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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빅 Dec 26. 2018

스치듯 안녕, 베니스

베니스 ㅣ20년 전의 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돌이켜보면 내 양볼의 통통한 젖살은 꽤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친구들로부터 '대관절 양볼 가득 물고 있는 그 사탕은 언제쯤 뱉을 셈이냐'는 식의 재미없는 농담을 대학 졸업 무렵까지 들어야 했던 것을 보면.


첫 유럽 여행을 감행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당시 나는 수년간 어깨를 짓눌렀던 열공모드 구간은 막 벗어난, 그렇다고 취업이라는 허들을 넘기 위해 피치를 올리기에는 다소 이르다는 자체 판단하에 느린 보폭으로 흐느적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이 환하게 빛나 보이던 시절이었다.


여행길에 마주했던 도시마다 마음을 흘리고 떠나왔다. 찰나의 순간처럼 스쳐갔으나 강한 끌림으로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힌 도시 중에는 베니스도 있었다. 그런 여행자가 비단 나뿐이었을까마는. 베니스는 의심 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특별한 도시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행자들에게 베니스는 그 자체가 목적일 것이므로. 예나 지금이나.


시간이 흐  베니스를 다시 만났다. 어쩌지 못하는 중력으로 늘어질 채비를 하는 볼살 때문에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꼭 20년 만이었다. 


베니스를 향해 달리는 기차에는 동행도 있었다. 나의 어린 아들이었다. 녀석과 함께한 정은 한마디로 다이내믹한 의외성의 연속이었다. 11의 여행 파트너는 10초에  번씩 '엄마!' 불러 젖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언제 어디서든 이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거슬러 베니스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녀석은 기대 혹은 설렘이라는 감정이 비집고 나올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일은 짐 보관소로 향했다. 그리고 잘못 건드렸다가는 ! 터질  같았던 두 덩이의 캐리어를 서둘러 맡겨 버렸다. 이로써 자유를 얻은 것은 우리의  손만이 아니었다. 거친 보도블록 위를 지날 때마다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리 뒤를 바짝 쫓던 리어 바퀴의 마찰음이 사라지 귀에도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미끄러지듯 역사를 빠져나왔다. 운하를 앞에 두고 숨을 한껏 들이마시며 먹구름이 낮게 깔린 베니스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힘을 다해 뛰어오르면 구름을 뚫고 날아오를  있을  같았다.






늦가을어둑한 저녁거리를 걷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어졌. 베니스의 골목길 중에는 펼쳐  우산의 폭보다도 은 곳이 태반이었다. 우산을 한껏 기울여 골목길을 벗어나면 같은  다른  다른  기다리고 있었다. 찬 공기를 가르며 우산 하나에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오는 밤길을 걷는 일은 낭만적이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한쪽 어깨는 내리는 비에 내어준  오래였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것에 매우 서투른 입이. 받쳐  우산 아래에서 반복적으로 탈출  어린 아들을 그치면서, 구글맵이 안내하는 동선을 확인해가며 최대한 비를 맞지 않기 위해 의식하면서 발을 내딛는 일련의 프로세스에 과부하가 찾아왔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들아! 지금부터는 지도를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 지금부터는 너와 나의 식스센스에 따라 산마르코 광장까지 가보기로 한다. 이상!"


핸드폰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 자취를 감추었다. 빗물을 머금은 찬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던 베니스 거리에서 우리는 기꺼이 길을 잃어보기로 했다. 꼭 20년 전, 젖살 통통하게 오른 그때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느닷없고 비장하기까지 한 외침에 녀석은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길을 잘못 들 때마다 아들 녀석의 핀잔이 여지없이 내 귀에 꽂혔다. 과연 나의 촉이 정상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 또한 무척 궁금한 바였다.


지도에 의지하지 않아도 흐르는 물이 한 곳에 고이듯 우리의 걸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산마르코 광장에 닿았다. 엄마 말 안 듣고 집나 와 버린 생쥐 꼴을 하고서. 휑댕그렁한 광장에는 빗소리만이 도드라졌다. 광장을 채우고 있는 것은 가을비가 부서진 바닥에 서려있는 가로등의 반영이었다.





광장 한가운데 서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자 과거 어느 지점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흐릿한 기억의 시간이 눈앞에 선연히 나타났다. 20년이라는 간극이 일순간에 좁혀지면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공간이 덧입혀졌다.


20년 전 볕이 따스했던 어느 겨울날에도 나는 이곳에 서 있었다. 카니발이 한창이었던 산마르코 광장에는 봄을 기다리며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카니발을 위해 꽤나 오랜 시간을 준비한다는 베니스 시민들은 제각기 축제에 걸맞은 화려한 의상과 가면으로 치장을 하고 광장을 활보하며 축제를 즐겼다. 그들은 호의를 보이며 다가서는 여행자들에게도 기꺼이 축제의 분위기를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활기 넘치던 광장을 바라보며, 지친 다리를 쉬어갔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노천카페에 앉아 홀짝였던 것이 콘파냐였는지 아니면 에스프레소였는지 잊은 지 오래이다. 다만 나의 커피 취향보다는 맑은 날씨와 활기 있는 광장의 분위기에 맞는 선택이었을 것이라 추측만 할 뿐.





타닥타닥 요란한 빗소리는 오롯이 내리는 비를 맞고 있는 야외 테이블에도 가 닿았다. 찬란했던 햇살 아래의 악사도, 테이블을 가득 메운 인파도 한편에서 음을 맞추고 있는 콰르텟의 낮은 연주에 왈츠 스텝을 얹는 아름다운 커플도 지금은 볼 수 없었다.


내가 시공간을 거스르는 체험을 하는 사이 배고프면 포악해지는 아들 녀석은 더 이상 참기 힘든 극강의 공복을 체험 중이었다. 짜증 게이지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던 아들을 앞세워 서둘러 산마르코 광장을 뒤로했다. 비 오는 비수기 평일 늦은 저녁, 굳게 문을 닫은 상점이 더 많은 거리에서 불빛이 꺼지지 않은 식당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배고픔에 포효하는 철부지 아이를 달래는 와중에 둔한 촉과 육감 덕분에 오던 길을 되짚는다 생각하고 걷던 그 길이 실은 가야 할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이란 걸 한참 만에 알아차리기도 했다. 일부러 길을 잃어도 마냥 좋았던 것은 지금의 나가 아닌 스무 해 전의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인가 보다. 다시 구글맵을 켜고 아들 녀석의 성난 위장을 달래줄 두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우리가 찾고 있던 레스토랑은 기차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운하의 지류에 있었다. 예약할 겨를도 없이 들이닥친 탓에 대기줄 끝에 서서 몸을 베베 꼬며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홀 안팎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아하니 다수의 여행자들이 섞여있었으나 하루의 끝을 가까운 친구들과 와인잔을 기울이며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네 주민들도 만만치 않았다. 세상 편안해 보이는 얼굴의 그들이 한편으로는 부러웠고 이어지는 대화에 쉽사리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탓에 야속했다.


기다림은 생각했던 것보다 길었고 비로소 자리를 잡고 앉아 굳은 허리 근육을 풀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던 우리 앞에 나온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비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나니 자정 즈음 출발하는 로마행 밤기차에 오르기 전까지 시간을 때우는 것이 문제였다.


여름이었다면 한번 더 미로 같은 골목에 몸을 맡기고 두 발이 이끄는 데로 돌아다닐 용의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여러모로 그럴 여건이 못되었다. 비 내리는 스산한 거리에 다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추위를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기차역 대합실보다는 차라리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기로 했다. 여유 있게 디저트까지 챙겨 먹고 느지막이 기차역으로 향했다. 베니스발 로마행 야간열차를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20년 전 그러했던 것처럼.


한밤으로 치닫는 그 시각, 인적도 드문 거리로 눈을 돌리니 대운하가 그리고 있는 불빛의 반영과 어우러진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에서도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찾을 수 없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운하가, 거리가, 집들이, 골목들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오롯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시간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이 도시에 20년이라는 세월을 얹은들 무엇이 달라질 게 있겠느냐고 내게 반문하는 듯했다.


반면 내게 있어 20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은 볼살의 변화라는 팩트 하나로도 확연한 차이를 설명할 수가 있다.  고생 창연 한 옛 도시와는 다르게 한 인간에게 있어 그의 20대와 40대는 실로 크나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쳐 사그라지지 않은 통통한 볼살을 지녔던 청년 시절의 나와 늘어질 준비를 하는 볼살이 거울을 볼 때마다 생경한 지금의 나. 하루빨리 혼자의 힘으로 땅을 딛고 서기를 갈망하던 그때의 나와 그 시절을 좀 더 치열하게 살아내지 못한 것을 문득문득 아쉬워하는 오늘의 나. 멋진 어른이 될 자신이 있었기에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던 나와 과연 지금 나는 나이에 걸맞게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꾸만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고 있는 나.


베니스의 어느 비좁은 골목을 돌아 나오려 할 때였다. 골목 끝 모퉁이 저편에서 양볼에 통통한 젖살은 얹은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하나가 불쑥 나타나 환한 웃음으로 내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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