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장으로 방문했던 그 시절 중남미 도시들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산토도밍고, 도미니카공화국
Santo Domingo, DOMINICAN REP.
2. 꼬리표의 나라 (2-1)
북미와 남미 사이에 있는 카리브해(海)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다. 이 섬들 위에 수립된 독립 국가 수만 20여 개가 되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의 해외 영토로 포함된 섬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30여 개가 넘는다.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만들어진 사회주의 국가 Cuba, 조세 피난처로 잘 알려진 Virgin Islands, 레게 음악 원산지로 유명한 Jamaica 등이 모두 이러한 카리브해 섬들 중 하나인데,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도 있지만 과거 한 때 이 지역의 수많은 섬들에는 꽤 많은 유럽인 해적들이 활동을 했었다 한다.
한편 이곳 섬들 중에는 '도미니카'라는 이름이 붙은 국가가 공교롭게도 두 개가 있어 때로는 혼선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두 개 도미니카 중 좀 큰 국가가 Dominican Republic (도미니카 공화국, 인구 약 1천만)이고, 둘 중 작은 국가가 Commonwealth of Dominica(도미니카 연방, 인구 약 7만 4천)인데, 과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도미니카 연방은독립 후 현재도 영연방 회원국인 반면, 영국 지배를 받았던 적이 없는 도미니카 공화국은 영연방 회원국이 아니다.
스페인어와 영어의 'Dominica'라는 단어는 모두 라틴어의 'Dominicus'에서 유래된 단어인데, 라틴어에서 이 단어는 '주님께 속한 것' 또는 '주님의 날, 즉 일요일'을 의미한다. 이제는 종교적 색채가 많이 퇴색됐지만 두 섬 모두 원래는 바로 이런 종교적 배경에서 스페인인들에 의해 공교롭게도 동일한 이름으로 명명된 것이었다.
요즘에는 해외 거래선은 현지에 설립되어 있는 우리 회사의 법인에서 담당한다. 하지만 해외법인이 거의 없었던시절인 90년대에는 서울 본사의수출부에 있던 각 지역 담당자가 해외 거래선들을 직접 담당했었다. 이런 배경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에도당시 내가 담당하던 거래선이 있었고, 또 담당 거래선이 있다 보니 출장도 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인구 약 7만의 도미니카 연방은 인구 및 시장 규모가 너무나 작아서 본사에서 직거래하는 거래선이 없었고 그런 이유로 출장 갈 기회도 역시 전혀 없었다.따라서 이 글에서 언급하는 도미니카는 모두 내가 출장을 갔던 좀 더 큰 시장 도미니카 공화국을 의미한다.
도미니카는 사실은카리브해의 유명한 휴양지였다. 80년대 말 해외여행이 너무나 귀하던 그 시절에는 한국에서는 감히 해외 여행지로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멋진 휴양지가 바로 이 도미니카였는데, 나는 운좋게도 회사에서 이 섬나라를 담당했었던 덕분에 그 먼 지구 반대편의 아름다운 카리브해 섬나라 도미니카를 1988년과 90년대 초그 이른 시절에도 두 번씩이나 방문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너무나 멋진 해안가와 바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도미니카였지만 그 당시 이 국가로 출장을 가는 과정이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첫 번째 출장 때는 우선 원래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잘못 내릴 뻔했다. 도미니카의 수도 Santo Domingo가 내 목적지였는데 미국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도미니카 공항에 도착하길래 짐을 들고 내리려 했더니 뭔가가 좀 이상했다. 항공기에서 내리려는 승객이 2~3명밖에 안되었고 나머지 승객들은 전혀 내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내리려고 출구 쪽으로 가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내리기 직전 주변 승무원에게 물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 아니냐"라고, 그때 승무원이 어디 가냐고 되묻길래 당연히 도미니카의 Santo Domingo 간다고 답을 했더니 여기도 도미니카인 것은 맞는데, 이곳은 Santo Domingo가 아닌 Puerto Plata란 도시라는 것이었다.
도미니카의 면적이 남한 면적의 반도 안되는데도 알고 보니 미국에서 출발한 그 도미니카 국적기는 Santo Domingo 직항 항공기가 아니었고 그 좁은 도미니카 영토에서도 몇 차례 착륙을 거친 후 Santo Domingo로 가는 그러한 완행 열차 같은 항공기였던 것이다.마치 서울에서 도쿄로 가는 항공기가 일본 내의 몇몇 도시들을 경유한 후 도쿄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경우였던셈이었다.
당연히 직항일 것으로 생각을 했던 나는 좀 어이가 없기도 했는데, 그래도 주변 분위기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과감하게 그곳에서 내렸더라면 정말 크게 생고생할 뻔했는데 마지막 순간에나마 상황을 파악해 정말 다행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정말 더 큰 불운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미국에서 갈아탄 도미니카 항공이 내 수하물을 하나도 싣고 오지 않은 황당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것도 실수로 못 실은 것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안 싣고 온 것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수하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모든 짐이 다 나왔는데도 내 짐만은 나오지 않았다. 항공사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놀랄만한 답을 들었다. 그의 답은 "도미니카로 오는 사람들의 수하물이 너무나도 많아서당신 수하물은 그 항공기에는 실리지조차 못했고, 아마도 다음 항공기로 올 것 같다."는 것이었다.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고 짐을 적재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에게 그러면 나는 당연히 클레임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해서도 그는 역시 너무나 당당하고 명쾌한 답을 했는데, "미안한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비용을 부담할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미니카인들이 보따리 장사처럼 미국에서 사 가지고 오는 물건들이 너무나많아서수하물은 언제나 항공기의 적정 적재량을초과했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항공사도 한꺼번에 모든 승객의 수하물을 다 싣지는 못하고 다음 항공편으로 분산해서 실고 오곤 했던 것이 관행이었던 것이었다.
즉 그런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었는데, 도미니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야 며칠 뒤에라도 짐만 오면 그때 찾으면 되지만, 나는 2박 후에는 바로 다시 다른 중남미 국가로 출장을 가야 했으니 그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짐은 결국 내가 도미니카를 떠날 때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도미니카가 약 보름간으로 예정된 중남미 출장 일정 첫 번째 도착지였던 터라, 그곳에서 짐을 잃은 나는 이후 나머지 국가 방문 시에는 갈아입을 옷조차 전혀 없게 된 상황에서 다녀야 했다. 찌는 듯 무더운 중남미 도시들을 짙은 청색 양복 하나로 보름이상 버텨야만 했던것이었다.
도미니카가 내 인생 첫 번째 해외 방문 국가였는데, 아무런 짐도 없이 도착하게 됐고, 그로 인해 이후 보름 정도나 정말 꾀죄죄한 모습으로 중남미 각국을 돌아다니게 되는 잊을 수 없는 참사를 겪게 된 것이었다.내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의 해외여행이자 이후 약 30년간 이어진 직장 생활의 첫 해외 출장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었다.
약 보름이 지나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니 도미니카에 같이 갔던 파나마 주재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마침내 내 짐이 도미니카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안의 팬티, 내의 등 모두 새것이고 당시 가져갔던 한국 음식물도 이젠 필요 없으니 모두 파나마에서 쓰고 양복만 보내달라고 했다.
한편 내 첫 번째 해외 여행에 이처럼 쓰디쓴 기억을 남겨준 그 도미니카 항공사는 이후 1995년에폐업을 해서 이제는 희미한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사실 이 항공사의 항공기는 정말 낡았었는데, 좌석에 앉으니 앞 좌석 등받이 커버가 벗겨져 등받이 안의 철제 뼈대가 모두 다 훤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게다가 운항 중에 항공기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정말 이러다 지구 반대편에서 추락해서 카리브해에 빠져 죽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긴장해야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긴장했던 것은 도미니카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항공기가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모두 열렬히 박수를 치길래 무슨 일인가 했는데 무사한 착륙을 축하하는 박수라 했다.
하지만 나중에 겪어보니 항공기가 착륙하면 이렇게 박수를 치는 것은 중남미에서는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우리와는 다르게 기쁨이나 슬픔 등의 감정들은 바로바로 표현하는 중남미인들의 낙천성이 물씬 배어있는 그런 관행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방문 시는 '김'이 문제였다. 첫 번째 출장 시 신세를 많이 졌던 도미니카 거주 대학교선배에게 김을 선물하려고 한국에서 김을 사 가지고 갔었는데, 공항 통관 시 세관에서 음식물이라며 문제를 삼아 전량 압수하더니 별도의 후미진 사무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 보니 김을 압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김을 대가로 뒷돈을 받아내려고하는 분위기가 너무도 역력했다. 나는 일단 알았다고 말하고는 그 사무실을 나왔다.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도미니카 출장을 같이 다니기로 했었던 파나마 지점의 선배 주재원도 나보다는 다소 늦게 그즈음 도미니카공항에도착했다. 내가 믿고 있던 구석이었던 바로 그 선배가 마침 도착한 것이었다. 이 선배는 스페인어를 현지인과도 구분이 안될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했었고 또한도미니카도 여러 번 출장 다녀서 현지 실정에도 매우 밝았다.
그 선배에게 내 김이 볼모로 잡혀있다는 보고(?)를 했더니 그 선배는예상대로 전쟁터에 막 출전하는 군인처럼 갑자기 옷깃을 세우고 시커먼 선글라스까지 꺼내 끼더니 바로 김이 있는 사무실로 가서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나도 빠른 속도의 스페인어로 뭔가를한참 말을 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압수당했던 김을 모두 회수할 수 있었다. 물론 뒷돈 같은 것은 전혀 주지 않았다.
그날 공항 세관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 선배는 심지어 스페인어에서는 매우 심한 욕인 'Puta madre'라는 욕도 현지인들에게 너무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보기도 했는데 원래 그렇게 다혈질이었는지 아니면 중남미 장사하면서 성격이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화끈해 보이기는 했다. 'Puta madre'라는 욕은 번역하기는 좀 부적절한데 어쨌든 한국 욕 중에도 있는 어머니와 연관된 욕과 비슷한 욕이다.
그다지 큰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별로 잘 살지도 못하는 도미니카였음에도 역시 동양인에 대해서는 일종의 차별과비슷한 감정이 있다는 것도 때로는 느낄 수 있었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좀 불분명해서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너무도 뚜렷하게 티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알아서 먹으라는 식으로 대충 설명하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다.
또 호텔 외부에 전화할 일이 있어호텔 교환원에게 전화로 수신자 번호를 알려주었는데 엉뚱한 곳에서 전화를 받길래 다시 전화해 혹 영어를 잘 못 알아들었나 싶어서 이번에는 스페인어로 전화번호를 불러줬더니 대뜸 "내가 너보다 영어 잘하는데 이전에는 네가 다른 번호 알려줬다"라고 반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남겨놓은 녹음기록이 전혀 없으니 누구에게 잘못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긴 어려웠지만 어쨌든 고객에게 대하는 일반적인 말투만은 분명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