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리코) 카리브해의 된장국

■ 그 출장자의 서글픈 기억들 (8편 중남미-08)

by SALT

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장으로 방문했던 그 시절 중남미 도시들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산후안, 푸에르토리코

San Juan, Puerto Rico (USA)



8. 카리브해의 된장국


카리브해 섬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는 스페인어로 풍부한(Rico) + 항구(Puerto)라는 의미를 가진 지명으로 원래는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했을 때 이 섬의 도시인 '산후안 (San Juan)'을 지칭했었던 이름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이름이 점차적으로 섬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되었다.


또한 섬의 가장 큰 도시 'San Juan'은 영어로 번역하면 'Saint John'이라는 의미로, 성경에 등장하는 성인 '요한'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었다. 한글로 요한이라고 표기되는 이름이 영어로는 John(죤), 불어로는 Jean(쟝), 독어로는 Johan(요한) 등으로 바뀌는 것처럼, 스페인식 발음으로는 Juan(후안)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원래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이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에 발발한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전한 이후 미국 영토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푸에르토리코를 완전한 미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이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어떤 주에도 속하지 않으며, 미국 대통령 선거나 상하원 의원 선거 투표 자격 역시 없을 뿐 아니라, 개인 소득세도 미국 연방정부에 납부하지 않는 등 꽤 독특한 지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주민 중 일부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독립파도 있다.


하지만, 2020년 실시된 주민 투표 결과 미국의 한 개 주로 편입되자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어 푸에르토리코는 향후 미국 51번째 주가 될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까지는 다분히 애매했던 푸에르토리코의 정치적인 입지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될 것이다.


(푸에르토리코의 정치적 입지)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4333.html


푸에르토리코 인구는 약 310만 명인데, 미국령으로 바뀌기 전 이미 1493년부터 400년 이상 오랜 기간 스페인 통치를 받아왔기 때문에 주민 대다수는 모두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주민들은 매우 적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임에도 영어로는 제대로 대화할 수 없는 주민들이 대다수였던 셈이다.


푸에르토리코는 깃발도 역시 미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오히려 미국과 오랜 기간 적대 관계에 있었던 쿠바(Cuba) 국기와 매우 유사하다. 쿠바 국기와 모양은 동일하고 단지 색상만 반대로 되어 있다.


사진) 푸에르토리코 기(좌측)과 쿠바 국기(우측)


쿠바, 푸에르토리코 모두 스페인 식민지배하 독립운동하던 시절 멀지 않은 두 지역 독립운동가 사이에 연대가 있었고 쿠바 국기가 먼저 만들어진 후, 쿠바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그 쿠바 국기와 유사한 디자인의 푸에르토리코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mango_cc/221848815793




산후안에는 동료 두 명과 함께 모두 세 명이 출장 갔었는데, 출장 기간 어느 날 명이 객지에서 의기투합하여 저녁에 호텔방에 모여서 술을 꽤나 많이 마신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에 일어나니 당연히 속이 너무나도 불편했고 얼큰한 해장국 생각이 몹시도 간절했었다.


하지만 해외에 한국식당이 그다지 많지 않던 시절이었고 또 우리가 있던 곳은 카리브해의 작은 섬이었으니 한국 식당이 더 귀했을 것인데, 실제 아무리 찾아봐도 한국 식당은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한국 식당 대신 차선책으로 일본 식당을 찾아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찾아간 일본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보니 한국 된장과 비슷한 일본 된장 미소로 만든 미소국이 있었다.


그 메뉴를 보니 해장용으로 먹기에도 괜찮을 것 같아 다른 음식과 함께 그 미소국도 하나 주문을 했다. 그런데 그 국을 실제 마셔보니 기대했던 것 이상 한국의 된장국과 너무나도 비슷했고 맛이 좋았다. 결국 우리는 연거푸 몇 번씩이나 그 된장국을 반복해서 주문했는데 하도 그 된장국 주문을 많이 해서 그런지 주방에서 어떤 동양인이 슬쩍 나와서 우리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 쪽을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들어갔다.


아마도 식당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던 일본인이 아니었나 싶은데, 도대체 어느 서양인들이 그렇게 미소국만 연달아서 주문해 먹는지 나름 꽤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잠시 뭔가 말을 걸 것 같은 표정이었는데, 현지 언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닌 자신이 전혀 모르는 한국말로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는 끼어들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날 아름다운 카리브해의 섬나라에서 우연히 먹게 되었던 그 된장국이 아마 생애에서는 앞으로 번 다시 맛보기 어려울 가장 시원하고도 속이 확 풀리는 그런 된장국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푸에르토리코만 생각하면 일본 식당의 너무나도 시원했던 된장국도 항상 떠오르곤 했었다.


(해장에 좋은 미소국 조리법)

https://in.naver.com/yongsik/contents/279333614868256?query=%EB%AF%B8%EC%86%8C%EA%B5%AD




푸에르토리코 출장에는 당시 그 지역을 관할하던 마이애미 법인 현지인 직원도 같이 출장 갔었다. 그녀는 우리 3명과 비슷한 나이의 30대 초반 금발 백인 여성이었는데, 체격도 너무 크지 않았고 어찌 보면 동양인처럼 수줍음도 있어 보이는 그런 미인이었다.


한편 그녀는 평소 업무적으로 관계가 있던 직원이 아니었고 이 출장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직원이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다소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함께 출장을 다녔다. 그렇지만 그래도 며칠간 같이 다니면서 정이 들어서였는지 마지막 날 헤어질 때는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하는 뺨을 마주 대는 비즈(Bise)를 그녀가 먼저 시작했다.


(프랑스의 볼 키스)

https://m.blog.naver.com/learnforever/221562049626


내 동료 두 명은 그녀의 행동에 따라서 편하게 같이 비즈를 했고, 마지막에 내 차례였는데 나는 왠지 그게 좀 어색해서 그걸 피하고 그냥 손을 잡는 악수로 대신했다. 당시는 그런 인사법이 남녀 간에도 매우 흔한 인사라는 것을 잘 몰랐던 상황이라 좀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피한 것이었는데 그때 그러한 나의 회피에 그녀는 나름 꽤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명의 한국 사람 모두가 그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면 서로 문화가 달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를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두 명의 한국 남자는 별다른 거리낌 없이 같이 비즈를 했는데, 유독 한 명만 기겁을 하고 피하니 다소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뒤 프랑스에 1년간 파견되어 남녀 간의 그런 인사를 너무 흔하게 보게 된 이후에는, 나 역시 자연스럽게 비즈를 하게 되었는데, 남녀 간의 특별한 이성 감정 전혀 없는 그저 같은 월급쟁이로서의 동료애 표현 정도의 인사를 그렇게 기겁을 하고 유난을 떨며 회피했으니 나도 참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그날 그렇게 그녀와 헤어진 이후에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때 꽤나 무안했을 그녀에게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한편 그녀는 마이애미 법인에서 근무를 하던 직원이었지만 법인 소속의 인력은 아니었고 파견직 직원이었다. 즉, 인력 회사에 소속되어 있던 직원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담당하던 업무들이 결코 사소한 업무가 아니었음에도 미국의 법인은 파견직으로 그녀를 고용했던 것인데 당시 한국에는 그러한 제도가 활성화되기 이전이라 미국에서는 그런 방식으로도 직원을 채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 나름 좀 신기하게 느꼈던 기억도 있다.




좀 황당하지만 푸에르토리코에서는 호텔 안의 장애인 전용 방에서 숙박을 하기도 했었다. 출장자 세 명 모두가 동일한 호텔로 예약했는데 도착해서 Check in 하던 중 공교롭게도 내가 방 키 받을 차례가 되자, 갑자기 직원이 하는 말이 마침 빈방이 더 없으니 1층 장애인 전용 방에서 잘 수 없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장애인용 방이라는 말에 사실 좀 찜찜하기도 했는데, 다른 빈 방이 없다니 어쩔 수 없이 동의하고 그 방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출장을 다녔지만 호텔의 장애인 전용 방에서 숙박을 했던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장애인 전용 방이라 그런지 방에는 비상벨과 지하철 장애인 화장실에서 보던 것 같은 그런 특이한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방의 위치 또한 이동하기가 불편한 장애인을 배려해서인지 1층 프런트 데스크 바로 , 즉 호텔 현관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좀 분위기가 많이 다른 방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빠진 것은 없었던 반면 단지 뭔가 추가된 것들이 있는 그런 방이었던 셈이라 그저 별생각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결과적으로는 밤새 거의 한잠도 못 잤다. 호텔 1층 출입구 바로 옆에 방이 있으니, 밤새 들락날락하는 술 취한 투숙객 소음과 바로 옆 프런트 데스크에서 떠드는 소리들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곧바로 프런트 데스크에 가서 불만을 제기하고, 방을 바꿔 달라했는데 다행히 2일 차에는 빈방이 생겨서 방을 바꿀 수가 있었고 그 이후에는 훨씬 더 조용한 방에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다.


출장을 다니며 수도 없이 호텔에서 숙박을 했지만, 호텔에 장애인 전용 방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었는데 잠을 못 자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날 장애인 방에서 숙박했던 덕분에 그런 방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마 국가에서 규정한 법규에 의거 장애인 방을 별도로 운영해야 했던 것 같은데 검색해 보니 한국에도 비슷한 법이 2018년 입법이 되었다.


(장애인 편의 시설 관련 법령)

https://m.blog.naver.com/kuk34/221398771647




중남미 영업을 하며 중남미 출장을 다니던 시절 카리브해의 섬나라로서는 '도미니카'와 '푸에르토리코' 이 두 섬을 다녀 봤는데 두 섬 모두가 공통적으로 바다와 해안가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각박하고,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한국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두 섬은 말 그대로 별천지 같은 세상이었던 셈이다.


이런 글을 적으면서 그 시절과 그 시절 머물렀던 공간들을 회상하니 당시 진하게 체험했던 카리브해의 찬란한 햇살과 바닷가의 그 후덥지근한 해풍이 지금도 다시금 피부에 와닿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카리브해 섬에서의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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