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를 떠나며....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1편 Paris-27)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27. Paris를 떠나며....


1995년 뜨거운 8월에 Paris에 도착한 후 가을 지나 겨울을 보내면서 겨울 내내 해를 거의 보지 못해서였는지, 아니면 처음 겪는 장기간의 외롭고 또 쓸쓸한 객지 생활에 적응을 못해서였는지 겨울 한때 시름시름 앓기도 했었다.


Paris의 겨울은 흐린 날이 반복돼서 해 보기가 쉽지 않았다. 겨울에도 일조량이 많은 한국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처음에는 어쩌다 해가 쨍쨍 뜨는 날이면 프랑스인들 거의 모두가 서둘러 센 강변이나 공원 등 여기저기로 나와 별다른 일도 하지 않으면서 웃통 벗고, 그저 일광욕 즐기는 데만 집중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Paris에서 겨울 딱 한번 지내보니 너무도 쉽게 그런 행동이 이해되었다. 사람이 오랜 기간 햇빛을 받지 못하면 정신적으로도 우울해지고 또 신체 균형도 무너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겨울에 해가 쨍쨍 뜨는 날이 오면 귀한 그 햇빛을 받으려고 자연스럽게 모두가 거리로 뛰쳐나가게 되는 것이었다.


초봄이 되면서, 해도 길어지고 햇살도 점차 늘어나던 시기, Paris 시내를 거닐다 우연히 길가에 핀 노란색 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개나리였다. Paris에도 개나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서울 거리에서 봄마다 마주치던 그 찬란한 노란색 개나리를 Paris에서도 그렇게 다시 만나보게 되니 시름시름 앓던 몸 상태도 바로 호전되는 것 같았고, 마치 오랜만에 고향 서울로 돌아온 것 같이 기분도 너무 좋아졌다.


당시 그토록 반가웠던 그 느낌을 두고두고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Paris의 그 개나리 사진도 여러 장을 찍어 놓았는데, 아쉽지만 모두 분실되어 이제는 그 장면 그 느낌을 육안을 통해 다시 접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저 기억 속의 희미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다. 물론 그 희미한 기억조차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언어도, 음식도, 문화도, 거리도, 사람도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프랑스 Paris에 1년간 거주면서 나름 많은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출장 다니면서 잠깐잠깐 경험했던 것과, 거주하며 경험했던 것은 분명 그 차이가 컸는데 Paris에 거주하던 그 기간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우쳤던 것만큼 내 인생의 경험과 감성이 풍부해질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울러, 첫 번째 해외 거주지인 Paris에서의 그러한 소중한 경험과 교훈이 이후 13년간 다시 이어진 해외 다른 도시들에서의 생활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가면 언제나 너무 환하게 웃으시던 집 앞 포도주 가게 할아버지가 있었다.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처럼 비록 소주 한 병 값보다 싼 포도주를 사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번 오면 꼭 한 박스 이상은 사 가는데, 일주일에 2~3번이나 찾아오니 얼마나 반가운 단골손님이었겠는가? 24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러간 지금도 푸근한 미소로 대해주던 그 할아버지와 그 포도주 가게가 Paris의 내가 살던 그 집 앞에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24년이라는 무지막지한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가 버렸으니 말이다....


아무리 술 취해도 집에는 찾아 가야 하니, 택시만 타면 녹음 테이프 재생하듯이, 자동적으로 반복해서 기사에게 읊었던 집 주소가 지금도 생생하다. '뇌프 비스 휘 쌩따망 깽지엠므 아롱디스망(9 bis rue St. Amand 15 Arrondissement)




Paris에서 1년을 살았어도 한국에 돌아올 때 가져온 짐이란 Paris에서 거의 매일 마셨던 소주 한 병 값보다 싼 몇천 원 수준의 싸구려 앙주(Anjou) 지방 포도주 세 병과, 지인이 부탁해 가져온 폐간된 엥포마땡(InfoMatin)이라는 일간지 마지막 폐간호까지 약 1년 치 한 뭉텅이 그리고 입고 다니던 헌 옷 몇 벌 그것이 전부였다.


신문 1년 치를 별도로 하면 내 짐은 다 합쳐도 작은 손가방 두 개뿐이었는데 해외에 장기 체류해서 그런지 한국에서 통관할 때 별도로 짐 검사를 받아야 했다.


세관에서 풀어헤쳐진 내 짐들을 한동안 말없이 내려다보던 세관 직원이 싸구려 포도주와 신문지 뭉텅이 그리고 헌 옷 등을 보고는 가져온 짐이 이게 다냐고 묻길래, 사실 그대로 그게 전부라 했. 그랬더니 뭐 하는 분이시냐고 묻고 이어 뭔가를 좀 더 말할 듯 말 듯하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가라고 했다.


세관직원 입장에서는 좀 이상하기는 했었을 것이다. 여권을 보면 1년 만에 귀국하는 상황인데, 별도 부친 짐도 없다는 사람이 짐이라고는 비싼 술도 아니고 몇천 원짜리 포도주 3병에 날짜 지난 신문지 1년 치와 헌 옷이 전부였으니....


하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짐이 없는 것이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실제 그것들 이외에 가지고 올 짐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고, 그건 그 이후 토론토, 베이징, 광저우, 타이베이, 홍콩 등지로 돌아가며 주재 근무한 후 그 도시를 떠날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미혼으로 혼자 살았으니 남들보다는 짐이 적었겠지만, 그래도 몇 년씩 살다 바로 옆 집도 아니고 다른 나라로까지 이사 가는데, 배낭 하나에 손가방 한두 개로 모든 이삿짐을 해결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결국은 그렇게 빈손으로 와서 그렇게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것일 것이다. 움켜쥐고 소유하려 해도 그저 잠시만 움켜쥐고 또 소유할 수 있을 뿐 결국에는 다 내려놓아야 수밖에 없는 것이다.


30대 청춘의 소중한 한 순간을 보냈던 Paris에서의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립다. Paris의 봄날 화창한 햇살 아래 반짝이던 그 노란색 개나리가 지금도 눈 앞에 어른거리는데 두 번 다시 그 자리와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프랑스의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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