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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Apr 03. 2018

무도가 떠나가네(1)

무도의 추억

2018년 3월 31일을 기하여 무한도전이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잠깐의 휴식인지, 아니면 영원한 이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쉬움과 공허함은 어쩔 수 없군요. 그리하여 무한도전의 추억을 정리하는 글을 남깁니다.


「무한도전」(이하 「무도」)은 내가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한 거의 최초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무도」 이전에도 재미있게 본 버라이어티는 많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었던 버라이어티는 별로 없다. 나의 웃음 포인트는 상당히 지엽적이었다. 초창기 무도, 즉, 「무모한 도전」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방송된 연애 버라이어티인 「연애편지」를 예로 들면, 솔직히 나는 연예인 미남미녀들이 어떻게 커플이 되느냐는 관심 밖이었다. 당시 그 프로에는 출연자들이 상대를 지목해서 1:1 파이트(큰 글러브 모양의 소품을 끼고 복싱을 하거나, 혹은 씨름을 한다.)를 벌이는 '복수혈전 너 나와!'라는 코너가 있었다. 나는 그 코너만 재미있게 봤다. 과장 좀 섞어서 이러한 심리상태로 말이다. "죽이라고! 천명훈을 죽여! 허구헌날 남의 꽃 뺏는 천명훈을 죽여! 신정환이, 김종민이 다 죽여!" 나는 그 코너에서 내 안의 파괴충동을 해소하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도」, 정확히는 초창기인 「무모한 도전」이나 「무리한 도전」을 보면서도 난 딱히 재미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무도」를 진짜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2006년, 「강력추천 토요일」의 코너에서 별개의 프로그램으로 독립 편성된 이후부터이다. 당시에는 2006 독일 월드컵 시즌이었는데, 「무도」도 월드컵 특집을 준비했다. 전설적인 '물공 헤딩'이 처음으로 탄생한 이 특집 시리즈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무도 멤버와 아프리카 사람들이 각각 다른 방에 모여서 대한민국과 토고의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를 응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경규가 간다」 이래로 대한민국 방송의 월드컵 특집은 연예인들이나 방송사 아나운서들이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로 날아가 대한민국 경기를 보며 응원을 하는 구성이 클리셰처럼 반복되어왔다. 당시 「무도」는 소소하면서도 무언가 더 큰 메시지가 있는 월드컵 특집을 보여주었다. 내가 예전 평창 동계올림픽을 돌아보는 글에서도 썼었지만, 상대팀은 우리와 다른 존재나 악당들이 아니다. 상대팀도, 그 팀을 응원하는 팬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들처럼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으면 기뻐하고, 실점을 하면 슬퍼한다. 그런 개념을 막 잡아준 방송이 당시의 「무도」였다. 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감명'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무도」에서 또 다른 감명을 받은 것은 2008년의 '좀비특집' 때이다. 티저 영상부터 많은 이들을 기대하게 만든 좀비특집은 박명수가 사다리를 밀어버리고, 유재석이 좀비 치료약병을 깨트리면서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하였는데, 놀랍게도 제작진은 재촬영까지 했음에도(좀비특집 직전에 개략적인 스토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불구하고, 실패한 첫 방송분을 그대로 내보내는 결단을 보여주었다. 제작진은 자신들의 실패를 숨기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 결과가 PD의 경위서와 '노잼'이었다고는 하나, 실패를 부끄러워하는 이 사회이기에 제작진의 용기가 더욱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은 최악의 특집이라고 하나, 내 관점에서 보면 좀비특집은 절대 최악의 특집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무도」가 놀라웠던 것은 봅슬레이 특집의 나비효과이다. 무도 멤버들이 장난처럼 시작한 봅슬레이 도전이 어느 순간 진지하게 국가대표와 함께 훈련하는 수준으로 나아갔고, 실제 선발전에 출전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면서 봅슬레이에 흥미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선수가 되어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땄다는 엄청난 결말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경이 그 자체였다. 

「무도」가 재미있으니, 보고 있는 것을 넘어서 방송에 참여하는 수준으로 나아갔다. 무한도전 달력도 매해 구매했고, '선택 2014' 투표에도 한 표 행사했다. 참여 관련으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하하와 노홍철이 1:1로 10라운드 '결투'를 벌이는 특집에 방청신청을 했는데, 불행히도 당첨 문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여 참가하지 못한 일이다. 몇 시간동안 충격을 받았었다. 사실 차분히 생각해보면 내가 서울까지 갈 여유도 없었거니와, 만일 최후의 1인이 되어 자동차를 받았다고 해도 운전면허가 없어서 다시 팔아버리거나 부모님 드렸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대략 13년동안 「무도」를 보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고, 토요일 6시부터 8시까지는 TV 앞에 앉아서 「무도」를 보는 것이 생활패턴의 하나로 굳어져있었다. 종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13년간의 생활패턴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글은 2018년 3월 27일, 제가 스팀잇에 업로드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steemit.com/busy/@cyranodcd/3eawk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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