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 표시 부분은 대부분 한자로 쓰인 오래된 일기 원문이 훼손되어 판독이 안 되는 부분
(일기 기록 날짜 없음. 단, 내용 중 단기 4284년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서기로 환산하면 1951년, 즉 6·25 전쟁 중인 27세 때 작성하신 일기로 보인다)
영령(英靈)에 고(告)하노라.
단기(檀紀) 4284년(四二八四年) 3월(三月) 22일(二二日) 또 하나의 친구는 가고 말었다.
◎진자(◎鎭者)! ◎진자(◎鎭者)!
왜 불러도 대답(對答)이 없는가.
군(君)은 영영(永永) 가고 말었는가.
그 뚱뚱한 군(君)의 얼굴
그 허-허 하는 군(君)의 웃음
나는 지금(至今) 눈을 감고 있다.
또 하나의 친구를 생각하고 있다.
짧은 기간(期間)이었건만
군(君)을 만난 지 ◎◎
그날 군(君)과 같이 가던 날
군(君)은 나더러 말했지
(이하 내용 훼손으로 판독 불가)
August 5. 1952
폐허(廢墟)된 한 밭 우리 안에
정막(靜漠)히 홀로 선 덕하(德河, 아버님의 이름)여,
화려(華麗)한 옛 추억(追憶)은 어디로 가고
그리도 슬피 홀로 서 있는고
뉘사 그대를 반겨하던가
덕하(德河)의 비명(悲鳴)을 모르던가
이리떼 강탈(强奪)꾼의 사나운 노름이여
덕하(德河)는 재기(再起)하리
덕하(德河)는 빛나리
덕하(德河)의 옛 벗이여
오늘의 내 모습이 헐벗었다 할지라도
덕하(德河)의 향원(香源)은 변(變)함인들 있으리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지 않고 벽화(壁畵)처럼 바라보기만 하는 연애(戀愛)....
연애(戀愛)란 것은 확실(確實)히 인간(人間)의 이기적(利己的)인 소유욕(所有慾)의 가장 적나라(赤裸裸)한 표현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내 물건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런 '소유(所有)'는 이미 낡은 시대(時代)의 '스타일'과 '타입'이 아닌가 생각(生覺)된다.
차디찬 그 방(房) 안에 홀로 앉아서 과거(過去)를 생각(生覺)하니 감개(感慨)가 무량(無量)하다.
정(情)이든 그들은 하나씩 가고 마네......
대사(大事)라 할지언정 내 어이 낙루(落淚)치 않으리오?
넓은 산마루에 홀로 된 저 할미꽃과 같이 내 머리에 영원(永遠)히 사라질 줄 모르는 그 꽃 한 송이를 나는 잊으려고 잠을 잤소 그러나 꿈에 나는 그 꽃을 보오.
잊으려던 전(前)보다 더 강(强)하게.....
차라리 잊을쏘냐.....
일터를 찾는 것뿐입니다. 아주머니의 사업(事業)이 성장(成長)하면 미력(微力)이나마 도와 드릴까 항상 기원(祈願)하였읍니다만, 부족한 지성(至誠)은 감천(感天)하지 못한 모양(模樣)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성공(成功)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믿음에는 확고(確固)한 근거(根據)가 있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아주머니의 사업(事業)이 ◎◎ 될 때까지라도 좋으니 ◎◎의 정착처(定着處)를 구(求)하여야만 되겠다는 의도 하(意圖下)에서 ◎◎의 원명(原名)으로 쓰인 이력서(履歷書)를 동봉(同封)하게끔 되었습니다.
"이런 곳이라면 좋겠다" 하는 곳에 말씀해 주시면 감사(感謝)하겠습니다. 말씀하시던 대동석유(大同石油)도 좋지 않겠는지요?
사실(事實) 더 이상 현상(現狀)을 지속(持續)하기는 괴롭습니다. 성명(姓名) 생년월일(生年月日)등은 책임(責任) 있게 기입(記入)했으니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연(偶然)한 순간(瞬間)이 지속(持續)되어 이러한 글자를 드리게끔 한다는 생각을 '숙명(宿命)'이라는 두 글자가 완전(完全)히 제압(制壓)하는 것을 이 순간(瞬間) 기억(記憶)합니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片紙)를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 붓을 놓겠습니다. 우리는 7월(七月) 중순경(中旬頃) 항문 군(恒文君)과 동행(同道) 서울행을 결정(決定)하였습니다.
절망(絶望)의 암흑(暗黑) 속에서 한줄기의 새로운 햇빛을 던져주는 것이 서울인가 생각(生覺)됩니다. 아마 손(孫) 아주머니도 동행(同行)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아버님 고향 평안북도를 떠나 서울로 오시기 전 잘 아는 어떤 아주머님께 서울의 취직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이력서를 전달해 주었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님의 고교 졸업 앨범. 밑에서 두 번째 줄 가운데가 아버님이다. 창씨개명이 강요되던 시절이라 그런지 학생들 이름이 모두 일본식으로 네 자로 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面影(면영)'이라 적혀 있는데 찾아보니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단어이긴 하지만, 한국어 표현으로는 좀 생소해서 당시 학교에서 사용되었을 언어인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니 일본어로 '얼굴 모습'이란 뜻이다. 졸업앨범에 나오는 동창들의 얼굴 모습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아버님의 20대 중반이나 후반의 사진으로 보인다. 소위 '올백'이라 불리는 헤어 스타일이 당시에는 유행했던 모양이다.
꽤 큰 석조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우측에 흰색 양복 입고 계신 남자분이나 여자분들의 복장이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아마 무슨 공연을 하신 분들과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아버님께서는 정부의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신 적이 있어 그 계통의 분들과도 접촉이 많았다고 하셨다. 좌측 세 번째가 아버님이다.
우측 끝이 아버님이다. 어떤 회의에 배석하셨을 때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사진이 흐려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좌측 끝 상석에 앉으신 분과 사진 중앙에 앉으신 분은 웬만한 사람들은 알 수 있는 유명하신 분들과 인상이 비슷한데, 실제 이분들이 그분들인지는 모르겠다.
수영복을 입은 아버님과 어머님. 아버님이 원래 마른 체질이시긴 했는데, 젊은 시절에도 이렇게 마르셨는지는 이 사진을 보고 알았다. 어머님이 좀 키가 크시긴 하지만, 굽이 있는 신을 신고 있으셔서 그런지 깡마른 아버님보다 더 커 보이지고 체격도 더 좋아 보이신다.
어머님 집안은 원래 체격이 좋으신 분들이 많으셔서 키가 190cm가 넘는 외삼촌, 외사촌도 3분이나 계셨다.
남녀 몇 쌍이 단체로 산에 올라가는 것 같은데, 남자나 여자나 모두 중절모까지 쓰고 완전히 정장을 하고 등산하는 모습이 매우 특이하다. 뒷모습만 보여서 어느 분이 아버님 어머님인지 구분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