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ㅣ 안티에이징 말고 웰에이징으로!
내내 달리던 열차가 이윽고 멈춰 섰다. 가쁜 숨을 고르며 정차한 곳은 프랑스 북동부의 스트라스부르. 파리 동역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이었다. 열차가 멈추자 이번에는 객차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하차 준비를 하는가 싶더니 밀물처럼 열차 밖으로 빠져나갔다.
늦가을 이른 아침에 교외로 향하는 열차에 빈자리 하나 찾아볼 수 없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때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절 중 하나인 만성절 휴가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학생들도 2주가량의 방학을 맞는 이때에 많은 프랑스인들은 여행을 떠난다. 두어 달 앞선 한여름에 그들은 이미 한 달 남짓의 기간 동안 대탈출을 감행, 그랑드 바캉스를 즐겼을 것이다. 긴 여름휴가를 보낸 프랑스인들이 일상으로 복귀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만성절 휴가 준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로선 부럽기만 한 농담 같은 진담이 아닐 수 없다.
규칙적인 기차의 진동에 몸을 맡긴 채 사람들의 낮은 소곤거림에 둘러싸였던 객차 내 분위기도 급 반전을 맞았다. 고개를 빼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부에는 우리를 포함하여 점점이 앉아 있는 대여섯 명의 승객이 고작이었다. 종착역을 남겨둔 열차의 덜컹거림만이 도드라지게 귓전에 닿을 뿐이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던 그녀가 우리 쪽으로 다가온 것은 멈춰 섰던 기차가 다시 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녀는 내내 앞에 놓인 읽을거리에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얼마간 규칙적으로 책장을 넘기는가 싶더니 언제부턴가 그녀 앞에 놓인 읽을거리가 르 몽드 지로 바뀌어 있었다. 한동안 신문을 정독하던 그녀가 이윽고 신문을 반으로 탁! 접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우리가 앉은 편의 차창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창밖 풍경을 봐, 너무 아름답지 않니?"
종착역이자 우리의 다음 목적지이기도 했던 콜마르 역 도착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콜마르 도착이 임박해오자 예약해 둔 숙소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잘 안 터지는 통신망을 원망하며 가까스로 불러낸 구글맵을 눈으로 좇고 있던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창밖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그러고 보니 바깥 풍경이 아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파리 근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지막한 산과 구릉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림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이내 멀어져 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콜마르가 가까워지고 있단다. 아마 너희도 콜마르를 가는 중인 게지?"
그녀가 연이어 말을 건네 왔을 때는 나도 그녀에게 그 어떤 식으로든 응수를 해주어야만 했다.
위아래로 버건디 컬러가 멋진 레더 베스트와 팬츠를 착장 한 그녀를 본 것은 그때였다. 그 무렵 버건디는 한국에서도 핫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컬러였다.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버건디 컬러의 아이템 하나 정도 필수가 아니겠냐며 지갑 열기를 부추기는 분위기였다. 물론 나처럼 유행에 그다지 밝지 못한 사람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가벼운 피부 보정과 마스카라 그리고 립 정도에서 마무리한 과하지 않은 메이크업과 백발에 가까운 생머리를 한올의 흘러내림 없이 단정하게 뒤로 묶고 있던 그녀는 가까이에서 보니 나의 친정엄마 연배 정도 되어 보였다. 예순 중반?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많이? 겉으로 보이는 세월의 나이테를 판단 근거로 지극히 주관적으로 가늠해 볼 뿐이었다.
은발 그리고 눈에 확 띄는 색감과 소재의 의상 때문이었을까? 그녀를 본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칠순을 바라보는 스타일리스트이자 모델로 꾸준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린다 로딘이었다. 어떠한 룩도 자신만의 스타일링으로 멋스럽게 소화해내는 그녀는 패셔니스타 부문에선 프랑스의 대표 왕언니쯤으로 소개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패션 감각은 프랑스의 젊은 층도 열광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날 기차에서 만났던 나만의 프랑스 왕언니에게서 린다 로딘과는 결을 달리하는 우아함을 보았다.
버건디 컬러로 맞춘 상하 가죽 착장은 트렌디한 것은 분명했으나, 한두해 그녀와 함께한 아이템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 추측이지만 매우 오랫동안 세심히 관리를 해오며 지금까지 착용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단지 의상 관리만 잘하는 사람일까. 예순 중반을 넘긴 그 나이에도 여전히 가죽팬츠를 무난하게 소화하는 변함없는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꾸준한 관리가 수반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나의 단면이지만 나이가 무색할 만큼 안팎으로 자기 관리 또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두 손은 어느새 자유분방하기 이를 데 없는 내 배에 올려져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어떤 날, 나는 새 학년을 앞둔 아이에게 필요한 학습서를 구입하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신간 코너를 지나치던 중 한 권의 책에 손이 절로 갔다. 표지에는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라는 쓰여 있었다.
프랑스 여성들은 나이 든다는 것, 늙는다는 것은 젊음과 이별을 고해야 하는 어떤 '슬픈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젊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그냥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마음가짐이 타문화권 여성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도 책을 쓴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젊어 보이려고, 완벽해 보이려고 과하게 애를 쓰거나 치장하지도 않고 자신의 내면의 당당함을 그대로 개성이 담긴 스타일에 연출할 줄 하는 프랑스 여인들의 '나이 듦'을 마주한 자세가 참 멋지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물론 콜마르행 기차에서 스쳤던 버건디 가죽의상의 멋진 프랑스 왕언니였다.
"나는 콜마르가 특히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해. 그래서 콜마르가 가까워지는 이때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물론 불어식 영어 발음 때문에 그녀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만, 비루한 영어실력을 가진 내가 판단하기에도 능숙하고도 바른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알자스 지방의 소도시들을 좋아한다고 했으며, 1년 전부터는 강제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되어 글을 쓰고 싶을 때만 쓸 수 있게 된 현재에 무척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남아있다. 캐묻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직업은 저널리스트 혹은 작가가 아니었을까 지레짐작만 했을 뿐이다. 분주하고 정신없게 만들었던 파리에서 벗어나니 갑자기 시계 초침이 느려지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내게 눈가에 예쁜 주름을 만들며 웃어주기도 하셨다.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외모에서 풍기던 그녀를 떠올리며 세월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주름살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없애버려야 할 부끄러운 흔적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물론 선물처럼 기꺼이 감사히 받겠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책에도 쓰여 있듯 '나를 증명하고, 지금의 나를 보여주는 고마운 나이테이자 하루하루 열심히 달려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내세우고 싶은 훈장'으로 여기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고 간 이야기는 많지도, 깊지도 않았지만 몇 해 전 가을 내가 잠시 만난 그녀는 이른바 '치열한 안티에이징보다 우아한 웰에이징'을 추구하는 프랑스 여성들의 스타일과 애티튜드의 표본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고, 내 마음속의 대표 프랑스 왕언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