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용기를 내 혼자 수영장에 갔었다.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우려고 그랬다든지, 내가 혼자서도 자유형을 구사하는 실력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수영이 하고 싶어서. 사람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도 않았으므로. 호기롭게 자유수영 레일 앞에 섰고, 일단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압도당했다. 그리곤 내가 물속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30초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사실과 마주해야 했다.
나는 자유형을 하면 얼굴을 반대로 돌리는 사이에 귀에 물이 들어갈까 두려운 사람이었으므로, 개헤엄도 개구리헤엄도 아닌 이상한 자세로 조금씩 나아갔다. 당연히 속도가 더뎠다. 문제는 내 순서에서 밀리면 뒷 사람도 자신의 속도로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천천히 간 것 같은데 어느덧 내 발 밑에 뒷사람의 얼굴이 와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한 바퀴 겨우 돌고 다시 출발선에 오자 다시 출발하기가 두려워졌다. 혼자였다면 폼이 어떻든 그냥 했을 것이다. 근데 내가 저기 껴 있는 것만으로 너무 민폐일 것 같아서, 그게 두려웠다. 한참 출발선에 서서 수영장을 박차고 나가지도, 그렇다고 물을 박차고 헤엄치지도 못하는 채 있었다. 갑자기 멋쟁이 수경을 쓴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가씨, 수영 처음이지?
쉴 때도 수경 벗고 있으면 안 돼. 이게 다 락스물이거든.“
하, 누가 봐도 초보였구나 하는 마음에 약간 부끄러워졌다. 그리곤 내 눈 건강을 걱정해 주는 그가 고마웠다. 괜히 위로가 됐달까. 주절주절 속마음이 나왔다. 실은 오늘 처음 왔는데, 제가 레일에 들어가면 뒷 분한테 민폐인 것 같아서 출발을 못 하겠어요. 하하. 그는 별일 아니란 듯이 웃으며 말했다. 민폐는 뭐가 민폐야. 중간에 멈추지만 않음 돼. 쉬면 계속 쉬게 되거든. 한번 출발했음 뒤에서 쫓아오든 말든 멈추지만 말고 아가씨 속도대로 가. 그럼 민폐 아니야. 그리고 저저, 옆에 초급반 등록해봐. 사근사근하니 잘 가르쳐주더라.
엄청난 에피소드는 아니다. 그런데 새로운 벽에 막히고 초라해진 내 자신과 마주할 때마다 이 대화를 꺼내본다. 멈추지만 말고 내 속도대로. 천천히, 멈추지만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