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기억에 남는 단편들 (2-2)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1편 Paris-26)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26. Paris, 기억에 남는 단편들 (2-2)


나쁘다 좋다의 판단 여부를 떠나, 프랑스에 거주하던 기간 경험했던 특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있었다. 그중 기억나는 것 몇 가지를 1편에 이어 적는다.



9) '양반다리'도 묘기


내가 이해 못하거나 놀라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한국에서는 별다른 일도 아닌 내 행동에 프랑스인들이 매우 의아해하고 놀라는 것을 본 경우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의자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아는 프랑스 사람 집에 놀러 가서, 응접실의 동그랗고 작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다리가 불편해, 그 의자 위에서 한동안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집에 있던 프랑스 사람들이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신기한 묘기를 본다는 듯이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는데, 그때 상황을 파악한 한국에 살다 온 경험이 있는 집주인이 "아, 한국인들에게 저렇게 앉는 것이 전혀 힘든 것이 아니고 쉽고 흔한 것"이라고 날 쳐다보던 프랑스인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양반다리가 괴로운 서양인)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0/2018022000243.html


그제야 새삼 깨달았는데,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그냥 평평한 마루 바닥에서조차 우리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라 하면 그걸 잘 못한다. 아예 애초부터 시도도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앉는 데 성공하더라도, 몇 분도 못 지나 불편해서 온 몸을 비틀다 포기하곤 했다. 워낙 어려서부터 의자에 앉는 생활을 해 왔지, 우리처럼 바닥에 그렇게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평지에서도 아니고 좁은 의자 위에서 너무도 편안한 표정으로 내가 그렇게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있으니 그것이 그들에게는 묘기처럼 신기하게 보였던 것이었다.


한편 당시에는 서양인에게만 그런 자세가 힘든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까운 나라지만 중국인 역시 주로 의자 생활만을 하고 자라서 그런지, 우리들처럼 양반다리 자세로 앉는 것을 의외로 매우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묘기 아닌 묘기를 멀리 프랑스에까지 가서 프랑스인들에게 보여 주었던 셈인데, 양반다리 자세가 무릎 관절 건강에는 매우 치명적이라 하니 앞으로는 그러한 묘기(?)를 보이는 행동을 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양반다리와 무릎 노화)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1042002080



10) 도둑놈 취급


집 앞에 '샹삐용(Champion)'이라는 슈퍼마켓이 있었다. 필요한 식품, 생활용품 등은 항상 이 곳에서 구매했었는데, 매번 내가 갈 때마다 슈퍼마켓의 흑인 경비원이 유독 나만 졸졸 쫓아다니며 도둑 감시하듯이 감시를 하곤 했었다.


도대체 왜 나를 도둑놈 취급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러웠고 당연히 기분 역시 몹시 안 좋았는데 왜 나만 쫓아다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저 이 슈퍼에는 과거 유독 동양인 좀도둑이 많아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결에 다른 손님들을 보면서 나와 다른 행동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큰 가방을 들고 슈퍼마켓 안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그 가방을 슈퍼마켓 입구에 두고서 들어가는 것이었다. 즉, 가방에 뭔가 숨겨 몰래 가지고 나올 수 있으니, 그러한 큰 가방은 슈퍼에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 두고 장보기가 끝나고 나오면서 그 가방을 다시 찾아가는 그런 관행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동양인 한 명이 그런 관례는 전혀 무시하고, 큰 가방을 들고 당당히 슈퍼 안으로 들어가니 좀도둑 잡는 슈퍼마켓 경비원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가 좀 의심스러웠고, 그래서 슈퍼마켓 안을 돌아다니는 내내 내 뒤를 쫓아다녔던 것이었다.


그러한 관행을 알고 난 후에는 나 역시 슈퍼마켓에 들어갈 때는 가방을 입구에 두고서 들어갔고 이후에는 그간 하도 나를 따라다녀 정(?)까지도 들뻔했던 그 경비가 다시 나를 따라다니는 일은 결코 없었다.


(내가 매일 도둑놈 취급받던 슈퍼)

https://goo.gl/maps/38kx9JQknhfWcc2v8


11) 기숙사 앞 낮술

Paris시 14구의 남쪽 끝단에는 '씨떼 위니벡시때흐' (Cité Universitaire)라 불리는 대학생 기숙사촌이 있다. 프랑스 정부가 대지를 제공하고,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자국의 비용으로 기숙사 건물을 지어 프랑스에 유학 온 자국 학생 또는 다른 나라 학생들에게 저가로 방을 제공해 주는 그런 곳이었다.


(시떼 소개 자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gitancho&logNo=221471961730


Paris에서 유학하고 있던 대학교 후배 한 명도 이 기숙사에 체류하고 있어서 나도 몇 차례 이곳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전 세계 약 20여 개국에서 이곳에 자국을 대표하는 건물을 지어 기숙사로 운영하고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는 한국관은 없었다.


미국, 스페인, 이태리, 일본 등 선진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 멕시코처럼 국가 재정이 결코 넉넉하지 않은 국가도 자국의 국명이 붙여진 기숙사를 갖고 있었는데, 한국관만은 유독 없었고, 따라서 내 후배도 한국관이 아닌 나른 나라의 기숙사에 투숙하여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Paris를 떠난 지 약 22년 후인 2018년 마침내 한국의 국가 예산으로 한국관도 건축되어 이제 이곳에서도 한국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한다.


(한국관 개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3741261?sid=102


내 후배가 머물던 기숙사는 공동 화장실, 공동 샤워장, 공동 주방을 사용해야 했던 곳으로 시설이 그렇게 좋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경제적 여유가 없는 유학생에게 이곳에서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체류할 방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고, 따라서 이곳에 방을 얻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유학 생활에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할 일 없고 심심하면 가끔 이곳에 놀러 가서 큰 꿈을 품고서 열심히 공부하는 후배를 반 강제로 불러내 근처 바(Bar)로 끌고 가서 한 여름 대낮에 시원한 흑맥주를 같이 마시기도 했었는데, 그 후배는 나로 인해 그렇게 시달리고 또 시간을 많이 빼앗겼음에도 다행히 나름 열심히 유학생활을 했는지 지금은 서울의 모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2) 사창가

한국에도 이제 도로명 주소제도가 도입되었지만, Paris는 오래전부터 도로명 주소 제도를 채용하고 있어서 Paris에 존재하는 모든 거리에는 전부 이름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런데 Paris의 그 수많은 거리 중에는 총길이가 6m도 안 되는 초미니 거리가 있다 해서, 회사에 제출할 Paris 지역 조사 리포트에 게재하기 위해 그 거리 사진을 찍으러 갔던 적이 있다.


그 거리의 이름은 '휘데드그레(Rue des Degrés)'였는데 막상 가 보니 거리와 거리를 연결해 주는 그저 좁은 통로로, 거리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정말 짧았다. 그런데 그러한 거리에까지 이름을 부여하는 프랑스의 행정 체계가 너무도 철저한 것 같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 Paris에서 가장 짧은 길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isHttpsRedirect=true&blogId=aiplaza&logNo=220841159886&categoryNo=15&proxyReferer=


별로 볼 것도 없는 그 좁은 골목 사진을 몇 장 찍어서 그곳에 갔던 목적은 이미 달성했는데도 시간은 아직도 대낮으로,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온 김에 그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삐갈(Pigalle)'이라는 Paris 최대 사창가 거리를 방문해 보기로 했다. 밤이라면 치안이 걱정돼 혼자 갈 용기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아직 훤한 대낮이니 이 기회에 한번 가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거리 근처에 도착해서 멀리서 보니, 대낮임에도 그 거리에는 이미 수많은 여인들이 길거리로 나와 이리저리 배회하며 손님을 찾고 있었다. 옷차림이나 서 있는 모습만 봐도 바로 그 여인들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는데, 거리 안으로 들어가서 좀 더 자세히 구경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치안도 좋지 않은 Paris에서 아무리 대낮이라도 혼자서 그 거리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좀 부담이 되어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대학 시절 술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전철 타고 집에 가다 내릴 정거장을 깜박 지나치고, 한밤중에 서울 용산역에서 잘 못 내린 후 용산역 사창가에서 호객 행위하는 여인들을 피해 빠져나오느라 온갖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대낮이었지만 그 사창가 거리 안으로 더 들어가기에는 좀 겁이 났던 것이었다.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멀쩡한 용산역 부근은 한때 서울에서 꽤 유명하고 규모가 큰 사창가였다.


(과거 용산역 사창가 거리)

https://m.blog.daum.net/sh5306kr/13651042


그런데 적어도 서울 사창가 거리에서는 여인들이 대낮부터 그렇게 여러 명이 나와 노골적인 호객행위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Paris의 그 거리는 달랐다. 그 거리가 Paris 시내 중심부에 있을 뿐 아니라 시간도 밝은 대낮이었지만, 이미 거리에는 노골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여인들이 꽤 많았다.


그들 중에는 아이를 기르는 엄마도 있고, 또 그것을 당당한 노동으로 생각하는 여인들도 적지 않다는 얘기도 있던데, 어쩌면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그렇게 대낮부터 영업(?)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같은 유럽 국가인 네덜란드, 스위스 같은 곳에서는 성 매매하는 직업여성이 성매매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국가에 세금도 내고, 사회보장제도 혜택도 공식적으로 모두 받는다고 하니,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성매매에 대한 스위스의 현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2833777?sid=104



13) 두 번 다시 한국에 가지 않겠다는 프랑스 여자


서울에서 가끔 만나곤 했던 한 프랑스인을 Paris에서 다시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을 이미 떠난 상태라서 그런지 과거와 달리 한국에 대한 매우 솔직하고 비판적인 얘기들을 그날 그녀로부터 많이 들을 수가 있었다.


아래가 그녀가 그날 했던 솔직한 말들인데 그녀의 관점도 일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도 새삼 다시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불어 교습 등으로 돈도 많이 벌었고, 대접도 많이 받고 살았는데 Paris에서는 좀 어렵게 산다."


"난 서울에서 홀대받은 적이 없다. 이유는 내가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있는 동남아인이나 흑인들,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심하게 차별받고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한국에는 절대 다시 안 간다. 한국인에 대해서는 너무나 안 좋은 기억이 많고,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나라다”

사실 그녀도 순수 프랑스인은 아니었고, 그녀의 부모세대에 동유럽 구 유고연방에서 프랑스로 이민을사람들이었다. 부모 모두 구 유고인이니 그녀도 역시 혈통상으로는 100% 유고인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물론 한국보다 훨씬사는 국가였지만, 동유럽 구 유고연방 국가 생활수준은 한국보다 크게 낮고 심지어 대다수의 동남아 국가보다도 낮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 대접받는 생활을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유고보다 결코 경제적으로 뒤지지 않는 동남아 국가에서 온 근로자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고 한국에서 살아야 했던 현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인종 또는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그녀의 말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 같아 좀 부끄럽고 씁쓸하기도 했다.



14) Place Monge


Paris의 Place Monge라는 지역에 여자 후배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 후배는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유학 중이었고, 동생은 Paris의 유명한 패션 스쿨 ESMOD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다.


요즘은 나이 30이 넘어도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너무나 많지만, 1995년 당시만 해도 여자 나이 30이 넘으면 이미 노처녀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자매는 그 당시 이미 30 전후였음에도, 두 사람 모두 결혼을 전혀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들의 유학생활과 학업에만 보다 더 집중하고 있었다.


굳이 결혼해서 사는 것만이 삶의 정답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한 명도 아니고, 두 딸 모두 그렇게 시집을 안 가고 있으니, 그 세대 부모님 입장에서는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Paris에 거주하던 시절 내내, 나보다는 훨씬 더 오랜 기간을 Paris에서 살았던 그 후배에게 이것저것 모르는 것도 많이 물어보고 여러 가지 면에서 신세도 지고 그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Vichy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던 회사 후배가 Paris로 놀러 왔을 때, 그 후배와 나 두 명 모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정통 한국식 집밥을 해줘서 너무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물론 Paris에도 한국식당이 많이 있지만 집에서 만들어서 그렇게 먹는 음식은 밖의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과는 너무도 달랐다.


다만, 그날 회사 후배나 나나 두 사람 모두 손도 안 씻고 밥 먹으려 했다가 식사 전에 손도 안 씻느냐고 비위생적이라고 한참 구박과 핀잔을 받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 정도 맛있는 집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런 구박은 언제든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키가 190cm가량 되고, 몸무게도 100Kg이 훌쩍 넘는 내 회사 후배도 오랜만에 진수성찬이 나오니 이게 웬 떡이냐 싶었는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눈치 보지도 않고 너무도 잘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Paris에서 먹었던 한식 중 그날 먹었던 한식이 종류도 가장 다양했고 또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음식이 매우 귀한 프랑스 중부 '비쉬(Vichy)'라는 시골에서 올라온 후배까지 초대해 함께 먹게 해 주었으니 내 체면도 세울 수 있었다.


물론 그 후배가 이유 없이 밥을 차려준 것은 아니었고, 여자 둘이 무거운 생수통 사 들고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하루 날 잡아 내 차를 근처 슈퍼마켓으로 끌고 가서 한꺼번에 50통 이상의 '볼빅(Volvic)' 생수통을 사서 직접 배달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었던 것이다. 그 정도의 양이면 거의 한 달 이상은 무거운 생수 사러 다니지 않아도 마실 물 걱정 없이 살 수가 있었으니 그것이 고마웠던 것이었다.


그 여자 후배는 좀 마른 체격이었는데 비록 내가 선배라도 할 말은 꼭 할 만큼 성격도 다부진 편이었다. 반면 여동생은 그녀와는 달리 전혀 마른 체격이 아니었고 성격도 훨씬 더 낙천적이었다. 때로는 주로 집에만 있던 그 동생에게 내가 '백수'아니냐고 놀리면, '백수'가 아니라 '백조'라고 바로 받아치곤 했는데, 바로 그 백조 동생 덕분에 유명한 Paris의 ESMOD 졸업작품 패션쇼에도 가 보는 영광도 누릴 기회가 있었다. 그녀의 졸업식 행사에 지인들을 초청하면서 나까지 초대했던 것인데 덕분에 내 생애 처음 패션쇼 장에 가 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회도 가질 수가 있었다.


ESMOD 졸업작품 패션쇼 마지막 부분에는 속옷 패션쇼를 하는 것이 그 학교 전통이라고 했다. 그런 그 전통대로 그날 역시 마지막 부분은 젊은 모델들이 속옷만을 입고 행사장을 활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나도 그랬지만 그날 패션쇼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반응하고 가장 집중해서 관람했던 부분이 바로 그 마지막 속옷 패션쇼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열광의 도가니였는데, 인간의 본성이란 한국인 프랑스인 구분 없이 모두 같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Paris라는 이역만리 객지에 1년간 살면서 많은 신세를 졌던 고마운 분들이 꽤 많았는데, Place Monge에 살았던 이 두 분의 '백조' 또한 내가 매우 많은 신세를 졌던 고마운 분들이었다.



15) 엘렌과 친구들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Paris에 체류하던 시절 가끔 프랑스 TV 방송을 보기도 했었다. 그중에는 나름 즐겨보던 드라마도 있었는데, 바로 '엘렌 홀레스(Hélène Rollès)'란 미모의 가수 겸 여배우가 주연한 '엘렌과 친구들(Hélène et les garçons)'이라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젊은 학생들이 함께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로 당시 프랑스에서 꽤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이후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 다른 국가로도 수출되었는데 해외에서도 역시 반응이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Paris 체류 시 이 드라마 외에도 분명히 여러 방송을 봤을 터인데 신기하게도 다른 방송은 하나도 기억 안 나고 유독 이 드라마만 기억이 난다. 아마 주인공이었던 '엘렌 홀레스'의 미모가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Pour l'amour d'un garcon(한 소년의 사랑을 위하여)"이라는 그 드라마 주제곡 멜로디가 너무 감미로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 이 노래를 들을 수가 있는데, 저녁에 서울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와인 한잔하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27년 전 Paris 15구에 있던 그 집에서 이 드라마를 보며 와인 한잔하던 바로 그 순간으로 되돌아 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엘렌 홀레스는 1966년생이다. 그러니, TV 방영 당시는 꽃다운 20대였겠지만, 22년이 지난 이제 그녀도 이미 50이 넘은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무거운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엘렌과 친구들 주제곡, 04:01)

https://youtu.be/_HzPiYBBjGg


16) 개고기와 종교


Paris 체류기간 프랑스인이나 다른 외국인으로부터 들었던 한국인 비하 표현 중 하나가 바로 '개고기 먹는 민족'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사실 개고기는 중국인도 먹는다. 물론 모든 한국인이 개고기 먹는 것은 아닌 것처럼, 모든 중국인이 개고기 먹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거리에서 개고기 요리 간판을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 개고기 축제)

https://m.blog.naver.com/animalandhuman/221558679504


다만, 초강대국이 되어버린 중국의 그런 풍습에 대해서는 외국인들이 그것을 심각한 이슈로 부각하지 못하는 반면, 이제는 퇴물이 되었지만 한때는 유명했던 브리지트 바르도 (Brigitte Bardot)라는 프랑스 여배우처럼, 유독 한국인의 개고기 먹는 풍습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부각해, 집요하게 비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게도 개고기 먹느냐는 질문을 하는 외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그런 질문은 일종의 비아냥거림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 궁금해서 묻는 경우도 있었는데, 개는 말할 것도 없고 태생적으로 생선을 제외한 소, 돼지, 닭 등 모든 육고기를 먹지 못하던 나로서는 그러한 질문을 들으면 다소 황당했었다. 소, 돼지, 닭 등 모든 종류의 육고기에 대해서 불편함과 거부감이 있었던 내게 그중 유독 개고기만 문제를 삼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한국에 있는 수많은 불교도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종류의 육식을 하지 않으며, 당신들이 한국의 개고기 먹는 풍습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것처럼, 당신들의 육식 문화를 비하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불교도들은 당신들의 육식문화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비록 불교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도 태생적으로 개 포함 일체 육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말해주면, 다소 멋쩍은 표정으로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말을 흐리곤 했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구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들을 살펴보면 육식에 대해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3대 종교라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종교 교리에는 채식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규제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반면 육식에 대해서는 유독 매우 다양한 규제가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육식을 금하는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 성경에도 예를 들면 굽이 갈라졌거나 되새김질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먹어도 되는 동물이 있고 또 먹을 수 없는 동물이 구분되어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돼지와 같은 동물들을 먹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먹을 수 있는 짐승이라도 도살하는 절차에 대해서 매우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유대교 또한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한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 놓았던 '광우병'이라는 질병은, 조물주에 의해서 초식동물로 살도록 결정된 소에게 인간이 강제적으로 고기를 먹인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종교의 교리가 문서화된 수천 년 전부터 대다수의 종교에서 이토록 유독 육식에 대해서만 다양한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을 보면, 혹 마찬가지로 인간도 원래 소처럼 육식을 하지 않아야 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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