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 성북, 이문, 문정
■ 도시의 향수 (6)
'뚝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성수동에는 요즘은 매매가가 50억 원이 넘는다는 초고층 호화 아파트도 들어서 있고, 또 멋지고 독특한 디자인의 카페들이 즐비한 카페골목도 있다.
(성수동 초고층 아파트)
(성수동 카페 거리 소개 블로그)
하지만 과거 80년대 말까지 성수동은 '뚝섬 경마장'이라고 불렸던 경마장이 있었던 곳이고, 또 구두 공장, 염색 공장, 공구 공장, 자동차 공업소 등 온갖 공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던 일종의 공장 단지 같은 곳이었다.
(뚝섬 경마장 모습)
(과거 공장 건물을 개조한 성수동 카페)
그런데 경마장이 1989년 과천으로 이전되면서, 그 자리에 서울숲 공원이라는 공원과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또 주변의 공장들도 문을 닫거나 외곽으로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그 공장 건물을 그대로 활용한 독특한 디자인의 카페나 공방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의 성수동 모습은 과거와는 꽤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는데, 그럼에도 성수동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아직은 과거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성수동 어느 뒷골목에 있는 공장 건물 모습. 최근까지도 가동되었던 공장인 것 같은데, 내가 방문하던 시점에는 가동이 중단되어 있었다. 아직도 붙어 있는 간판들을 보면 공구나 주방용품 같은 것들을 생산했던 공장이었던 것 같다. (2015년 5월 사진)
그저 단순한 주택인지 공장인지 잘 판단이 안되는데, 차량들이 다수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단순 주택은 아닌 것 같고 가내수공업 같은 형태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건물인 것 같았다.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고 카페가 늘어나면서 성수동의 땅값이 점차 오르게 되면 이런 소규모 공장들은 점점 더 외곽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6년 8월 사진)
성수동 뒷골목의 오래된 주택. 주변의 주택들도 원래는 모두 이런 모습이었겠지만 이후 재건축되었을 것인데, 유독 이 집 한채만 60~70년대 건축된 듯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16년 8월 사진)
성수동 1가 '카우앤독'이라는 건물 옆 골목길 사진. 70년대에는 도둑이 워낙 많아서 이렇게 담 윗부분에 깨진 병 파편을 박아 놓은 집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식으로 유리를 박아 놓은 담을 거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여기서 오랜만에 그런 담을 다시 보게 되었다. (2015년 5월 사진)
최근에 다시 찾아가 보니 이 담도 그 사이 이미 헐려버리고 이 자리에는 재건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수역 인근 뚝섬 침례교회 앞에 있는 건물인데, 건물 벽 한 면 전체가 무성한 담쟁이덩굴로 완전히 뒤덮여 있는 모습이다. 건물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2015년 8월 사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돈암동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성북동에는 한 번도 가 봤던 기억이 없다.
그러다 지인이 성북동의 식당에서 보자고 해서 성북동을 가 본 적이 있는데, 성북동은 돈암동과 달리 꽤 부촌처럼 보였고, 멋진 카페나 특이한 디자인의 건물, 식당이 많았다. 한마디로 운치 있는 조용한 동네로 그런 분위기를 즐기며 식사하기에는 최적인 곳이었던 것 같다. (이하 사진 모두 2018년 9월 말 사진)
성북동을 방문했던 때는 초가을이었는데, 날씨가 매우 좋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너무도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하얀색 건물들은 '성북 힐즈'라는 빌라 단지였는데, 꽤 비싸 보였다.
'성북 힐즈' 바로 우측에 있는 '현대 빌라'라는 주택단지와 그 앞 가로수 및 도로.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거리에는 차 한 대도 없고, 보행자 역시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집만 있고 사람은 안 사는 동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왼쪽 사진 중앙에 보이는 건물은 '수월암'이라는 사찰이고 그 앞에 녹지는 '성북 우정의 공원'이라는 공원이다. 역시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약속 장소는 전철에서 내려서 걸어서 찾아갔는데, 4호선 한성대역에서 내려 약 30분가량 이곳저곳 구경하며 가던 중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전통 한옥집 사진이다.
건축물 재질이 꽤 깨끗한 것으로 봐서 오래전에 지어진 한옥은 아니고 최근에 집을 지으면서 이렇게 한옥으로 지은 것 같았다.
요즘도 이문동 외대 근처는 서울 시내 다른 대학 근처 대비 비교적 썰렁한 편이다. 그런데 80년대에는 요즘보다 더 썰렁했다. 여느 대학가에 가도 너무도 흔했던 커피숍도 외대 앞에는 '암(암스테르담) 다방'이라고 불렸던 곳 단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검색해 보면 외대 재학생 수도 약 2만 4천여 명으로 타 대학들 대비 결코 적은 편이 아닌데 왜 유독 외대 근처만 그렇게 썰렁했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졸업하고 시청 근처에 본사가 있던 직장에 다니다 보니 서울시의 동북쪽에 위치한 외대까지는 도통 갈 일이 없었다. 게다가 직장 생활 중 10년 이상을 해외 법인에서 근무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러다 2014년 서울로 돌아왔는데, 이제는 너무도 오래된 학창 시절이 그립기도 해서 혹 대학 동문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는 외대도 가볼 겸 외대 근처에서 만나자고 하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외대 앞에서 지인을 만나게 되는 날은 항상 약속 시간보다 한두 시간 정도 먼저 도착해 학교 근처 골목길들을 배회하고 약속 장소로 가곤 했었다. 예전처럼 오가다 아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주 가던 학교 근처 단골 식당들도 거의 다 바뀌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거닐면서 80년대 기억을 오랜만에 더듬어 보는 것이 그저 좋았기 때문이다.
아래는 그렇게 외대 근처를 배회하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허리가 거의 90도 가까이 굽으신 어르신들이 폐지가 가득 담긴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시는 모습. 외대 근처 거리를 배회하다 마주친 모습이다. 어르신들이 저렇게 하루에 50kg 정도의 폐지를 모아서 팔면 약 2500원 정도 수입이 생긴다 한다. 하루 일당이 시간당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2015년 6월 사진).
80년대 외대 근처는 소위 부자 동네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어 보였는데, 외대 근처 거리를 배회하다 80세도 족히 넘어 보이시는 어르신들이 그 무더운 한여름 6월에 폐지를 잔뜩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분을 한 분만 본 것도 아니고 비슷한 시간대에 두 분씩이나 연이어 봤다. 그 자리에 계속 더 있었으면 그렇게 폐지를 수집하시는 어르신 분들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학 다니던 80년대와 위의 사진을 찍은 2015년은 약 30년이라는 많은 시간차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반 시민들의 삶 중에는 80세가 넘어서도 폐지를 줍고 다니며 살아야 할 만큼 거의 변화가 없는 삶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한국의 관공서 청사들은 그 사이에 거의 전부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고 웅장한 새 건축물로 바뀌어 있었다. 건축 비용도 수천억이 넘는다 한다. 내가 거주하는 용산구 구청에 갔을 때는 건물이 너무도 화려해 나 같은 사람도 들어가도 되는지 위축될 정도였다.
시민들의 삶은 변함없이 고달픈데, 관공서 건물만 그렇게 홀로 아름답고 멋져가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용산구청 호화청사 논란)
(도시 청사의 변신은 무죄)
(폐지 가격 관련 기사)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학교에는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하니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정말 많아 동창 중에는 고향이 서울인 학생들이 오히려 더 적었다. 그렇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많으니 학교 근처 주택가에는 그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하숙집들이 도처에 있었다 (2015년 1월 사진).
당시는 원룸 같은 건물은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친구들의 하숙방은 대부분 사진에 보이는 것 같은 골목길 주택들에 있었다. 오랜만에 그런 골목길에 다시 와 보니 일부 80년대 이후에 건축된 것 같이 보이는 주택도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골목 분위기나 주택들이 80년대 친구 하숙방에 놀러 가던 시절에 봤던 것들과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학창 시절 저런 주택에 있는 친구 하숙방에 놀러 가면, 왠지 모르게 그 하숙방이라는 공간이 참 정겹고 푸근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게다가 당시는 세상이 그리 각박하지 않아 친구 방에서 놀다 식사 때가 되면 주인집 아주머님이 푸짐한 계란 프라이까지 있는 내 식사까지 같이 챙겨주시곤 해서 맛있게 먹고 다닌 기억도 많다.
그런 추억이 남아 있는 골목길과 주택들을 다시 보니 고향집에 온 것처럼 반갑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문동 이 주택가도 역시 조만간 재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라 한다. 80년대 추억이 듬뿍 묻어 있는 이런 주택들도 이제 흘러간 추억처럼 더 이상 현실에서는 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휘경로 3다길'이라는 표지가 보이는데, 그 바로 아래에는 "뉴타운 망할 타운, 너도나도 쪽박신세"라고 적혀 있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2015년 1월 사진)
이미 철거가 시작된 건물도 있었다. 어쩌면 이 주택에도 한때는 하숙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온 하숙생의 서울 보금자리였고 또 어느 한 가정이 오손도손 살았던 그런 공간이었을 텐데, 이제 이미 반쯤 폐허로 변해버렸고 조만간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2015년 1월 사진)
셔터문이 눈에 띄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도 특이한데,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은 더 인상적이다. 할머님과 할아버님은 머리색이 흰색이다. 매우 간단한 그림임에도 누가 누군지 확연히 구분되는 것 같다. 이 셔터와 그림 역시 재건축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2015년 1월 사진)
(이문 3구역 철거 현장 모습)
* 재개발 지역의 길고양이를 챙기시는 분이 올리신 글이라 여기저기 고양이 사진이 많지만, 그 사이사이에 위 사진 속 동네가 철거되는 모습의 사진도 있다.
외대앞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골목이다. 전철에서 내려 이 길을 따라 골목 안으로 쭉 들어가면 위 사진 찍은 곳들이 나타난다. (2015년 12월 사진)
그런데 해가 잘 들어오지 않는 이 골목에 어떤 아이가 붉은색 외투를 입고 걸어가는 것이 유독 눈에 띈다. 붉은색이 꽤 강렬해 나머지는 흑백사진이고 붉은색 부분만 컬러사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좀 엉뚱하지만 이 사진을 보고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붉은색 외투 입은 소녀가 연상되기도 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1994년에 개봉된 영화임에도 특이하게 흑백으로 제작된 영화인데, 유독 그 소녀가 붉은색 외투를 입고 나오는 장면만 흑백이 아닌 붉은색이 들어갔다. 감독이 왜 그 장면, 그 외투만 붉은색 컬러로 처리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흑백 영화에서 보는 유일한 그 붉은색으로 인해 그 장면은 매우 강한 인상으로 남겨지는 장면이다.
(흑백 영화에 갑자기 등장하는 붉은색 코트 입은 소녀)
(붉은색 코트 입은 소녀 동영상, 02:57)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문정동이라는 곳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내가 태어난 곳, 이후 거주한 곳에서 워낙 멀기도 했지만, 문정동에 아파트나 오피스텔들이 들어서기 전에는 문정동에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문정동이라는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문정동에서 지인을 만나게 되어 생애 처음 문정동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이 무덥긴 했지만 마침 날씨가 너무 좋아 하늘이 정말 그림 같아 보였다. 과거 카리브해의 섬나라에 몇 차례 출장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 카리브해에서 봤던 바다 위의 그 인상적인 하늘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2018년 8월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