 정관사는 두 언어에서 모두 'la(라)'로 동일하다. '무엇'을 의미하는 'que'란 대명사도 두 언어에서 동일하며 발음만 '께'와 '끄'로 좀 차이가 있다.


두 언어가 이처럼 유사점이 많아서, 일부 독학도 좀 하고 또 중남미 출장을 다니며 현지 경험을 좀 하다 보니 얼마 되지 않아 물건을 사거나 인사를 나누는 등의 '생존'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기도 했다.


다양한 언어 중에 특히 불어 발음이 매우 듣기 좋다고 한다. 하지만 경험에 의하면 스페인어도 정말로 아름답게 들린다. 중남미에 출장 가면 한국과는 시차가 완전히 반대라 때로는 비몽사몽 간 마치 한밤중 꿈속에서 듣는 것처럼 공항 안내 방송을 듣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시절 들었던 공항 안내 방송의 아름다운 스페인어 발음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공항 안내 방송은 "신사숙녀 여러분 주목해 주십시오"라는 문구로 항상 시작되었는데, 공항 천장 아래 홀 전체로 울려 퍼지는 이 멘트가 정반대 시차와 장기간 이어진 해외출장의 피곤 등으로 지쳐서 다소 몽롱한 정신 상태에 있던 내게는 꿈속에서 들리던 것 같은 아름답고도 몽환적인 스페인어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공항 안내 방송 서두 문구 스페인어 발음)

https://translate.google.co.kr/?hl=ko&sl=es&tl=ko&text=atenci%C3%B3n%20por%20favor%20se%C3%B1oras%20y%20se%C3%B1ores&op=translate




군 복무 후 회사에 복직한 지 만 2년도 안된 1988년에 아직 초짜 신입사원이었지만 드디어 나도 선배들처럼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다.


요즘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다니는 시절이지만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던 88년만 해도 해외여행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갈 수가 있었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아예 여권 자체가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수출을 하는 기업에 다니던 직원들은 비교적 쉽게 여권을 받을 수 있었고 또 실제로 업무 때문에라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자신이 담당하는 국가로 출장을 가야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규제가 많았던 시절이라 출국하기 전에는 반드시 장충동의 '반공 연맹'이라는 곳에 가서 반공 교육도 받아야 했고, 예비군은 김포 공항에 파견되어 있는 병무청 사무실에 출국 전 반드시 서면 신고까지 해야 했다.


(과거 반공연맹 건물)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rchur&logNo=40163253595


반공 교육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예비군 출국 신고 같은 절차는 요즘에는 정부 부서들 간을 연결하는 컴퓨터로 자동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그 당시만 해도 자동화가 안 되어 있던 시절이라 그런지 출국 시 일반적 출국 수속과는 전혀 별개로 또다시 예비군 출국 신고를 해야 했었다.


신고를 안 하고 출국하면 나중에 예비군 문제와 관련된 꽤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기도 했는데, 공항에서 시간에 쫓겨 서두르다가 이 신고를 깜박 잊고 출국할 뻔한 경우가 적지 않아 당황하기도 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가면서 반공 교육은 1992년에, 공항에서의 예비군 신고는 2000년에 모두 다 폐지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제도들은 이제는 오래전 과거의 흐릿한 추억으로만 남게 된 셈이다.


(반공 교육받던 그때를 아십니까?)

https://news.joins.com/article/23306474

(연도별 해외 여행객 수 추이)

https://news.joins.com/article/23261303


한편 해외여행 자체가 워낙 드물던 시절이다 보니 어쩌다가 혹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도 그저 일본이나 홍콩 등 가까운 인접 국가나 좀 멀면 미국에 가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담당 지역이 중남미다 보니 출장을 갈 때는 요즘에도 쉽게 가기 어려울 한국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진 중남미로 언제나 가곤 했었다.


학창 시절 지리 시간에 한반도에서 가장 먼 곳, 즉 대척점이 중남미 지역 '우루과이' 앞바다라는 것을 배운 기억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먼 중남미로 매년 적어도 1회 이상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 한반도 지구 대척점을 배우던 그 순간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중남미는 정말 멀었다. 너무 멀어서 동아시아에서 중남미 브라질로 가는 직항 노선도 없었다. 따라서 중남미로 출장 가려면 먼저 미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중남미 가는 항공기로 환승해야 했는데, 미국까지 12~13시간 정도가 소요됐고 미국에서 브라질 상파울루까지는 또다시 10~11시간 정도 더 내려가야 했었다.


결국 적어도 24시간 정도를 그렇게 비좁은 이코노미석에서 버터야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얘기인데 물론 그 당시는 한참 젊은 20대였지만 그럼에도 그 정도 장시간 항공기 안에서 시달리다 목적지에 내리면 녹초가 되다시피 했다. 당시 1년에 한 번 정도는 다니곤 했던 출장은 이렇게 힘들게 다녔는데 그래도 역시 젊어서 그랬는지 출장 간다면 마치 소풍 가는 것처럼 마냥 좋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인천 공항에서 상파울루 이동 체험기)

https://photo131.tistory.com/898


그런데 요즘에는 중남미처럼 장시간 항공기를 타고 가야만 하는 곳에 출장을 가게 되면 회사에서 사원에게도 비즈니스 클래스를 허용해 준다 한다. 내가 사원이던 시절에는 오직 임원들에게만 주어졌던 혜택이었는데 너무 부럽고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날 걸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해외 국가, 그것도 이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중남미 국가들을 방문해 보니 문화적인 충격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들이 삶을 사는 방식이 내가 한 평생 살면서 봐왔던 한국인의 방식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었다.


오직 한국에서만 살다 처음으로 해외 국가를 가 보니 그런 차이에 꽤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인데 방문지도 좀 더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또는 동남아도 아니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가들이다 보니 차이가 가 훨씬 더 컸던 같다.


미국을 거쳐 도착한 첫 번째 해외 방문 국가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도미니카(Dominican Republic)'였다. 이후 방문했던 중남미 국가들은 언제 어떤 순서로 방문했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내 생애 첫 번째 방문했던 해외 국가가 '도미니카'였다는 것만큼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고 그때 그 첫 해외 국가에서 받았던 강열한 기억들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뚜렷하게 남아있다.


과거 여권을 분실해 이제는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88년도 첫 번째 해외 출장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약 15개 정도의 중남미 및 미국 남부 도시들을 방문했었다.


숨이 턱턱 막힐 듯이 강렬한 중남미 태양 아래서 경험했던 그 도시들에 대한 기억은 이제 반(半) 수면 상태의 회색 빛 잔상으로만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잔상의 기억들을 다음 편부터 도시별로 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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