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중남미의 한국 형사들

■ 그 출장자의 서글픈 기억들 (8편 중남미-11)

by SALT

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장으로 방문했던 그 시절 중남미 도시들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과테말라 시티, 과테말라

Guatemala City, GUATEMALA



11. 중남미의 한국 형사들


과테말라는 멕시코 바로 아래에 있는 인구 약 1700만 명의 중미 국가다. 중남미 시장 조사 프로젝트 일환으로 본사의 마케팅, 서비스, 영업, 인사 등 각 부문별로 차출된 인력들 4명이 중남미의 여러 국가를 함께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방문했던 국가 중 하나였다.


과테말라는 그다지 큰 시장은 아니었지만 이곳에도 본사와 직거래하는 거래선이 있었다. SIELCA란 이름으로 불리던 거래선이었는데, 대다수의 중남미 거래선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로부터 CKD, 즉 부품 형태로 전자 제품을 공급받아서 자신들의 공장에서 조립한 후에 현지에서 판매를 하던 그런 거래선이었다. 이 회사는 1961년에 설립됐다고 하니 나름 역사가 꽤 오래된 회사였는데, 검색해 보니 2021년 현재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SIELCA 소개 자료)

https://aprende.guatemala.com/cultura-guatemalteca/general/historia-del-grupo-distelsa-s-a-guatemala/



꽤 의외였지만 과테말라에서는 전에는 좀처럼 겪어 보지 못했던 매우 이상한 일을 도착하자마자부터 겪어야 하기도 했었다. 바로 한국인에 대한 너무도 심하고 또한 노골적인 과테말라인의 부정적 인식이었다.


물론 중남미 다른 국가에서도 동양인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과테말라 경우는 차원이 달라서 조롱 또는 비하 개념이 아니고 말 그대로 불 타오르는 적개심과 같은 감정을 한국인에 대해 표출했었다. 항공기에서 내려서 입국 심사장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부터 벌써 우리 손에 들려 있던 한국 여권을 보고는 그곳에 있던 거의 모든 현지인의 시선이 곧바로 싸늘하게 바뀌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는데 우리를 향한 입국 심사원들의 무섭도록 차갑고도 싸늘한 눈매로 인해서 심사받는 내내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무슨 죄를 저질렀던 것도 아님에도 마치 무슨 죄를 이미 저질렀거나 아니면 곧 저지를 계획으로 과테말라로 입국하려 한다는 느낌까지도 스스로 들었을 정도였다.


사실 이번 출장에는 방문해야 하는 굵직굵직한 국가들이 꽤 있어서 그중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인 과테말라에 대해서는 사전에 별 공부를 하지 못한 상태로 그저 잠시 방문한다는 생각으로만 입국했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런 의외의 분위기를 공항에서부터 겪게 되니 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입국 심사를 하면서도 그들은 일관되게 너무도 불친절하고 투박한 언어로 우리를 대했으며 결국에는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서류상에 아무런 하자가 없었음에도 별도로 정밀 입국 검사를 받는 방으로 불려 들어가서 한참 동안 꽤 까다로운 조사를 받고서야 겨우 풀려 나오기도 했었다. 실제 서류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의 입국에 대해 그들이 깊은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과테말라에 오면 입국 바로 그 시점부터 이처럼 험한 꼴을 당하니 두 번 다시는 올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많은 출장을 다녔지만, 한국 여권을 내미는 순간에 그렇게 적개심 가득한 눈빛으로 입국 심사관들의 눈빛이 돌변하는 경우를 겪었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들이 한국인에 대해 그처럼 극도로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이후 바로 알게 되었다. 1990년부터 시작됐던 한국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으로 이곳저곳으로 도주를 하던 한국 조직 폭력배들 중 일부가 바로 이 중남미의 과테말라로 들어와서 현지의 선량한 한국인 교민들을 대상으로 공갈, 협박, 폭력, 갈취 등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그 대상이 현지인에게로까지 확대되어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이미지가 매우 안 좋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한때 중국의 선양과 같은 동북 지방 도시나, 이후 필리핀과 같은 곳으로 한국의 폭력 조직이나 범죄자들이 도피를 하곤 한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기도 했는데, 90년대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중남미 과테말라로 한국의 조직 폭력배들이 유입된 것이었다.


한편 충분치 않은 경찰력으로 자국의 폭력배 대응에조차도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과테말라 경찰은 한국에서 온 또 다른 폭력 조직들을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에는 한국 정부에 한국인 폭력 조직들 처리를 공식적으로 요청해서 이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었또 과테말라 국민들에게도 공공연하게 알려지게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지금도 검색을 해보면 당시 그런 상황에 대한 언론 기사를 찾을 수 있는데, 기사에는 없지만 교민들 말에 의하면 당시 과테말라로 왔던 경찰들은 과거 폭력배들이 주로 활동했던 영등포 지역의 경찰서 형사들이었는데 형사들이 조폭들을 보고 "야, 오랜만이다. 말로 할 때 빨리 나와라...."라고 하는 등 상호 간에 너무도 잘 아는 사이였다고 했다.


(과테말라의 한국인 조폭 관련 기사)

1.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1/25/2001012570213.html

2.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00212/26143431/1

3. https://imnews.imbc.com/replay/2001/nwdesk/article/1874211_30743.html


한국에서 도망 나온 폭력배들이 과테말라를 그들의 새로운 터전으로 선택한 배경 중에는 아마도당시 과테말라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섬유 공장이 매우 많아서 한인 사회가 나름 꽤 크게 활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때 과테말라에는 한국인 운영 섬유 공장 수가 150개 정도까지 있었으며, 교민 수 또한 만 명 이상으로 코리아 타운까지도 형성될 정도로 한인사회 규모가 컸다 하니 폭력배들이 바로 이처럼 큰 교민 사회를 노렸던 것이었다.


(과테말라 한인 타운)

https://blog.naver.com/freetourman/220972281938




어쨌든 그런 험한 분위기 속에서 겨우 입국 수속을 마쳤고 과테말라 시장 조사를 무사히 마친 후에 한인 타운에 가서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식사 중에 어디에선가 고성이 계속 들려 주변을 돌아보니, 손님도 아니고 의외로 한국인 여자 사장님이 그 식당에서 음식 서빙을 하는 제복 입은 한 여자 종업원을 심하게 혼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식당 안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과테말라인 손님들도 다수가 식사를 하고 있었음에도, 그 사장님은 식당 전체에 다 들릴 정도로 매우 큰 소리로 그 직원을 혼내고 있었다. 분과 화를 참지 못해서 계속 고성을 지르는 상황이었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만 있던 상대 종업원은 아무리 많이 봐도 나이가 10대 후반도 넘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려 보였다.


사장님의 분노는 계속됐지만 아무도 감히 사장님을 말리는 사람이 없었는데, 얼마나 큰 잘못들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일단 앞뒤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는 그 현장만 본다면 누가 봐도 그 한국인 사장님이 너무나도 모질게 종업원을 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런 분위기였다.

섬유 제품 경우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할 때는 조건이 꽤 나빴던 반면에 과테말라에서 생산해서 미국으로 수출하면 양국 간 체결된 협정 덕분각종 혜택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80년대부터 한국의 많은 섬유 업체들이 이곳 과테말라로 공장을 이전하여 이곳에서 제품을 생산한 후에 미국으로 수출했던 것이다.


(과테말라의 한국인 섬유업체)

http://mbiz.heraldcorp.com/view.php?ud=20131118000036


그리고 그렇게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장들이 많아지고, 이에 동반하여 한국 식당과 한국 업소들이 늘어나다 보니 그만큼 많은 수의 과테말라 현지인들이 한인 공장이나 한인 업체에 취직해서 일하게 되었을 것인데, 이렇게 고용된 현지인들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그들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또 그들의 그러한 인식이 입소문을 타고 과테말라 전역으로 퍼졌을 것이다.


런 면에서 볼 때 그 사장님께서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내는 모습은 현지인들의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 형성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 그렇게까지 심하게 화를 냈는지는 알 수 없던 상황이었으니 섣불리 사장님을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당시 현장 주변에 있던 현지인 모두가 마찬가지로 전후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을 보고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아마 그 판단 결과는 거의 대부분 사장님이 너무 심했고 또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판단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과테말라 인당 GDP는 1994년에 약 1,300불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20년 GDP는 4,600불로 25년 동안 고작 3,300불 상승했다. 반면에 한국 경우 같은 기간에 10,000불에서 31,000불로 20,000불 이상 인당 GDP가 상승했다.


한국의 1988년 인당 GDP가 4,700불 수준이었으니 결국 과테말라인들은 경제적으로는 한국으로 치면 약 33년 전인 1988년의 삶을 현시점에 살고 있는 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대를 이어서 가난에 허덕이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도 회사를 떠났지만 과거에 중남미를 함께 담당했던 동료들 중에는 퇴직하면 이처럼 가난이 반복되는 굴레 속에 살아야 하는 어려운 중남미 주민을 현지에 가서 직접 돕는 일을 하겠다는 동료가 한 분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 국가로 그는 과테말라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중남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가 적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과테말라의 현실이 유독 눈에 밟혔던 모양이었다. 이제는 그와 연락이 끊어져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현재 실제로 과테말라에서 그가 그 오랜 꿈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과테말라의 그런 암울한 현실을 보고 반드시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분이 직장 동료 혼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국인이 과테말라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실제 사례도 검색해 보니 꽤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과테말라에서 봉사 활동하는 한국인들)

1. https://www.yna.co.kr/view/AKR20090902119000069

2. https://m.blog.naver.com/kdspmj12/222131376306

3. https://dail.org/17249




물론 이러한 봉사 활동은 실제로 그들을 돕기 위한 것이지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한국인들의 이러한 봉사 활동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분명히 형성되기도 했을 텐데 이와는 정반대 되는 조폭 활동과, 현지인에 대한 가혹한 언행 등으로 어렵게 형성된 이런 이미지가 허무하게 깨지게 되는 것도 또한 한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한순간에 깨져서 악화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우리들은 공항에 입국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리도 싸늘하고 혹독한 경험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시골에서 올라와서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서빙하던 그 10대의 어린 과테말라 소녀가 분노한 한국인 사장님으로부터 끊임없이 혼나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너무도 서글프게 울기만 하던 그 모습은 과테말라를 생각하면 요즘에도 언제나 함께 떠오르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과테말라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yskimeng/22195587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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