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목포의 향기 (4-3)

■ 도시의 향수 (17)

by SALT

전편 "그 여름 목포의 향기 (4-2)"에서 이어짐.




아침에 일어나 보니 며칠 만에 날이 너무도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그간 계속 비가 왔었고 어제도 하루 온종일 흐린 날이었는데 오랜만에 화창한 햇살을 보니 너무 반갑고 기분 역시 마냥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침 식사를 호텔에서 마치고 Check-Out을 한 후 백팩을 메고 시내로 향했다.


어제 매우 흐렸던 날 시내에서 호텔로 돌아올 때 지나왔던 호텔 뒤쪽의 산속 마을길을 다시 걸어갔다. 물론 이번에는 어제와는 반대 방향, 즉 호텔에서 시내 중심으로 향해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했던 것이 어제와 동일한 장소를 걷고 있음에도 날씨가 너무도 화창하게 개어서 그런지 마치 전혀 다른 처음 보는 거리를 걷는 느낌이었다.


어제 이 길을 걸을 때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날 다시 와서 보니 이 마을에는 하얀색으로 칠해진 집과 담이 유독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얀 담과, 파란 하늘, 그리고 너무도 화창한 햇살 속에서 걷다 보니 마치 과거 출장 다니곤 했던 지중해 연안이나 카리브해의 온통 하얀색으로 칠한 집들이 가득한 마을 거리를 다시 걷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까지 들기도 했다.


푸른 서해 바다, 파란 하늘, 하얀색 주택과 담, 아담한 길.... 이 모든 것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너무 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사진) 신안 비치 호텔 뒤쪽 유달산에 있는 마을. 흰색으로 칠한 집이 유난히 많았다.


정상 부근에는 '부광 상회'라는 친근한 간판이 붙어 있는 작은 슈퍼도 있었다. 그런데 지역 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을 보니 이 집은 예전에는 통닭집이었는데 무면허로 단속에 걸린 이후에 슈퍼로 업종을 바꾸었다 한다. 산속의 이 집과 마을에도 나름 꽤나 많은 오래된 사연들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모두 희로애락과 함께 하며 살아야만 했던 인간의 깊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사진) 정상 부근의 '부광 상회'라는 간판이 붙은 상점


(부광 상회 관련 기사)

http://www.mokpo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31


폐허처럼 변해 버린 폐가도 볼 수 있었다. 집의 틀과 벽, 문 등을 제외하면 다 무너져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폐허가 된 폐가의 사진 속 저 방에서도 과거 한때는 한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살며 인생의 애환을 서로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폐허 이전 집 모습까지 상상하게 되다 보니 이 땅에서 사람이 산다는 것이 결국에는 한때는 아름다웠을 이 폐가의 모습처럼 참 허망하고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진) 거의 다 무너져 폐허로 변해버린 주택 모습




유달산을 건너 내려오니 맑게 갠 파란 하늘과, 그 하늘 아래 있는 아담한 주택들이 그림처럼 잘 어울리는 푸근한 느낌의 동네가 나타났다. 이 동네의 모습은 왠지 어린 시절 다녔던 중학교가 있던 서울의 한남동과 꽤 흡사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의 주택은 도로보다 저지대에 있었는데, 그 주택의 대문만은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도로 주변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결국 도로에서 보면 사람이 사는 집은 안 보이는데 덜렁 대문만은 보이는 그런 좀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사진) 유달산 아래 있는 동네. 도로변에 대문이 보이는데, 주택은 저 대문 아래 저지대에 있었다.

거리뷰 : http://naver.me/GHEzo3HB


사진) 2020년 8월 유달산 아래 동네 모습과, 2017년 6월 서울 한남동 모습. 언덕 위의 교회 모습이 비슷해서 그런지 왠지 흡사한 느낌이었다.


목포 시내로 들어오니 꽤 오래된 모습의 성당 건물도 볼 수 있었다. 바로 경동 성당이라는 성당이었는데 목포에서는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954년에 건축되었다 한다. 참혹한 역사를 가진 6.25 전쟁 종전 직후 완공된 건물인 셈이다.


사진) 경동 성당 모습




원래는 목포에 같이 왔던 지인과 이날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늦게나 올 수 있다는 연락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점심은 혼자 먹을 수밖에 없었다. 터벅터벅 걸으며 마땅한 식당을 찾아갔는데 목포역 쪽으로 가는 길의 '수미 찜'이라는 식당 간판에 생선 메뉴들이 많이 보여 그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들어갔다.


내가 도착한 시간이 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에는 손님은 전혀 없었고, 주인 부부와 몇몇 종업원들이 손님이 몰리기 전에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코로나 걱정 때문에 사람이 많으면 다소 부담스러울 것 같았는데 어제 저녁이나 오늘이나 다행히 다른 손님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식사를 수 있었던 것이다.


(수미 찜 식당 소개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esu_kal/222131469944


점심을 먹고 또다시 목적지도 없이 시내를 여기저기 걸어 다녔다. 그런데 전날도 보았던 똑같은 목포의 거리였지만, 역시 날이 너무도 화창하게 바뀌어서 그런지 호텔 뒷산에 있는 마을이 그랬던 것처럼 목포 시내의 거리도 전날 걸어 다녔던 거리와는 전혀 다른 다른 도시 거리를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찬란한 햇살이 사람의 느낌과 감각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새삼 깨우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변함없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면 오늘도 역시 거리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래 사진을 봐도 인적이 얼마나 드문지를 확인할 수 있 것이다. 건물들은 있지만 인적은 거의 없는 텅 빈 영화 세트장 같은 도시 속을 홀로 걷는 것 같은 느낌까지도 들었을 정도였다.


사진) 화창하게 날씨가 갠 날 찍은 목포 시내의 거리 모습. 역시 인적이 매우 드물다.


아울러 또 과거 대만에 근무할 때 걷곤 했던 아열대 지방의 도시 타이베이 시내 거리를 다시 걷는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들었다. 대만 법인에 근무하면서 2년 거주했던 타이베이는 너무도 정이 많이 들었던 도시였는데 햇살이 가득한 한여름 8월의 목포 거리 모습이 바로 그 타이베이의 모습과 꽤 닮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목포의 겨울 모습은 한참 더운 이 사진 속 8월의 여름 모습과는 매우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 없는 아열대 지방 도시 타이베이는 일 년 내내 변함없이 뜨거운 태양이 가득한 8월의 목포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그런 도시였다.


꽤 특이하게 보이는 건물도 있었는데, 마치 쇠창살이 있는 작은 교도소 같은 모습의 건물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교도소는 결코 아닌 것 같았고, 일본식 주택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일본식 주택이라 해도 그 모습이 통상 보던 일본식 주택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이 건물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결국 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사진) 쇠창살이 있는 교도소 같이 보였던 특이한 건물

거리뷰 : http://naver.me/xdIMFwau


완연한 일본풍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매우 낡은 건물도 있었다. 아래 사진이 그 건물의 사진인데 대낮이었음에도 모두 셔터가 내려져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아마도 현재는 빈 집인 것 같았다.


사진)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일본풍 건물

거리뷰 : http://naver.me/Fk5agWhQ


아래 건물 역시 일제 강점기 시절 1935년에 건축된 건물로 그 시절 이 건물에는 목포의 유명한 문구점이 있었다 한다.


그런데 세월과 역사가 흘러감과 함께 과거의 그 문구점은 아득하게 사라지고 현재 이 건물에는 전혀 다른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건물이 국가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오래전 목포의 아련한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일제 강점기 1935년 건축된 일본풍 건물

거리뷰 : http://naver.me/xqf7Oiww


확인해 보니 과거 일제 강점기 목포에는 의외로 매우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1910년 목포 인구가 약 1만 명이었다 하는데 그중 무려 33%가 일본인이었다고 하며, 1928년에도 목포 인구 약 3만 명 중 28%가 일본인이었다 한다. 결국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목포의 인구 10명 중 3명 정도는 일본인이었던 셈인데 그렇게 많은 일본인이 목포에 거주했었으니 당연히 일본풍의 주택들도 많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목포의 일본인 인구 및 광주와의 비교)

http://kwangju.co.kr/read.php3?aid=1352818800482048188


역시 일제 강점기 시절에 건축된 석조 건물도 남아 있었다. 아래 사진이 그 건물 사진인데 위 건물이 건축된 것과 같은 해인 1935년에 건축되었다 한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서울 종로에 있던 화신백화점의 목포 지점이었고 이후에는 갤러리로도 사용되었다 하는데,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건물이었다.


정작 서울의 화신백화점 본점은 1987년 철거되어 이미 그 건물부터 모든 것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역사의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는데, 그 백화점의 목포 지점은 그나마 건물 형태로나마 남아있어 지금도 오래전 그 시절 목포의 얘기들을 조용히 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건물 또한 국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었다.


사진) 일제 강점기 '화신 백화점'의 목포 지점 건물.

거리뷰 : http://naver.me/FGok8fcw

(서울 화신백화점 본점 철거 전의 모습)

https://www.weekly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57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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