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방탄차가 필요한 나라

■ 그 출장자의 서글픈 기억들 (8편 중남미-07)

by SALT

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장으로 방문했던 그 시절 중남미 도시들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보고타, 콜롬비아

Bogotá, COLOMBIA



7. 방탄차가 필요한 나라


마약 조직들이 공공연하게 활동하고 있는 등 요즘도 여전히 중남미 대다수 국가의 치안은 매우 열악한 것이 현실이지만 콜롬비아 경우 90년대에는 이런 마약 조직들 활동 외에도 반정부 군사 조직 등의 납치와 테러가 너무도 빈발했었다. 결국 그러한 치안 현실 때문에 심지어 우리 회사 콜롬비아 법인은 주재원들과 그 가족들이 타는 승용차는 '방탄차'로 구매하는 것에 대한 허가를 본사에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었다.


실제 90년대와 비교하면 그나마 치안이 좀 좋아진 요즘도 콜롬비아에는 2016년 기준으로 정부 사전 승인이 필요한 최고 등급의 민간인용 방탄차만도 무려 1만 4천대가 넘게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2016년 콜롬비아 방탄차 현황, Kotra 자료)

https://news.kotra.or.kr/user/globalAllBbs/kotranews/list/2/globalBbsDataAllView.do?dataIdx=150004


이런 실정에서 요즘보다 치안이 훨씬 더 열악했던 2002년 다수의 콜롬비아 공무원들이 반군 단체로부터 공개적으로 협박 편지를 받는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공무원들이 동요하게 되자 정부는 반군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공무원들에게 경호 인력 외에 방탄차까지도 지급하는 것을 먼저 제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공무원들이 일보다는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며 그 협박을 받은 직후 직장을 떠났다.


과거 한국에도 치안이 매우 안 좋던 시절이 역시 있었는데 그런 시절에조차 이런 일들은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콜롬비아의 치안 현실은 그만큼 심각했었던 것이었다.


(반군 협박에 정부가 방탄차 지급 제안)

https://m.khan.co.kr/world/america/article/200206261819201


그 시절 이처럼 많은 콜롬비아인들을 떨게 만들었던 반군이 바로 1964년 창설된 'FARC(콜롬비아 무장 혁명군)'라는 반군 조직이다.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했던 사람들로 구성된 이 조직은 한참 전성기인 90년대 말에는 전투원만도 1만 6천 명 수준으로 한때는 대도시를 제외한 농촌과 산악 지역 대부분을 장악해서 콜롬비아 영토의 거의 반 정도까지 통제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한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했던 반군도 미국의 철저한 통제로 주요 수입원이던 미국으로의 마약 밀매가 어려워지면서 세력이 점차 약해졌고 2016년에는 콜롬비아 정부와 휴전 협정을 체결하고 과거 반군 활동을 모두 종결하게 되었다. 이로써 1964년부터 2016년까지 약 반 세기 이상이나 지속되었던 실질적인 콜롬비아 내전도 마침내 종료가 되었던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 반군과 휴전 합의)

https://www.yna.co.kr/view/AKR20161007187351109


그렇지만 휴전이 이루어지기 전 내전 기간 중에는 이 반군 조직은 자신들의 목표 달성이나 자금 확보를 위해서는 국가 공공시설들을 폭파하고, 반대 세력이나 외국인을 납치하는 등 잔혹스러운 활동들을 전혀 주저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콜롬비아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콜롬비아에서 거주하고 있던 외국인들까지도 공포에 떨면서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 회사 콜롬비아 법인도 방탄차를 요청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최악의 콜롬비아 치안 현실 관련 1999년 기사)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991011/1p7lab25.html


그뿐 아니다. 이러한 반정부 조직들 외에도 '메데인 카르텔 (Medellin Cartel)'이라 불리던 중남미 최대 마약 조직도 역시 콜롬비아에 있었는데, 이 조직명에 있는 '메데인'이란 콜롬비아 제2의 도시 이름으로 바로 이곳에서 이 카르텔이 결성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스페인어에서 'll'은 지역에 따라 'ㅈ'으로 발음되는 경우도 있지만 표준 발음은 '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Medellin은 '메델린'이 아닌 '메데인'으로 발음하게 되는 것이다.


(중남미 최대 마약 조직 메데인 카르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075102?sid=104


결국 90년대 콜롬비아는 반정부 반군 조직, 마약 조직 등이 도처에서 활개를 치고 있던 그러한 국가였고 따라서 당연히 치안은 콜롬비아 지역 어디를 가도 요즘보다도 훨씬 더 좋지 않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콜롬비아로 어느 날 출장을 가게 되었다. 당시 콜롬비아에는 1997년 설립된 우리 회사 법인이 이미 가동 중이었는데, 법인과 신제품 도입 관련 상담을 하기 위해 90년대 말에 출장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전술한 것처럼 당시 콜롬비아가 워낙에 위험한 곳으로 악명이 높다 보니 사실 나름 꽤 긴장을 하고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도착했다. 그렇게 통관을 마치고 입국장에 나오니 사전에 약속한 대로 법인의 현지인 운전기사가 한글로 적은 내 이름을 들고 서 있었다.


워낙 위험해서 택시 탈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상황이라 차질 없이 그를 만난 것이 꽤 반가웠고 그를 따라서 차로 향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우려에서 그와 함께 걸어가면서 법인이나 주재원들의 정황에 대해 문의를 하기도 했었는데 그는 막힘없이 모두 제대로 답을 했다. 혹시 그가 내가 찾던 법인 기사가 아닌데 나를 속여 납치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 그런 질문까지 했던 것인데 그런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 확인된 셈이었다.


법인에 소속된 기사를 제대로 만났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이런저런 콜롬비아 얘기를 하면서 그 기사를 위해 서울에서 준비해 왔던 작은 기념품을 선물로 주었다. 출장 기간 중에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을 때 주려고 작은 선물들을 가져왔던 것이었다.


그는 내 선물을 받고 매우 좋아했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그 선물과 같이 있던 좀 더 좋은 주재원용 선물을 우연히 보게 되더니 갑자기 자신에게동일한 것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너무나도 솔직한 요구에 어이가 없기도 했었는데, 어쨌든 주재원용 선물들은 정해진 인원수대로만 맞춰서 준비해 왔기 때문에 결국 그의 요구는 들어주지 못했다.


중남미 사람들이 대부분 매우 직설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많았지만, 때로는 이처럼 초면의 손님에게 다른 것도 아닌 선물을 자신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서 가져가겠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어서 설득하느라 그날 고생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차는 이럭저럭 별 탈 없이 보고타에 있는 콜롬비아 법인에 도착을 했다. 법인에 도착해서는 주재원들과 업무에 대한 얘기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콜롬비아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도 나누었는데, 그들과 대화하면서 느꼈던 공통점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모두 한결같이 콜롬비아의 치안에 대해 꽤 많은 비중을 두고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당시 콜롬비아 법인장이었던 분은 유독 더 그랬는데, 그는 서구 회사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회사들도 심각한 치안 현실을 고려해서 콜롬비아로 파견되는 주재원에게는 방탄차 지급을 본사에서 이미 허용했는데, 유독 우리 회사 본사만 아직 허용하지 않아 문제라는 것이었다. 또 실제로 내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도 법인 바로 거리에서 폭탄이 터져 거리에 있던 사람은 물론 마침 옆을 지나던 차량 안의 사람까지 죽었다는 심각한 치안 현실과 방탄차가 필요한 이유들을 지속 강조해서 언급했다.


물론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콜롬비아에 장기간 거주하며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지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그러한 공포스럽고 끔찍한 얘기들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방문해서 직접 보게 된 보고타는 그저 너무 아름답게만 보였다.


보고타는 스페인의 중남미 식민 초기인 16세기에 건축된 고도(古都) 그런지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건축물이 매우 많아서 그런 심각한 치안 현실과는 달리 도시 자체는 우아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것이었다.


게다가 보고타는 도시의 위도가 4도로 실질적으로는 거의 적도 바로 아래 있는 도시였지만, 날씨 역시 서유럽처럼 꽤 온화했었다. 안데스 산맥 고원 해발 2,640미터에 보고타가 위치하고 있어 연평균 기온이 14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두산 정상 해발이 2,744미터라 하니 백두산 정상에 '보고타'라는 한 도시 전체가 통째로 얹혀 있는 것과 사실 별 차이가 없는 셈으로 그처럼 높은 고지대의 기온이 얼마나 선선할지는 짐작이 될 것이다.


기온이 그렇게 선선하다 보니 인근 중남미 도시에서는 시내 가로수나 나무들이 온통 열대 나무뿐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보고타에서는 유럽이나 북미의 도시에서 보던 것과 유사한 가로수 및 정원수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한 기온이 그처럼 서늘하니 거리에서 보게 되는 현지인들도 적도 바로 아래에 있으면서도 두터운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도 역시 볼 수 있었다.


이런 모든 모습들이 전에 방문했던 인근 중남미 도시와 너무도 달라서 보고타에 도착해서는 마치 중남미 출장 중에 어느 순간 갑자기 순간 이동을 해서 전혀 다른 대륙으로 온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기도 했다.


(보고타 시내 모습)

https://m.blog.naver.com/iamhappy07/221864523610


한편 매출이 점차 커지면서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내가 방문하던 시절에는 콜롬비아 법인 건물도 보고타 시내 번화가가 아닌 나무가 많은 조용한 변두리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절 다른 중남미 지점과 법인들은 거의 모두 매우 번화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었던 바, 이런 차이에서도 콜롬비아 법인은 뭔가 좀 다른 느낌이었다.


법인 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건물 또한 외벽이 온통 붉은색 벽돌로 마감된 고풍스러운 느낌에 그 주변으로는 유럽에서 보던 같은 무성한 잔디와 나무가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자라고 있었는데 그러한 모습 또한 나름 운치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90년대 콜롬비아 법인이 있던 건물 거리뷰)

주소 : Cra 9A No.99-02 of.106 Bogota

정면 : https://goo.gl/maps/7URYaRFoqwT2oWg17

뒷면 : https://goo.gl/maps/aK76mq24TZysst6G8




요즘도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중남미 출장을 다녔던 90년대에는 '중남미 3C'라고 해서 미인들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로 콜롬비아, 칠레, 코스타리카 등 알파벳 C로 시작하는 3개국을 꼽기도 했었다.


(중남미 3C 관련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dj9666&logNo=140003199730&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당시 대한민국의 20대 젊은 남자로서 콜롬비아 첫 출장은 그런 면에서도 나름 좀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도착해서 보니 역시 듣던 소문대로 미인들이 많았는데 특정 유전자가 유독 많이 퍼져있었는지 콜롬비아 여인만의 어떤 공통적인 독특한 인상이 있는 것 같기도 했었다.


한편 콜롬비아 인구의 약 40%는 백인이고, 50%는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이었다. 따라서 인종적으로 인구의 약 90% 정도는 백인 및 백인에 가까운 혼혈로서 콜롬비아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 백인 비중이 높은 편에 속했다.


중남미 각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인종을 보면 국가별로 꽤 큰 차이가 있었다. 콜럼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페루 또 바로 그 옆에 있는 볼리비아는 콜롬비아와는 전혀 다르게 원주민이 총인구의 과반 수준으로 매우 많았다. 그런 반면 아르헨티나는 그 인구의 90% 정도가 순수 백인일 정도로 백인 비중이 크게 높았다. 이처럼 아르헨티나는 유독 백인 인구 비중이 높아서 그런지 1998년 조사한 설문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인의 약 63%는 자신을 인종주의자라고 스스로 인정할 만큼 인종에 대한 편견이 매우 심한 국가였다.


(1998년 인종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04/29/1998042970062.html


한편 중남미 대부분 국가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것과 다르게 유일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 경우에는 백인과 원주민간 혼혈도 있지만, 포르투갈 출신 농장주들이 농작물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흑인들도 많아서 흑인 및 백인/흑인 간의 혼혈이 인구의 반이 될 정도로 여타 중남미 국가보다는 높았다. 원주민과 백인간의 혼혈이 흔한 기타 중남미 국가들과는 다른 현상이었는데 이러한 인구 구성 특성상 브라질에는 '삼바춤'과 같은 흑인 문화로부터 유래된 독특한 분위기도 있었다.


(브라질 인종 차별 및 흑인 인구 비중)

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49/0000192890?sid=104

2. http://www.vop.co.kr/A00001306975.html


한편 중남미 국가임에도 아예 인구의 거의 전체가 흑인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국가도 있었다. 바로 '하이티'란 나라인데 총인구가 1,100만이나 되는 아이티 경우 인구의 95%가 흑인이고 나머지 5%는 흑인과 백인의 혼혈이었다. 위치는 중남미에 있었지만 중남미 원주민은 없고 흑인들이 인구의 대다수인 나라가 된 것인데 그런 이유는 원주민들이 백인의 학살과 백인들이 가져온 질병으로 거의 몰살된 상태에서 커피와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대거 데려 왔기 때문이라 한다.


중남미 각 국가별로 인구 구성을 보면 과거 식민지배 시절 오로지 착취 그리고 노동력의 대상으로만 원주민과 흑인을 간주해왔던 유럽인들의 추악하고 잔인한 과거 역사가 새삼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국가도 아니고 중남미란 대륙 전체의 인구 구성을 아예 통째 바꾸어버린 셈이니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 입장에서 보면 유럽 백인들은 정말 너무도 끔찍한 행위를 아무런 스스럼없이 자행했던 셈이다.




콜롬비아에는 한인 교민들이 800명 수준밖에 안 될 정도로 너무 적어서 그런지 보고타에는 요즘에도 한국 식당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90년대는 중남미 전체적으로도 한국식당이 훨씬 더 귀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보고타에 도착해 보니 마침 그곳에는 음식 맛이 꽤 좋은 한국 식당이 하나 있었다.


중남미 음식은 고기가 주재료인 경우가 많은데, 불행히도 나는 육고기를 전혀 못 먹는 체질이라 출장 가면 항상 음식 문제로 고생을 하고는 해서 출장 중 이렇게 생선이나 야채 그리고 밥과 찌개, 국 같은 것들을 먹을 수 있는 한국 식당을 만나게 되언제나 너무도 반가웠었다.


보고타에서 주재원들이 나를 데리고 갔던 한국 식당은 바로 '한국관'이라는 식당이었다. 개점한 지 오래됐고 맛도 있는 식당이라 했는데, 실제 음식을 먹어보니 너무도 맛있었다. 출장 기간 기름진 중남미 음식들만 주로 접하다가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게 되어 아마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음식으로 고생을 너무도 자주 해서 그런지 해외의 도시에서 만났던 반가운 한국 식당들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데, 이 한국관이라는 식당도 역시 보고타를 회상할 때는 언제나 함께 떠오르는 그러한 식당이었다.


(한국관 소개 자료)

1. https://co.polomap.com/bogot%C3%A1/20400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ad557&logNo=220808615790





심성이나 외모 모두가 참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았던 곳, 그리고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유럽풍 건축물들이 많았던 도시가 콜롬비아의 보고타였다는 기억이 짙게 남아 있다. 그런데 왜 정작 그런 도시에 사는 콜롬비아인들은 실제로는 테러와 납치, 마약과 같은 온갖 범죄로 찌든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 참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기록을 찾아보면 1960년대 중반 한국 인당 GDP가 150불 정도였을 당시 콜롬비아 인당 GDP는 300불 수준이었다. 콜롬비아가 한국보다 2배 더 잘 살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러 1990년대 내가 중남미 출장 다니던 시절에는 콜롬비아는 약 5천 불 수준으로 GDP가 성장했던 반면에 한국은 만불까지 성장했다. 이미 역전되고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30년이 더 흘러서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콜롬비아는 GDP가 7천 불 정도로, 30년이라는 긴 세월에 겨우 2천 불 정도 성장한 반면, 같은 기간에 한국은 2만 불이나 더 성장해서 이제는 GDP가 약 3만 불이 되었다. 3만 대 7천 불로 국가 간 격차는 너무도 벌어져 버렸다.


결국 오랜 내전을 거쳐왔던 콜롬비아는 지난 30년간 전혀 성장 없이 그저 제자리걸음만 했다는 말인데, 그 결과 현재 콜롬비아 GDP는 인근의 남미 국가 중에서도 낮은 그룹에 속한다. 또 빈부차 또한 매우 심하며 세월이 지나도 도무지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치안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콜롬비아는 90년대의 모습을 상당 부분 그대로 답습만 해왔던 셈이었다.


하지만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 간 반세기 이상 지속돼 왔던 내전이 휴전 협정 체결로 마침내 어렵게 종결되었다고 하니 콜롬비아가 당면하고 있었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중요한 것 하나는 이제 해결이 된 셈이다.


'보고타'라는 도시명은 원주민 언어에서 온 것으로 '안데스 산맥의 귀부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런 보고타가 당면한 나머지 문제들도 머지않아 해결되어 원래의 이 도시 이름에 어울리게 테러, 마약, 범죄, 가난 등으로 시달리지 않고 또 방탄차도 전혀 필요 없는 고상하고 우아한 안데스 산맥의 귀부인과 같은 모습으로 보고타가 재탄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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