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da 법인에 부임해서 근무하기 시작한 때는 2000년 초였는데, 그 시절 한국 본사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그런 황당한 사건들을 Canada에서는 여러 건 경험할 수 있었다.
당시 내 직급은 차장으로 본사 근무 시에는 당연히 내 전용 방이 없었지만, 캐나다 현지법인에서는 현지인이나 주재원 구분 없이 과장급 이상이면 대부분 방을 제공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나 역시 그런 기준 덕분에 방을 배정받았고, 차장 직급에 방 안에 홀로 앉아 근무하는 과분한 복도 누릴 수 있었다. 본사에서는 임원 그것도 꽤 높은 직급의 임원이 돼야 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는데, 내 직급에 홀로 방에 앉아 근무하니 사실 기분은 매우 좋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것은 안타깝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첫 출근하고 며칠 안되었을 때, 덩치 큰 백인 직원 두 명이 내 방으로 말도 없이 불쑥 들어오더니, 내가 항상 열어 두던 사무실 방문을 슬며시 닫았다. 그러더니, 두 명 중 한 명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서고, 또 다른 한 명은 내 책상 앞 의자에 앉아 구두를 신은 그대로 내 책상 위로 발을 뻗어서 올려놓고 뭔가 말을 하는데, 들어보니 "공장에서 물건 매우 싸게 가져오는 것이 네 일이다"라고 꽤나 경직된 인상으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단어도 '본사'나 '한국'이라고도 하지 않고 그저 '공장'이라고 지칭했다.
그 두 명은 영업부서 직원들이었는데, 주재원인 내가 본사 제품 구매와 캐나다 현지에서의 판매 가격 결정을 책임지고 있으니, 손익과 관계없이 자신들이 싸게 많이 팔 수 있도록 제품과 가격을 운영하라는 일종의 부임 초기 '군기'를 잡는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국 본사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는데, 아무리 오래전 2000년 초 일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에도 우리 회사의 해외법인 현지인이 이 정도까지 막가파식으로 행동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내가 부임한 Canada 법인경우 한국의 IMF 경제위기 당시 회사의 비용 절감을 위한 해외법인 인력감축 활동으로 2~3년간 주재원을 파견하지 않아, 주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현지인 영업인력들 중심으로 사업이 운영되다 보니, 그러한 황당한 상황으로까지 근무 분위기가 변해갔던 것 같았다.
물론 내 방에 들어와 그러한 무례한 말과 행동을 한 것은 그 둘만이 결정해서 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꽤 큰 권한을 갖고 있던 그들의 상사 즉 영업부서 책임자가 시킨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 영업 책임자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장기간 판매가 안 되어 법인에 재고가 쌓이면, 그 재고 구매를 결정한 주재원이 본사로부터 엄청 시달리는 당시 우리 회사의 구조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그런 구조를 적극 악용해서 때로는 의도적으로 판매를 지연시켜 재고를 만들어 놓고 주재원을 길들이려 하는 그런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재고 문제로 본사로부터 하도 시달려 그 영업책임자 방에 찾아가서 재고를 빨리 소진해야 하지 않겠냐고 독촉하면, 대낮에 자신의 방 안에서 골프채로 스윙 연습하면서 별 일 아니라는 듯 딴청 피우며 한다는 말이 "내가 도와줄까?", "그럼, 가격 더 깎아야 하는데...." 뭐 이런 식으로, 자신이 판매하겠다 해서 가져온 재고임에도 마치 남의 일 얘기하듯 대꾸를 하곤 했다.
속된 말로 주재원을 거의 '가지고 노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자신의 급여나 보수를 좀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에서 손익과는 관련 없이 절대 매출액만으로 평가받고 또 장기간 판매가 안 되는 재고가 발생해도 그들 급여나 보수에는 전혀 불이익이 가지 않는 실정이다 보니, 본인들이 판매를 예상해서 가져온 제품들이 판매가 안되고 재고로 쌓여 있어도 남의 일 얘기하듯이 얘기하고, 때로는 오히려 그렇게 주재원 군기 잡는 도구로까지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재고 압박으로 결국에 가격을 인하해서 팔면 회사는 적자가 나지만, 가격이 싸면 판매물량은 더 늘어나 절대 매출액은 올라가니 손익과 관련 없는 평가를 받는 영업인력은 오히려 그런 장기재고 발생이 반가운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이후에는 그런 평가체제의 맹점이 대부분 보완되어 더 이상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당시는 아직 그렇지 못했다.
계속 당하기만 하던 내 처지가 스스로 생각해도 불쌍하기도 하고, 또 열도 받아서 한 번은 독하게 마음먹고 매출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꽤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즉, 재고가 생기면 다른 제품도 팔지 못하도록 잘 팔리는 제품 구매도 중단해 버렸다.
또 영업부서에서 판촉행사 등 특별 가격 요청이 오면 가격 합의도 안 해 주었다. 왜 합의를 안 해주냐고 내게 따지면, 가격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냐고 반문했다. 답이야 뻔했다, 가격 결정권은 분명 규정상 내게 있고, 난 그 권한 행사했을 뿐이라고 답해 주었다.
부서 전체를 취락 펴락 하던 현지인 영업 부서장도, 매출이 차질 나더라도 규정대로 내가 판단해서 가격 결정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 독하게 버티고 나니, 결국 내가 그 영업 부서장 방에 찾아가서 아쉬운 얘기 해야 했던 빈도만큼, 대단하고 도도한 영업 부서장도 이제 직접 나를 찾아와 아쉬운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점차 분위기가 바뀌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매출 차질로 나는 본사로부터 엄청난 욕과 비난을 얻어먹어야 했다.
어쨌든 그렇게 독하게 대응하다 보니, 적어도 재고 가지고 장난치거나 남의 일 얘기하듯 딴청 피우는 분위기는 어느 정도 개선이 됐다. 특히 부임 초기에 내 방에 불쑥 들어와서 협박하는 식으로 겁주곤 하던 그 영업부서 직원들은 이제는 완전히 바뀌어, 내 방 문 밖에서 내 눈치 보고 내가 너무나도 바빠 보이거나 혹 인상이 안 좋아 보이면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웬 골통이 하나 왔다고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과정을 통해서 부임 초기 숨 막히는 것처럼 힘들고 어렵던 법인 업무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원활하고 좀 더 협조적인 분위기에서 수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근본적인 것은 역시 그렇게쉽게 바뀌지 못했고, 결국 영업책임자 및 일부 인력들이 해고되다시피 법인을 떠나서 사람이 바뀌기 시작하고 나서야 근본적인 변화는 어느 정도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다 좋거나 다 나쁜 것이 아니듯, 캐나다 영업직원들이 모두 문제가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런 캐나다 직원도 있고 저런 캐나다 직원도 있다는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캐나다 사람, 한국사람, 이런 집단적인 구분으로는 절대로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유능한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이 있듯이, 캐나다에도 능력 있는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이 있다. 국적, 인종과 관계없이 개인의 능력을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사진) 법인 건물 2층 사무실 모습. 첫 번째 사진의 정면에 보이는 방이 내가 사용하던 방이고, 아래 사진은 그 방을 좀 더 가까이서 찍은 것이다. 휴일 날 출근해서 찍은 것인데, 사진상으로는 참 평화로워 보이지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사건과 일들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발생했던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2001년경 사진)
그런데 사실 당시 내가 겪었던 주재 생활 어려움은 나만이 겪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좀 있지만, 같은 시기 같은 법인에 근무하던 선배 주재원 역시 나와 너무 유사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는 내가 담당하던 제품 품목과는 다른 제품을 담당하던 주재원으로 나보다 2~3년 정도 먼저 부임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사무실에서 일하다 너무 열 받아 오만상을 쓰고 담배 피우러 건물 1층 밖으로 내려가면, 역시 오만상을 쓰고서 앉아 담배 피우고 있던 그를 수시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담배 끊은 지 10년이 되지만 그때는 피웠다)
둘이서 그렇게 나란히 건물 밖에 쪼그리고 앉아 서로 겪은 이런저런 속 터지는 얘기를 나누어 가며, 먼 하늘 바라보고 뻑뻑 담배 피우곤 했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바라보는 회사 주변 푸른 잔디, Toronto의 파란 하늘은 그리도 평온하고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 있는 캐나다 땅 위의 우리 사무실 속에서의 일상 현실은 그런 아름다움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사진) 이 사진 왼쪽 1층 구석 벽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곤 했었다.
당시 그 선배는 꽤 독특한 이메일 답신으로도 유명했는데, 아침에 출근해서 PC를 켜면, 수 없이 쏟아져 들어와 있는 영업부서의 이메일 대부분에 별다른 답도 없이 그저 'Fu..' 이렇게 앞에 두자는 알파벳, 뒤의 두자는 점을 찍어서 단 4글자로 답을 하곤 했었다.
'Fu..'은 캐나다, 미국 등 북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 욕의 뒷부분 두 글자를 점으로 대체한 것이었는데, 4글자를 모두 영어 단어 그대로 다 적어서 답신하면 욕했다고 그런 메일 증빙 삼아 바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지는 못 했지만, 보내온 이메일 읽다 보면 너무도 황당하고, 너무 말 같지 않은 메일들이 많으니, 열 받고 답답한 마음에 그러한 방식으로 나마 나름대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다.
나 역시 사실 그렇게 답장을 쓰고 싶은 이메일들을 너무도 많이 받았는데, 비록 감히 그 선배처럼 답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Fu..' 이라는 욕이 입안에서 하루 종일 맴돌던 그러한 날들이 셀 수 없이 반복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다 보니, 나도 역시 표독스러운 면에서는 그 선배 주재원을 더 능가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기도 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부임 초기 날 협박하다시피 했던 그 영업인력들이 나중에는 내 방에 들어올 때 먼저 내 눈치까지 살펴야 했고 심지어 내 말에 상처 받아 눈물까지 흘린 영업부서 직원도 있었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독 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요즘처럼 한국 회사의 해외법인에우수한 능력을 가진현지인들이 많은 실정에서는 이런 일은 이제 좀처럼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