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아파트와 민폐의 시작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2편 Toronto-02)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oronto



2. 텅 빈 아파트와 민폐의 시작


회사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Park Mansion이라는 고층 아파트에 집을 구해 입주했다. 꽤 고급 아파트였는데, 월세를 회사에서 부담해 주는 덕분에 캐나다의 그런 고급 아파트에도 입주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 아파트에는 같은 법인에 근무하는 다른 주재원도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 재미있는 점은 내 아파트 바로 위층에 있는 그 집이 내가 사는 집과 100% 같은 구조와 면적임에도, 그 집에 갈 때마다 신기하게도 그 집이 내 집보다 항상 너무도 작게 보여 이상했다는 점이다.


혹 실제 면적에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까지 했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결코 아니고, 내가 살았던 아파트는 나 혼자 1인이 사는 집인 대다가, 귀찮아서 정말 가구도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전혀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아 황량한 벌판 같이 넓게 보였던 것이다. 반면 위층에 있는 그 주재원 집에는 부부에 자녀가 둘씩이나 있었으니, 가족수만 모두 4명에다가, 애들 물건까지 여러 가지 살림 가재도구가 많아 집이 작아 보였던 것이다.


당시 내 집에는 침대 이외에는 정말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집주인이 설치해 두고 간 부엌의 식탁과 책상 이외에 내가 구입해서 가져다 놓은 것은 TV와 침대뿐이었다. 세탁기와 건조기 등은 이미 빌트인 되어 있는 아파트였고, 청소기도 벽면에 호스를 끼우면 바로 진공청소기가 작동되는 그러한 아파트라 별도로 구입하지 않았다.


또 워낙에 내가 한국에서 가지고 온 짐이 없어 짐을 보관할 캐비닛 같은 것은 애당초 구입할 필요가 없었고, 그 아파트 벽에 빌트인 되어 있는 장롱만으로도 충분했다. 해외 어느 국가에 부임하거나 국가 간 이사할 때도 별도 이삿짐 전혀 없이 그저 손으로 들고 다니는 손가방 두 개와 등에다 메는 백팩 하나가 이삿짐의 전부였던 내게는 별도 캐비닛이 결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가져온 짐도 없고 부임해서도 별다른 살림 가재도구를 사지 않았으니, 결국 아파트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것은 달랑 TV 하나뿐이었다. 당연히 있을 법한 소파, 탁자, 장롱 전혀 없었고, 벽에도 아무것도 붙어 있거나 걸려 있지 않았다. 그러니 위층에 살던 그 주재원과 부인이 어쩌다 내 아파트로 오게 되면 "여기는 완전히 운동장이네, 원래 우리 아파트가 이렇게 넓었나?"라고 감탄하고 가곤 했던 것이다. 온갖 장롱과 가재도구, 애들 물건 등으로 가득 찬 그 부부의 아파트와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었다.


그렇게 덩그러니 빈 집에서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독거인의 삶을 살기는 했지만, 그 집에서 보이는 창밖의 경치는 정말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아파트의 응접실 한쪽은 거의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있었는데, 한여름에는 녹색으로 뒤덮인 나무들이 그 크고 넓은 창 가득히 보였고,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 겨울에는 온통 새하얀 눈밭이 하나의 그림과 같은 창을 통해 펼쳐지곤 했었다. 지금 서울에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창밖으로 또 다른 아파트 시멘트 벽밖에 안 보이는데 그런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그 아름다운 장면들을 두고두고 기억하기 위해 사진으로도 여러 장 찍어 두었는데, 너무도 안타깝게도 나중에 중국에 주재 나가면서 후배에게 맡겨 두었던 그 귀한 사진들 모두 분실되어 현재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내 머릿속 기억에는 비록 퇴색돼버린 희미한 기억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도 그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직도 남아 있다.




Toronto 지역은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고, 자기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부부라도 각각 자신의 차를 갖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위층에 살던 그 주재원 부부는 차가 1대뿐이어서 거의 매일 시장을 봐야 하는 부인이 그 차를 사용했고 남편은 어차피 나와 회사가 같으니 내 차를 타고 같이 출퇴근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같이 다니다 보니, 저녁에 퇴근도 같이해야 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일까지 생기게 되었는데, 차를 같이 타고 아파트에 도착해서 헤어질 때는 혼자 사는 나를 그냥 보내기가 미안했던지 남편은 수시로 자기 집에 가서 같이 저녁 먹자고 제안하곤 했었다.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사실 내가 조금 눈치가 있었으면 적어도 가끔은 거절을 하기도 했어야 하는데, 그 시절 내가 워낙 둔했는지 그런 제안이 오면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바로 같이 그 집으로 올라가 부인이 해주는 저녁 얻어먹고, 술까지 한잔하고 거나하게 취해서 내려오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나 혹은 출장자 및 거래선과 식사를 해야 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그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던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참 큰 민폐를 끼쳤는데 그렇게 반성을 하다 보니 또 새삼 떠오른 것인데, 사실 저녁과 술만 먹었던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고, 훨씬 더 많은 민폐를 끼쳤었다. 숙제해야 하는 8살쯤 된 큰 딸아이 붙잡고 고무줄 총 쏘기 놀이를 하고, 또 비록 베란다로 나가서 피우기는 했다지만 어쨌든 어린아이들도 있는 집에서 남편과 같이 담배 피워 온 집안에 담배 냄새 전파시켜 2차 흡연 문제 야기시키고, 아직 걷지도 못하는 작은 딸 수시로 울리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그 집을 방문해 몇 년을 그렇게 민폐를 끼치고 살았으니, 그 주재원 부인의 입장에서는 당시 내가 얼마나 미웠을지.... 정말 살의(?)를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참 죄 많이 짓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도 별 내색 안 하고 (나중에 기억을 다시금 더듬어 보면 사실 가끔 조금씩은 내색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거의 매일 미소 띤 얼굴로 그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준 그 부인에게 참 미안하고 고맙다. 나도 내게 민폐 끼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고 살았어야 하는데, 실제 그렇게 살아왔는지 의문이다.


그 주재원은 나보다 먼저 캐나다 법인을 떠나서 한국으로 귀임했는데, 그 친구 후임으로 부임한 주재원도 전임자가 살던 바로 그 아파트를 물려받아 살았다. 하지만, 새로 온 주재원은 차를 2대 구매하여 부부가 각각 타고 다녔기에, 이제는 그 집에 사는 주재원이 내 차로 출퇴근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고, 그 결과 그 집에 가서 내가 뻔뻔하게 이틀에 한 번꼴로 술까지 곁들인 저녁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기회도 사라져 버렸다.


술을 좋아하던 그 친구와는 그렇게 자주 같이 저녁 먹고, 술 마시고, 같이 얼큰하게 취해서, 고층아파트 베란다로 나와, 희미한 담배 연기와 컴컴한 어둠 속으로 보이는 저 멀리의 토론토 시내 야경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매일의 하루를 마감하고는 했었다. Park Mansion이라는 토론토 아파트에서 그렇게 그 친구와 보냈던 그런 시간들이 벌써 19년 전 일이다.


그 친구는 만년 부장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당시 다니던 회사를 지금도 다니고 있는데, 내가 캐나다에 이어 중국 등 다른 지역에서 해외 근무하던 기간에는 못 만났지만 4년 전 귀국한 후에는 교통이 편한 양재역 근처 코다리 조림 식당 한 곳을 정해 놓고 한 달에 두세 번 만나 술 한잔 하곤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보니, 그렇게 과거를 공유하고, 같이 그리워하고,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 있는 것, 그리고 또 종종 만나 술 한 잔 할 수 있는 것도 이 세상을 사는 작지 않은 행복 중 하나인 것 같다.


(내가 거주했던 아파트 Park Mansion 모습)

1. https://mediatours.ca/property/2306-45-kingsbridge-garden-circle-mississauga/ (02:12)

2. https://youtu.be/orFPjocAzHw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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