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여기도 치안이 문제....

■ 그 출장자의 서글픈 기억들 (8편 중남미-12)

by SALT

80~90년대 중남미 출장 다닐 때의 기억들......



멕시코시티와 티후아나, 멕시코

Mexico City & Tijuana, MEXICO



12. 여기도 치안이 문제....


1980년대 말부터 중남미 출장 다니면서 예전의 아날로그 사진기로 부지런히 찍어두었던 귀한 사진들은 안타깝게도 모조리 분실했다. 당시 내 기억에 새겨졌던 그 시절의 중남미 모습들은 이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된 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딱 한 장 그 시절 사진이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아래 사진이다. 이 사진은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피라미드 유적지에서 찍은 것인데, 그 당시 멕시코 지점 주재원과 주말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다. 멕시코 출장은 유난히 자주 가게 되어서 5번 정도 갔던 것 같은데 이 사진은 첫 번째 출장인 1988년도에 찍은 것으로 생애 처음으로 해외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으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사진) 멕시코 아즈텍 피라미드 앞에서 찍은 20대 시절의 사진. 나이 든 현재의 내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한편 이 사진에 내가 입고 있는 옷들은 내 것이 아니고 모두 주재원이 준 옷이었다. 멕시코 이전 방문했던 도미니카에서 옷을 포함한 짐이 들어 있던 가방을 몽땅 분실해 양복 달랑 한 벌 이외에는 입을 옷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우선 도착해 그곳에서 도미니카 항공기로 갈아탔는데 몹시 황당하지만 그때 승객들의 수화물이 너무 많아 항공사에서 일부 짐을 의도적으로 적재하지 않았고 그렇게 제외된 짐에 내 짐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중남미에서는 정말로 상상할 수 있는 사고들은 거의 모두가 발생하곤 했는데, 그렇게 항공기가 내 짐을 싣지 않고 오는 덕분에 나는 무려 20일에 걸친 해외 첫 출장 기간 내내 같은 양복 한 벌만 입고 그 더운 중남미 국가들을 돌아다녀야만 했었다.


한편, 지금이야 멕시코에 수백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판매 법인뿐 아니라, 공장까지도 여러 개가 있지만 1980년대 당시에는 멕시코에는 법인도 아닌 지점만 하나 있었고 그런 지점도 주재원은 달랑 명만 근무하던 1인 지점이었다.


그런데 그 1인 지점 주재원이 마침 본사에서 나와 같은 수출 부서에서 근무하던 선배였는데, 당시 막 설립되었던 멕시코 지점에 부임한 지가 얼마 안 돼서 가족이 아직은 멕시코로 오기 전이었고 따라서 주말에 혼자서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하니 때마침 출장 왔던 나를 데리고 이 유적지를 방문하는 특전을 베푼 것이었다. 아울러 짐을 모두 잃어버려 양복 한 벌밖에 없다고 하니 자신이 입던 옷까지도 내주어서 덕분에 나는 한 벌 남은 유일한 옷인 양복 대신에 가벼운 그 옷들로 갈아입고 피라미드 구경하면서 저렇게 사진까지도 찍을 수 있었다.


만일에 그 주재원 가족이미 도착해 있었다면 그 선배는 당연히 가족들과 주말 시간을 온전히 보내려고 했을 것이고 따라서 동서남북조차 구분 못했던 나는 유적지 방문은커녕 악명 높은 멕시코의 치안 현실을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호텔 근처에 있는 가까운 곳이나 혼자 돌아다니며 지루한 주말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한편 그날 그 선배 집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면서 그 선배가 멕시코에 부임해서 인도받은 지 채 1주도 안 된 새 차 문 흠집을 내는 대형 사고(?)를 저지르기도 했다.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 때 주차장 벽에 부딪힌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유명한 멕시코 유적지까지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구경시켜 주고 또 자신의 옷까지 내준 그 선배의 은혜를 그의 새 차에 흠집 내는 것으로 갚았던 셈이다. 하지만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후배들에게 꽤나 까탈스러웠던 그 선배가 웬일인지 이 날은 엄청나게 짜증이 났을 법한데도 잠시 인상은 쓰면서도 이상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아 꽤 의외였다.


그때 본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예상보다도 훨씬 더 웅장했고 또 주변의 풀과 어우러져 다소 신비스럽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 중남미의 피라미드를 보면서 이집트 피라미드와 고구려 장군총 같은 유사한 형태의 건축물이 전 세계 곳곳, 특히 오래전부터 분리되어 있던 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꽤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 바벨탑의 전설처럼 인간은 원래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원형이 되는 어떤 원시적인 기억이 인종 및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남아 있어서 와 같은 유사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즈텍 유적지 모습)

https://m.blog.naver.com/finance20/221154728104




인구가 1억 3천 수준인 멕시코는 시장이 비교적 큰 편이라 당시 우리 회사와 직거래하던 거래선들도 다수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모랄(Moral)이란 이름을 가진 거래선도 있었다. 그런데 한 번은 이 회사의 사장 일행이 한국에 출장을 와서 상담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 상담에는 내가 이 거래선 담당이었으니 당연히 참석했고 과장님 그리고 해당 제품 관련해서는 수출 총책임자 격이신 부장님까지도 참석했었다. 그런데 상담 중 부장님이 민감한 가격 관련 얘기를 한참 열변을 토해가며 하고 있는데 바로 그때 갑자기 거래선 사장이 휴지를 꺼내더니 열심히 말하던 부장님 바로 면전에서 부장님을 빤히 바라보면서 코를 푸는 것이었다. 그것도 회의실 전체에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코를 풀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 상담하는 대형 회의실에서의 상담도 아니었고 6인용 작은 회의실에서 상담하던 중이라, 상대방 얼굴 불과 30여 센티미터 앞에서 그렇게 심하게 코를 풀게 된 상황이었는데 부장님도 다소 황당하셨는지 한동안 말을 멈추셨고, 과장님과 나는 그런 돌발 상황에 놀라서 부장님 눈치만 슬금슬금 볼 수밖에 없던 무겁고 어색한 적막이 잠시 흘렀다.

하지만 상대방 거래선 측에서는 민망해하거나 별다른 특이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러한 거래선에게 중요한 가격 얘기하는데 왜 갑자기 면전에서 코 풀었냐고 묻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보니, 그저 잠시의 황당한 적막을 거쳐서 상담은 다시 계속 진행되었다.


그날 상담은 그렇게 끝났는데 상담 중에 보였던 그 거래선 행동이 너무도 의아해서 몇몇 사람들에게 나중에 확인을 해 보기도 했는데 의외로 서구권에서는 앞에서 심지어 식사 중에도 코 푸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전혀 아니라 했다. 물론 그 거래선이 좀 더 사려가 깊었다면 그러한 서구 문화와는 다소 다른 한국의 문화를 배려해서 더 조심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한 행동이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자체를 애당초 전혀 몰랐을 것이니 사전에 조심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문제점에 대해서는 비록 거래선이라도 꼭 언급하고 때로는 강하게 표현하기로 유명했던 그 부장님도 이 일로 우리에게 뭐라고 하신 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해외 주재 경험이 많다 보니 그런 문화적 차이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코푸는 것이 실례인지?)

1. http://www.c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19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hadookim&logNo=221060364551




서울에는 꽤 오래전 1899년에 이미 전차가 도입되었지만 이후 지하철이 본격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서울 시내의 전차 운행은 1968년에 모두 종료되어 이제는 더 이상 전차를 볼 수 없고 역사 속의 기록에서만 찾을 수가 있다. 그런데 80년대 말에 출장을 가보니 멕시코 시티에는 여전히 시내에 전차가 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멕시코 시티의 전차 모습)

http://www.tramz.com/mx/mc/mc75.html


그 전차를 보고 일종의 유치한 자긍심 같은 것이 발동되어, 서울에도 오래전에는 전차가 다녔지만, 이제는 훨씬 빠르고 편리한 지하철이 생기면서 모두 없어졌다고 멕시코 지점의 현지인들에게 자랑하듯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말을 옆에서 듣던 나이가 지긋하신 현지인 간부가 멕시코에도 오래전부터 이미 지하철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 외에 전차도 아직까지 운영되는 이유는 차량 매연으로 인한 공해를 조금이나마 감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내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설명은 실제로는 사실 관계를 좀 제대로 파악하고 너네 나라 자랑을 하라는 말을 나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실제로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보다도 훨씬 더 잘 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도 전차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던 것처럼 유럽이나 일본 선진국들의 대도시에도 전차가 운영되고 있는 곳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한 객관적 사실을 전혀 모르고 마치 멕시코가 한국과 비교해 너무나도 낙후된 것처럼 표현을 했으니 연세가 지긋하신 그 멕시코인 간부가 정중하게 면박을 준 셈이었다.


과거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중남미 대다수 국가보다도 훨씬 못 살던 한국이 80~90년대 들어서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멕시코 같은 국가에 꽤 다양한 한국 제품들을 수출하고 또 국민 소득마저도 멕시코를 능가하게 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왜곡된 자긍심을 갖고서 중남미 출장을 다니곤 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마치 역시 지난 수십 년간 경제가 급성장을 해서 벼락부자가 된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이제는 주변국을 무시하기 일쑤이며 또한 중국 우월주의에 빠져서 주변국 국민 모두를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것과 같은 그런 아둔한 실수를 나 역시 그 시절 똑같이 범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과 멕시코 연도별 인당 GDP 추이)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NY.GDP.PCAP.CD?locations=KR-MX




대다수 중남미 국가의 공통적인 문제지만, 멕시코의 치안도 역시 너무 좋지 않았다. 최근 기사지만 아래의 기사를 보면 2021년 강도가 멕시코 어느 한국 식당을 습격해 총격전이 벌어진 경우도 검색하다 보니 찾을 수가 있었다. 식당에서 강도가 총으로 손님을 위협했고 마침 역시 총을 갖고 있던 손님이 이에 대응해 실제로 사격까지도 하는 바람에 강도가 총상을 입고서 도주했던 것이다. 꽤나 운이 없는 강도였던 셈인데, 어쨌든 서울에서는 상상조차 하기가 어려운 이러한 총격전이 멕시코 시티에서는 발생하고 있는 것이었다.

(멕시코 한국 식당에서의 총격전)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224500011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었지만, 90년대 멕시코 출장을 다니던 시절 동료 출장자 역시 멕시코 시티의 도심 한복판 번화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먹다가 떼강도가 들어와 돈을 몽땅 다 털린 경우도 있었다.


그 동료는 멕시코 지점 주재원과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을 든 강도들이 들어오더니 모두 바닥에 엎드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손님들은 당연히 강도 말대로 모두 바닥에 엎드렸는데 동료는 그 상황에서도 돈을 다 뺏기는 것이 너무 아쉬워 누워 있는 상태로 손을 주머니로 뻗어서 지갑을 뺀 후 양말에 숨기려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바로 발각되어 강도중 한 명으로부터 권총으로 뒤통수를 맞고 그대로 졸도했던 것이었다.


한편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상황에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위 언론 기사에 나온 사례처럼 지갑이 아니라 권총을 꺼내려는 것으로 강도들이 오인해서 곧바로 대응 사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료가 당한 이 사고는 한동안은 술자리의 우스개 거리로도 자주 회자되었던 얘기였지만, 실제 그 당시에는 주재원이나 동료 모두 꽤 긴장했었을 것이다. 강도가 총을 들이댄다는 것만 생각하면 누구라도 등골이 오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군대에서 사격장 교관으로 근무를 했다. 그렇게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사격장에서는 장난으로라도 절대로 사람에게 총구를 들이대지 말라고 너무도 강조해서 주의를 환기시켰는데, 간혹 사격장에 와서 꽤 긴장한 상태에 있던 훈련병이 총이 발사가 안 될 때는 무의식적으로 교관이었던 내게 총구를 들이대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문의해 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처하면 정말 일단 이 총구에서 벗어나자는 생각밖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사격장에서 발생하는 총기류 오발 사건들이 예상외로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제 총알이 장전된 총의 총구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느낌인지를 너무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멕시코 치안이 이렇게 안 좋다 보니, 멕시코에서 인근 국가 주재원 수 십 명이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면, 회의 종료 이후에 시내의 식당으로 이동하거나 거리 걸어 다닐 때는 법인에서 고용한 사설 경호원들이 우리들 일행을 주변에서 따라다니며 경호해 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에스코트를 해 주니 좀 안심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문제는 소매치기나 좀도둑 같은 잡범이 아니라 실제로 총을 든 떼강도를 만나게 되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과연 그 경호원들이 자신들 목숨을 걸고서 우리를 지켜줄 것인지는 사실 의문이었다. 그런데 중남미 주재원 다수의 의견에 의하면 그러한 의문의 답은 "지켜주지 않는다"가 더 냉정한 현실이라고 했다.


멕시코 북부 띠후아나(Tijuana)란 도시에는 우리 회사의 현지 공장도 있었다. 그런데 이 도시는 미국 바로 옆에 있는 접경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띠후아나 공장에서 근무하는 주재원들은 치안, 자녀교육 등을 이유로 멕시코 영토 안에 거주하지 않고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인 국경 너머 미국 영토 샌디에이고(San Diego)에 거주하며 멕시코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재 발령은 멕시코로 받았지만 주거지만은 미국 땅이었던 셈인데, 멕시코 치안이 워낙에 좋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어서 본사에서도 이러한 관행을 용인했었다.


나중에 주재했던 캐나다 법인도 이 띠후아나 공장에서 일부 제품을 공급받고 있어서, 캐나다 주재 근무 시 업무 협의를 위해 띠후아나를 직접 방문할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역시 듣던 소문대로 테러와 갱단 등이 워낙에 난무하는 지역이다 보니 현지인 근로자들이 제대로 통제가 되지 못하는 그러한 분위기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공장에는 한국 교민 여성 직원도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 얘기를 들어보면 분명 회사 공장 내부였지만 그럼에도 생산라인이나 창고 같은 곳에는 겁이 나서 혼자서는 절대로 가지 못한다고 할 정도였다. 회사 안에 있는 공간이었어도 일부 공간은 가기가 겁이 난다고 할 정도니 회사를 벗어난 띠후아나의 여타 지역은 오죽했겠는가....


(티후아나, 치안이 가장 불안한 도시)

https://m.yna.co.kr/view/AKR20190315112200009


당시에 캐나다로 공급되는 제품을 담당했던 현지인 직원은 완연한 백인 여성이었는데, 순수한 백인들이 많지가 않았던 띠후아나 공장에서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그녀는 나름 꽤 눈에 띄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업무적으로 오랜 기간 알고 지내던 관계이다 보니 띠후아나 출장 당시 그녀와 개인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할 기회도 있었는데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는 외모에서도 이미 충분히 느껴졌던 것처럼 라틴계가 아니라 독일계 이주민 후손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녀 역시 치안이 너무도 좋은 멕시코를 떠나서 언젠가는 자신의 조상들 고향인 독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독일어도 이미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실제로도 그녀의 책상 위에서는 독일어 학습 교재를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녀를 만난 이후 벌써 2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어쩌면 이제 그녀는 치안이 너무도 불안한 멕시코를 떠나서 그녀 꿈대로 조상들의 땅인 독일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멕시코 치안 현실이 소개된 영화 시카리오, 04:40)

https://youtu.be/UgZ1gclfmFg




역시 캐나다 법인 근무 중 멕시코에 회의가 있어서 캐나다 현지인과 함께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멕시코 시티 공항에 도착해 수하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나와는 좀 떨어져서 수하물을 기다리던 그 캐나다 직원이 멕시코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만면에 미소까지 지어가면서 한참 동안 대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나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그 직원이 스페인어까지도 구사한다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 미국 남부 지역 경우 워낙 히스패닉계가 많아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중남미에서 멀리 떨어진 캐나다에는 히스패닉계 사람들도 거의 없고 따라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꽤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항을 나오면서 그 직원에게 "어떻게 스페인어까지 배웠느냐"라고 질문을 했더니 의외로 그의 답은 스페인어는 전혀 모른다고 했다. 그럼 방금 전 그 멕시코 사람과 영어로 대화했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것은 또 아니란다. 그 사람은 스페인어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 직원이 말하기를 그 사람이 혼자서 스페인어로 계속 자신에게 말을 했고 자신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초반에 스페인어는 못 알아듣는다고 말할 기회를 놓쳐 수 없이 이후에는 그가 열심히 말하는데 아무런 대꾸도 안 하기는 미안해서 단순히 웃어 주고 고개만 끄덕였다는 것이었다....


우리보다는 훨씬 더 쉽게 부담 없이 말을 걸고 또 대화하는 중남미 문화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대답도 없이 그저 간혹 웃고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에게 10여 분간 혼자서만 말을 한 그 멕시코 사람은 정말 낙천적인 라틴기질을 가졌다는 중남미인들의 대표적 전형이었던 것 같다.


아울러 또 그 긴 시간 자리도 피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 듣고 있던 캐나다인 직원도 결코 그에 못지않은 나름 꽤 특이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 캐나다인은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서 캐나다로 이민 간 사람이었다.



멕시코 하면 선인장으로 만든다는 술, 떼낄라(Tequila)를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멕시코에 도착하면 멕시코 도착 기념 의식을 치르듯 주재원을 따라 Pub 같은 곳으로 가서, 소금과 레몬을 조금씩 사용하면서 떼낄라를 마셔 본 적이 있었다.


한편 유독 Pub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대부분의 Pub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재원이 데려갔던 그 Pub의 경우에는 Pub 내부에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드럼통과 같은 작은 무대 위에서 젊은 여인들이 거의 옷을 다 벗다시피 한 상태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기는 다소 민망하기도 하지만, 체격도 동양인과 달리 과할 정도로 비대하게 보이는 여인들이 심한 노출 상태로 붉은 조명 아래 너무도 선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으니 감흥이 생기기보다는 오히려 왠지 푸줏간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또 그러한 모습을 보니 군대 복무 중에 알게 된 대학교 여자 후배가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나기도 했었다. 국방부의 국제 행사에 통역 인력으로 차출되어 서울 국방부에서 잠시 파견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역시 통역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학교 후배와 술 한잔 할 때 그녀가 했던 말이다.


술기운이 좀 오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그 후배가 말하기를 "여자는 다 보여 주기보다는 옷으로 칭칭 감싸 매고 조금씩 살짝살짝 보여 주어야 남자들이 더 좋아한다"라고 뜬금없는 말을 했던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우습기도 하고 과연 남자의 본능이 그런 것인가 하고 자문해 보기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구 반대편의 멕시코에 출장 와서 뒤바뀐 시차와 또 취기로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심한 노출을 하고 춤추는 다소 비대한 여인들을 보니 오래전 그녀의 그 말이 갑자기 떠올랐고 또 그때 그런 그녀 분석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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