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드디어 출발

자동차로 캠핑하며 돌아다닌 유럽축구 여행기

by 라이터래

나름 정교하게 1인당 23kg의 무게를 맞췄다고 생각한 우리는 저런 모양새로 출국 수속을 밟으려 했다. 아뿔사,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생각했다. 두 명이니까 총 46kg만 넘지 않으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래저래 멋진 척해가면서 은근 슬쩍 넘겨보려고 했지만, 현격한 용모 미달로 인해 씨알도 안 먹혔다. 다소 시간이 길어질 때쯤 목에 스카프를 요란스럽게 휘감고 약간 고참으로 보이는, 노처녀 사감 선생님 같은 직원이 등장했다.


"(이 그지 같은 새끼들아,) 비행기 놓치기 싫으면 저기 가서 빨리 큰 박스 하나 사서 무게 맞취 오세요"

"네…"


공항직원의 화를 불러일으킨 장본인

인천공항 출국장 저 끝에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존재한다. 딱히 이름을 붙이기가 뭣하지만, '멍청이들을 위한 재포장 센터'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이 없었다. 변경 불가능한 티켓이었기에 조금만 더 지체하면 비행기 값 300만원하며 마드리드에서의 숙박비, 자동차 렌트 등을 홀라당 날리게 생겼다. 돈도 돈이지만 연재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만남'이 우리를 도왔다. 당시 이곳에 근무하던 아르바이트생은 안경을 지긋이 쓴, 상당히 지식인스러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외쳤다.


“유레카! 우선 대형여행가방을 23kg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각이 살아있는 라면박스와 텐트박스를 묶어라. 나머지를 모아 큰 박스에 담으면 23kg를 넘지 않을 것이다, 이 우매한 자들아”


내 눈에 그는 아르키메데스였다. 그가 보여준 마법으로 우리는 제 시간에 수속을 맞출 수 있었다. 거짓말 많이 보태서 아직까지 그의 얼굴이 기억날 정도다. 지나가다 길에서 만나면 '그때 고마웠어요'라고 해주고 싶다.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

한결 정리된 짐

한바탕 소동을 마치고 서로의 촌스러움을 뽑내며 비행기를 타러 가는 모습이다.

나는 누구에게 보내는 엄지이며,

그는 왜 저리도 크로스백을 바짝 매고 있는 것인가...

우까까가 남긴 사진 중 하나다. 그때는 '뭘 저런 걸 찍지? 촌스러운 자식, 쯧쯧' 이라며 혀를 찼다. 그런데 이런 사진 하나가 추억의 기록으로 남을 줄이야. 독일 뮌헨 경유, 마드리드행 비행기다.

사실 우리는 아주 멍청했다. 여행루트를 짜고 비행기 티켓까지 구매하고 나서야 자동차 리스를 알아봤다. 유럽 내 자동차 리스는 프랑스가 패권을 줬다. 프랑스 내에서 리스를 받고 넘기는 비용은 무료, 그 이외의 나라는 추가 비용을 내야했다. 우리의 티켓은 마드리드 입국, 맨체스터 반납. '티켓을 변경해야겠다'며 룰루랄라 루프트한자에 전화했지만 답변은 단호했다. 예의도 없었다. 독일하면 떠오르는 딱딱하고 고지식한 이미지 그대로였다.

'뽑아먹자 루프트한자!'

우리의 복수하기로 마음 먹었다.

7도 짜리 독일 맥주

뽑아먹으려다가 내가 뽑히는 줄 알았다. 평소 맥주 500ml의 주량을 자랑하는 내가 '기내에서는 역시 맥주지'하며 한껏 기분을 냈다. 인생 최악의 숙취는 한 시간쯤 후에 내 머리를 방문했다. '하지부종? 하지불안?' 병명을 알 수 없는 다리 통증까지 찾아와서 뮌헨까지 가는 내내 좀비처럼 기내를 돌아다녔다. 아스피린을 한알 먹고 나서야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바이에른사의 아스피린이었으니, 독일이 만든 문제를 독일이 해결했다.

그런데 기내에서의 음주 후 숙취가 지상에서 보다 심할까? 기압이 낮으면 산소도 적어져서 숙취가 심하단다. 계곡이나 숲속에서 마시는 술이 잘 취하지 않는 이유의 반대일 것이다. 그리고 밀맥주도 라거맥주 보다 숙취가 심하단다. 이 모든 게 구글링해보면 알 수 있다. 역시 멍청한 짓은 국경이 없다.

경유하는 장소에 비치되어 있는 커피 머신

'뽑아먹자 루프트한자'의 실천장소. 우리나라의 웬만한 카페보다 더 맛있는 커피를 뽑아준다. 이 시설이 유료인지 무료인지 고민할 때쯤, 우리 옆에 서 있던 한 노인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줬다.


"잇츠 쁘리"


잠시 후 그 노인은 커피로 끼니를 채우려는 한국인 2명을 보게 됐다. 그래도 어글리해지기 바로 직전에 멈췄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

"스페인 애들 미쳤어? 우리가 누군줄 알고 입국 심사를 안해?"


이미 뮌헨에서 유럽공동체 EU의 심사를 받은 줄도 모르고 입국심사대를 찾아 마드리드 공항을 돌아다녔다. 자발적으로 입국 심사를 찾아다니는 아주 선량한 여행객들이었다.

포커싱 아웃된 사진과 정신상태

이런 사진이 있었나 싶다. 이미 12시간의 비행과 맥주500ml의 숙취로 체력이 고갈된 후였다.

불침번

그래도 짐을 지켜야하니, 짐과 혼연일체가 되어서 아침을 기다렸다. 우리가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쯤이었다. 아침 9시에 리스한 자동차를 수령하기로 했으니 이때부터가 공항라이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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