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수다청취 할인

자동차로 캠핑하며 돌아다닌 유럽 축구 여행기

by 라이터래

수다의 전당

민박에서 지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주인집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한인 민박에서 숙박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해 봤을 그런 일이다. 물론 이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눈치 있게 사라져 버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Good listener'가 되어 의자를 데우고 있게 된다.

식사 직후를 조심해야 한다. 잠시 배를 식히고 있으면 주인집 아주머니가 슬며시 다가와 간단한 신상을 물어보면서 이야기를 풀간다.



"학생이야? 한국에서는 뭐했어? 얼마나 여행해?"



간단히 대답만하고 일어서려고 하면 영 찝집하다. 예의상 게스트도 주인집에 대해 물어보게 된다.


"민박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보통 이 문장이 게스트 입에서 나온 최후의 말이 되기 쉽다. 사실 주인 아주머니는 게스트의 이야기 손톱 만큼도 관심없다. 어디 민박에 오는 사람이 한 둘인가? 그저 본인 입 한번 떼기 위해서 옆구리 찔러 운 한번 띄우게 한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주머니 얼굴에 있는 점이 음소거 버튼은 아니야?’ 하는 상상을 할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행운이 좀 따른다면 주인에게 급하게 해야할 일이 생긴다거나 천성적으로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다른 손님이 바통을 이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큰 기대는 마라. 보통 그들은 프로 낚시꾼이다. 한번 잡은 물고기를 쉽게 놓아 주지 않는다. 더욱이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의 순진무구한 게스트들이 '자, 저는 이만 일어나 봐야겠어요.'라고 외치며 수다를 끊을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에는 '나쁜 건 나쁘게'라는 뜻이 함께 한다. 주인 기분을 상하게 한다?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점을 악용해 비싼 돈 들여가며 해외 여행하는 게스트의 소중한 시간을 암묵적인 권위로 빼앗아 간다. 이럴거면 민박료라도 좀 깎아줘야 공평하다. 나도 안다. 수다 좀 들어줬다고 민박료를 할인해줄 리 없다. 힐난이라도 하니 속은 좀 풀린다.

마드리드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나와 W는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음소거버튼을 찾고 있었다.


“우리 아들 때문에 고민이야.”


“…”


“S기업에서 그렇게 오라고 오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가기 싫데.”


“…(우린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도 안 쉬었다.)”


“우리딸? 우리 딸도 굉장굉장하지. 우와우와하니까”


대왕님도 훈민정음을 이렇게 자기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반포 후 처음이실거다. 잠시 서로 사맛디(통하지) 아니하고 싶었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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