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목포의 향기 (4-4)

■ 도시의 향수 (18)

by SALT

전편 "그 여름 목포의 향기 (4-3)"에서 이어짐.




목포대라는 국립대가 있다. 목포에 온 기회에 그 대학을 한 번 구경해 보자는 생각에 위치를 지도로 검색해 보니 내가 있던 목포 시내에서 약 4km의 거리로 천천히 걸어서 가도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목포 거리 모습도 구경할 겸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목포대를 가려면 목포역을 통과해서 가야 했는데, 그 길을 따라 목포역 근처에 가보니 매우 오래전에 지어진 것 같은 낡은 창고나 사무실 같은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필경 일제 강점기 시절 건축된 건물들 같았다.


사진) 목포역 인근에 있던 꽤 오래돼 보이는 건축물들

거리뷰 : http://naver.me/58Hzrgi0


(일제 강점기 시절 목포역 모습)

https://khariles.tistory.com/m/2164


'영산로 182번지'라는 주소가 표기된 도로변에도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있었는데, 건물은 지붕이 통째로 사라진 상태로 사방의 벽만 폐허처럼 남아 있었다. 반파된 건물 안과 벽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담쟁이덩굴과 잡초가 오래전 과거 목포 역사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지붕이 허물어진 도로변의 건물


목포대에 점차 가까워지자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온통 하늘색으로 벽을 칠한 주택도 보였고, 또 일본풍 구조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특이한 지붕을 가진 주택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독특한 모습들은 꽤 이국적이라 이번에도 역시 햇살이 가득한 지중해 해안의 어떤 마을 혹은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나 인근 대만의 어느 아열대 도시에 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진) 담을 온통 하늘색으로 칠한 주택.

거리뷰 : http://naver.me/Gz5dWWYH


사진) 지붕 모습이 꽤 특이했던 주택.

거리뷰 : http://naver.me/5dxh5gPv


학교 이름이 목포대이니 사실 나는 목포시에 목포대학교가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지도를 검색해도 실제로 목포시 한 지역에 목포대학교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따라서 나는 그 목포대를 구경하고자 이곳까지 왔던 것이었다.


(지도상의 목포대학교)

http://kko.to/8Lo5E_CYB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황당하게도 목포대는 목포가 아닌 무안군에 있었다. 물론 목포대학의 전신인 목포 사범학교가 1946년 목포 시내 이곳에 설립되었고, 그로부터 한동안은 이곳에서 목포대가 운영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과거 목포 사범학교 본관)

https://m.blog.naver.com/fww600r/40047572497


하지만 목포대가 점차 발전하면서 인근 무안군에 크고 멋진 최신식 캠퍼스가 새로 생겼고 그 캠퍼스로 대부분의 학과가 이전해서 목포시에는 음악학과와 미술학과만 남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남은 이 학과마저도 2011년 역시 새로운 캠퍼스로 이사 가면서 목포 캠퍼스에는 이제 실질적으로 남은 학과는 전혀 없게 되었다. 실제 목포 캠퍼스에 도착해 보니 오래된 건물들만 남아 있었고 인적도 역시 거의 없었다. 결국 텅 빈 캠퍼스 건물을 보러 그 먼 길을 걸어왔던 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덕분에 목포대로 걸어오면서 목포의 인상적이고 멋진 공간과 건물들을 접할 수 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사진) 목포대 목포 캠퍼스 체육관, 어울림관, 정문 모습


(목포대 목포 캠퍼스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kmu2333/221825713519




목포대를 떠나 다시 목포역 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 7시경 출발 예정인 기차표를 바꿔서 좀 일찍 서울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서울에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멀리 목포까지 온 김에 좀 더 목포를 구경하다가 예약된 기차표 시간 그대로 목포를 떠나기로 했다. 목포대 다음에 구경할 목적지는 일단 목포역에 도착해서 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3시경 목포역에 거의 도착할 때쯤 되니 무안으로 갔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이 다 끝나서 약 20분 후 목포역에 기차로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목포역에서 지인과 다시 만나니 3시 반쯤 되었는데, 저녁 먹기는 역시 너무 일러서 목포역 근처의 '젊음의 거리'라는 곳으로 가서 구경도 좀 하고 차도 한잔 마신 후 4시가 좀 넘어 이른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식당은 목포를 잘 아는 지인이 정했는데, 낙지를 전문으로 하는 '뜰채'라는 식당으로 전국 맛집을 소개하는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도 나온 적이 있는 식당이라 했다. 실제 식당에 가 보니 음식 맛도 매우 좋았는데, 음식뿐 아니라 통유리로 된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잔디로 꽉 찬 정원의 경치 역시 매우 인상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사진) 식당 뜰채의 초록이 가득한 정원 모습


(뜰채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eetmdnlxm&logNo=220935949052&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술을 마시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 식당에서 얼큰한 낙지를 먹다 보니 막걸리 생각이 슬슬 간절해졌고 결국에는 2통을 주문했다. 그런데 같이 간 지인이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타입이라 그 막걸리 2통을 거의 전부 혼자 마시게 되었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목포에 마침내 와서 가까운 지인을 만나 함께 맛있는 낙지를 먹으며 멋진 정원까지 바라보고 있다 보니 막걸리가 많이 끌렸던 것인데, 역시 막걸리까지 몇 잔 하고 나니 기분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남도 목포의 찬란한 햇살과 멋과 맛까지 만끽할 수 있었던 인생의 아름다운 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흔하게 하는 말로 "인생 뭐 있겠는가...."라는 그 문장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닿던 시간이었다. 유한한 인생의 시간에서 이처럼 화창한 여름 햇살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게 될지....


막걸리로 좀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지인과 함께 목포역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지인은 먼저 무안으로 출발했고, 나는 아직 기차 시간이 남아 목포 시내를 좀 더 구경하기로 하고 또다시 목포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분홍색으로 지붕을 칠하고 하늘색으로 벽을 칠한 꽤 눈에 띄는 아담한 주택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주택은 올라가는 계단까지도 역시 특이한 도안으로 꾸며져 있었다. 집과 계단 모두 그렇게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는 것을 보니 집주인의 애틋한 심미안도 함께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진) 파스텔 색으로 외벽을 예쁘게 단장한 주택.

거리뷰 : http://naver.me/FEJMKd6Q


더 걸어가니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서만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그 목포항이 드디어 두 눈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 항구의 모습은 노래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상상했던 그런 오래되고 푸근한 모습은 아니었다. 최근 건설된 여느 항구의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항구에는 꽤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는데 아무래도 서해의 수심이 그다지 깊지 않아서 그런지 언젠가 동해안의 동해시 항구에서 봤던 크루즈 유람선과 같은 그런 초대형 선박들은 볼 수 없었다.


사진) 목포항과 항구에 정박한 선박들 모습


(목포항 등 일제 강점기 시절의 목포 모습)

https://www.instiz.net/pt/6064731


목포항 바로 앞에는 '목포 종합 수산 시장'이라는 어시장도 있었다. 이 시장은 원래 100년도 넘는 1908년에 '동명동 어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그 문을 열었다 한다. 하지만 시장 내부는 전혀 그렇게까지 오래돼 보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2004년 시장 시설 현대화 공사가 진행됐고 그때 시장 이름 역시 현재와 같은 목포 종합 수산 시장으로 바뀌었다 한다. 홍어로 유명한 지역답게 홍어 취급 상점이 많았다.


사진) 목포 종합 수산 시장 입구


(목포 종합 수산 시장 소개 블로그)

https://blog.daum.net/sciensea/2800


어시장을 구경하고 다시 목포역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올 때처럼 큰길로 가지 않고 시장 주변의 골목길을 따라서 걷기로 했다. 그렇게 시장 옆 골목을 어느 정도 걷는데 특이한 모습을 가진 둥근기둥 같이 생긴 작은 주택이 나타났다. 현재는 많이 낡은 모습이었지만 독특한 그 외관 디자인으로 볼 때 처음 이 주택이 지어졌을 때에는 그 디자인으로 오고 가는 행인의 눈길을 꽤 끌기도 했을 것 같았다.


사진) 어시장 인근 골목에 있던 특이한 디자인의 건물.

거리뷰 : https://goo.gl/maps/1dyUWDtbRYgDG4tKA


일제 강점기나 아니면 해방 직후 건축된 것 같은 창고처럼 보이는 오래된 건물도 볼 수 있었다. 두 채의 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두 채 모두 꽤 낡기는 했지만 현재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사진) 창고로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

거리뷰 : http://naver.me/xUSZHHJ0


기차 시간도 가까워져서 목포 구경은 이제는 마무리하기로 하고 목포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앙증맞은 소녀 그림이 그려져 있는 좁은 골목을 마주칠 수 있었다.


골목 안은 휑하니 비어 있었고 좌우측 건물 사이로 골목 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장면이 벽에 그려진 소녀의 모습과 어울려 마치 한 폭의 정물화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래 사진이 그 골목 사진인데, 이 사진이 목포라는 도시를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2020년 8월 무더운 한여름 목포에서 찍었던 마지막 사진이다.


사진) 소녀와 별과 하트가 그려진 골목 담벼락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 목포역 인근 골목 모습




생각해 보면 목포는 좀 색다른 도시다. 목포를 주제로 크게 히트했던 곡이 2곡이나 되기 때문이다. '목포는 항구다'와 '목포의 눈물'이 그 두 곡인데, 서울 포함 목포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큰 한국의 도시들도 도시를 주제로 한 히트곡이 전혀 없거나 고작 한 곡 정도인 반면 인구 약 20만에 불과한 목포를 주제로 히트곡은 2곡이나 된다는 것이 좀 특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차에 올라탔고 이제 기차는 서서히 목포역을 떠나 서울로 향하기 시작했다. 기차 안에서 목포에 관한 유명곡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를 생각하며 왜 굳이 목포를 눈물과 연관 지어 가사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 목포의 눈물 가사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의 새 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임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쩌다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

못 오는 임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목포의 눈물'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다. 어찌 보면 단순히 돌아오지 않는 임을 그리는 그러한 가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처럼 연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꽤 섬찟한 가사도 있다.


그래서 좀 더 검색을 해 보니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노래 가사를 만든 분은 목포에서 태어난 문일석이란 분인데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와세다 대학 문학부까지 졸업한 엘리트였다 한다. 대학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에 대학을 졸업했을 뿐 아니라, 유학까지 가서 졸업을 했으니 당시에는 꽤 엘리트였던 셈인데 바로 이 분의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이 이 곡에서 '목포의 눈물' 가사로 표현되었다 한다.


즉, 이 곡이 만들어졌던 당시로부터 약 삼백 년 전의 이순신 장군의 목포 노적봉 활약 등과 연관 지어 작사가가 가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노래에서 그리워하는 '임'은 바로 이순신 장군의 넋과 정신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런데 노래 가사의 이런 미심쩍은 부분을 의심했던 왜경이 눈치를 채고 작사가를 체포해 가사의 참된 의미를 추궁하게 되면서 작사가는 고문을 받기도 했다 한다.


결국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가사 일부분이 변경되어 노래가 불려지기도 했고, 작사가 문일석 본인은 왜경 감시를 피해 한반도에서는 목포에서 가장 도시 중 하나인 함경남도의 함흥으로까지 도주해 그곳에서 숨어 살다 28세라는 아직은 너무도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고 한다.


목포의 눈물 가사를 쓴 때가 24세 때였다 하니, 작사를 하고 불과 4년 만에 결국 그 노래 가사로 인해 사망했던 셈이다.


(목포의 눈물 가사의 숨겨진 의미)

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55788

2.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088966619438520&mediaCodeNo=257


노래 가사의 숨겨진 의미와 작사가의 애달픈 인생에 대해서 알고 나니, 일제 강점기 그 암울한 시절 자신의 운명을 노래 가사에 미리 적어놓기라도 한 것 같은 문일석이란 한 젊은 한국 청년의 절규가 노래 가사를 통해 더 애절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푸근한 골목과 거리, 아담한 주택, 찬란한 햇살, 푸른 바다 등등 너무도 아름답고 끌리는 모습이 가득했던 목포였지만 이러한 깊은 아픔과 눈물 또한 진하게 새겨져 있는 곳이 또 목포였던 것이다.


2020년 한여름 8월에 처음으로 만났던 남녘의 항구 도시 목포에 대한 기억이다.

(이난영과 목포의 눈물)

https://blog.naver.com/kayabaco/22162287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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