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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Jan 25. 2018

과학 영재는 흥미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닌텐도 라보에 대해 생각하며

나의 초등학교 시절 소풍 코스 중 하나는 어린이회관이다. 어린이회관에 들어가면 각종 장치들이 아이들을 반겨주었다. 당시의 어린이회관은 아이들에게 과학의 원리를 재미있게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장치를 들여놓았다. 정전기를 이용한 일종의 수정구슬 효과나, 공이 일정 코스를 따라 움직이면서 여러 장치들을 연동해 작동시키는 것. 장치의 버튼을 누르면 아이의 눈으로 보기에 신기한 현상들이 일어난다.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어린이회관을 뛰어다니며 수많은 장치의 버튼을 제 손으로 누르고, 장치의 작동을 보면서 그 신비함에 눈을 빛내었다. 그것에 매료된 아이들은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면서 과학공부를 열심히 했다. 과학상자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랐고, 과학 실험시간을 즐거워했다. 


2018년 1월 18일 아침 7시(한국시간)에 공개된 닌텐도 라보를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바로 어린이회관이다. 어린이회관에서 장치를 만지던 때의 추억 말이다. 추가된 것은 내가 직접 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상자처럼 말이다. 골판지로 장치의 외형을 만든 다음, 조이콘(Joy-Con)이라는 버튼으로 생명을 부여하고, 닌텐도 스위치 본체를 끼워 작동시키는 것이다. 한바탕 장치를 움직이면 상상력이 자극되고, 본체에 표시되는 화면을 보면서 과학의 원리를 깨닫는다. 21세기에 닌텐도가 새로 만들어낸 과학상자는 오랜 시간이 지나, 내 집을 그 옛날 어린이회관으로 바꾸어줄 것이다. 10여 년 전 닌텐도 DS가 두뇌 트레이닝이라는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게임기 이외에 건강 보조 기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처럼, 닌텐도 스위치도 닌텐도 라보의 힘으로 과학교육 보조 기구라는 다른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닌텐도 라보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은 스스로 만든 장치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옛날 어린이회관에 갔던 나처럼 눈을 빛내며 과학인을 목표로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이미 익숙하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인재로 키워내고자 과학교육을 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 효과를 위해서는 일단 아이들에게 흥미를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흥미가 없는 공부만큼 효과가 낮은 것은 없다. 그 빈틈을 파고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닌텐도 라보이다. 닌텐도 라보가 제공하는 여러 '키트'들은 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유발된 흥미를 지속시키는 방법이다. 과학공부를 계속해가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내신과 수능에 나오는 과학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매게 되었다. 문제의 벽이 아이들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문제의 벽을 넘는 아이들도 있지만, 많은 아이들은 벽을 넘지 못한다. 그 아이들은 어린 날에 가졌던 과학에 대한 흥미를 급속도로 잃어갔다. 결국 남는 것은 암기해야 하는 여러 공식이나 법칙뿐. 결국 문제의 벽 앞에 무릎을 꿇은 많은 아이들은 과학자의 꿈을 버리게 된다. 나도 그 '문제의 벽을 넘지 못한 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다. 진정으로 과학영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면 나의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내신이나 수능에 자주 나오는 법칙이나 공식을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실험과 시도,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하면서 스스로 과학을 즐기게 해주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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