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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빅 Jan 07. 2019

로슈 강가의 마누 아저씨네 방갈로

콜마르 ㅣ 바르톨디의 여름 별장에서 


이른 아침 길을 나서는 것은 아침잠 많은 여행자에겐 늘 고역이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파리를 떠나던 날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침식사는 고사하고 눈 뜨자마자 부랴부랴 숙소를 빠져나오기 바빴다.

로슈 강가의 마누 아저씨네 방갈로

가까스로 기차에 올라 한동안 숨 고르기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몰려드는 허기. 소소한 요깃거리여도  괜찮다. 그림 같은 차창밖 풍경과 더불어 유쾌한 대화를 곁들인 식사시간은 아들과 함께이므로 소중하다. 무엇이 그리 즐거울까, 배가 부른 녀석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 번진다. 


파리에서 멀어지니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우리는 도시 취향의 여행자 타입은 아니다. 아들과 함께 떠났던 여행에서는 파리를 포함한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 특징적인 자연환경을 지닌 중소도시 위주의 일정이었다. 12살 나의 아들은 파리가 처음이라 머무는 내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느슨한 일정으로 산책하듯 다녔다.


파리를 떠나오던 날 기차안에서 아이는 파리에 관한 한줄의 논평을 툭 던졌다. 파리는 '말도, 걸음도 빠르면서 잘 웃지도 않는 이모들이 많이 있는 곳'이었다고.


상대적으로 친절하고 살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런던에 빗대어 한 말인 듯했다. 내 눈에 비친 파리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해 가을 한복판에서 마주한 파리는 우리에게 마음 한켠을 내어주지 않았던 분주하고 정신없는 '그들만의 파리'였을 뿐,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에 파리는 우리와 주파수가 닿지 않았다.


파리를 떠나온 기차는 두 시간 반 만에 목적지인 콜마르에 멈췄다. 예쁘고 아담한 콜마르 역사에 도착하여 출구를 찾느라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다정한 중저음을 먼저 들었다.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콜마르에서 우리가 묵게 될 숙소의 주인 아저씨께서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천하태평 아들 녀석과 크고 작은 여행가방을 동시에 챙겨가며 막 걸음을 떼려는 나를 먼저 알아본 것이다.  


임마누엘 아저씨는 자유분방한 웨이브 헤어에 무심하게 소매를 둘둘 말아 올린 아키텍처 셔츠가 잘 어울리는 인상 좋은 분이었다. 기차를 주 이동수단으로 하는 우리에게 역에서 지척인 아저씨의 집까지 찾아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나, 부득부득 콜마르 도착 시간을 되물으신다 했더니 역까지 마중을 나와주기 위함이었던가 보다. 마음씀에 감사했다.


 



5분 남짓을 달려 도착한 아저씨의 세컨 하우스는 콜마르를 가로지르는 로슈 강 강변 호젓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채로운 색을 입은 오른쪽의 본채는 아저씨 내외의 거주 공간. 창가에 달린 민트색 덧문과 고혹적인 붉은색의 외관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왼편에 큰 나무 뒤에 숨어있는 별채가 바로 우리가 머무는 동안 사용했던 방갈로이다.






본채와는 달리 수수한 외관을 지닌 아담한 방갈로앞에는 수령을 가늠하기 힘든 커다란 고목이 시선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뒤로는 잔잔히 흐르는 로슈 강을 끼고 있었다.


아침마다 집 앞 빵집에 들렀다 돌아올 때면 가을 햇살이 키 작은 방갈로 안까지 물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신이 사용할 공간은 콜마르 출신의 조각가인 바르톨디가 생전에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이지요. 당신의 아들에게도 알려주면 무척 좋아할 거예요."


임마누엘은 사전에 집에 대한 소개도 잊지 않았다. 본인의 거주 공간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달까.


고백하자면 우리는 예술에 관한 한 청순함에 가까운 뇌의 소유자들인지라 그때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조각가라고 하는 바르톨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세상에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프랑스 예술가의 이름 말고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저씨는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자신의 스튜디오를 오픈한 후 알자스 일대는 물론 프랑스 전역을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였다.


집 안팎의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기전에 본인에 관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들려주셨다. 아저씨의 다음이야기는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의 터전인 콜마르에 관한 것이었고, 콜마르가 고향인 바르톨디를 향한 무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들이었다.






임마누엘은 건축가인 동시에 자동차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집 마당 한편에서 자동차 박물관에서나 만날 법한 외양의 올드카들을 보았다면 누구든 유추 가능한 사실일 것이다.


만일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게스트였다면 재규어, 페라리 그리고 콜벳 등 한 시절을 풍미했던 유수의 클래식카 동호회의 멤버로도 활동 중인 아저씨와 분명히 끝 간 데 없는 대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임마누엘은 그가 애정해 마지않는 자동차에 관한 매거진이나 그의 활약상이 소개된 책자를 우리에게 보여줄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안된 게스트에게 가감 없이 자신을 다 내보여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소탈한 외양에 걸맞은 담백한 마음의 호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나를 '마누 아저씨'라고 부르도록 해, 내일 오후에는 아저씨와 함께 보트를 타자.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쁘띠 베니스에 도착할 수 있단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 다정한 인사를 건넨 마누 아저씨는 파리에서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타고 출발해야 했으나 늑장을 부려 기차를 놓친 것이 분명하다며 자리에 없는 부인을 향한 애정 섞인 핀잔을 늘어놓으셨다. 그리고 다음 기차로 오고 있을 부인을 만나러 다시 역으로 향했다.







콜마르에서는 뒷마당에 작은 강은 기본이요, 보트 선착장은 옵션인가 보다. 모터가 달린 이 시크한 검정 보트가 기존의 귀여운 파란색의 목선을 대체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쁘띠 베니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콜마르 대표 관광지가 아저씨의 집 뒤로 흐르는 강에 이어져 있는데, 이것이 바르톨디의 여름용 별장이었다는 점과 아울러 아저씨의 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었다. 실제로 아저씨의 집은 기차역과 콜마르 중심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수목이 우거진 강가 안쪽에 위치한 터라 교외에 있는 듯 한적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아저씨가 쁘띠 바토라 부르는 보트에는 오르지 못했다. 보트 투어를 약속한 날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근교로 라이딩을 가는 바람에 아저씨와 약속한 시간내에 집으로 되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어둑어둑할 때까지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올 줄 몰랐던 녀석은 뒤늦게 보트를 타지 못했다는 사실에 억울해하며 생짜를 부리는 통에 골치가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콜마르에 도착한 첫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편한 차림 그대로 거리에 나와봤다. 우선 아저씨께서 알려주신 집 근처 블랑제리의 위치부터 눈에 담아두었다. 뒤이어 추천받은 두어 군데의 레스토랑 위치도 미리 확인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마트에 들러서 저녁식사를 위한 재료를 구입한 후 장바구니를 휘휘 저으며 되돌아왔다.







볼로네제 파스타를 넉넉히 만들어 강가 쪽으로 나 있는 테라스에 자리잡고 콜마르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미트 소스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5유로가 선사한 만찬이었다. 기분좋게 부른 배를 누르기 위하여 아저씨가 수북이 담아 놓고 가신 커피 캡슐 하나를 또 얹었다. 나는 완벽하게 나의 취향인 에스프레소를 후에 이탈리아에서 먹을 몫까지 이곳, 콜마르에서 원 없이 마셨던 것 같다.


냉장고에는 아저씨께서 생수 따위 대신 넣어두고 가신 화이트 와인도 한 병 있었다. 알려진 것처럼 알자스 지역 와인의 대표주자는 리슬링 선수이다. 동일한 포도 품종으로 만든다는 독일 쪽의 리슬링과 비교한다면 드라이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맛을 두고 호감도가 갈린다고 한다. 아저씨의 설명을 들으니 그 맛과 향이 몹시 궁금했으나 앞으로도 갈길이 먼 엄마표 여행사의 소임을 생각한다면 아쉽지만 자제해야 했다. 후에 와인의 주인으로 낙점된 이는 우리의 다음 행선지였던 스위스 숙소의 호스트였다. 그린델발트에 도착하여 숙소에 체크인을 하면서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던 안주인에게 건넸더니 프랑스계 젊은 부부였던 주인 내외가 반색하여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가을이 내려앉은 로슈 강변의 아담한 방갈로를 베이스캠프 삼아 콜마르보다 더 작고 아기자기한 주변 마을들을 둘러보며 평화로운 며칠을 보냈다. 다음날 체크아웃 후 우리는 새벽에 출발하는 기차를 이용해 스위스 바젤을 거쳐 베르너 오버란트 지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콜마르를 떠나기로 한 일요일 아침은 유럽의 서머타임이 끝나고 윈터 타임으로 환원되던 날이었다. 아침잠 많은 모자에게는 세상 모르고 자는 사이에 덤으로 한 시간을 얻은 날이기도 했다. 덕분에 여느 때와는 다르게 일찍 준비를 끝내고 막 떠나려고 할 때였다. 본채에서 나온 아저씨께서 차키를 든 손을 흔들며 아침인사를 건네셨다.


기차역까지는 아이 걸음으로도 10분 남짓인 데다 휴일 새벽에 아저씨께 수고로움을 끼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전날 미리 작별인사를 마쳤으나 소용없는 일이 돼버렸다. 한사코 배웅은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쳐보아도 아이가 아침 찬 공기를 맞고 걸어가게 둘 순 없다고 하시며 가방을 번쩍 들어 능숙하게 차에 실으셨다. 늦가을 새벽 공기에 코 끝은 시리고 입김이 어리는데 아저씨는 반팔 차림이었다.


아저씨는 콜마르 시내에 오픈을 앞두고 있는 레스토랑의 막바지 공정으로 인해 어차피 밤낮도 주말도 없이 작업을 하야하는 상황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며 푸근한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어른들의 마음 씀씀이는 여행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나보다 어린 여행 파트너에게 무조건 맞춰주고 지는 척해주었던 것은 동행인 보호자는 물론이거니와 여행길에 만났던 모든 어른들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집을 나서는 새벽길이 조금 더 따뜻할 수 있었고, 내딛는 발걸음에서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었다.


또다시 콜마르에 가게 된다면 그때도 역시 아늑한 방갈로가 기다리는 마음 따뜻한 마누 아저씨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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