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원철 Jan 04. 2018

초심으로 돌아가 찾은 혁신의 길

최고의 게임을 만들어낸 과정과 그 정신

많은 게임 관련 매체는 2017년을 장식한 최고의 게임으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꼽고 있다. 혁신적인 게임기로 평가받는 닌텐도 스위치와 함께 등장한 이 게임은 아주 넓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험을 매우 촘촘하게 구현하면서 높은 자유도를 양립시켰다. 이 게임을 해본 이들은 "하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게임은 결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세상에 나와 명작의 칭호를 얻기까지, 개발진들은 오랜 시간 동안 혁신에 대한 깊은 고민과 그 해답을 찾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긴 모험을 해왔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개발이 사람들에게 맨 처음 알려진 것은 2013년 1월이다. 당시 닌텐도는 Wii U를 막 출시하였지만, 2012년 연말을 노려 출시한 게임기가 2013년 초반까지 이렇다 할 킬러 타이틀을 배출하지 못할 정도로, Wii U는 시작부터 암초 투성이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닌텐도는 자사의 인터넷 방송인 '닌텐도 다이렉트'를 긴급 편성하여 Wii U의 타이틀 발매 계획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방송에 출연한 아오누마 에이지 젤다의 전설 시리즈 총괄 프로듀서는 Wii U의 젤다의 전설 신작의 개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그 신작의 개발방향을 이렇게 말하였다. 

젤다의 '당연함'을 새로이 한다. 

여기서 '당연함'이란, 그동안 젤다의 전설 시리즈 게임을 계속 제작하면서 점차 클리셰처럼 굳어간 주요 요소들을 말한다. 이 '당연함'을 재검토함과 동시에 이것을 깨어 혁신적인 게임을 제작할 것이라는 포부를 드러내고, 그 대표적인 '당연함'의 사례를 제시하였다. 

-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한다.
- 순서대로 던전을 공략한다.
- 혼자서 묵묵히 플레이한다. 

다만,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개발진 중 일부는 닌텐도 3DS를 위한 새로운 젤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해보고, Wii U로는 이미 출시한 작품의 리마스터 버전을 발표하는 식으로 팬들의 불만을 줄이면서 시간을 벌어나갔다.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닌텐도가 차세대 게임기 NX(이후 닌텐도 스위치라는 이름이 붙는 게임기)의 개발에 본격 착수하면서 본래에 나오기로 결정되어 있었던 Wii U에 더해 닌텐도 스위치에서도 출시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주어진 시간 동안 개발진들은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젤다의 전설」이라는 게임의 초심은 무엇일까?「젤다의 전설」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어린 시절 뒷산 동굴 탐험을 간 기억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발매한「젤다의 전설」은 게임 진행순서가 비선형적이고 상대적으로 많이 자유로웠다고 한다. 후속 게임을 계속 개발하면서 시나리오를 만들고 살을 붙여가다 보니 비선형적이었던 게임이 선형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클리셰처럼 되어버린 시리즈의 여러 요소들을 재검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심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발매 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개발 비화 영상에서 보여준 한 장면은 '초심으로 돌아간 혁신'의 대표적인 증표이다.「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특징 중 하나는 플레이어와 사물, 적과 사물, 그리고 사물과 사물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들판에 불을 놓으면 불은 더 넓은 들판으로 옮겨 붙으면서 상승기류를 만들어낸다. 플레이어는 이 상승기류를 이용하여 적을 공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위해, 개발진들은 '프로토타입 게임'을 만들었다. 그 화면은 다음과 같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개발을 위해 제작한 2D 프로토타입 게임 화면

이 화면에서 보여주는 프로토타입 게임은「젤다의 전설」의 첫 작품과 매우 유사한 그래픽을 가지고 있다. 개발과정에는 이 2D 프로토타입에서 적용한 효과를 3D로 다시 구현하는 과정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3D로 개발하면 될 것을 왜 굳이 2D로 만들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위의 화면은 단순한 기술 연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첫 작품의 느낌을 가진 게임을 만들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든다.'는 개발 정신을 개발진들이 다시금 다지기 위한 의식적인 과정이며, 개발의 테마를 확실히 게임 내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뿌리를 탄탄히 하고,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흔히들 '밥상 뒤집기'라고 부른다.)를 거쳐 완성된「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2017년을 상징하는 최고의 게임이 되었다.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우리에게 혁신의 방법론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그것은 '초심'이다. 우리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 우리의 정신은 무엇이었나?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등장한, Life지가 표방하는 철학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인터넷이라는 트렌드만을 추종한 구조조정 담당자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결고 혁신의 과정이 아닐뿐더러 그 결과도 좋지 못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켓몬스터 게임에 옐로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