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에는 '이탈리아 거리 (Avenue d'Italie)'라는 이름을 가진 거리가 있고, 그 거리의 끝에는 '이탈리아 광장(Place d'Italie)'이라는 광장이 있다. 과거 Paris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도로의 출발점이 그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 이탈리아 광장 및 이 광장이 속한 주변 13구에서 이탈리아인은 도통보기가 어렵고, 대신 다수의 중국인이 모여 거주하고 있다. Paris의 20개 구(區)중 하나인 이 13구는 주민뿐 아니라, 상점들까지도 대부분 중국인이 운영하거나 중국과 관련된 상점으로 구(區) 전체가 바로 Chinatown이었던 것이다.
물론 1995년 당시에도 Paris에 가장 많이 거주하던 외국계 이주민은 여전히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가 많았던 아랍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아랍인 또는 흑인들이었다. 하지만 중국인 및 동남아인의 Paris 거주가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그들이 13구 중심으로 모여 거주하게 되자, 이 지역은 자연스럽게 Chinatown으로 변모해갔는데 상권이나 경제권이 그렇게 중국인 중심으로 재편되다 보니 아랍인이나 흑인들은 그런 변화에 밀려 점점 더 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아랍인 구역이 점차 중국인 구역으로 대체되어 가는 것을 은연중 반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랍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치안도 안 좋고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발생해 항상 문제가 되어왔는데 중국인 밀집구역은 상대적으로 사건 사고도 적었고, 치안도 결코아랍인 구역만큼 나쁘지 않았으며 중국인들끼리 몰래 알아서 처리하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시끄러운 잡음이나 문제 되는 일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Paris에서 아랍인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의 치안은 당시에도 꽤 안 좋은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었다.
땅프레르(Tang Frère, 陳氏百貨商場)라는, 당시 Paris에 있던 중국 마트 중에서는 가장 크다는 대형 마트도 이 13구 Chinatown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중국 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다양한 동남아 국가 및 한국에서 온 식품까지도 판매되고 있었는데, 이 매장에 가 보면 중국어와 동남아시아어 등 온갖 다양한 아시아 언어가 여기저기서 난무하고 또 진열된 상품들은 대다수 한자로만 표기된 것도 많았으며, 손님 및 종업원까지도 거의 모두가 동양인이라, 마치 내가 Paris가 아니라 갑자기 중국에 있는 어느 대형 마트에 온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한 번은 이 매장에서 한국 라면을 한국식품점에서보다 너무 싼값에 팔고 있길래 서둘러 대량 구매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집에 와서 먹을 때 보니 역시 싼 가격에 파는 이유가 있었다. 유효기간이 경과된 지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끓이고 나니 라면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심하게 산패된 기름 냄새가 온통 진동했다. 결국 그날 구매했던 라면은 전량 버려야 했다.
그 휘발유 같은 기름 냄새에 한번 호되게 당한 이후에는, 좀 더 비싸더라도 유효기간을 꼭 확인해서 유효기간이 경과된 라면은 절대 사지 않았다. 심하게 산패된 기름이 범벅이 된 라면을 끓이면 정말 끔찍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는데, 냄새도 그렇게 지독한데 만일 그것을 먹어서 몸 안으로 산패된 기름이 들어간다면 우리 몸에는 과연 얼마나 해롭겠는가.... 아마도 유효기간 만료가 임박했거나 만료된 라면을 어디에선가 저가로 구매해 오는 것 같았다.
한편 그 슈퍼마켓 상호 땅프레르(Tang Frère)는 발음이 좀 특이하게 들리는데, "땅 씨 성(姓)을 가진 형제 가게"란 뜻이다. 그런데 한자로는 진 씨(陳氏)라고 매장 앞에 적혀 있어, 중국어를 전혀 모르던 당시에는 진(陳)이라고 쓰면 중국어 발음으로는 '땅'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중국어를 배우고 보니, 陳의 중국 표준 발음은 '천(Chen)', 광동(廣東) 지방 방언은 '챈(Chan)'으로, Tang이라는 발음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좀 더 알아보니, 중국 남부 푸젠 성(福建省) 언어인 민난어 발음으로는 陳이 '땅(Tang)'으로 발음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陳을 민난어 발음인 '땅(Tang)'으로 표기한 것을 보면 그들은 민난어를 사용하는 푸젠 성 출신 중국인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한국에 왔던 화교들은 대부분 한반도와 가까운 산동(山東) 지방에서 온 중국인들이다. 그런데 산동지방의 언어는 중국 표준어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한국에 온 화교들이 통상 구사하는 언어도 중국 표준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동남아 등 전 세계로 이주한 화교들은 산동과 같은 중국 북방지역 출신은 거의 없었고, 중국의 남쪽 푸젠 성(福建省) 출신이 가장 많았으며, 그다음이 광둥 성(廣東省) 출신이었다.
그 결과 푸젠 성 출신이 다수 이주해서 정착했던 대만이나 싱가포르 및 유럽에 거주하는 화교들이 사용하는 중국어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향 푸젠 성의 언어인 민난어(閩南語, Hokkien)가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었다.
인터넷 동영상을 검색해 보면,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 초대 총리 이광요(李光耀) 수상이 오래전 젊은 시절, 대중에게 연설할 때 중국의 표준어가 아닌 알 수 없는 이상한 언어로 연설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동영상에서 그가 구사하던 그 언어도 바로 이 푸젠 성의 민난어다.
하지만 중국의 중앙집권이 강화되고, 중국 본토에서조차도 이제는 지방 언어 사용이 점차 줄어드는 것처럼, 최근에는 싱가포르도 그렇지만 기타 해외 거주 화교들 대다수도중국 표준어인 보통화(普通話)를 배우고, 보통화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가 되었다 한다.
지금은 유럽연합 내 국가는 Euro라는 단일 통화로 화폐가 통합되었지만 1995년 당시 프랑스는 자체 화폐 Franc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Paris에서 생활하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프랑스에한국과 다르게 위조지폐, 위조동전 등이 너무나도 흔하게 퍼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위폐 관리 능력만은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위폐에 그렇게 민감하지 못했던 우리들은 위폐를 잘 구분하지 못해서 거슬러 받는 잔돈 속에 섞여 있는 위폐도 걸러내지 못하고 받곤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모르고 받은 위폐를 상점이나 식당 등 다른 곳에 가서 다시 사용하려 할 때는 그쪽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아는지 바로 위폐라며 받지를 않아 곤혹스러운 경우를 당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은행의 현금인출기에서 방금 인출한 지폐를 바로 그 옆의 식당에서 사용했는데도 그 지폐가 위폐라며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 식당 종업원의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니, 실제내가 봐도 그 지폐들은 어딘가 좀 이상한 위폐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럽게 쉽게 구분될 수 있는 위폐가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방금 인출한 것이라는 사실이 도통 믿기지가 않았다.
식당 종업원이 봐도 바로 알 수 있고 그 설명을 들은 나 같은 외국인이 눈으로만 봐도 알 수 있는데, 프랑스 은행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위폐를 관리하길래 그런 조잡한 위폐도 전혀 걸러내지 못하고 현금인출기를 통해 고객에게 전달되게끔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위폐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따져봐야, 그 위폐가 자신들의 현금인출기에서 나왔다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억울하지만 결국 그 고액권 위폐는 모두 찢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 말고도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들의 얘기는 꽤 많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의 은행들 위폐 관리는 1995년 당시에도 이미 적어도 프랑스보다는 훨씬 더 잘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문제가 될 만한 큰 금액은 겁이 나서 시도해 보지 못했지만, 동전처럼 단위가 적은 금액일 때는 위폐라며 상점에서 받지 않으면 혹 잘못 판단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가게에 가서 다시 사용을 시도해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유학 와 있던 동창이 어떤 가게에서 위폐라고 받지 않았던 10 프랑(1995년 기준 약 2천 원) 동전을 혹시 하는 기대에 13구 Chinatown에 있는 편의점에서 모른척하고 다시 지불해 봤는데, 그곳의 중국인 역시 잠시 살펴보더니 바로 위폐라며 받지를 않았다. Chinatown의 중국인 상점 주인들도 장사 잘하기로 유명한 중국인답게, 프랑스인만큼 아니 어쩌면그 보다 더 쉽게 위폐를 구분해 내는 것 같았다.
주변에 우리와 인상이 비슷한 동양인들이 상대적으로 매우 많아서인지, 13구 Chinatown에만 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그곳에 가면 외모로는 한국 여인과 구분이 안 되는 중국 여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중국이 아직 경제적으로 부흥하기 전으로, 중국 본토 여인들은 요즘만큼 세련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13구의 중국인 여인들은 그 당시의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부자 나라였고 또 선진국이었던 프랑스에서 태어났거나 아니면오래 살아온 여인들이라 중국 본토의 여인들과는 다르게 미모의 Paris 백인 여성들처럼 세련된 여인들이 많았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Paris 뒷골목에 가면 술집 광고 전단에 종종"동양 여인 있음"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전단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 광고가 배포될 만큼 동양 여인들이 프랑스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독일이나 영국 여인들보다는 좀 덜 하다는 프랑스 여인들도 팔다리에 털이 수북한 것은 물론 콧수염뿐 아니라 심지어는 턱에 자라는 수염까지도 그대로 방치하고 다니는 여인들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훨씬 더 여성적으로 보이는 동양 여인을 찾게 되는 것 같았다.
같은 맥락에서 13구에서 오고 가며 마주치게 되는 중국인 여인들이 내게는 프랑스 여인들보다 역시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기억을 더 더듬어 보니 사실 내가 어릴 때 한국의 화교 여학생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외식이 드물었던 시절이지만, 혹 어쩌다 외식을 하게 되면 의례 중국집에서 '청요리'라 불리던 중국 음식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그 시절에는 한국에서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화교들이 그만큼 돈을 잘 벌던 시절이었고 따라서 대부분의 화교 가정이 일반적인 한국인 가정보다는 좀 더 잘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의 화교학교 근처에서 마주치던 화교 여학생들은 부잣집 자녀답게 얼굴에 윤기가 있고, 피부도 뽀얗고 하얘서, 70년대 가난에 쪼들려 풍족하게 먹지 못해 꾀죄죄했던 대다수 한국인 여학생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던 기억이 있다.
13구 차이나타운을 거닐다 날씬하고 아름다운 중국 여인을 보게 되면, 과거 부잣집 화교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멀리서 흠모하던 어릴 적 서울에서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중국인은 우리와 달리 방바닥에 앉거나 바닥에서 자지 않고 서양인처럼 의자나 침대생활을 해서 그런지 체형 역시 달라 다리도 일반적인 한국인보다는 더 길고 곧은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때 새삼 깨닫기도 했었다.
물론 요즘은 한국 젊은이들도 침대나 의자 생활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먹는 음식도 과거와 많이 달라져서인지 팔다리가 길어지는 등 골격이 많이 바뀌어, 우리 같은 늙다리 세대의 체형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어릴 적 서울에서 봤던 기억 속의 그 많던 화교들은 한국의 화교 차별정책 때문에 다른 나라 화교들과 달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땅 한국을 떠나, 대만이나 중국 또는 전혀 다른 제3의 국가로 떠났다.
어린 시절 내가 마주쳤던 아리따운 화교 여학생들 중 많은 수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태어난 한국을 떠나서 전혀 다른 새로운 국가에서 거주하고 있었을 것인데, 어쩌면 Paris의 13구에서 오고 가며 마주쳤던 아리따운 그 중국 여인 중에 부모님과 함께 그렇게 한국을 떠나 Paris로 와서 정착해서 어른으로 성장한 여인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중남미 출장을 다니던 신입사원 시절, 중남미 국가나 미국 등에서 약 보름 정도 출장 일정을 보내고 마지막에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 일본에 도착하면 한국에 온 것처럼 뭔가 참 푸근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나와 똑 같이 생겨서 말만 안 하면 국적이 구분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주는 편안함이 그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푸근한 느낌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역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찬 Paris의 13구 Chinatown에서도 비슷한 이유에서 그런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또 어린 시절 서울에서 만났던 예쁜 화교 학생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까지도 겹쳐져서 그런 푸근한 느낌이 훨씬 더 강해졌을 것이다.
남미 브라질 상파울루(São Paulo)에는 약 40만 명 달하는 일본계 이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계 이주민들이 밀집해서 거주하는 거리도 존재하는데, 항공편으로 24시간 이상 이동해야만 할 만큼 먼 곳에 있는 지구 반대편 브라질 출장 갔을 때 만난 상파울루 그 일본인 거리에서도 역시 같은 느낌을 갖곤 했다.
외모가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상 한복판에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갈 때는 언제나 그런 편안함과 푸근함을 느꼈던 셈이다.
1995년 Paris의 13구 Chinatown에서 경험했던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 간 느낄 수 있었던 당시의 그 푸근함과 편안함의 기억이 참 그립다. 그런데 실제 현실을 보면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원수 같이 지내는 경우가 오늘날에도 냉정한 현실이니 많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