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선한 바람?

■ 그 출장자의 서글픈 기억들 (8편 중남미-13)

by SALT

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장으로 방문했던 그 시절 중남미 도시들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Buenos Aires, ARGENTINA



13. 선한 바람?


2020년 기준 아르헨티나의 인당 GDP는 약 8천 4백 불로 한국의 27%, 미국의 13%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낮았다. 하지만 1900년대 초반만 해도 아르헨티나의 인당 GDP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고, 미국과 비교를 해도 미국의 약 80%~90% 수준까지 근접하는 등 별로 차이가 없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세계 5대 부국 또는 10대 부국이라 하면 아르헨티나가 항상 포함될 정도로 아르헨티나는 선진국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한 반복적인 재정 지출 과다로 결국은 국가가 파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아르헨티나는 무려 8번에 걸친 국가의 부도 사태를 거치면서 과거의 화려한 영광과는 전혀 다른 그런 국가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오늘날까지 지속돼 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진국이 급격하게 몰락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매우 드물다고 하는데 아르헨티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국가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경제 몰락 관련 기사)

1.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174246622722128&mediaCodeNo=257

2. https://www.sedaily.com/NewsVIew/1Z7SD6XT6Y

3.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317880


아르헨티나 경제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심지어 유럽의 부국 중 하나인 이태리와 같은 국가에서도 무려 약 200만 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일자리가 풍부하고 또한 인건비도 높은 아르헨티나로 돈 벌기 위해 오기도 했었다. 과거 한국인이 일자리도 없고 급여도 낮은 한국을 떠나서 독일에 간호사나 광부로 또는 중동에 건설 근로자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은 경우였던 셈이다.


그 시절 그렇게 이태리에서 아르헨티나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어린 시절 즐겨 보기도 했던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였다. 이 만화는 이태리 작가가 실제 실화를 배경으로 쓴 글 "아펜니노에서 안데스까지"를 일본인 작가가 만화 영화로 만든 것으로써, 일자리를 찾아서 아르헨티나로 와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엄마를 만나기 위해 마르코라는 소년이 이태리 제노바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오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 소개)

1.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87038.html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arcadia2&logNo=220647486493&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이제는 인당 GDP가 말레이시아, 모리셔스, 카자흐스탄 등 국가보다도 낮은 수준이지만 과거 한때 이처럼 유럽에서도 수많은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찾아올 만큼 잘 살았던 그러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였다.




그런데 이런 아르헨티나에는 또 다른 특이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인구 중 백인계 비율이 무려 97%라는 것이다. 미국과 호주의 백인 인구 비율이 80%를 넘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인데 중남미 원주민들이 다수 남아 있는 볼리비아, 페루 등 인근 중남미 국가와는 너무도 다른 매우 특이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가 이토록 높은 백인 인구 비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백인 이외의 인종에 대한 철저한 차별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백인들은 그들의 영토에 대대로 거주해 왔던 원주민들은 학살하거나 국경 밖으로 쫓아냈다. 그 이후에는 백호주의로 유명한 호주처럼 오직 백인으로만 구성된 그런 국가를 건설한다는 계획하에 유럽인 중심으로만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결국 원래 그 땅에 살던 원주민들은 쫓아내고, 새로 유입되는 이민자는 백인만 받아들이니 아르헨티나는 백인들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백인 국가가 되는 역사)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6813&cid=59020&categoryId=59027


한편 이처럼 백인들만을 중시하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여타 인종에 대한 배척과 차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아르헨티나인의 인종 차별은 중남미에서도 그 유례가 드물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그리고 특이한 현상이지만 유독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적개심이 심해서 내가 이 국가를 방문하던 시절과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인이 혐오하는 외국인 1위로 한국인이 꼽혔다.


아르헨티나와 별로 관계도 없을 것 같은 한국인이 왜 혐오 대상 1위가 됐는지는 이해가 안 되지만, 아르헨티나인들이 언급하는 이유로는 1) 폐쇄적, 2) 더럽다, 3) 노동력 착취, 4) 의류 상권 장악 등이라 한다.


(아르헨티나인 한국인 가장 혐오, 1998년 기사)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04/29/1998042970062.html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거나 방문하려는 한국인들은 적지 않은 차별로 고생을 한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아래 글들을 읽어 보면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순서대로 2009년, 2011년, 2018년 경험한 것을 작성한 글인데, 시간이 흘러도 과거와 전혀 차이가 없는 것 같다.


1. https://infoiguassu.tistory.com/263

2. http://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9008

3. https://serie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7799029




이처럼 인종 차별이 극심한 나라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바로 Buenos Aires인데, 2002년 이 도시를 처음 방문했었다. Buenos Aires라는 도시명은 과거 이곳을 식민 지배했던 스페인의 언어에서 온 단어인데, Buenos는 번역하면 선한 혹은 착한이란 뜻이며, Aires는 공기 또는 바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Buenos Aires'는 '선한 공기' 또는 '착한 바람'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름으로 식민 초기 스페인 선원들이 선한 바람의 도움으로 풍랑을 마주치게 되거나 난파되는 일 없이 Buenos Aires에 무사하게 도착한 것을 감사하는 마음에서 채택했던 지명이라 한다. 결국 'Buenos Aires'라는 도시의 이름은 원래는 매우 좋은 뜻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 대한 내 실제 경험과 인식은 이러한 아름다운 이름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전혀 선하지도 않았고 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오랜 기간 중남미 출장을 다니면서 많은 중남미 국가를 방문했었지만 부정적 인식을 갖고 그 국가를 떠났던 경우가 정말 없었던 상황에서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이 '아르헨티나'라는 국가였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경험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것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다. 우선 Buenos Aires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입국장으로 들어서기도 전 공항 환전소에서 사기를 당했다. 공항 보안 구역 내에 있는 환전소라 방심을 했던 탓인지, 가지고 갔던 미국 달러를 내 밀고 아르헨티나 돈으로 받아서 바로 환전소를 떠났는데 상대방을 믿고서 그 자리에서 금액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나중에 지갑에 돈을 넣을 때 다시 보니 실제로 받아야 하는 돈의 반 정도밖에 받지를 못했던 것이다.


환전소에 돌아가서 얘기를 해 봤지만 환전소 직원은 자신은 받은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 정확히 환전해 주었다고 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내가 얼마를 주었는지 미리 사진을 찍어 놓은 것도 아니고, 더 우겨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은 상황이라 그냥 포기하고 호텔로 향했다. 다행히 많은 돈을 일시에 환전한 것이 아니어서 그리 큰 손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멀쩡하게 생긴 젊고 아름다운 백인 여성이 그것도 공항의 보안 구역 내부에 있는 환전소에서 그렇게 버젓하게 동양인을 대상으로 사기까지도 칠 수가 있는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미 아르헨티나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서서히 무너져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보다도 훨씬 더 결정적인 사건은 출국하는 과정에서 또 발생했다. 입국 및 출국 과정 모두가 아르헨티나에서는 참담했던 것이었다.


당시는 2001년 무려 약 3천 명이 사망했던 미국 9·11 항공기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미국행 항공기에 탑승 시에는 보안검사가 매우 까다로웠던 시기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던 나는 보안 검사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고생하리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보안 검색을 할 때 신발을 벗으라 하고는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까지 금속탐지기를 갖다 대고서 검사하는 황당한 경우를 당한 출장자도 있었을 정도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각오했던 것을 훨씬 넘는 곤욕을 치렀다. 내가 짐이 너무 단출하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들은 이미 죽을 작정을 한 사람들이라서, 항공 이동 등 장거리를 이동 시에도 휴대하는 짐이 별로 없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탑승 전 보안 검사하는 백인 여직원이 유난히 까다롭게 장시간에 걸쳐 질문을 했다. 한마디로 내 앞뒤에 있던 다른 백인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너무도 차이가 컸던 것이었다.


그 직원에게 짐이 별로 없는 이유 등 여러 가지 정황을 누차 설명했음에도, 시종일관 고압적인 자세로 범죄인 취급하듯 따지고 들었고, 10분 또 20분이 지나가도 비슷한 질문들만 계속할 뿐 보안검사를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결국에는 숙박 호텔 등 내가 Buenos Aires에서 머물렀던 거의 모든 곳에까지 전화해서 확인하는 등 장시간 실랑이를 벌인 끝에야 간신히 그녀의 보안검사를 통과하기는 했는데, 당시 그녀가 보였던 태도는 사실 항공기의 안전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충실한 보안 요원의 자세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싫어하는 다른 인종의 사람들에 대해 증오를 표현하는 듯한 그런 태도였다는 것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진저리가 날 정도로 괴롭게 해서 두 번 다시 백인 국가인 아르헨티나에는 발 들일 생각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려는 그런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에서 한참을 시달리면서 미국 공항에서 목격했던 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이었는데 미국 공항에서 워낙 심하게 검색을 받다 보니 검색이 끝나자마자 검색한 백인을 잠시 쳐다본 동양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그러한 시선이 불쾌했는지 그 백인 공항 직원이 하는 말이 정말로 대단했다. "뭘 쳐다보냐? 불만 있냐? 더 고생해 볼래?" 이런 식으로 연속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런 안하무인적이고 고압적인 자세에 유학생같이 보이던 그 젊은 동양인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대로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는데, 주변에서 그 장면을 봤던 내가 열 받았을 정도였으니 당사자는 정말로 불쾌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심한 시달림을 그 아르헨티나 보안 검사 담당 백인 여직원한테 나 자신이 직접 겪게 되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과 2박 3일간의 아르헨티나 출장만으로 모든 아르헨티나인이 내가 경험했던 그런 아르헨티나인과 같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제 시내 도심의 골동품 판매 상점에서 오래된 LP판이나 기념품을 구매할 때 만난 아르헨티나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물건을 파는 입장이라 태도가 달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감각적인 느낌이라는 것 또한 있는데 전혀 그러한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도 Buenos Aires 시내의 어느 골목 상점에서 매우 오래된 70년대 LP판을 살 때 푸근한 인상과 잔잔한 미소로 우리들을 대해줬던 그 할아버지의 선한 얼굴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다.


또 거리를 걸어 다닐 때도 역시 주변에서 차가운 시선이나 눈총은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들이 특별하게 친절했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을지라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냉대적인 것 또한 분명히 아니었다.


한국인 중에도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온갖 선행을 베푸는 사람도 역시 있는 것처럼 4,500만이나 된다는 아르헨티나 인구 중에는 내가 만난 것과 같은 환전 사기꾼도 있고 인종 주의자도 있는 반면, 또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 며칠 왔다 간 외국인이 한국에서 외국인이란 이유로 바가지요금 몇 번 당하고, 또한 호객행위로 손해를 봤다고 해서 한국사람 5천만 명 모두가 똑같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부정적인 행위를 했던 몇 사람들 때문에 불과 2박 3일 체류했던 아르헨티나의 국민 4,500만 전체를 통틀어서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부정적인 행동을 했던 사람들이 아르헨티나에는 있었다는 사실과 그러한 사람들의 비중이 전술한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나온 것처럼 내가 경험했던 인근의 다른 중남미 국가들보다는 좀 더 많았다는 것만은 밝히고자 할 뿐이다.


언제가 모 지역 주재원과 출장 중 식사를 할 때 그 주재원이 며칠 출장 왔다간 본사 직원들가장 무섭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이 무서운 이유는 한국에 돌아간 이후 그 짧은 며칠간의 출장 경험만으로 그 나라 전체를 완전히 다 아는 것처럼 판단하고 또 얘기를 하고 다녀서 때론 본사에 매우 심각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나도 그처럼 잠깐 출장 다녀온 중남미의 국가들에 대해서 본사로 귀국한 이후 마치 그 나라의 모든 것을 경험했던 것처럼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던 경우가 매우 많았던 것 같다. 결국 그 주재원이 무섭다고 했던 출장자 중에는 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사실 유럽의 Paris를 모델로 건설했다는 Buenos Aires는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한 그러한 도시였다. 실제로 거리를 걷다 보면 정말 마치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꽤 많이 들기도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소개 블로그)

1. https://m.blog.naver.com/jdhrg/221697153266

2.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819077&memberNo=42408078


게다가 Buenos Aires는 감미로운 음악 '탱고(Tango)'의 고향이고,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였다. 아울러노래 주인공으로 사생아로 태어나 빈민가에서 너무도 가난하게 성장했지만 대통령 부인까지 되었다가 결국에는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Eva Peron의 영화와 같이 파란만장한 인생이 잠들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에바 페론과 Don't cry for me Argentina, 05:29)

https://www.youtube.com/watch?v=adUPdnzCAk8


감미로운 음악과 정서, 게다가 너무 아름다운 그 모습만큼 Buenos Aires란 도시가 언젠가는 원래 도시의 이름 뜻에 걸맞게 실제로도 인종차별 없는 '착하고 선한 바람'과 같은 그런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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