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소도시 '일로'와 목포대 (2-1)

■ 도시의 향수 (19)

by SALT

전라남도 무안군에 '일로'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인구가 약 1만 5천 명밖에 안 되는 도시인데, 이 인구 조차도 최근 1년 사이에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1년 전 2020년 초에는 일로 인구가 불과 7천 명 수준밖에 안되었다 한다.


그러다 그 해 말에 목포 인접한 오룡지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인구가 갑자기 2배 이상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룡지구는 일로읍사무소에서는 좀 떨어진 목포시 접경 지역의 아파트 단지로 전통적인 개념의 일로읍과는 괴리가 있고 어찌 보면 목포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는 그런 지역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일로읍 인구 1만 명 돌파)

http://www.newsinjn.com/news/articleView.html?idxno=78650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지방에도 자주 다니긴 했지만 대부분 대전, 부산, 광주 같은 대도시였고, 이 '일로'처럼 읍 단위의 도시를 방문했던 적은 전혀 없었다. 그만큼 이 작은 도시에 대해서는 뭐랄까 미지의 소도시에 대한 설렘과 같은 그러한 기대감이 있었다. 인구가 1만 수준인 지방 도시에서의 삶이 과연 어떤지 나름 꽤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용산 이촌동은 그 면적이 3 km² 안 되는데 인구는 약 3만 명 수준이라 한다. 그런데 일로읍은 그 면적이 67 km²나 되는데 반해 거주 인구는 1만 5천 명 수준이니, 면적은 이촌동의 20배가 넘는 반면, 인구는 절반 수준인 셈이다. 숫자를 놓고 이렇게 비교를 해 보니 서울과 지방의 인구 밀도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노인 한 명'을 의미하는 '일로(一老)'라는 특이한 지명은 고려 때 지방 관리가 이곳을 지나가는 데 길이 너무 좁아서 노인 단 한 명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일로읍 소개 자료)

https://www.muan.go.kr/www/abountmuan/organization/ilo




일로는 용산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면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바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 무려 5시간을 기차 안에 있어야 해서 그렇게 오래 기차에 있기는 힘들 것 같아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광주 송정역에서 내려서 그곳에서 일로까지 가는 무궁화호 기차를 갈아타기로 했다. 이렇게 가면 광주까지 약 1시간 30분, 광주에서 일로까지는 또 약 40분으로 모두 합쳐 2시간 10분 정도면 일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21년 4월 21일 오전 9시 22분 출발하는 KTX를 탔다. 요즘 자꾸 늦잠을 자는 습관이 생겨 이날도 역시 늦잠 자고 서둘러서 나오느라 아침을 못 먹어 용산역에 있는 식당에서 얼큰한 우동이라도 하나 먹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라 코로나가 좀 걱정되기도 해서 그냥 참고 기차를 탔다.


기차는 11시경 예정대로 광주 송정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내려 잠시 기다리다가 11:41분에 출발하는 일로행 기차에 탑승했다. KTX가 도입된 이후에는 대도시 간 이동시 항상 KTX만 이용했었기 때문에 무궁화호는 이날 정말 오랜만에 게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모습이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꽤나 반가웠다.


사진) 광주 송정역으로 들어오는 '일로'행 무궁화호 열차


일로행 기차에 탑승해서 내 좌석으로 찾아갔더니 몸무게가 족히 150kg도 넘어 보이는 엄청난 거구의 남자분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체격 워낙에 비대하다 보니 개 좌석으로는 너무 비좁아 그런지 그분의 앞좌석도 등받이를 반대로 돌려 모두 4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하필이면 그 사람이 앉아있는 그 4 좌석 중 한 좌석이 나의 좌석이었는데, 그렇게 비대한 분과 바로 옆에 앉아 있기는 그분뿐 아니라 나도 역시 매우 답답할 것 같았고 또 주변에 빈자리가 많은데 굳이 원래 내 자리를 찾아 그분 옆에 앉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결국 기차 안 다른 빈자리를 찾아서 그곳에 앉았다.


일로행 무궁화호 열차는 광주역에서 일로까지 가는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았음에도 마치 마을버스처럼 그 도중에 있는 5~6개의 작은 역들에 모두 정차했었다. 그런데 평일 점심 때라 그런지 역마다 타고 내리는 승객은 불과 5~6명도 안 되는 실정이었다. 또 승객은 젊은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고 대부분 근처 마을의 어르신들이었는데, 중간중간 그분들의 구수한 정통 전라도 사투리도 오랜만에 들을 수 있었다.


무궁화호는 1970년대 말에 도입되었다 하는데, 당시에는 가장 고급 열차인 새마을호 바로 다음으로 좋은 열차였고, 무궁화호보다 느리고 저렴한 열차로는 비둘기호와 통일호 등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KTX 같은 훨씬 더 빠르고 안락한 기차가 생기고, 비둘기호와 통일호 등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무궁화호가 가장 저렴하고 느린 기차가 되어버렸다.


(비둘기호, 통일호 소개 자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etrain777&logNo=220105611691


무궁화호 열차 내부는 새로운 열차를 도입하지 않고 오래된 열차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그런지 꽤 낡아 있었다. 아래 사진이 열차 내부 사진인데, 청소를 매우 잘해 사진에서는 그다지 낡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직접 보면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구석이 수두룩 했다.


사진) 무궁화호 열차 내부 모습


그래도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1960년대 후반에 찍은 당시의 한국 기차 모습과 비교를 해 보면, KTX는 말할 것도 없고 무궁화호조차도 그 시절의 열차 대비는 너무나도 많이 좋아진 것 같다. 게다가 요즘은 어느 역이나 플랫폼 정도는 설치되어 있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플랫폼도 없어 당시에는 아마도 승객들이 평지에서 열차에 올라타고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 1960년대 후반 서울에서 부산 가는 열차 모습




12시 30분경 일로역에 열차가 도착했다. 서울 용산역에서 9시 30분경 출발했으므로 3시간 정도에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었다. 일로역에서 내린 승객은 나를 포함 고작 3~4명 정도로 매우 적었고, 그다음 역이 종착역인 목포라 그런지 탑승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사진) 일로역에 정차한 열차와 역사로 연결되는 지하 계단.


한편 일로역은 실제로는 일로읍에 있지 않고 일로읍의 바로 옆 삼향읍에 위치하고 있었다. 원래 일로 읍사무소 근처 읍 중심에 있던 일로역이 2001년 호남선 복선화 공사 당시 현 삼향읍 내 위치로 이전된 것인데, 이때 과거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 지금도 역시 일로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었다.


일로읍 중심부에 있던 일로역은 100년도 넘는 오래전 일제 강점기 시절 1913년에 건축되었다는데, 그 역은 역사 이전 당시 철거되어 희미한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과거 그 역의 모습이 궁금해 한동안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려다가 혹 한자 '一老驛'으로 검색해 보면 어떨까 싶어 한자로 입력 검색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철거 전의 일로역 사진을 마침내 찾을 수가 있었다.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아직도 한자가 검색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을 보니 좀 의외였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렇게 어렵게 찾은 철거 전의 일로역사 모습인데 사진을 보고 있다 보니 마치 오래된 기록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제 실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사라진 과거 기억 속의 한 건물인 셈이다....


(1913년 건축된 일로역의 철거모습)

https://thewiki.kr/w/%EC%9D%BC%EB%A1%9C%EC%97%AD


현 역사는 역사의 이전과 함께 2001년에 건축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로역사는 규모도 생각보다 작지 않았고 건물도 꽤 깔끔한 상태였다. 다만 역 이용객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역사 내에 식당이나 편의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일로역 이용객이 지난 10여 년간 변함없이 하루 온종일 다 합쳐도 평균 150명을 넘지 않았다 하니 향후 이 역이 지속 유지될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많은 지방 도시가 공동화된다는 기사를 언론에서 이따금 접하기는 했었지만 실제로 그런 현상을 일로역에서 직접 목격하는 것 같았는데 아래 사진에서도 수 있다시피 일로역에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전혀 없었다.


사진) 2001년 신축된 일로역사 모습.


역사 우측에는 일로읍 포함 무안군 일대 관광명소를 표기한 대형 지도도 있었는데, 일로읍사무소와 목포시청 간 거리는 약 15km로 차로 이동 시 20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이처럼 일로가 목포와 워낙 가깝다 보니 일상생활하다 보면 목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는데 실제 지인도 중학교까지는 일로에서 다녔지만 고등학교부터는 목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한다.


사진) 일로 역사 옆에 세워진 무안군 관광 지도




역을 나와서 잠시 기다리니 만나기로 한 지인이 도착했고, 점심은 지인의 사무실에서 중국 음식을 배달시켜서 먹기로 했다. 무안 지역이야 당시 코로나 확진자가 거의 없었지만, 서울은 확진자가 매일 200여 명 정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던 상황이어서 지인은 식당에서 먹기를 희망했지만 내가 우겨 음식을 배달시켜 사무실에서 따로 먹기로 했던 것이었다.


확진자가 많은 서울에서 온 내가 혹 무증상 환자인데 그걸 모르고 사람들이 붐비는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해서 혹여나 코로나 청정지역인 무안에 코로나를 전파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너무나도 많은 비난을 받을 것 같아 그것이 겁이 나서 배달시켜 먹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 내 몸에 아무런 이상 증상도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지인은 내 뜻을 꺽지 못했고 중국집에 음식 배달을 시켰는데 그 음식들이 이미 도착해 있으니 서둘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새로 개업한 지인의 사무실에 화분 하나 정도는 사 가야 할 것 같아서 꽃가게에 들르자고 했고 지인은 일로읍 중심에 있는 '꽃길'이라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그곳은 꽃과 같은 화초, 화분을 팔기도 했지만 원래는 식당이었다. 즉 식당을 주업으로 하면서 꽃 가게도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그 분위기나 인테리어가 꽤 세련되어 있어서 서울 강남 여느 가게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인구 2만 미만 지방 소도시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그러한 모습의 가게였는데 이곳을 소개한 아래 블로그 내용에서도 그 세련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로 텃밭이야기, 꽃길)

1. https://blog.naver.com/iou252/221704411175

2. https://blog.naver.com/vivamivida86/222153599468

3. https://m.place.naver.com/restaurant/1948894440/photo


이 가게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것은 매우 큰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너무도 순하고 예뻤다는 것이었다. 위 링크에서도 그 개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온통 흰털로 뒤덮인 송아지만한 큰 개였지만 성격이 너무도 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서 처음 보는데도 전혀 짖지도 않았고 그저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 가게의 단골인 것 같은 젊은 여성 손님 세분이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오셨는데, 개와는 서로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이였는지 그 큰 개가 그 손님들을 보더니 바로 앞에 배를 들어내고 벌렁 누웠다. 그러자 그 손님들은 "얘 또 배 쓰다듬어 달란다...."라고 말하며 열심히 쓰다듬어 줬는데, 개도 꽤나 좋아했지만 정작 쓰다듬어 주는 그 여성분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도 순해서 가게 주인에게 이 개는 원래 이렇게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그렇다고 하며 사실 너무 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 오히려 그것이 문제라고 했다. 길 가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무작정 따라가는 경우가 흔해 걱정이 많다는 것이었다.


주인 말에 의하면 이러한 특성은 이 품종 개들의 공통적인 성격이라 했는데, 단 한 번도 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었지만 이 정도의 개라면 한번 길러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가게에서 5만 원짜리 화분을 하나 사서 '축 개업'이라는 리본까지 달아 지인 사무실로 들고 갔다.




이 가게 근처에는 '일로 초등학교'가 있었다. 일로읍 유일한 초등학교라 하는데, 1922년에 개교했다 하니 역사가 무려 100년이나 되는 학교인 셈이다. 내가 졸업한 서울 신용산 초등학교도 확인해 보니 1968년에 개교한 학교로 역사가 반백년이 넘는 학교였다. 하지만 이 초등학교의 역사와 비교하면 반 정도밖에 안 되는 학교였던 셈이다.


역사가 오래된 학교라 그런지 검색해 보니 꽤 오래된 학교 사진들이 게재된 블로그도 있던데 오래 전의 우리들 모습이 많이 생각나는 그런 그리운 모습들이었다.


(일로 초등학교 과거 모습들)

https://blog.naver.com/p01010/221146020015

(일로 초등학교 정문 거리뷰)

http://naver.me/G99SDci9


초등학교가 위치한 이 일대가 일로읍의 중심지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인구 1만 5천의 소도시답게 매우 단출하고 한가롭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아래 사진이 일로라는 남녘 소도시의 그런 모습들이 담긴 사진이다



대성 학원, 풍년 농약사, 가희 식당, 고운 치과, 승강 의원,

정민아 헤어, 하나 약국, 하나로 마트 등등.... 이 땅에서의 우리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여러 상점과 그 상점 간판들을 일로읍 거리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반도 남녘 소도시의 거리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이 상점과 간판들이 왠지 기억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여러 번 마주쳤던 것처럼 정답게 끌렸던 이유는 무엇인지....


2021년 초봄 4월 나른한 오후 1시경에 마주쳤던 일로읍의 모습과 기억이다.




다음 편 "남녘 도시 '일로'와 목포대 (2-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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