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전에Paris에 와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동기나 후배들로부터 꽤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초기 정착 및 거주를 위해 필요한 은행계좌 개설, 체류허가증(carte de séjour) 취득, 자동차 구입 등 잡다한 일 상당 부분은 결국 나 혼자 해결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불어도 아직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프랑스라는 처음 와보는 국가의 사회 시스템에도 도무지 익숙하지 않다 보니,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도 결코 만만하게 해결되는 것이 없었다.
프랑스에도 당연히 여타 국가처럼 이민족에 대한 차별을 노골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관광객이 아니라, 프랑스에 아예 거주하는 가난한 외국인에 대해서는 그들이 활발한 소비를 함으로써 프랑스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프랑스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가꾸어온 복지와 일자리는 철저하게 누리고 잠식한다는 인식이 꽤 강해서 그 차별이 눈에 띄게 노골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편 나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 있었고, 실제 그 돈으로 차량을 리스하고, 프랑스에서는 가장 비싼 어학원에 거액의 학원비를 지불하는 등 적지 않은 소비를 통해 프랑스 경제 활성화에 나름 기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차림, 인상 등에서 워낙 체질적으로 가난해 보이는 스타일이라 때로는 프랑스의 재정과 경제를 좀먹고 축내는 얄밉고 가난한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심한 차별과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차별을 받더라도 어쨌든 Paris에서 1년을 살아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정착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해결하러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스스로의 힘으로만 프랑스 사회를 체험하고 경험하라는 연수 프로그램 성격상 Paris에 우리 든든한 회사 법인이 있었음에도 전혀 지원을 해주지 않아 나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많은 것들을 해결해야 했던 덕분에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부득이 불어를 강제적으로 그리고 매우 다양한 생활 분야에서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불어 회화 실력은 당연히 크게 향상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이 덕에 체류 1년이 모두 지나 연수가 종료될 즈음에는 이제 현지인들과 불어로 말다툼을 해도 지지 않을 정도로 불어 실력이 대폭 향상되는 나 스스로도 놀랄만한 그런 결과가 있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나를 차별하고 무시하고 또 갈등과 시련, 아픔까지도 듬뿍 안겨주었던 그 많은 프랑스인들이, 결과적으로 내게는매우 소중한 불어 선생과 프랑스 사회 문화 선생이었던 셈이다.
집은 Paris시 15구에 대학동창이 거주하던 방 하나짜리의 아주 작은 스튜디오(Studio)를 물려받았다. 실제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주택자금의 한도는 그보다는 훨씬 더 많았으나 쉽고 편하게 이미 한 번 집을 구하고 나니 다시 이사하기도 귀찮고 또 어차피 1년만 거주할 집이니 그냥 눌러살았다.
하지만 같이 갔던 연수 동기생들의 집에 놀러 가서 그들의 넓고 훨씬 더 멋진 아파트를 보게 될 때는 “아! 귀찮아도, 더 좋은 집을 구해 이 친구들처럼 Paris에서 멋지게 좀 살아볼 걸....”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었다.
거주할 집을 구한 다음 바로 차를 구했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Renault)에서 1년 기한으로 리스(Lease)를 했는데, 당시 한국에는 리스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지만, 프랑스에는 이미 리스가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나처럼 1년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에게는 이러한 리스가 매우 편리한 제도였다.
차 리스 계약을 위해 르노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던 나는, 나름 자신감을 갖고 약 2~3분가량 직원에게 불어로 리스 관련 의사를 표명했다. 그 직원은 내 말을 들으며 중간중간 미소도 짓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말을 다 잘 알아듣는 것으로 이해하고 끝까지 말을 이어갔었다. 그런데 내가 말을 다 마치고 나니, 그 직원이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안한데 내가 한 말을 전혀 못 알아들었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 장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도 황당했는데 생각해 보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차를 리스하겠다는 나는 그 직원에게는 한 명의 중요한 고객이다 보니 내가 한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바로 잘라 버리지 못하고 혹시 좀 더 듣다 보면 앞뒤 문장이나 단어들을 연결해 알아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끝까지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끝까지 모두 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연결이 안 되니 그제야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전혀 못 알아들었다고 실토한 것이었다.
실제로 외국어를 하다 보면, 단어는 못 알아들어도, 말을 좀 더 듣다 보면 앞뒤 문장 문맥을 통해 상대방 말을 알아듣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직원 역시 그런 것을 기대하고 듣고 있었다가 결국 실패했던 것이다.
대학에서 4년간이나 불어를 공부했었음에도, 프랑스인과 2~3분짜리 대화도 제대로 되지 않는 내 모습이 같이 갔던 회사 후배들에게 부끄러웠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큰 실망이었다.
어쨌든 이와 같이 차를 리스하는 것처럼 내가 프랑스인에게 돈을 지불하는 경우에는 그나마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나름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내게는 꼭 필요하고 아쉬운 것이지만 상대방 프랑스인들에게는 별로 혜택이 되지 않는 그런 일들 예를 들면 은행에서 계좌를 열거나, 신용 카드를 만들고, 체류허가증 취득에 필요한 잔고증명서 등의 서류를 발급받는 경우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 프랑스인들의 홀대와 때로는 조롱까지도 경험해야 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신용카드 등 각종 카드를 그 색으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었다. 즉 푸른색의 신용카드는 '까르뜨 블뢰(Carte Bleue, Blue Card, 푸른색 카드)', 오렌지색의 지하철 카드는 '까르또랑쥬(Carte Orange, Orange Card, 오렌지색 카드)'라고 불리었다.
하지만 각종 카드를 색으로 구분해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은행에 신용카드 신청하러 가서는 엉뚱하게도 지하철 카드(까르또랑쥬)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푸른색 카드'를 신청하러 왔다고 말해야 했는데 '오렌지색 카드'를 신청하러 왔다고 말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불어 단어와 수많은 불어 문법 구조가 어지럽게 왔다갔다했던 상황이라, 나는 단어를 잘못 선택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얘기를 계속 이어가려 했는데, 시선을 아래로 깔고 내 말을 듣고 있던 창구 직원이 갑자기 스르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더니 안면에 오묘한 미소를 짓고 그건 전철역에 가서 알아보라는 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카드의 색을 잘 못 선택해서 은행에 와서 지하철 카드 달라고 말했던 것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내 말이 외국인의 실수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그 프랑스인은 결코 그냥 넘어가 주지 않고 조롱으로 답을 했던 것이다.
사실 은행 창구에 있던 그 프랑스인들에게 내가 했던 말이 정말 너무도 재미있는 말이었을 것 같기는 하다. 무료하고 나른한 오후 좀 이상하게 생긴 동양인이 은행 창구로 불쑥 들어오더니 이상한 불어를 구사하며 갑자기 “전철표 사러 왔어요”라고 했으니 얼마나 웃겼겠는가.... 코미디 방송을 생중계로 보는 것 같았을 것인데, 어쩌면 그날의 나의 그 말 한마디가 이후 오랜 기간 그들에게는 꽤 많은 미소를 주는 소재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신용카드는 해결했다. 이제 체류증 획득에 필요한 은행 잔고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는데 이것도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창구를 방문하면 그런 것은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일이니 전화로 예약하고 오라 하고, 예약을 하려고 안 되는 불어로 어렵게 전화를 하면 그렇게 전화로 갑자기 얘기해서 되는 것이 아니니 찾아와서 설명을 하라 했다. 말 그대로 뺑뺑이 도는 것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은행 창구에서 한참 그렇게 헤매면서 열 받고 있을 때, 왠지 누군가의 진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등 뒤쪽을 바라보았더니 어떤 흑인 아줌마가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빛은 자신도 프랑스에 와서 오랜 기간 그렇게 시달리고 살았는데, 비슷한 모습으로 시달리고 있는 동양인인 너를 보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낀다고 조용히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은행 창구에서 한국말로 막 욕하는 한국 유학생이 있었다 한다. 처음에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인데 왜 그런 미련한 행동을 했을까 생각했는데, 은행에 몇 번 가서 분통 터지는 일을 여러 차례 내가 직접 당하다 보니, 그 유학생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나 역시 똑 같이 그렇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어지기도 했었다.
한국어로 욕하는 것을 프랑스인들도 표정 등을 보고 눈치는 채겠지만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듣지를 못해 크게 문제 삼기는 어려울 것이니, 그렇게라도 해서 은행 안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그 자리에서 바로 풀어버리고, 보다 더 개운한 기분으로 그 은행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잔고증명서 받기 위해서 그렇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전화와 방문을 되풀이하는 뺑뺑이를 돌았는데 막상 잔고증명서를 받게 되었을 때 은행 직원이 내 잔고 금액을 보더니 갑자기 말투가 완전히 바뀌어 이제는 불편할 정도로 매우 친절해졌다는 것이다.
Paris 거주에 필요한 모든 비용, 즉, 주택비, 자동차 리스비, 생활비, 학원비 등 1년 치 금액 전액이 한꺼번에 회사에서 내 프랑스 은행 계좌로 송금되었으니 당연히 그 금액은 꽤 컸다. 그런데 허름한 복장의 가난한 이주민으로만 생각했던 한 동양인이 그러한 엄청난 은행 잔고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고서는 바로 친절 모드로 바뀌었던 것이다.
유학생들이 체류증 받기가 그렇게 어려워도 프랑스에서는 복권만 당첨되면 체류증 바로 해결된다는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얘기도 있었다. 프랑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체류증 받기 위한 수많은 서류와 증빙들을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 가도 프랑스에서 사용한 금액이 적거나 은행 잔고가 얼마 없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체류증 발급이나 연장이 바로 거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복권만 당첨되면 그 돈을 다른 나라에서 쓰지 않고, 프랑스에서 모두 다 쓰고 떠나도록 만들기 위해 장기간의 체류증을 바로 발급해 준다는 것이었다.
일부 과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가난한 외국인은 체류증 받기가 어려웠고 또 보유하고 있는 금액의 규모로 체류증 발급이 결정되는 경우를 체험한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실제 회사에서 보내준 돈으로 은행 잔고가 너무 많았던 내 경우도 그 은행 잔고 덕분에 체류증 받으러 인터뷰하러 가서 몇 마디 하지도 않고 너무 쉽게 체류증을 받았다. 심지어 필요하면 1년 이상 기간의 체류증을 발급해 주겠다고도 했는데, 1년 뒤면 어차피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에서 굳이 그런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필요 없다고 내가 오히려 거절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너무도 편안한 체류증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칸막이 넘어 바로 옆자리에는 젊은 한국인 여성이 역시 체류증 받기 위해 인터뷰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자세히 들어보니 그녀가 우는 소리였다 체류증 연장해 달라고 프랑스 심사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읍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집에서 송금받은 금액도 부족하고, 자신이 돈을 벌 수도 없었을 그 젊은 한국인 여성은 뭔가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 프랑스에 좀 더 남아 있어야 했던 것 같은데, 체류증 연장이 거부되니 연장받을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나 다른 방법도 없는 답답하고 막막한 심정에 결국 프랑스인 심사관에게 울면서까지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Paris에까지 와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 그 젊은 동포를 보면서 같은 한국인으로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또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었다.
1995년 아직은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 가난한 외국인으로 프랑스에 와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시련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