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처음 보는 Brother

■ 그 출장자의 서글픈 기억들 (8편 중남미-14)

by SALT

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장으로 방문했던 그 시절 중남미 도시들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미국 도시들

Miami, Laredo, LA, New Jersey 등



14. 처음 보는 Brother


미국은 당연히 중남미 국가가 아니다. 하지만 중남미 수출 업무를 담당하고, 중남미 지역 출장을 다니면서 가장 자주 방문했던 국가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미국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마이애미(Miami)나 러레이도(Laredo) 같은 미국의 도시에는 방대한 규모의 중남미 재수출 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곳무역업자들은 해외 여기저기서 제품을 구입하여 미국 내수로 판매하지 않고 중남미 국가로 재수출하는 그런 비즈니스를 하는 업체들이었다.


따라서 이곳의 거래선들에게 제품을 수출할 때는 이 지역이 엄연히 미국의 영토였지만 스페인어가 사용되는 중남미에 맞게 제품 설명서도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제작해야 했고 또 제품 전원도 미국식의 120V가 아닌 중남미 다수 국가가 채택한 220V가 적용되어야만 했다. 한마디로 애당초 미국 영토에서는 전혀 팔리지 않을 그러한 제품을 수입해서 전량 중남미로 재수출하는 것이었다.


제품이 중남미로 직접 수출되지 않고 이처럼 미국을 거쳐서 중남미로 다시 재수출되는 이유는 첫째는 대량을 구매하는 미국의 시장 가격이 중남미보다는 훨씬 낮기 때문에 가격이 낮은 미국에서 가격이 높은 중남미로 제품들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그 당시 대다수 중남미 국가들은 자국의 전자 산업 육성을 위해 전자 제품 완제품 수입에는 고관세 부과 등 나름 심한 규제를 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재수출 거래선들이 밀수와 같은 방식으로 이 규제를 피해서 중남미로 완제품을 수출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와 같은 한국 제조업체들이 미국의 재수출 기지에 있는 이런 거래선들에게 판매한 물량은 거의 전부 중남미로 밀수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국 거래선에 제품을 판매한 것이 전부로 이후의 밀수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제조업체들이 밀수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는 아니었다. 왜냐면 미국 거래선이 완제품에 대한 높은 관세를 실제로 모두 지불하고 중남미로 수출할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 중에는 무관세 지역으로 제품의 시장 가격이 낮은 홍콩이나 마카오를 통해 정상적인 관세를 지불하지 않은 상태로 밀수입된 것들이 엄청난 것과 유사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에 홍콩이나 마카오로 판매한 아이폰이 현지인들의해서 중국으로 밀수되었다고 해서 제조사인 애플이 책임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미국을 가장 많이 방문했던 두 번째 이유는, 당시 한국에서 중남미까지 가는 직항 노선이 없는 실정이라 중남미 국가를 방문하려면 우선 무조건 미국의 도시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중남미로 향하는 항공편으로 갈아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중남미에 출장 갈 때는 갈 때와 또 돌아올 때 모두 항상 미국의 도시를 거쳐야만 다.


뿐만 아니라, 중남미 국가 간의 항공 노선보다 미국의 대형 도시들과 중남미 국가 간 항공노선이 더 발달하고 빈번해서 중남미 내에서 심지어 바로 옆에 붙어있는 국가로 이동하게 될 경우에도 때로는 오히려 미국을 경유하여 이동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인 경우도 있었다. 중남미 국가들과 미국 간 교류가 워낙에 많았기 때문에 항공 노선도 그렇게 인근 중남미 국가보다는 미국과의 사이에 더욱 발달되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로 방문하게 되었던 미국 남부 도시에는 중남미에서 이민 온 히스패닉계나 또 불법적으로 체류하는 중남미인들이 워낙 많이 있어서 스페인어가 꽤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중남미 출장을 갔다가 미국에서의 환승을 위해 미국 공항에 도착하면 입국 심사 시 심사관이 "영어와 스페인어 중 어느 걸말해 줄까?"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처럼 동양인으로 생긴 사람한테 그런 질문을 할까? 동양에서 스페인어 사용하는 곳이 거의 없는데 당연히 영어지...."라고 한 때는 나름 의아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중남미에 나 같은 동양인 이민자도 사실 꽤 많았고, 또한 미국인 시각에서는 중남미 원주민과 한국인을 구별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수도 있었다.


한때 인디언(영어) 혹 인디오(스페인어)로 잘못 불리기도 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은 원래는 극동 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던 민족이었는데 오래전 베링해를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해 갔다고 한다. 따라서 외모도 동아시안인과 사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서양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과 동아시아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바로 그런 사유로 코로나 사태 이후 요즘 아시아인 대상의 증오 범죄가 한참 기승인 미국에서 중남미 원주민이 때로는 아시아인으로 잘못 인식돼서 폭행당했다는 웃지 못할 그런 기사도 가끔 접할 수 있다.




중남미 재수출 비즈니스를 위해서 가장 자주 방문했던 미국 도시는 당시 최대 중남미 재수출 기지가 있던 Miami였다.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반입되는 마약은 주로 Miami와 같은 대도시를 통해 반입되었는데 마약을 판매하고 받은 대금의 일부는 Miami에서 다량의 전자 제품을 구매하는 것에 다시 활용되었고 그렇게 구매한 제품들이 중남미로 밀수되면서 또 다른 밀수 이익 창출에 활용되기도 했다는 소문도 당시 있었다. 즉 마약의 판매 자금이 Miami의 전자 제품 중남미 밀수에도 일정 부분 관여가 되었던 셈이다.


그렇게 험한 밀수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Miami의 거래선들과 상담을 하기 위해서 찾아가면 사무실 출입구의 시건장치가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심지어 벨을 누르면 감옥처럼 철로 문의 윗부분에 있는 작은 창문만 먼저 열어서 신원을 확인한 후 문을 열어주는 그런 경우도 있었다.


또 지금도 기억나지만 상담 중 거래선 사장이 소매를 걷어 올리니 팔에는 무슨 특별한 조직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새빨간 장미가 새겨진 문신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꽤나 험한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이러한 거래선들만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각 사업부별 1명씩 3명이 함께 출장 간 적이 있었는데, 인기가 많은 제품에서부터 상담을 하겠다고 거래선이 제안해서 같이 갔던 2명이 먼저 상담을 하고 내가 가장 마지막에 하게 되었는데 앞의 상담 시간이 예상보다 조금 더 길어지다 보니 정작 내 차례가 을 때는 이미 시간이 지났다며 아예 상담 자체를 못해 허탕을 치는 그런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당시 우리 사업부 제품이 가장 인기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서러움이었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다. 사전에 상호 합의하에 상담 날짜 및 시간을 모두 정하고, 지구 반대편 그 먼 곳까지 출장 가서 거래선 사무실에까지 도착했는데 막상 거래선이 급한 일이 생겨 다른 곳에 갔다며 사무실에 없는 경우였다. 그가 올 때까지 좀 더 기다리겠다고 하며 한참을 더 기다렸지만 그날 거래선은 오지 않았고 결국 거래선 얼굴도 보지 못한 채로 호텔로 돌아오기도 해야 했었다.

Miami의 그 끈적끈적하고도 더운 날씨에 거래선 보여줄 샘플 5~6개를 손으로 다 들 수가 없어 일부는 2개씩 줄로 연결해서 목에다 걸고 거래선 사무실로 찾아간 것이었는데, 그러고도 상담은커녕 아예 거래선 얼굴조차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거래선 만난다고 아래위 짙은 색 양복 쫙 빼 입고 넥타이까지 맨 상태에서, 목에는 샘플을 줄로 매달아 달고 다녔으니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딱 불쌍한 장사꾼 모습으로 출장 다니던 시절이었다.


물론 애플이 대표적인 사례겠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제품을 판매하는 우리 회사가 때론 제품을 구매하려는 거래선보다 더 갑의 입장에 있기도 했다. 따라서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경우를 쉽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당시 90년대만 해도 한국 브랜드들이 해외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도 않았고 또 그처럼 우리 브랜드가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거래선이 지정해 주는 OEM 브랜드로 생산해서 수출하던 물량들도 결코 적지 않던 시절이었다. 결국 그렇게 알려지지도 않고 인기도 없는 제품을 판매하려니 그렇게 무시를 받는 경우가 꽤나 흔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만나 주겠다는 거래선이 있으면 그저 감사한 마음에 그렇게 미련하게 보따리상처럼 샘플 들고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고 또 최선이었던 시절이었다.




여러 차례 방문했던 Miami 이외에도 또 다른 미국 재수출 거래선이 있던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바로 RTA라는 거래선이 있던 미국 남부 Laredo였다. Laredo는 딱 한 번 방문했었다.


지명에도 스페인어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Laredo는 원래는 멕시코 영토의 도시였다. 그렇지만 미국과의 전쟁 과정에서 도시를 횡단하는 리오그란데 강 북쪽 지역을 미국에 뺏겼고 이후에는 청계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좁은 리오그란데 강을 사이에 두고 도시는 둘로 나뉘어서 북쪽은 미국의 Laredo, 남쪽은 새로운 Laredo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멕시코령 Nuevo Laredo가 되었다.


하지만 어쨌든 두 도시가 너무나도 가깝게 붙어 있어서 이곳에서는 꽤 활발한 양국 간의 무역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배경에서 RTA와 같이 멕시코로 제품을 재수출 거래선들이 이 Laredo에는 많이 몰려 있었던 것이었다.


(Laredo 모습. 강 위쪽이 미국, 아래는 멕시코)

https://mexico-now.com/laredo-and-nuevo-laredo-seek-to-minimize-the-impact-of-the-pandemic/


전술한 바와 같이 당시는 우리가 OEM Brand로도 수출을 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거래선이 원하는 브랜드를 그대로 제품에 부착해서 생산한 후 거래선에게 선적하기도 했는데, 이 RTA라는 거래선은 자신들은 'Shogun'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니 이것을 제품에 부착해 달라고 했다.


당시는'Shogun(쇼군, 將軍)'이라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는데 이 영화가 인기가 있으니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들에도 이 단어를 브랜드로 부착해서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굳이 하필이면 일본어를 한국의 업체에게 브랜드로 부착해 달라고 하니 기분이 좋지 않기는 했지만, 당시 우리가 거래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그러한 입장은 아니라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이러한 OEM Brand 생산은 전혀 취급하지 않지만, 당시에 이렇게 거래선이 불러주는 대로 Brand를 부착해서 제품을 생산 후 판매하던 방식은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사실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Shogun'이라는 단어에 대해 누군가 상표권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확인 절차 전혀 없이 그대로 부착해서 판매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정말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30년도 넘는 90년대 그 시절에는 이런 무지막지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다.


당시 만났던 사람은 RTA의 구매 책임자였는데, 그는 나름 매우 친절해서 내게 저녁 식사까지 직접 접대해줬다. 그가 원하는 식당을 말하라고 해서 한국 식당이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해 결국 차선책으로 일식집에 가자고 했고 그가 잘 안다는 일식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 일식집에 가서 음식을 먹어보니 음식 맛이 꽤나 이상했다. 원래 일본 음식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먹었던 일식과는 맛이 너무도 달랐고 특히 모든 음식이 몹시 달았다. 하지만 어쨌든 당시 흔하지 않은 식사 대접을 받는 입장이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RTA 구매 책임자와의 상담은 결과가 매우 좋아서, 당시에 40' 컨테이너 약 10여 대에 해당하는 물량을 수주했었다. 납기 또한 급하다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우기고 우겨서 바로 생산 계획에 이 물량들을 모두 긴급 반영했는데, 얼마 후에 RTA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꽤 참혹했다, 컨테이너 10대분의 물량 모두를 다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만났던 구매책임자는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나와의 상담 며칠 후 바로 해고됐고, 그의 해고와 함께 그가 구매를 약속한 모든 제조업체들의 물량들은 전부취소가 되었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사업부에 열심히 전화 걸어서 꽤 긴급하게 반영했던 그 많은 물량들을 이번에는 긴급하게 취소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고 이로 인해 생산관리과로부터 욕도 몇 바가지 이상 진하게 얻어먹어야만 했다.


이 Laredo라는 지명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경험도 있는데, 미국 비자 받으려고 광화문의 대사관에 인터뷰하러 갔더니 대사관의 심사관이 미국 어디를 가냐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스페인어 발음 그대로 '라레도'에 간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이 다시 물어보더니, "라레도가 아니고 '러레이도'가 정확한 발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에 나는 "영어식으로 읽으면 네 발음이 맞는데, 원래의 스페인어 발음으로는 '라레도'라고 답을 했다." 이 말에심사관은 옆에 있던 미국인에게 확인을 하더니 이후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 말이 맞으니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로부터 비자를 받으려고 인터뷰를 하는 아쉬운 입장이었는데 굳이 심사관 심기를 건드란 것 같아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저 알았다고 하면 될 것을 괜히 이것저것 사족을 달아서 심사관 기분을 건드려 혹 비자 발급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비자는 다행히 문제없이 나왔다. 참고로 아래의 번역기에서 'Laredo'라는 스페인어 지명의 영어식과 스페인어식 발음 차이를 들을 수 있다.


(Laredo의 영어 및 스페인어 발음)

https://translate.google.co.kr/?hl=ko&sl=en&tl=es&text=laredo&op=translate


사실 미국 남부는 원래 스페인이나 멕시코 영토였는데 이후 미국 영토로 편입된 곳이 매우 많아 Laredo처럼 스페인어 지명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꽤 많다. San Francisco, Los Angeles, Santa Fe, San Diego, Las Vegas 등이 그런 사례들인데, 도시의 지명에 그 도시들의 과거 역사가 그대로 새겨져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중남미 출장을 다닐 때 환승을 위해 주로 방문하던 도시는 주로 New Jersey나 LA(Los Angeles)였다.


한 번은 중남미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LA에서 환승을 했는데, 입국 심사와 세관 검사를 모두 다 마치고는 걸어서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세관 검사장 출구 밖에 작은 책상을 하나 갖다 놓고서 앉아 있던 세관원이나 경찰 같은 제복을 입은 어떤 여자가 내게 갑자기 뭐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음식물을 가지고 있지는 않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없다고 답을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럼 혹시 주머니에도 과자나 캔디 같은 것이 전혀 없냐고 물었다. 나는 평소에 간식을 잘 먹지 않는 타입이라 당연히 주머니에는 그런 간식 같은 음식들은 전혀 없었고 역시 없다고 답변을 했다. 한편 그렇게 답을 하기는 했지만 이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며 이미 세관 검사를 모두 마치고 나왔는데 왜 이런 질문을 이 장소에서 하고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어쨌든 제복을 입고 있으니 그런 질문을 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답변을 하긴 했는데, 그녀는 또다시 집요하게 한 번 더 질문을 했다. 정말로 작은 부스러기라도 주머니 속에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다시 질문을 해 오니 내게도 꽤나 부담이 돼서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고 또 여기저기 주머니 속에 실제로 손을 집어넣어 확인을 해 보기도 했다.


그 여성이 하도 진지하게 몇 번씩 물어보니 혹 내 주머니에 정말 스낵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평소 간식을 전혀 하지를 않았으니 당연히 내 모든 주머니에 스낵류라고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결국 정말로 없다고 답을 했다.


그러한 답을 들은 그녀는 순간 마치 이제는 실제 주머니 검사까지 할 것 같이 잠시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맘이 바뀌었는지 알았다고 가라고 했다.


중남미 출장 시 미국 공항을 경유하거나, 또 이후 직접 미국 출장을 가게 되는 경우도 정말 많았지만, 이날처럼 이상한 장소에서 이상한 질문을 반복하는 공항 직원을 만났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지금도 당시 그 근무자가 왜 내게 그런 질문을 반복해서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물론 대다수 국가에서 음식물 반입은 금지하고 있다. 다만 주머니 속에 있는 과자나 사탕까지 금지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필경 그것조차도 금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여성 직원이 그렇게 물어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외국에 있는 공항은 출장으로 너무 자주 다녔지만 그럼에도 어느 나라에서나 세관 검사는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보름 이상 중남미 출장을 다니다가 미국의 New Jersey나 LA에 도착하면 이미 한국에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이제 한 번만 더 비행기 타면 바로 한국에 도착하게 되니 심리적으로 좀 더 한국에 가까워서 그랬기도 했지만, New Jersey나 LA의 코리아타운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곳의 코리아타운에는 다양한 한국 식당들이 정말로 많았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음식 맛 또한 서울과 비교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식당 자체가 극히 적었고 또한 한국 음식 재료가 상대적으로 귀한 중남미에서 먹었던 한국 음식들의 맛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중남미에서 대략 보름 정도 만족스럽지 못한 음식에 시달리다 미국에 도착해 코리아타운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일단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속이 확 풀리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또 엄밀히 말하면 한식은 아니지만, 한식처럼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요리들도 있었다. 바로 LA의 레돈도(Redondo)에 있는 식당이었다. 이 식당은 게나 회 등 다양한 해산물들을 판매하는 식당이었는데, 유난히 좋았던 점은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초장이나 간장 등 소스를 완전히 한국식으로 해서 제공해 주는 점이었다.


(레돈도 비치의 한국식 해산물 식당)

https://m.blog.naver.com/gangddubugy/221295337597


그리고 가격이 정말로 환상적이었는데, 엄청나게 큰 게 마리가 서울의 식당에서 판매되는 가격의 반의 반조차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모든 것이 풍족한 곳이니 게 값도 그렇게 저렴했던 것 같은데 그 덕분에 이곳에만 오면 엄청나게 게를 몇 마리나 한국식 소스 및 반찬과 함께 원 없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언제가 다시 LA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다른 곳은 몰라도 이 식당은 잊지 않고 꼭 다시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다.




LA에서 같이 간 동료와 둘이서 해변가를 걷고 있을 때였다. 어떤 백인이 다가오더니 담배 한 개비 얻을 수 없냐고 했다. 불량배 같지는 않았고 멀쩡하게 보이던 젊은 백인이었는데, 뭐 길게 엮이고 싶지 않아서 상의 셔츠 주머니에 있던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줬다. 고맙다고 하며 그는 떠났는데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마치 삥뜯기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식당 앞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고등학생이나 아니면 대학 신입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동양인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역시 담배 한 개비만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태도가 역시 다소 삥듣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담배 얻자는 말을 할 때 미국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것처럼 "Hey, brother...."이러한 문장으로 말을 시작했다. 내가 아버지 뻘은 안 되겠지만 최소 삼촌 뻘은 될 것 같은데 '형씨' 뭐 이렇게 부르는 것 같아서 더 불쾌했었다. 분명히 한국계 이민자로 보여서 그러한 감정이 더 들었는데, 사실 외모와 혈통만 한국인이지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 갔다면 완전히 미국인이니 한국적인 문화에서 접근해봐야 씨알도 먹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무리 사람들붐비는 한국 식당의 바로 앞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그곳은 치안이 좋지 않은 미국이었고 또 그 어린 동양인 학생이 앞에 언급한 것처럼 마약이라도 한 것 같이 눈이 게슴츠레 풀려 있는 데다가 또한 비실비실 웃기까지 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좀 겁이 나기도 했었다.


결국 아주 잠시, 정말 너무도 짧은 찰나 고민을 하다가 바로 그분(?)의 요구대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개비를 전달했다. 같은 날 미국에서 두 번째로 담배를 삥뜯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백인에게 뜯길 때 보다도 미국에까지 와서 한국계로 보이는 어린 미국인에게 삥뜯길 때가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내가 건네주는 담배를 받으면서도 역시 "고마워 브라더"라고 또다시 브라더를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이역만리 미국에는 이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생전 처음 보는 형제도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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