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오랜 해외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약 2달 뒤인 8월 정말 오랜만에 내가 태어난 고향 돈암동을 찾아갔다. 물론 이제는 그곳에 가족이나 친구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고향 돈암동이었다.
돈암동에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으니 태어나서 약 10년 정도 있었던 셈인데, 오래전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희미하긴 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기억이 아직은 남아 있다.
돈암동을 방문해 보니 이미 많은 지역이 아파트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살았던 집과 주변 골목은 아직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검색해 보니 역시 그곳도 조만간 재개발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다행히 재개발되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고향집과 고향 골목을 찾아볼 수 있었다.
(돈암 6구역 재개발 관련 사항)
성신여대 쪽에서 돈암동 한신 아파트 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고향집은 한신아파트 앞에 보이는 낮은 지대에 있는 주택가에 있다.
한신아파트는 98년도에 완공되었다 하는데, 돈암 6구역 재개발이 착수되면 사진에 보이는 낮은 지대의 주택들도 한신아파트처럼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릴 것이다.
돈암 6구역 단지 내 골목길 및 주택 모습. 재개발 때문인지 이미 빈집들이 꽤 있어 보였는데, 어릴 적 보았던 골목이나 주택들이 아직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렇게 좁고 꾸불꾸불하고 가파른 계단들이 과거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매일 오고 가며 마주하던 생활의 터전이었다.
나만의 이기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과 향수가 짙게 배어있는 이 아련한 골목들이 영원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고향집이 있는 돈암동 골목길. 외관은 꽤 변했지만, 사진 왼쪽에 보이는 집이 내가 태어나서 10살 때까지 살았던 고향집이다.
바로 그 고향집 앞 골목길의 60년대 모습이다. 누나가 집 앞에서 노는 모습을 찍은 사진인데, 2014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의 모습과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다른 것 같다.
하지만 60년대의 흔적도 남아 있는데, 왼쪽 사진 하단부의 낮은 축대를 보면 2014년에 찍은 사진 하단부의 축대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향집 대문. 위 사진은 2014년에, 아래 사진은 60년대에 누나가 같은 대문 앞에서 찍은 것이다. 기억은 없지만 고향집 대문은 초기에는 왼쪽 사진처럼 목재였다가 이후에 오른쪽 사진처럼 철문으로 바꾼 것 같다. 오른쪽 사진에 아버님 이름의 문패도 보이고 그 아래 즐비한 낙서도 보인다.
요즘은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문패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사글세나 전세가 아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붙일 수 있는 주택 주인이 되는 것을 큰 자랑으로 느끼던 시절도 있었다.
혹 도둑이나 강도로 몰릴까 걱정하면서도 고향집 내부가 어떻게 변했는지 너무도 궁금해 위험을 무릅쓰고 철제문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봤다.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내부 주택 구조 자체는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집을 완전히 새로 짓지는 않고 아마 개보수만 꾸준히 해 왔던 것 같다.
아래 사진들은 사진 속 저 철제문 안에 60~70년대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찍은 사진들이다. 당시에는 '현실'이었는데, 이제는 '기억'이 되어버렸다.
고향집 주변 사진. 파란색 지붕의 주택은 과거에는 '고바우 가게'라 불리던 구멍가게였는데, 이후 주택으로 바뀐 것 같다. 눈깔사탕이나 삼립빵 같은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 있던 군것질거리를 바로 이 가게에서 사 먹었다.
60년대 돈암동 거리 모습이다. 시절이 시절인만큼 요즘과 달리 여전히 한옥 주택들이 많이 남아 있다.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아마 온 가족이 목욕하러 가는 길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하신다. 아버님만 안 보이시는 걸로 봐서 아버님께서 이 사진을 찍으신 것 같다.
요즘이야 집에서 수시로 샤워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온 몸을 씻으려면 목욕탕에 가야 했는데, 매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쩌다 한 번씩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갔던 것 같다.
6.25 때 납북된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끌려갔다 해서 창자가 끊어질 만큼 슬프다는 의미로 '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왼쪽 동네에 고향집이 있다.
사진에도 보이는 것처럼 이 고개 근처에는 유독 역술가나 점을 보는 집들이 많았는데, 공교롭게도 미아리 고개 정상 부근에 귀신이 나온다는 집도 있었다. 사진 속 도로 좌측 끝부분에 있었다. 혹 과거 그런 소문을 기억하는 분이 있나 해서 검색해 보니 신기하게도 똑같은 소문을 들었던 분이 기록한 내용이 있다.
(미아리 고개 귀신집 소문 관련 기사)
3학년 때 이촌동으로 이사 오기 전 돈암동에 거주할 때, 초등학교 1학년은 '돈암 초등학교'를 다녔고, 2~3학년은 '성신 초등학교를 다녔다. 고향집에 온 김에 당시 다녔던 초등학교도 찾아가 봤는데, 너무 어려서 그런지 돈암 초등학교 교정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성신 초등학교는 그래도 군데군데 기억이 나는 것 같은 곳도 있었다.
위쪽 사진은 돈암초등학교 교정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돈암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찍은 가족사진이다. 가슴에 붙은 명찰에 '돈암 국민학교 1-15(1학년 15반)'라고 적혀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는 한 학년에 반이 무려 15개나 되었던 모양이다.
성신 초등학교 가는 길. 정면 건물 우측에 성신 초등학교, 성신 여자중학교, 성신 여자고등학교라고 적혀 있는 녹색의 방향 안내판이 있다.
성신 초등학교 교정 모습. 어렴풋이 교정 모습이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누나도 한때 성신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누나가 교정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찍은 사진 아닌가 싶다. 요즘은 성신 초등학교로 불리지만, 사진 속 버스에 붙은 표식처럼 65년 이 학교가 설립되었을 때는 '성신 여자 사범대학 부속 국민학교'라는 다소 긴 이름이 공식 명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