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운하와 중남미의 인도인 (2-1)

■ 그 출장자의 서글픈 기억들 (8편 중남미-09)

by SALT

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장으로 방문했던 그 시절 중남미 도시들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파나마시티, 파나마

Panama City, PANAMA



9. 운하와 중남미의 인도인 (2-1)


파나마는 인구 약 420만의 국가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서로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로 더 잘 알려진 국가다. 그런데 사실 이 파나마는 원래는 인접국가인 콜롬비아 영토의 일부였다. 하지만 1903년에 콜롬비아로부터 분리 독립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분리의 배경에는 바로 이 운하를 보다 더 확실하게 통제하려는 미국의 계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미국은 1900년대 초부터 이미 파나마 운하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콜롬비아가 완공 이후의 운하에 대한 미국 특권을 부정하자 운하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아예 운하 인근 지역에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새로운 국가를 만든 이었다.


파나마 운하는 최초에는 프랑스가 시도했었지만 실패했고 이후 미국이 다시 착수해서 1914년에 완공되었다. 하지만 워낙 난공사였던 터라 공사를 하면서 무려 27,500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2차 대전 기간 군사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 또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해상 운송로 중 하나로 이용되고 있지만, 이 운하는 따지고 보면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르면서 만들어진 '피의 운하'인 셈이다. 참고로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 공사 당시에도 무려 9천여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 파나마 운하 공사에는 그보다도 3배나 더 많은 희생이 있었던 셈이다.



파나마 출장 중 거래선들과의 상담을 모두 마친 후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같이 출장 갔던 동료 2명과 함께 이 유명한 파나마 운하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운하에 도착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제복을 입고 있던 어떤 건장한 체격의 운하 회사 여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우리가 그렇다고 했더니 그녀는 보다 상세하게 운하를 소개해 주겠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당시 주변에는 운하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매우 많았는데 유독 우리에게만 별도로 운하 소개를 해주겠다는 그녀 말에 좀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어쨌든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어서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운하 시설 내부에 있는 작은 영화관 같은 공간에서 단지 우리 세 명만을 대상으로 운하 공사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을 보여 주기도 했고, 또 운하 이곳저곳을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소개를 해주는 등 너무도 친절하고 상세하게 오랜 시간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소개한 파나마 운하 가동 방식을 보니 정말 꽤 의외였다. 단순히 육지를 파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서로 연결하는 수로를 만든 것이 파나마 운하라고 생각했었는데 실물을 보니 그 운하를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각 구간마다 물을 채워 거대한 선박을 들어 올리는 꽤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한 그런 운하였던 것이다. 그처럼 난해한 공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수반되었던 것 같다. 속담에 있는 말 그대로 실제로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그런 방식이었는데 아래 그림을 보면 그 원리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파나마 운하 가동 원리)

1.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eoksthink&logNo=221365351778&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2. https://youtu.be/hoQ7RHyG-EA


어쨌든 우리는 마치 운하를 방문한 VIP가 대접받듯이 운하 전반에 대해 그렇게 너무도 친절하고 상세하게 그녀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하지만 소개를 다 마치고 그녀가 마지막에 인사하고 떠날 때까지 그토록 많은 운하 방문객들 중에 왜 유독 우리에게만 그런 특별한 대접을 해 주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도 그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고, 우리 역시 얼떨결에 따라다니느라 그 이유에 대해 질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제도 과거 대비는 너무도 급성장해서, 한국이나 중국의 국가적 위상이 웬만한 중남미 국가와는 비교가 안된다. 하지만 내가 파나마 출장 갔던 당시만 해도 중국은 당연히 파나마보다는 훨씬 못 살았었고 한국도 파나마와 소득 수준이 큰 차이가 없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그 당시는 중국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인은 거의 모든 미주 국가에서 최저가에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아직 꽤 강했던 시절이었다. 왜냐하면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원래 노예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파생된 '쿨리(Coolie)'라고 불리던 값싼 임금의 중국 이주민들이 흑인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 미주 대륙 곳곳에서 흑인 대신 저가 노동력을 제공하며 생계를 연명하곤 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1862년 시작된 미국 대륙 횡단 철도도 바로 이러한 중국인 쿨리들이 대거 투입되어 수도 없이 사고로 사망하는 과정을 거쳐 건설되었으며, 페루에서도 중국인 쿨리들을 노동자로 다수 수입했었고, '애니깽(Henequen)'이라 불리던 한인 노동자들 또한 멕시코, 쿠바 등으로 유입되어서 오늘날에도 그들의 후손이 이 지역에 남아 거주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 철도 공사 현장의 중국인 노동자)

https://blog.naver.com/sam2737/90038432647

(페루의 중국인 노동자 수입)

https://m.blog.naver.com/pkschina505/221788690352

(중남미 한국인 이민자 '애니깽'의 역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7211570201554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저임금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너무도 부정적으로 보고 무시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은 것처럼 과거 미주 대륙으로 유입된 동아시아인들 대부분도 이처럼 저가 노동자들이다 보니, 이미 그 시절부터 동아시아인들에 대한 중남미인들의 인식은 나름 꽤 부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배경에서 원래는 단순히 '중국인'이라는 의미를 가진 스페인어 단어인 '치노(Chino)'가 중국인들을 포함한 모든 동양인들을 비하해서 지칭하는 말로 변질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에 전 세계에서 동양인만 보면 Chinese라고 욕하며 비하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그 시절에도 이미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중남미에서는 이 Chino란 어에 feo를 추가해서 Chino feo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 말은 '불쾌한 중국인' 또는 '못생긴 중국인'이라는 의미로 Chino보다도 훨씬 더 노골적으로 동양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나 역시도 90년대 중남미에 출장 다니면서 이 말을 적지 않게 듣기도 했었다.


그때 난 중국인(Chino)이 아닌 한국인(Coreano)이라고 그들에게 해명을 해도 별 의미가 없었다. 이 단어 Chino는 전술했던 것처럼 이제 더 이상 중국인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인들 모두를 지칭하는 내용으로 그 의미가 변질됐기 때문이었다. '조선인(朝鮮人)'이 원래는 단순히 한국인을 의미하는 민족명이었지만 일본인들이 '조센징(朝鮮人)'이라고 말할 때는 비하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고 또 'Negro'도 스페인어에서 단지 검다는 뜻을 가진 단어지만 이 단어를 흑인을 대상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비하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어로 중국인을 의미하는 'Chino'도 이제 모든 동양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된 것이었다.


그 시절 이처럼 동양인을 저가 노동자로 경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그런 중남미에서 초면의 운하 회사 직원으로부터 그렇게 각별한 대접을 받게 되었으니 너무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도 그날 우리가 왜 그런 환대를 받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파나마와 운하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ragun37/222208504404




파나마는 나라는 작았지만 이 파나마 운하 외에도 우리처럼 전자 제품 수출을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곳이 한 곳 더 있었다. 바로 Colón Free Zone이라는 곳이었다.


파나마 운하 대서양 쪽 입구에는 콜론(Colón)이란 이름의 도시가 있었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무역 지가 있었는데, 바로 이 지가 그 시절 전자 제품과 관련된 중남미 최대의 재수출 기지였기 때문이었다. 즉 우리 같은 제조 업체들은 파나마의 이 재수출 기지 안에 있는 무역업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면 이후에는 이곳의 무역업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서 구축해온 자신들의 판매 루트를 통해 다시 중남미 각국으로 전자 제품을 재수출하곤 했던 것이었다.


이 콜론으로의 수출이 제조업체에게는 특히 편리했던 점은 완제품 상태로 제품을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전자 제품 경우에 완제품이 아니라 CKD 혹은 SKD 같은 부품이나 반조립품 상태로만 수입을 허용했던 경우가 많아서 우리와 같은 제조 업체 입장에서는 직접 수출하기가 꽤 까다로운 실정이었다. 하지만 완제품 수입이 가능했던 콜론으로 수출하면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결국에는 콜론으로 우리가 수출하던 제품들 대다수가 인근의 중남미 국가들로 정식 통관을 거치지 않고 완제품 상태 그대로 밀수되고 있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그 시절에 상대했던 콜론 거래선들은 밀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는 말이다. 중남미에는 그 시절 이런 완제품 재수출 기지가 크게 3곳이 있었는데 콜론 이외의 나머지 두 도시는 칠레의 이끼께(Iquique)와 미국 마이애미(Miami)였다.


한편, 콜론(Colón)이라는 이 스페인어 도시 지명은 우리가 영어로 콜럼버스(Columbus)라고 부르고 있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의 스페인 이름 콜론 (Colón)에서 따온 것이었다. 즉 영어에서 Columbus는 스페인어에서는 Colón이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을 도시 이름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결국 영어로 Christopher Columbus라 표기되는 그의 이름은 스페인어로는 Cristóbal Colón이고 또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어로는 Cristoforo Colombo인 것이다.


(콜론 소개 블로그)

https://www.ktown1st.com/blog/ippyk/5222




다음 편 "10. 운하와 중남미의 인도인 (2-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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